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졸업의 Season이다. 졸업(卒業)은 어떤 업무를 마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졸업이라는 단어에는 어떤 업무를 마친 뒤 또 다른 업무가 시작된다는 의미가 더 크다. 대개 새로 시작되는 업무는 끝마친 업무보다 난이도가 더 높다. 그래서 졸업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내 머릿 속에서는 졸업을 한 사람이 더 통과하기 힘든 좁은 틈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상태가 떠오른다. 더 심한 경쟁의 장(場)으로의 진입. 사전 상에서 '졸업'은 (두 번째 의미로) '어떤 일이나 기술, 학문 따위에 통달하여 익숙해짐'을 뜻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첫 번째 의미인) '학생이 규정에 따라 소정의 교과 과정을 마쳤을 때' 쓴다. 즉, 졸업은 학교라는 공간과 얽혀 있다.

2010년 3월 송도국제도시에 연세대학교 Multi Campus가 개교했다. 송도 IFEZ 7공구에 들어선 이 Campus에는 총 20개 정도의 건물이 들어설 예정인데, 이 중 1단계로 연구동, 문화센터, 기숙사(아래사진), 도서관(위 사진)을 포함한 9개 건물이 완공됐다. Campus 조성을 위한 Master Plan 수립 초기 연세대학교 교수들로 구성된 자문단은 설계자들에게 'Quadrangle'이라는 Issue를 던졌다. 자문단이 언급하는, '사각형 안뜰'로 해석되는 Quadrangle은 지금까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중정(Courtyard)과는 다른 것 같았다. Master Plan수립 및 1단계 건축설계를 위한 현상설계에서 건원건축의 안이 당선됐다. 그럼 Quadrangle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Courtyard와는 어떤 점이 다를까? Quadrangle의 개념을 담고 있는 Campus 몇 군데를 둘러보면서 그 의미를 생각해 보자.

Laney College / SOM(?)(1970)
 전 세계에 역사좀 있는 유수의 대학 Campus의 위성사진을 훑어 보면 하나같이 Quadrangle을 중심으로 Campus가 조성돼 있다. 하지만 난 이야기의 시작을 그런 대학들이 아닌 거의 알려지지 않은 Laney College라는 곳에서 하려고 한다. Laney College는 San Francisco 건너편에 있는 Oakland라는 도시에 있다. Oakland Museum(Kevin Roche & John Dinkeloo, 1969) 남쪽, 10th st을 사이에 두고 있는 Laney College를 위성사진으로 보면 기하학적으로 구성된 Pattern이 눈에 들어온다. 한변의 길이가 33m인 정사각형과 직각이등변 삼각형 그리고 ㅁ자 평면을 양쪽에 두고 다시 정사각형의 평면이 연결돼 있는 5x5 Grid Pattern으로 조합된 배치는 학부 설계수업시간에서나 시도했을 법한 모습이다.

그런데 이렇게 새의 눈(위성사진)에서 본 강렬함은 인간의 눈(현장)에서는 잘 인지되지 않는다. 다만 Campus북서쪽에 배치돼 있는 8층 높이의 Laney Tower(Main Administration Building, 아래사진)는 1~2층 높이의 다른 건물에 비해 높이 뿐만 아니라 직각이등변삼각형 평면의 예각 모서리가 주는 긴장감으로 인해 멀리서도 쉽게 인지된다. 행렬로 따지자면 2행 1열, 10th st과 Fallon st이 교차하는 지점 근처에 만들어진 주출입구에서 Laney Tower가 반쯤 잘려나간 부분은 Campus의 정가운데(3행 3열) 위치한 Openspace로 방문객을 유도한다. 또 Openspace남동쪽(4행4열)에는 Laney Tower와 평면적으로 대응하는 동일한 직각이등변삼각형이 놓여 있는데, 강의실과 Dance Studio가 위치한 이 건물은 높이나 외관의 재료가 다른 건물들과 같아서 평면상의 변화가 잘 인지되지 않는다. 하지만 잘려나간 다른 부분이 Campus와 Lake Merritt로 흘러가는 Campus내 수로를 이어주고 있다. 이등변삼각형 평면의 건물 외에 중앙광장을 둘러싼 나머지 블럭에는 블럭을 꽉채우는 정사각형 건물이나 최소한 Canopy가 그런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나머지 가로에 대응하고 있는 부분은 세개 혹은 두개의 연속된 건물이 ㅁ자평면으로 Quadrangle를 만들면서 배치돼 있다.

