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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에 의한 콘스탄티노플 함락(1453년 5월 29일)
이스탄불의 Urban Pattern과 History
도시설계가 Archur
2016.05.26

 

작년(2015년) 12월 22일 국제이주기구(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Migration, IOM)는 유럽으로 유입된 난민의 수가 100만명이 넘는다고 발표했다. 난민의 수가 급증하면서 사회적 문제도 일어났다. 작년 Paris에 이은 Brussels에서 일어난 Terror가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Terror는 Europe내 각국 정상들의 난민 정책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그 동안 난민 수용에 적극적이었던 독일 Merkel총리마저 난민 규모를 획기적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EU의 오래된 문제 중 하나가 다시 부각됐다. 바로 Turkey의 EU가입문제였다. EU는 Turkey 가입 협상을 적극 지원하고 Turkey는 난민 유입을 막는데 일조하는 것이 조건이었다. 현재 Turkey에서 Europe이동을 계획하고 있는 난민의 수가 200만명 이상이라는 통계는 EU의 선택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Turkey는 1999년 12월 후보국 지위를 인정받았고 2006년 6월부터 본격적으로 가입협상을 개시했었다. Turkey의 EU가입이 어려운 이유는 아무리 경제적, 국제적 이익이 있다 하더라도 국교가 이슬람교라는 점과 무엇보다 역사적인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지리적인 측면에서도 Turkey는 전체 영토 중 3%만이 Europe대륙에 속해 있다. 하지만 그 3%를 가지고 EU와의 연계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 기독교와 이슬람이라는 문명과 종교가 충돌 그리고 뒤섞인 Istanbul이 있다.

올해(2016년) 기준 563년 전인 1453년 5월 29일 오스만 제국에 의해 Constantinople(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됐다. 이후 도시의 명칭은 Istanbul(이스탄불)로 바뀌었다. Constantinople의 함락은 단순히 도시의 이름이 바뀐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중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을 기억해 보면 오스만 제국에 의한 Constantinople 함락은 서유럽사에서 중요한 변곡점으로 다루어졌다. 이유는 476년 서로마제국 멸망 이후에도 근 1000년간 지속된 동로마제국이 멸망하면서 이슬람 문화와 서유럽 문화가 섞이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에는 이슬람의 지배를 받을 것을 염려했지만 투르크제국은 빈을 함락시키지 못했고 오히려 칼보다 더 강한 문화가 Europe대륙에 스며들게 됐다. 그 결과 Europe은 중세를 마감하고 Renaissance시대로 접어들게 됐다. 한 도시의 역사가 한 대륙의 시대를 바꿀 만큼 큰 영향력을 미친 예는 흔치 않다. 그 만큼 Istanbul, 그 이전 Constantinople이 Europe대륙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막강했다. 그리고 그 막강한 비중은 도시의 Site Positioning에서 나왔다.

Constantinople이라는 이름을 도시에 부여한 사람은 306년 로마황제에 오른 Constantinus I였다(위x2 사진). 그는 네 명의 통치자가 나누어 지배했던 -사두정치- 로마제국을 통일했다. 일종에 황권강화를 실시한 것인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왕권 혹은 황권강화를 위해 기득권 세력과 거리를 두는 것은 정해진 Course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 수도를 옮기게 된다. Constantinus I도 제국의 수도로 Rome이 아닌 Byzantium을 정한 뒤 330년 Constantinopolis라 명했다. 그럼 그는 왜 제국내 수많은 도시 중 Byzntium을 택했을까? 위 위성사진을 통해 보면 Istanbul은 3개의 곶(串, Cape)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튀어나온 곶이 Historic District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Aya Sofya나 Blue Mosque 등이 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튀어나온 곶은 Beyoglo District로 비교적 신시가지다. 이 두 곶이 Europe 대륙에 속해 있다. 마지막 동쪽에서 서쪽으로 튀어나와 있는 곶이 Uskudar District로 여기는 Asia 대륙에 속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 우리가 지리시간에 많이 배운 Europe과 Asia를 나누는 Bosphorus 해협(아래사진)이 지나간다.

