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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포로27번길과 Cafe Pot_R
대화조(大和組)사무소 / 廣池亭四郞(1890) + Cafe pot_R(팥알) / Goodhaus(2012)
도시설계가 Archur
2016.04.02


 

a-Platform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Cafe pot_R의 설계자를 알게 됐다. 운영자들이 들으면 섭섭해할 수도 있겠지만 나한테는 첫 번째로 Platform으로서의 역할을 했다. 앞서 Goodhaus에서 직접 Cafe pot_R 복원 및 설계작업에 대한 글을 무려 네차례에 걸쳐 올렸다. 사실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나에게는 참 어려운 얘기였다. 그럼 -누가 시키지는 않았지만- 설계자들의 노고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Cafe pot_R에 대한 내 생각을 써볼까. 그런데 Cafe pot_R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그 앞을 지나는 신포로27번길 -도로명 주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는 '중구청길'로 불렸다- 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한다. 


대한민국 근대사에서 인천광역시 중구청 앞, 일명 '조계지'가 주목받게된 사건은 1876년 조선과 일본사이에 체결된 강화도조약이다. 이로 인해 이 일대는 개항장으로 지정됐고 1883년 1월 개항됐다. 이후 외국인들이 통상을 위해 자유로이 거주하면서 치외법권을 누리는 구역인 '조계'가 설정되기 시작했다. 개항후 1년이 지난 1884년 4월, 조선은 청국과 전관조계를 설정한다. 같은해 10월 청 뿐만 아니라 영국을 비롯해 각국공동조계가 설정되면서 이 지역으로의 외국인 이주와 서구문물 유입이 시작되었다.  

이런 흐름은 당연히 그들의 공간형태 및 건축양식 유입으로 이어졌다. 한국에 서양식 건축물이 유입되는 경로는 크게 네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 번째가 외국공사관의 건축물, 두 번째가 선교사를 통해 들어오는 종교 및 산하 공공시설 건물, 세 번째가 외국인 상사건물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본인에 의한 서양식 절충주의 양식 건물이다. 인천 조계지를 포함한 중앙동 및 신포동 일대는 이 네가지 방식의 유입과정이 모두 일어난 곳이다.

일본이 대한민국내 영향력을 독점하기 시작한 때는 당연히 1910년 한일합방이었다. 이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1913년 3월 일본은 조선과 맺은 조계를 철폐하고 이 지역을 행정구역에 편입시켰다. 일본은 한반도를 발판삼아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해 지리적으로 가장 유리한 인천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1937년 인천부 전체에 대한 철도, 항만 등의 정비를 포함하는 광역계획이 수립되었다. 하지만 1945년 해방과 함께 이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밖으로 나가기 유리한 입지는 안으로 들어오기에도 유리한 입지다. 1950년 6월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인천은 상륙작전의 거점이 되었다. 그리스의 Patras처럼 전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한 지역은 막대한 피해를 입으며 동시에 그 도시가 가지고 있던 흔적들은 상당부분 사라진다. 이 지역 근대건축물 대부분이 소실된 시기도 한국전쟁이었다.

인천항에서 자유공원을 향해 뻗은 제물량로218번길을 따라 바라보면 경사가 살짝진 길 끝에 인천광역시 중구청(舊 인천부청사, 1933)과 그 배경으로 서 있는 자유공원 그리고 현재는 인천문화원으로 쓰이는 舊 제물포구락부(Ivanovich Seredin Sabatin, 1901)가 한눈에 들어온다(위 사진). 이 길을 중심으로 북서에서 남동방향으로 신포로27번길, 신포로23번길, 제물량로232번 안길, 신포로15번길, 제물량로가 반듯하게 배열돼 있고 그 사이를 채우고 있는 필지들은 가로에 면한 길이에 비해 안쪽이 깊은 -세장비가 큰- 형태를 띄고 있다. 이 지역이 근대최초의 도시계획이 적용된 인천 조계지다.