이 특이한 평면의 Campus를 설계한 사람은 'San Francisco Architecture(Sally B.Woodbridge and etc著)'라는 책에서 SOM으로 소개돼 있다. 하지만 SOM Homepage 어디에도 1970년에 이 Campus를 설계했다는 기록은 없다. 어찌됐든 Campus배치에서 각 Block을 구획시켜주는 Campus내 가로는 가로에 면한 건물의 주출입구 외에는 공벽(Empty Wall)으로 처리돼 있고 이렇다할 Street furniture도 없어 끝없는 적벽돌의 줄눈이 포로수용소나 초현실적인 공간처럼 느껴진다. 아마도 설계자는 내부 중정에 면한 부분에 창을 둠으로서 그에 대응하여 반대편 벽에는 개구부를 두지 않으려고 한 것이겠지만 그러므로서 Campus내 가로는 너무 삭막하게 느껴진다.

물론 그 의도의 이면에는 Campus내 가로는 단순히 통행과 이동을 위한 장소로만 쓰고 학생들이 모이고 Campus의 Activity가 일어나기를 기대한 곳은 ㅁ자 평면의 Quadrangle이나 Campus 정가운데(3행3열) 위치한 Openspace이기를 바라는 설계자의 의도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Campus를 설계한 시기가 1970년이라는 시기적인 면을 감안하더라도 하물며 도시에 적용해도 위험이 큰 이런 시도를 도시가 아닌 Campus에 적용한다는 건 너무 그려진 공간을 완벽하게 표현하고자 한 접근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Laney College는 Campus배치에서 전통적으로 추구했던 Quadrangle이라는 개념을 기하학적인 Pattern속에서 Solid와 Void를 섞어가면서 풀어낸 사례다. 동시에 설계자는 Campus내 Quadrangle을 단순히 건물에 둘러싸인 닫힌 공간으로만 두지 않고 이웃한 Quadrangle을 연결하는 통로를 만들고 그 통로에 Campus내 가로로 열린 Quadrangle을 둠으로서 연속된 Openspace로 읽히기를 의도했다.

Two Works by Norman Foster in Stanford University
 Quadrangle을 조금 건축적이기는 하지만 Laney College보다 더 최근 사례를 보기 위해 Laney College와 함께 Bay Area에 속해있는 Stanford University로 가보자. Stanford University 또한 유수한 역사와 명성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관광차 찾기까지 하는 옛건물은 전형적인 Quadrangle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이 글에서 보고자 하는 공간은 Main Quadrangle에서 서쪽으로 떨어져 있는 의과대학 건물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현재 의과대학교가 쓰고 있는 건물(Edward Durrell Stone, 1959)도 중정을 끼고 연속적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그 건물 남동쪽 Corner에 배치된 직사각형 평면에 가운데를 유연한 곡선으로 후려판듯한 평면의 James Clark Center는 Stanford University가 비록 건물 배치는 규칙없이 툭툭 떨어뜨렸지만 -누군가는 Monopoly Board Game에서 사용하는 건물 모형을 Campus에 던져 떨어지는 곳에 신축건물의 위치를 정했다는 얘기를 내게 해준적 있다. 그 분 아들과 딸이 Stanford University를 졸업했으니까 완전 틀린말은 아니지 않을까?- 건물간에 형성되는 공간은 일관되게 유지하는 Quadrangle이 현대적인 건축언어로 번안된 예라 할 수 있다.