도시를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Istanbul의 지리적 조건은 상당히 특이하다. 그런 지리적 특색에 주목한 인물이 바로 Constantinus I였다. 그는 첫 번째로 Byzantium이 바다에 두 변이 면해 있어서 대규모 군사력이 공격하기 어렵다는 지리적 여건을 고려하여 천연의 요새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동시에 방어에는 유리한 바다를 통상을 목적으로도 이용할 수 있다고 봤다. 그가 고려한 두 번째 요건은 문명적인 부분에 있었다. Constantinus I는 Byzantium이 그리스어권에 속해 있다는 점을 주목했다. Constantinus I는 수도를 옮기기 전인 313년 2월에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했다. Constantinus I는 기독교 공인을 통해 후에 서유럽사에서 세 명 밖에 얻지 못한 '대제(The Great)'라는 칭호를 받았지만 사실 본인이 절실한 기독교 신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역시 황권강화에 목적이 있었다. 실제 그는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세례를 받았다. Constantinus I는 더 많은 기독교인이 있는 곳으로 수도를 옮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라틴어권이었던 로마보다 기독교인이 더 많은 곳, 하지만 Syria의 안티오키아처럼 완전히 동방에 자리잡고 있지는 않은 곳. 그곳이 Byzantium이었다. 현재 Turkey가 가지고 있는 Europe과 Asia에 걸쳐진 Image는 당시 Byzatium이 가지고 있었다.

Istanbul을 이루는 3개의 곶 중 Constantinus I 때부터 도시의 모습을 갖추시 시작한 곳은 Historic District였다. 당시 로마의 가상적국 1호는 현재 이라크 지역을 기반으로 했던 사산조 페르시아였기 때문에 지금도 Asia대륙에 속한 Uskudar District는 Constantinus I의 구상에서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다. 이런 선후관계는 각 District의 Urban Pattern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Historic District내 불규칙한 Urban Pattern에서 눈에 띄는 요소는 곶 가장자리를 잡고 있는 Topkapi Palace다(위 위성사진). 지금은 Topkapi Palace에서 이슬람 양식이 많이 느껴지지만 이 궁을 처음 만든 사람은 당연히 로마인이었다. 바다에 두 면을 면하게 해서 얻을 수 있는 방어적인 장점을 극대화시킨 곳이 바로 Topkapi Palace여서 육지에 면한 서쪽만 막으면 충분히 보호된다. 물론 이 서쪽 벽에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도시의 성벽을 차례로 거쳐와야 했다. 

도시와 운명을 함께한 곳이니 Constantinople 함락이라는 사건이 Topkapi Palace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건 당연했다. Topkapi Palace는 1453년부터 1853년까지 400년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궁전으로 사용됐다. 1924년 Turkey의 아버지라 불리는 Ataturk는 이곳의 용도를 박물관으로 바꿨다. Topkapi Palace에서 가장 인상적인 공간은 Harem이다(위 사진). Harem은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인 '금지', '보호', '격리' 만큼이나 그 안에서 이루어졌던 행위도 은밀했다. 그리고 그 은밀함은 이 공간이 Harem으로 쓰인 400년 만큼 농밀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왜냐하면 여성의 활동이 공식적으로 금지된 이슬람 사회에서 자기가 낳은 아들을 최고권력자로 만들기 위한 어머니들의 욕망이 작동한 곳도 Harem이기 때문이다.

Istanbul Historic District에서 Urban Pattern적으로 눈에 띄는 장소는 Topkapi Palace 남쪽에 있는 Aya Sofya다(위 사진). Aya Sofya에서 서쪽으로 몇 개의 도로가 방사형 Pattern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중 정서쪽으로 뻗어나가는 도로(Divan Yolu Cd.-Yeniceriler Cd.-Ordu Cd.-Turgut Ozal Cd.)가 과거부터 몇 개의 성문을 통과하며 Europe대륙과 이 도시를 연결해 주었다. 방사형 Pattern의 중심에 Aya Sofya가 있다는 건 결국 이 건물이 Istanbul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걸 의미한다. Topkapi Palace가 동로마제국의 정치적 중심이었다면 Aya Sofya는 종교적 중심이었다. Aya Sofya를 처음 세운 황제는 Justinianus였다. 그러나 그 전에 Constantinus I가 그 자리에 먼저 성당을 세웠다. Justinianus는 532년 대폭동때 화재로 전소한 Constantinus I가 지은 성당을 대신해 537년 Aya Sofya를 재건했다.