이 일대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때는 당연히 지방자치제도 정착 이후다. 인천 중구청 입장에서 볼때 개항장이라는 역사적 Context는 대한민국내 세군데 밖에 존재하지 않는 매력적인 요소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차별화 사업은 당연히 이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될 수 밖에 없었다. 특별법으로 지정되지 않는 한 일반적인 도시계획체계 상에서 실질적인 계획 및 관리수단은 지구단위계획이다. 2001년 10월에 완료된 '개항기 근대건축물 보존 및 주변지역 정비방안에 관한 연구'를 포괄적으로 포함하는 '개항기 근대건축물 밀집지역 지구단위계획'이 수립된 시기는 2003년 5월이다. 당연히 지구단위계획 수립지침에는 구역내 건축물 외관과 가로에 대한 Guideline 및 특성화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지구단위계획지침서를 살펴보면 현재 중구청 앞을 지나는 신포로27번길을 '역사문화의 거리'로 지정하여 일본풍 근대건축물 외관으로 특성화하도록 했다. 구체적인 기준으로 경사지붕, 목구조, 수평줄눈, 인방과 창턱, 벽선, 격자창. 일풍Canopy 등이 제시돼 있다. 지침이 수립된 후 4년 정도가 지나서 지침에서 제시된대로 중구청길에 면한 건물의 상당수 외관이 바뀌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업에 대한 평가는 늘 엇갈리게 마련이다. 특히 공공에서 한 사업은 더더욱 그렇다. 국민의 세금으로 하는 사업이니 더 당당하게 평가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비판의 강도는 사업에 대한 회의까지 느끼게 할 정도다. 물론 그만큼 우리사회가 건강(?)해졌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2007년 3월 1일자 TV뉴스에서 일본식 건물양식으로 건물 외관을 개조한 이 지역에 대한 논란을 소개했다.(인천 중구청 앞길 '일본거리'논란, MBC, 2007.03.01) 또한 진짜 일본풍이 아닌 단순히 Facade만 교체한 것은 건물의 간판 외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신문기사도 있었다(딸랑 나무판자 덧대놓고 '일본거리'라고요?, 한겨레, 2007.4.2). 모두 맞는 말이다. 옛 건축물의 복원이 단순히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건물이 세워졌을 당시의 양식 그리고 구조 및 건설기법에 대한 재현이라고 본다면 옛 건물 복원이 갖는 의미는 상당히 복잡하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중구청길에 만들어진 건물의 Facade는 단순한 간판이며, 그렇게 조성된 조계지역은 입면재현사업이나 Theme park가 갖는 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진정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실제 크기의 건축물을 짓는다는 것은 역사의 현장을 희화하는 일이고 역사성의 왜곡은 건축물이 있었던 장소가 아닌 다른 곳에 건축물을 세움으로서 발생하는 제반의 일이기 때문이다. 건축물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진정성은 건축물이 갖는 문화적 가치에 기반을 둔 것으로 이것이 없는 건축물은 세트장에 불과하다. 건축물이 갖는 문화가치는 건축물이 세워질 당시의 사람들이 추구했던 사유의 결과를 바탕으로 하는 것으로 인천시가 추진하는 근대건축물 재현사업은 문화적 가치가 없는 단순한 형상에 머물고 말 것이다."

