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기록] 제1회 사유원 건축여행
건축안내원│남지원 건축가 (Atelier NAM)
여행지│경상북도 군위군 사유원
일시│2022.7.29(금)
주최│에이플래폼 & 어라운드트립
사유원 건축여행
'오랜 풍상을 이겨낸 나무와 마음을 빚은 석상, 아름다운 건축물이 함께하는 고요한 사색의 공간'
위 소개 문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유원은 자연에 건축이 더해져 완성된 장소입니다. 몇 겹씩 레이어링 되어 끝없이 펼쳐진 산자락과 그 사이 드문드문 고개를 든 건축물을 모두 통틀어 사유원이라 합니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건축에 대한 열정과 진심으로 울림을 전하는 남지원 건축가와 함께 도시와 일상은 저 멀리 밀어두고, 걷고 있는 길과 눈 앞에 펼쳐진 자연, 그리고 우리를 감싸고 있는 건축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사유원의 기나긴 여정은 모과나무 네 그루로 시작되었습니다. 300년의 세월 동안 한반도에 뿌리내리고 있던 나무들이 일본으로 밀반출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태양철강의 유재성 회장이 이를 모두 사들인 것입니다. 평소 사옥과 자택에 큰 정원을 조성할 만큼 식재를 사랑했기에 일제강점기부터 성행했던 이같은 상황을 두고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 덕에 일본에서 인기가 많지만, 그 땅에서는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한다는 모과나무는 군위 산자락에 새로 뿌리를 내릴 수 있었고, 지켜낸 나무의 시간은 이제 사유원에서 건축과 하나 되어 다시 흐르고 있습니다.
7월의 사유원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여름옷을 입은 자연입니다. 우리는 가장 높은 곳에서 안내원님의 소개와 함께 사유원을 한눈에 내려다보며 본격적인 여행 전 프리뷰처럼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자연의 모습에 참가자 모두 따갑게 내리쬐는 햇살을 잠시 잊고 오늘의 여행을 그려보는 듯했습니다.
사유원에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여러 건축가의 작품들과 자연이 만들어낸 작품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그중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은 단연 콘크리트와 코르텐강의 조화와 함께 자연에 녹아든 승효상의 현암, 명정, 오당/와사, 사담과 특유의 조형미를 뽐내는 알바로 시자의 소요헌, 소대, 내심낙원입니다. 여행을 종료하며 어느 곳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 물었을 때 모두 다른 곳을 이야기할 정도로 저마다 고유한 의미와 공간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북쪽 가장 높은 곳의 명정은 전망대라는 용도와는 달리 땅속으로 깊이 파고들어 있는 공간입니다. 콘크리트 벽체를 따라 좁은 길을 한 줄로 걸어 들어가 보니 외부와 완벽히 차단된 듯 돌벽을 타고 내리는 물과 그 물로 덮인 바닥, 물길, 그리고 건너편의 무대와 긴 의자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수목원을 돌아보며 느꼈던 기억과 감정을 간직한 채 스스로를 성찰하기를 의도한 공간이기에, 명정을 천천히 돌아보던 참가자들은 날이 조금 선선해지면 이곳을 마지막 종착지로 삼아 다시 방문해보고 싶다며 다음 사유원을 기약하기도 했습니다.
'사유'라는 테마에 맞게 곳곳으로 흩어져 사유원을 돌아보던 참가자들은 길목에서 마주치면 먼저 다녀온 공간을 추천해주며 서로 길을 안내해주기도 하고, 안내원님을 만나 건축가의 시선으로 본 공간을 다시 한번 들어보며 저마다 느낀 점을 나누었습니다.
한옥에 나란히 앉아 땀을 식히며 바라보았던 유원도, 자연을 메인디쉬 삼아 담소를 나누며 점심을 먹었던 사유원의 작은 레스토랑 사담도 모두 좋았지만, 안내원님과 몇몇 참가자분들은 풍설기천년을 1번으로 꼽았습니다. 108그루의 모과나무를 비롯하여 적송, 소나무, 배롱나무 등의 푸른 수목들과 붉은 코르텐강이 대비를 이루는 풍설기천년은 사유원의 시작이자 기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삼삼오오 그늘에 모여 시원하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이곳, 사유원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었습니다.
여행의 끝자락에 찾은 알바로 시자의 소요헌과 소대는 그 명성만큼이나 조형적이고 웅장한 모습을 뽐냈습니다. 특히 소요헌은 마드리드에 지어질 예정이다 이곳에 자리 잡았다는 것이 무색하할만큼 공간 속으로 우리를 깊이 끌어당겼습니다. Y자로 나뉘어 한쪽은 죽음, 한쪽은 삶을 표현하고 있어 그 의미를 알고 둘러보면 더욱 깊이 있게 느껴졌던 공간입니다.
멀고 먼 경상도에서 처음 만난 남지원 건축가와 참가자들은 더운 날에도 온 힘을 다해 사유원을 즐기며 잊지 못할 여름날의 추억을 남겼습니다. 자연 안에서 건축이 어떤 모습으로 자리할 수 있는지, 건축안에서 자연은 어떻게 비춰질 수 있는지 알아보았던 우리의 여행이 모두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기를, 그리고 훗날 그 기억을 꺼내 보려 다시 찾은 사유원에서 또 한 번 반갑게 인사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