앞서도 얘기했듯이 Constantinople은 Constantinus I가 의지한 종교적 가치로 제국의 수도가 된 도시다. Constantinus I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새로운 제국의 수도를 만들면서 기독교로부터 이끌어내고자 했던 가치는 왕이나 황제의 절대권력이 더이상 인간이 아닌 신에게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황제에게 절대권력을 위임하거나 빼앗아 가도록 결정하는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신이라는 얘기다. Constantinus I부터 서유럽 봉건시대때 정착된 '왕권 신수설'이 시작된 셈이다. 즉, Constantinus I는 Europe 최초의 중세인이었던 셈이다.

Aya Sofya 낙성식에서 Justinianus는 솔로몬의 성전보다 훌륭하다며 '솔로몬왕이여! 내가 당신을 이겼소이다'라고 자화자찬했다고 한다. 실제 Aya Sofya는 그 후 지어진 기독교 성당의 Model 중 하나가 됐다. 하지만 Topkapi Palace와 마찬가지로 이 건물도 Constantinople 함락 이후부터는 기독교가 아닌 이슬람교를 대표하는 사원이 됐다. 지금은 두 종교의 흔적을 모두 읽을 수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라는 좀처럼 타협하기 힘든 두 종교가 한 공간에 있으니 그 공간의 용도를 결정하는 것도 좀처럼 쉽지 않았다. Turkey가 이슬람 국가이니 이슬람 사원으로 쓰는게 당연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Europe과의 공존이 무조건적으로 필요한 입장에서는 걸리는 문제가 많았다. 그래서 Topkapi Palace를 박물관으로 용도를 바꾼 Ataturk나 1935년 Aya Sofya의 용도도 박물관으로 정했다. 이제 두 종교가 한 공간을 공유해도 이상할 게 없어졌다.

Historic District 북쪽에 있는 Beyoglo District도 전체적으로 불규칙한 Urban Pattern을 지니고 있다(위 위성사진). 이러한 Urban Pattern과 간선도로마저 심한 곡률을 띄고 있다는 건 이 지역의 지형이 심하다는걸 의미한다. 실제 Galata Tower가 세워진 언덕 등이 Beyoglo District의 지형을 이룬다. Galata Tower에 오르면 Historic District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내가 이곳을 올랐을때는 심한 연무로 인해 Silhouette만 보였지만 오히려 그래서 Mosque의 Dome과 Minaret이 지배하는 도시의 경관이 더 잘 보였다(아래사진). 그리고 그 풍경을 보며 같은 장면을 봤던 Le Corbusier가 떠올랐다.

"...옛날 Russia의 순례자들이 성스러운 산(아토스산)이 나타나길 기다리듯 우리도 갑판 위에 서서 7개의 탑이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작은 Mosque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다음으로 큰 Mosque들, 그 다음으로 Byzantium 궁의 일부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마침에 Hagia Sophia와 Harem궁이 위용을 드러냈다. 우리는 Genova 탑을 굽어보는 페라 해안과 첨탑들이 삐죽삐죽 솟아 있는 Istanbul을 사이에 두고 Golden Horn해협으로 들어갔다. 나는 이 모든 것들에 크게 감격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것들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아름다움에 감격하기 위해 이곳에 왔기 때문이다. ..."

-Le corbusier의 동방기행, Le Corbusier-

마지막으로 Asia대륙에 속하는 Uskudar District는 바다에 면한 부분을 제외하고 전체적으로 중정을 가진 건물들이 Block을 채우고 있다(위 위성사진). 일부 Block에서는 자로 잰듯한 반듯한 모양도 보인다. 그만큼 Istanbul을 이루는 세 곶 중 가장 근래에 도시조직이 만들어 졌다.

몇몇 도시와 장소를 훑어보고 나름 내린 결론은 한 도시와 한 장소에 부여된 성격은 잘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떤 장소가 강한 영역성으로 폐쇄적인 성격이 강해 왔다면 그 장소를 재개발해도 강한 영역성은 잘 바뀌지 않는다. 어떤 장소가 군사시설로 한 번 사용되면 이후로도 그 시설은 그 용도를 쉽게 버리지 못한다. Istanbul 또한 마찬가지다. 대략 1700년간 도시의 운명을 좌지우지했던 종교는 지금도 EU가입과 Syria 피난민이라는 Issue 한가운데에 Turkey가 서 있도록 만든다.

 

도시설계가 Archur

Archur가 해석하는 도시, 건축.
저서. <닮은 도시 다른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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