위성사진상으로 하나의 건물처럼 보이는 James Clark Center는 그러나 세개의 건물이 하나의 지붕으로 덮혀 있는 구성이다. 그리고 그 세 건물이 둘러싸고 있는 공간은 Quadrangle이라는 단어가 '사각형 평면'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Quadrangle이라기 보다는 Courtyard라고 해야 맞다. 연구실, 사무실, 그리고 Cafeteria와 같은 교류공간이 혼합된 James Clark Center의 시설들을 이용하는 700명의 교수와 연구원들은 모두 의대소속이 아니라 상당수는 인문학, 과학, 공학에 속해 있다고 한다. 그래서 James Clark Center의 Site Positioning도 Stanford University 전체에서 과학대학, 공학대학, 의과대학이 접하는 곳으로 결정됐다.

James Clark Center에서 추구하는 건 'Interdisciplinary' 즉, '학제간 연계'다. 그리고 James Clark Center가 이런 방법을 추구하기 전 의과대학내에서 먼저 추구했던 곳이 James Clark Center에서 서쪽으로 세건물이 떨어진 곳에 있는 Center for Clinical Sciences Research(이하 CCSR, 아래사진)다. 이 건물은 James Clark Center를 설계한 Norman Foster가 James Clark Center보다 3년전인 2000년에 설계한 건물이다. 남북으로 두개의 Mass가 배치된 CCSR은 격자형의 Aluminum지붕이 두개의 Mass를 덮고 있다.

"Stanford University has long been recognised as a centre for clinical excellence. The new Center for Clinical Science Research (CCSR) provides the School of Medicine with state-of-the-art modular laboratory and office space for its ongoing programme of research into cancer and other diseases. Its design responds to emerging trends for interdisciplinary biomedical research, encouraging intercommunication and providing flexible, light-filled working spaces in which research teams can expand and contract with ease."

-Norman Foster's Homepage-

학제간 교류의 장 Quadrangle
 어쩌면 이 글을 통해 찾고자 했던 답은 Laney College와 Norman Foster가 Stanford University에서 한 작업을 굳이 둘러보지 않더라도 짐작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Quadrangle은 현재 각 학문들이 발전되고 있는 방향인 'Interdisciplinary'에 대한 공간적 반영이다. 어쩌면 연세대 교수진들은 그걸 공간적으로 구현해 달라는 메세지를 Quadrangle의 지나친 강조로 표현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의외로 우리네 학교건물은 그렇지 못한 상태가 꽤 지속돼 왔다.

"학교에서 적용되는 파놉티콘(Panopticon)의 형태는 원형감옥과는 조금 다른 형태로, 강단 중앙에 홀로 선 교사와 그와 마주 보고 앉은 학생으로 이분된다. 이 경우 시각의 불평등성에 따라 타율을 내재화하는 구속은 일어나지 않지만, 대신 학교에서는 정보의 통제를 통한 간접감시를 한다. ...(중략)... 교실 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Communication은 학생과 교사 간의 소통만을 인정할 뿐 학생 상호간의 의사전달은 불허되며 또한 교사의 발언은 자유롭게 허용되는 대신 학생의 발언은 먼저 발언의사를 표현한 다음 교사의 허락이 떨어져야 발언이 가능한 비대칭적 관계가 성립된다. ...(중략)... 즉 감옥이 감시권과 피감시권에 대한 통제가 주류를 이룬다면학교는 정보의 선택적 차단과 허용으로 통제를 하고 있다."