- 근대건축물을 둘러싼 두 가지 사건, 손장원, 인천광역시 인터넷 신문, 2007.4.19 -

하지만 도시관련 사업에서 특히나 기존 시가지를 정비하는 사업에서 완전수용방식이 아닌 기존 소유형태를 유지하면서 진행하는 지구단위계획사업은 지침대로 진행하기에는 너무 큰 한계가 존재한다. 특히나 공공소유가 아닌 개인소유 부분인 가로변에 면한 건축물을 Control한다는것 자체가 계획가나 설계자에게는 지침서에 작성된 말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가로관련 논문을 쓴 나 역시 논문에서는 '최소한 가로에 면한 건물의 입면만큼은 개인의 영역이 아닌 공공의 영역으로 간주해야 한다'라는 논지를 전개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Paper에 쓰여진 글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뿐이다. 실제 사업에서는 공공과 민간 사이의 Deal 흔히 얘기하는 'Carrots & Sticks'이 사업을 구체화시키는 유일한 방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때 신포로27번길에 면한 건물의 Facade교체를 포함한 가로환경조성사업은 앞서 언급한 신문기사에 나온 내용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 더군다나 가로라는 것이 그 가로가 Issue화 되어 특정주제를 지닌 가로환경조성사업이 시작되기 전부터 그 가로를 이용하던 기존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신포로27번길의 조성사업의 의미는 더 커진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가로환경 조성사업은 특정 주제로(이렇게 정해진 주제 역시 그 근본이 희미하기는 매한가지이지만) 거리를 꾸미기 위해 넉넉하지 않은 가로공간에 Street furniture만 잔뜩 가져다 놓는 Over-design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또한, 가로환경조성사업에 맞는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 가로에 면한 건물을 개조하다 보면 새로운 Program -대게 그 Program들은 고상한 예술이나 문화체험관과 같은 문화 및 전시시설 등이 주를 이룬다- 이 들어서게 되고 그 결과 기존 주민들이 소유했던 땅은 일부지만 수용되어 그럴듯한 Program으로 대체되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이다.

사업을 주관하는 관 입장에서도 가로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가로에 면한 건물 Design을 만들기 위해 기존 소유자들과 골치아픈 Deal을 하느니 그냥 수용해서 자신들의 입맞에 맞게 바꾸는게 쉽다. 하지만 이런 방식을 취하다보면 가로를 삶의 한 공간으로 여기던 기존 주민들은 갑자기 생긴 낯선 환경에 어울리는 고상한 Program에 밀려, 오히려 그들이 그동안 가로를 배경으로 유지해온 삶의 방식이 이질적인 것으로 취급당하는 결과가 일어난다. 하지만 신포로27번길은 기존 주민들의 삶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가로의 공적부분이 아닌 사적부분을 건드렸다. 신포로27번길에서 김밥장사를 하던 사람은 아직도 김밥장사를 하고 있고 세탁소를 하던 사람은 건물의 외관과 가로환경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세탁소를 하고 있다.

"도시 매력의 원천은 가로, 공원, 하천 등 공공공간의 여유와 아름다움, 거리의 조화로움 그리고 거기서 살고 생활하는 사람의 Life style의 풍요로움과 활기에 있는 것이다. 법인도 포함하여 각 지역 사람들이 과거의 거리조성의 유산을 소중히 하여 여러가지 형태로 거리 모습의 정비(가령 Landmark보존, Set-back에 의한 녹지의 확보 등)를 하고 도시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이 앞으로의 거리조성의 방향인 것이다."

-도쿄 도시계획의 담론, 고시지와 아키라-

신포로27번길에 면한 건물의 Facade를 보면 일부이기는 하지만 하나의 Mass임에도 불구하고 Facade 폭을 10m정도로 끊어서 조성된 예를 볼 수 있다. 이는 근대시대 이 지역에 적용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도시계획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당시 획지Module(20m×10m, 10m×20m, 20m×20m)을 보존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지구단위계획에서는 이 지역에 '보존획지선'을 지정하여 건축물 전면길이가 20m이상일 경우에는 10m내외의 단위로 적정한 위치에서 분절된 외관형태를 가지도록 하였다.

신포로27번길 북서쪽, 청일조계지계단 근처에는 적벽돌 외관의 관동교회(위 사진의 적벽돌로 마감된 전면을 가진 교회)가 있다. 2008년 관동교회를 처음 봤을때 동네슈퍼에 걸려있어야 어울릴 것 같은 간판을 달고 있었다(위 사진). 내부로 쑥 들어가 보니 예배당이 2층에 있었는데 예배당으로 오르는 계단이 꽤 가팔랐다. 예배당에 올라서면 꽤 낡은 교회라는게 한번에 느껴졌다. 난 이 예배당을 보면서 Swiss Lugano에 Mario Botta가 Renovation한 교회가 떠올랐다. 이 공간도 그런 현대적인 언어의 Renovation이 가해 진다면 신포로27번길과 어울리는 또 하나의 매력요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2009년 관동교회를 두 번째로 찾았을때 사려깊은 Renovation을 마친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아래사진). Renovation을 했음해도 입면에 사용된 적벽돌은 깔끔하지 않았다. 기존 관동교회의 적벽돌을 해체하고 다시 쌓은 건지 아니면, 서울시 정동의 신아빌딩처럼 다른 건물의 벽돌을 가지고 와서 이곳에 쌓은 건지 그것도 아니면 새 벽돌을 파벽돌로 일부로 만든건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매끈한 새 벽돌보다 현재 교회의 입면이 신포로27번길과 참 잘 어울린다.

