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기록] 제2회 인천 개항로 건축캠프
건축안내원│이준호 소장 (건축그룹[tam])
여행지│인천 개항로일대
일시│2022.4.30(토)
주최│에이플래폼 & 어라운드트립
개항과 함께 펼쳐진 인천 최초의 건축이야기
개항 후 지금까지 변화에 변화를 거듭한 도시 인천. 여러 나라의 조계지로 조각조각 쪼개졌던 시기와 청, 일 조계지로 나뉘었던 시기를 지나 한국전쟁 후 지금까지 긴 역사와 다양한 양식의 건물이 차곡차곡 쌓여왔습니다. 인천역에서 개항로까지 함께 거닐며 인천 곳곳에 축적된 이야기를 풀어냈던 지난 시간을 전합니다.
여행은 지난 시간에 이어 인천의 도시건축 가이드가 되어주신 이준호 건축가의 소개로 시작되었습니다. 붉은색으로 치장된 거리와 큰 규모를 자랑하는 중국음식점이 늘어선 모습으로 여행의 시작을 알렸던 차이나타운은 화려하고 강렬하기만 했던 첫인상과는 달리 걸어 들어갈수록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1880년대 청국 조계지 시기부터 지금까지 자리를 지켜온 건물들과 국내에 자장면을 최초로 들였다는 공화춘, 여전히 화교의 후손들이 다니고 있다는 학교까지 중화권의 건축 양식을 확인할 수 있어 마치 살아 숨쉬는 거리의 박물관 같기도 했습니다.
다른 개항지와 마찬가지로 인천에는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킨 역사적 건물들이 다수 존재합니다. 그러나 흘러가는 세월 속에 속절없이 사라진 건물들, 혹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건물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실정이기에 여행 내내 보존과 재생이 화두 되었고, 건축가의 시점에서 보존과 재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건축 역사의 단절을 막기 위해서는 살릴 수 있는 근현대 건물들을 하나의 흔적으로써 남겨야 한다.'
건축가의 이야기와 건축에 대한 진심에 깊이 공감한 참가자들은 겉모습만 복원한 건물과 의미와 역사를 지키며 보존한 건물을 돌아보며 자연스레 '올바른 보존과 좋은 재생이란 무엇인가' 를 고민해보기도 하고, 무심코 지나쳤던 건물들을 다시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인천은 군산과 같이 여러 채의 일본은행과 일제 양식의 건물들이 보존되어 있는 도시로, 특히 개항장 문화지구에 이같은 건물들이 가장 밀집되어 있습니다. 거리 곳곳에 130년 역사와 문화가 보존, 복원되어 있어 개항기로 시간여행을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곤 합니다. 특히 문화지구 내 일본 조계지는 차이나타운에 가려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수탈의 근거지였던 일본 특유의 건축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건축물들이 남아있어 그 가치가 상당한 곳입니다.
당시 국내로 가지고 들어왔던 일제의 건축 양식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일제가 서양의 건축 양식 중 어떤 것을 건물에 입혔는지 등 가이드님의 시원시원한 입담 속에 이야기를 듣다 보니 차츰 흩어져 있던 역사와 건축의 퍼즐이 맞춰지는 듯했습니다.
문화지구에서 건물 자체가 가진 역사를 느꼈다면, 공간이 가진 시간의 가치는 그루비한 재즈 음악이 가득한 버텀라인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개항기부터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공간과 이를 지켜내려는 버텀라인 사장님의 이야기가 모두의 가슴에 와닿았고, LP판에서 흘러나오는 재즈가 공간에 퍼지며 근대건축적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소리의 울림과 깊이를 경험해볼 수 있었습니다.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걷다 보니 푸르른 나무와 다채로운 봄꽃이 우리를 반겼고, 건축물들과 어우러진 자연을 보며 잠시 근처에 앉아 봄을 실감하기도 하고, 곳곳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여행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봄내음 안에서 존재 자체로 역사를 이야기하는 건축물들을 만났습니다. 고지대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사교의 장 제물포구락부와 홍예문을 지나 언덕배기에 위치한 내동교회입니다. 두 곳 모두 서양인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다른 조계지 건물들과 차이를 보입니다. 특히 제물포구락부는 클럽이라는 명칭과 달리 고종이 만든 비공식 외교 공간으로, 서양과 직접적으로 교류하려 했던 대한제국의 의지가 담긴 공간이라는 이야기가 있어 더욱 흥미를 유발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한 곳은 싸리재입니다. '싸리재'는 지금의 경동 사거리에서 배다리 사거리에 이르는 1km 남짓한 고갯길을 부르던 지명입니다. 인천 시민들의 시네마 천국 애관극장부터 병원, 예식장, 가구점, 양복점 등이 빼곡히 들어서 한 때 '경동웨딩가구거리'라는 이름이 붙이도 했던 곳입니다. 비록 지금은 불이 꺼진 공간들이 많지만, 개항기와 현재 사이 정도의 시간에 머물러 있는 싸리재 거리를 둘러보고, 싸리재를 기억하고자 동명의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님의 이야기부터 현재 싸리재가 처해 있는 개발이라는 현실적인 이야기까지 들어보며 다시금 오늘의 여행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더 낮은 진입장벽으로, 더 많은 이들과 도시와 건축, 그리고 건축의 보존과 재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했던 이 여행이 참가자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기를, 그리고 또 다른 이들에게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