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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화재참사, 그리고 건축적 책임
현창용의 공간, 공감
공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건축가 현창용
2021.10.19

※ 이 글은 이데일리에 기재된 글입니다.



2017년 12월 21일, 충북 제천의 한 스포츠센터에서 발생한 화재가 29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화재의 원인을 두고 많은 전문가의 의견이 오가는 가운데, 해당 건축물의 외장재인 ‘드라이비트(dryvit)’가 도마 위에 올랐다. 2015년 의정부 도시형생활주택 화재 참사 당시에도 같은 문제가 불거졌던 만큼, 드라이비트로 마감한 건축물은 대형 화재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불행한 공식이 성립돼가는 모양새다.


드라이비트는 단열재 외부에 부착돼 단단하게 굳히는 용도로 사용되는 단열층을 보호하는 회반죽 외장재다. 가연성의 석유화학제품을 건축물에 사용했다는 언론의 뭇매는 사실 드라이비트가 아닌 그 안의 단열재가 맞아야 할 몫이다. 드라이비트 자체는 현존하는 외장재 중 가장 저렴하고 동시에 균질하고 깔끔한 외관을 형성하는 우수한 재료로 꼽힌다. 드라이비트가 아닌 어떤 외장재일지라도 파손 후 관리되지 않는다면 그 틈으로 노출된 단열재에 붙어 번지는 불길을 막을 방법은 없다.




건축물에 화재가 발생하면 큰 틀에서 두 가지 현상이 이어진다. ‘재료’가 타고 ‘사람’이 대피하는 것이다. 재료에 옮겨붙을 불씨를 예방하는 것이 최우선이겠지만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사람이 피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건축의 의무다. 만일 이번 화재의 원인을 건축에서 찾는다면 드라이비트, 단열재와 같은 재료가 아닌 다른 부분을 살펴봐야 한다. 이는 ‘평면’과 ‘생애 관리’라는 두 단어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평면도 위에 그려진 선들은 단순히 용도와 면적을 나누는 기준이 아니다. 사용자의 행태를 통제하는 치밀한 시스템이 도식화된 것이 평면이다. 평면도를 살펴보면 행위가 예측되기에 건축가들은 평면을 해석하는 행위를 ‘평면을 읽는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황철호 의원(자유한국당)이 공개한 제천 스포츠센터의 허가 시 평면도를 살펴보면 앞서 말한 ‘사람이 피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한 의원이 공개한 제천 화재건물 2층 도면에 따르면 소방당국은 스포츠센터 여성 사우나 비상구 출입 통로 대신 창고가 들어서 있는데도 허가에 동의했다. 피난계단은 법규에 맞게 2개소가 설치되어 있고 각 계단 앞에는 널찍한 홀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주 출입구인 중앙의 피난계단과 홀 앞에는 ‘대중목욕탕’의 특성상 여러 번 꺾인 칸막이벽이 설치돼 시선과 동선을 차폐한다. 외부인이 들여다볼 수 없지만 결국 위급 시 내부인도 나갈 수 없는 공간구조가 형성된 셈이다. 또 부계단의 방화문 앞에는 ‘창고’라는 두 글자가 적혀 있는데 실제 이곳은 목욕용품을 적재하는 공간으로 활용됐다. 건축 허가 시 허가권자가 놓친 부분일 텐데 그 대가는 너무나 참혹했다.



결국 설계와 허가, 그리고 사용에 있어 안전은 뒷전이었다. 하지만 만약 건축물의 ‘생애 관리’가 철저히 이루어져 이전 단계에서의 실책들을 보완할 기회가 있었다면 상황은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건축물은 사유재산이지만 주택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축물은 대중의 접근과 체류가 가능하기 때문에 정부의 관리가 필요하다. 특히 대중목욕탕과 같은 다중이용시설의 경우 유지관리와 모니터링은 매우 중요하다.


국토교통부는 2015년 ‘건축물 생애 이력 관리시스템’을 구축했다. 건축물의 생애주기 전 단계에 걸쳐 이력 정보를 통합해 유지·관리함으로써 건축물의 안전성과 기능성을 확보하고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정책의 취지대로라면 제천 화재의 원인이 된 계획·허가·사용상의 문제점을 바로잡을 수 있었어야 했다. 하지만 이 정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상 유명무실한 것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건축물의 생애 이력 관리를 위한 유지관리 기준은 다음과 같다. 건축물이 준공 후 10년이 되는 날부터 2년에 1회 점검받는다. 허가권자가 점검대상을 선정해 건물주와 점검자(지정된 건축사)에게 통보해 보고서를 받아 검토하는 방식이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간 건축물은 정부로부터 어떠한 관리도 받지 않는 셈이다. 이번 제천 화재가 일어난 건축물은 2011년에 지어졌으니 10년 미만의 건축물로서 유지관리 대상이 되지 못했다. 10년이 넘은 건축물인 경우라 할지라도 2년에 한 번, 게다가 공무원으로부터 위임받은 건축가가 수행하는 점검은 얼마든지 조작되고 이면 협의가 이뤄질 가능성을 안고 있다. 건축사보다 허가권자들의 건축 전문지식이 부족한 현실의 개선 없이는 점검이 전문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음을 뜻한다.


건축물에 대한 안전 불감증은 공공과 민간을 막론하고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고질병이다. 자동차조차 승용차는 2년, 대형화물차는 6개월마다 정기검사를 시행하는 데 반해 건축물은 10년간 무방비상태로 놓여있다는 점은 우리 정부의 정책적 실패를 드러내는 단면이다. 건축물은 인간의 안식처이기도 하지만, 재난에 철저히 대비하지 않았을 경우 가장 무서운 흉기가 되기도 한다는 점을 우리는 올 한해 여러 차례 체감했다.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안전’의 진일보를 위해 전문가와 공공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공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건축가 현창용

공주대학교(조교수), 서울특별시(공공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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