관동교회 만큼이나 인상깊은 공간은 그 동쪽에 있는 건물이다. 건물의 간판을 세웠느니 진정한 복원이 아니라느니 하는 비판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중구청 앞 조계지 일대는 '떴다'. '역사문화의 거리'로 지정된 신포로27번길과 '가로박물관'으라는 특성화로 근대건축물을 문화 및 전시시설로 바꾼 신포로23번길 그리고 인천 Art Platform과 China Town까지 주말이면 상당수의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 됐다. 이 일대가 이렇게 개발될 수 있었던 근거는 아무래도 19C 후반에서 20C 초반에 지어진 이 일대의 근대건축물이다. 그런데 그 건물들은 대부분 공공의 자본이 투자된 시설이다 보니 공공성이 강한 박물관이나 전시관, 공공기관의 업무시설로 쓰이고 있다.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당연함 속에 존재하는 한계가 분명 있다.

인천 조계지 일대에 근대문화재를 활용한 문화 및 전시시설은 나름 차별화된 Contents로 전시공간을 채우려고는 했지만 시설의 재방문을 유도할 만큼 매력적이지는 않다. 개인적으로도 각 시설들을 한번 정도는 둘러봤지만 이후 이 시설들을 다시 방문하기 위해 조계지 일대를 가지는 않았다. 2008년 이 일대를 처음 방문한 뒤 이후 가끔 들를때 마다 목적은 박물관이 아닌 가벼운 산보였다. 그러다 2013년 1월 정말 괜찮은, 이곳을 올때마다 가고 싶은 공간을 하나 발견했다. 그날은 아이에게 짜장면 박물관으로 쓰고 있는 공화춘(위 사진)을 보여줘야 겠다는 목적으로 갔었는데, 신포로27번길을 따라 가다 'Cafe pot_R(팟알)'이라는 표지판이 세워진 일식건물이 보였다. 순간 '어! 이런 건물이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치는 관동교회 바로 동쪽에 인접한 대지였다. 앞서 썼듯이 관동교회 건물에는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그 동쪽에 인접한 건물의 과거 모습은 기억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당시 찍었던 사진을 찾아보니 관동교회 언저리에 Cafe pot_R 건물의 이전 상태가 나와 있었다. 아래사진은 2008년 3월에 찍은 사진이다.

Cafe 입구에 세워진 표지판에서도 적혀 있지만 입구로 들어서 안쪽으로 길게 뻗은 복도(아래사진) 한쪽 벽에 건물에 관한 내역이 적혀 있다. 이 건물을 세운 사람은 1853년生 일본인 히로이케데시로(廣池亭四郞)다. 1885년 인천에 들어와 아까마(赤間)組에 근무한 그는 1892년 상호를 야마토(大和, 이하 대화조)組로 변경하고 대표에 취임했다. 본 건물은 이쯤에 지어졌던 것 같다. 대화조는 근대 개항기에서 해방까지 인천항을 무대로 영업을 했던 하역회사로 본 건물을 사무소(1층)이자 주택(2~3층)으로 사용했다. 히로이케데시로는 1898년에 1년 동안 5엔 이상의 세금을 납부하기도 했단다. 1908년 회사의 규모는 하역부 100명, 단평선 10척, 삼판선 7척을 소유할 정도였고 진남포 출장소를 운영하면서 세창양행, 오사카 상선 화물을 취급했다. 1931년에는 철도화물과 육상운송업도 겸업했다고 한다. 사세(社勢)가 커져서 그런지 이 시기에 본 건물을 보수하고 증축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방이 되면서 회사는 문을 닫았고 1952년에는 건물의 소유권이 조씨에게로 넘어갔다.