-건축, 권력과 욕망을 말하다. 서윤영-

Project 때문에 위성사진이나 CAD 수치지도를 보면 동서로 길게 놓여진 건물은 시설명이 써 있지 않아도 학교나 때로는 군부대일거라 추측할 수 있다. 내가 다녔던 초,중,고등학교도 모두 一자 Mass에 기껏해야 한쪽에 Wing을 증축한 ㄱ자 평면이었다. 그리고 백이면 백 건물 앞에는 운동장이 있다. 마치 군대막사 앞에 연병장이 있듯이... 위의 인용글 처럼 우리에게 교육은 언제부턴가 일방향의 가르침이었다(오히려 꽤 과거였던 시점에는 그렇지 않았다). 최근에야 논술 준비를 위한 토론수업이니 자기의 생각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치겠다는 학습지가 나오긴 했지만 이런 광고카피를 쓰는 것 자체가 지금 우리의 교육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늘 그렇듯이 Software보다는 Hardware를 더 잘 만들어내는 우리나라이기에 교육시설에서 Quadrangle을 만들어내는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설계적으로 그렇게 그리면 끝이다. 문제는 그렇게 만들어진 Quadrangle에서 그 공간이 궁극적으로 담고자 하는 -그 공간이 만들어진 진짜 이유인- '학제간 연계' 또는 '학생간 생각의 교류'가 이루어지는가가 더 중요하며 그게 본질이다. 그런데 대게 Academy의 위상을 살리기 위해 명문대의 상징이라 생각하는 Classical Design을 Campus건물의 설계언어로 쓰는 것처럼 심지어 콘크리트 덩어리로 전혀 의미없는 Obelisk를 세우는 몇몇 대학처럼 Quadrangle도 본질은 없고 흉내만 내는, 겉으로 드러나는 하나의 공간적 표현으로만 전락할 수도 있다. 만약 단순히 공간적 형태로서만이 아니라 학제간의 연계 추구를 진짜로 하려고 한다면 그 형태가 Quadrangle이 됐든 Courtyard가 됐든 사실 별 의미는 없다.

조금더 나아가면...
 이 글에서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끝났다. 하지만 하나의 공간을 더 살펴보자. Laney College나 Stanford University와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Bay Area주변이라 할 수 있는 Santa Cruz에 Kresge College가 있다. 1973년 Charles Moore와 William Turnbull이 설계한 Campus다. 9개 College로 구성된 U.C.Santa Cruz의 한 College인 Kresge College는 목가적인 풍경의 U.C.S.C Campus 전체에서 북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여기저기 세워진 가벽과 거기에 뚫린 Punching Window 그리고 카드보드지를 접어놓은 것 같은 건축형태와 삼원색으로 부분부분 칠해진 벽체는 학문의 정통성을 드러내기 위해 선택되는 Classical Design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Campus를 둘러싸고 쭉쭉 높이 솟아 있는 아메리카 삼나무(Redwood) 사이에 앉혀져 있는 모습은 대학 Campus라기 보다는 숲속의 귀여운 마을 같다.

전체적으로 ┘자 평면으로 배치된 Kresge college는 Quadrangle이나 Courtyard를 중심으로 배치되는 고전적인 대학Campus 배치와는 다른 연속된 공간과 동선의 흐름이 강조된 배치를 하고 있다. 그래서 건물의 배치를 살펴보면 중심적인 공간이 딱히 보이지 않으며, 실질적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Cafe공간과 같은 Community공간은 Campus의 입구에 조성돼 있다. Kresge college는 Campus를 구성하는 건축물에서도 느껴지듯이 'Non-Institutional Alternative Type of College'를 제시하고자 했다.

하지만 Kresge College의 중심뼈대를 이루는 ┘자 선형의 중심가로는 전통적인 대학배치에서 Quadrangle이 담고자 하는 '학제간 연계'를 충실히 담고 있다. 뿐만 아니라 Kresge College가 650명 정원에서 반정도가 기숙사를 이용하는 주거형 대학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Campus를 가로지르는 중심가로는 대학을 하나의 생활공간으로 삼고 있는 학생들의 생활가로도 된다. 어쩔 수 없이 건축은 형태로 표현된다. 하지만 건축이 담고자 하는 그 무엇은 형태를 통해서만 구현되지 않는다. 오히려 형태를 통해 구현하려고 하면 처음 생각했던 바가 왜곡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