2011년 8월, Cafe pot_R 건물이 매각됐다. 그리고 2012년 2월 고증을 통한 복원보수 설계를 마친후 2012년 7월 공사를 끝냈다. Cafe Open은 2012년 8월. Cafe pot_R 운영자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사실 Cafe pot_R 건물은 완공 당시에는 흔했던 근대 일본의 점포주택인 마찌아(町家)다. 더군다나 매입 당시 건물의 원형이 잘 보존돼 있던 상태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1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고증을 통해 복원작업을 한 이유가 궁금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건물을 매입한 시점부터 Cafe를 개장한 시점까지 1년 동안은 영업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속된 말로 쌩돈 박는 시간이다. 왠만한 신념이 아니면 1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할 만한 운영자는 없다. 물론, 본 건물이 문화재 보호 구역을 경계로 500m 범위에 해당하는 '현상 변경 심의 대상지역'에 있다는 여건도 고려됐을 것이다. 현상 변경 심의 대상지역내에서의 개발 행위는 허용기준을 넘지 않으면 심의를 받지 않지만 벗어날 경우에는 제한을 받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Cafe pot_R 운영자의 생각을 들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근대문화유산을 제대로 활용하면, 경제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Cafe pot_R을 통해) 돈을 많이 벌고 싶다. 오래된 건물을 활용하는 '의미있는 일'을 했다는 평가가 아니라, '문화유산을 제대로 활용하니까 돈을 벌 수 있구나'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왜냐하면 pot_R이 성공한다면 많은 분들이 성공의 한 방법으로, 문화유산을 활용하는 것에 대해 고민할 것이고 더욱 다양한 방법으로 문화유산이 활용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박물관을 만드는 것도 활용의 한 방법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은 과거를 단순한 과거에 가두어 놓는 것이 될 수 있다. 다양한 문화유산을 현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이 사용하고, 머무를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것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Word from 백영임(Cafe pot_R의 사장), '근대유산활용으로 성공사례 남고 싶어', 경인일보, 2012.08.22-

위 기사를 읽는데 왜 가슴이 짠해지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너무 솔직한 생각 때문인 것 같다. 문화재에 대한 논의를 할때 늘 등장하는 얘기가 '활용방안'이다. 예산 투입해서 없는 자료 활용해서 복원한 뒤 1시간도 머물지 못하는 문화 및 전시시설의 한계를 그동안 실감해 왔기 때문이다. 박훈 교수님의 글(-공간정치이론으로 읽는 역사도시의 가치-) 처럼 '전통 건축 문화유산의 보존을 가장 어렵게 하는 문제는 복원적 보존이 아닌 활용적 보존이다. 외형적 형태만이 보존되고, 활용의 대안이 없는 것은 옛집을 쓰기 위해 만든 그 목적은 죽고 외형적 모양만 보존한다는 의미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보존은 사실상 전통 건축물을 복원해 놓고, 다시 죽이는 셈이 된다.'

솔직히 얘기하면 그 공간이 단일 건축물이 됐든 일단의 영역이 됐든 그 공간을 지속적으로 다시 찾게 만드는 시설은 '문화시설'이 아닌 '상업시설'이다. 문화시설은 취지는 착해 보이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 더군다나 그 문화시설의 운영 및 조성 주체가 공공이라면 한계는 분명해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럽처럼 Contents가 두터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더 나은 Contents를 확보하기 위한 예산을 편성할 수 있는 여력도 없기 때문이다. 문화 및 전시시설은 공공이 주인이기에 책임지고 이끌 주체도 흐릿하다. 하지만 상업시설 하면 왠지 특정 누군가에게 이익을 주는 그리고 뭔가 돈의 세속함 때문에 공간을 활성화하기 위한 대의명분으로는 전면에 내세우기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Public Asset과 Private Asset은 어딘가 양립할 수 없는 것 처럼 인식되는 것도 한 이유다. 더불어 공간을 조성하는 주체가 공공자금을 운용하는 공공기관이라면 입장은 명확해 진다. 공공자금을 들여 상업시설을 운영하는 몇몇의 이익을 향상시켜줬다는 여론 및 감사를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공기관이 주체가 된 사업에서 예산이 투입돼 만들어지는 시설은 십중팔구 공공문화 및 전시시설이다.

인천 조계지 일대에 벌어진 사업도 마찬가지다. 민간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건물도 입면을 바꾼게 전부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일대 근대문화재에 공공예산이 투입돼 조성된 시설은 모두 공공문화 및 전시시설이다. 그래서 사업의 한계를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사업 이후 민간의 움직임은 중요하다. 어쩌면 공공사업은 민간의 움직임을 이끌어내는 좋은 Trigger만 되어도 그 파급효과는 충분하다. Cafe pot_R은 '개항기 근대건축물 밀집지역 지구단위계획'에서 시작된 파급효과가 하나의 건물에서 일어난 사례다. 하지만 그 효과는 이 일대 조성된 어떤 문화 및 전시시설보다 크다. Cafe pot_R에 오기 위해 조계지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정도이기 때문이다. 지역의 재방문 요인이 충분히 되는 것이다. 나도 겨울에는 팥죽, 여름에는 팥빙수 그리고 계절에 관계없이 나가사키 카스테라를 먹으러 이곳에 온다.

"Space Marketing이 적용될 수 있는 것은 몰입경험(Immersion experience)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몰입경험은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면서 시간과 동선의 연결에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런 과정은 하나의 경험 또는 기억과 사건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집중도와 효과가 강렬할 수 밖에 없다. 근래에 기업 같은 민간 부문뿐만 아니라 도시에서도 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시장 참여자들이 자발적인 후속 행동을 이행하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Space Marketing의 결과는 이후 입소문이나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자발적으로 경험하고 싶게 만든다. 지속적인 효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는 몰입경험이 Marketing의 밀착된 경험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Space Marketing City, 홍성용-

과거 사무실로 사용됐던 1층은 이제 Cafe다. 좌석수도 많지 않고 주력 상품이 모두 하루 한정분이어서 갈때마다 대기다. 입구로 들어서면 바로 앞으로는 건물 뒷편으로 연결되는 복도가 있다. 복도의 한쪽 벽은 Gallery다. 뒷마당에서 건물 2~3층으로 연결된 계단이 있는 문과 뒷 건물로 연결된 계단이 보인다(위 사진). 과거 주택으로 쓰였던 2~3층은 다다미방으로 복원됐다(아래사진). 예약을 하면 이곳을 모임의 장소로 사용할 수 있다. 1층보다 2~3층 공간이 더 인상깊다. 창을 통해 은은하게 어둠에 스며드는 빛을 보고 있는데 순간 다니자카 준이치로가 쓴 '음예예찬(陰翳礼讃)'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꾸준하지 못해서 그렇지 기억이 기록보다 나은 건 연상작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음예예찬'이라는 책이 일으킨 또 하나의 기억은 그 책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했던 공간인 Ando Tadao가 설계한 Gojo Baum(1994)의 Tea Room이었다. 어둠 속에서 Camera를 들고 멍 하고 있던 내 기억은 벌써 2003년 Osaka인근의 Gojo Baum속을 배회하고 있었다.

"우리의 공상에는 늘 칠흑의 어둠이 있는데, 그들은(서구인들) 유령조차 유리처럼 맑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 밖의 일상생활의 모든 공예품에서 우리가 좋아하는 색이, 어둠이 퇴적한 것이라면,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태양 광선이 서로 겹친 색깔이다. …(중략)… 생각건대 동양인은 자기가 처한 상태에서 만족을 구하고, 현상을 감내하려는 버릇이 있어서, 어둡다고 하는 것에 불평을 느끼지 못하고,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단념해 버려, 광선이 없으면 없는 대로 도리어 그 어둠에 침잠하고, 그 속에서 저절로 어루어지는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그런데 진취적인 서양인은 평소보다 좋은 상태를 바란다."

-그늘에 대하여(음예예찬), 다니자카 준이치로-

도시설계가 Archur

Archur가 해석하는 도시, 건축.
저서. <닮은 도시 다른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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