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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화가 김환기 타계42주년(1974.7.25)
환기미술관 / 우규승(1994)
도시설계가 Archur
2016.07.20

 

부암동은 과거 지하철도 들어오지 않고 북악산의 북서 사면이라는 주거환경으로 그닥 좋지 않은 이유로 고급 단독주택 일부와 다세대주택이 모여 있던 동네다. 그러나 최근에는 Cafe문화, 걷기열풍, 다른 분위기를 지닌 동네에 대한 수요, 중간건축 및 일상 건축의 Remodeling 등 생각지도 못했던 변화가 겹치며 이 동네가 떴다. 동네에 사람들이 모이자 판매시설과 문화전시시설들이 하나씩 들어서기 시작했다. 2006년 준공해 2008년 개관한 자하미술관(강종권)을 비롯해 2012년 석파정을 끼고 서울미술관(김영조&장병규&여헌건축) 그리고 윤동주문학관(이소진&Ateliers Lion Seoul)이 개관했다. 이 외 두루Art Space와 Art Space 스푼(아래사진 가운데 검은색 입면 건물)도 문을 열었다. 그러나 과거나 지금이나 부암동을 대표하는 문화전시시설은 환기미술관이다.

오래전부터 구상해왔던 환기미술관 건립은 1989년 8월 국내에 환기재단이 설립되면서 구체화 됐다. 그리고 1992년 환기미술관 본관이 1차로 준공됐다. 1992년은 부암동으로 장소를 국한시키지 않고 대한민국 전체를 놓고 봐도 미술관 건립이 낯선 시기다. 환기미술관 이전에 지어진 미술관 -박물관이 아니다- 건축 중 주목할 만한 건 1982년 개관한 호암미술관(삼우설계), 1986년 개관한 과천국립현대미술관(김태수) 그리고 1991년 경주에 개관한 아트선재미술관(김종성&서울건축) 정도다. '시립'자가 붙은 미술관으로 최초시설인 서귀포의 기당미술관(김홍식&금성건축)도 1987년에 개관했다. 환기미술관 1차 준공이 있었던 1992년에는 토탈미술관(문신규&Total Design)도 개관했다. 그러나 당시 미술관들은 한 개인이 아닌 여러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한다는 미술관 본연에 역할에만 충실했다. 그런 면에서 환기미술관은 수화 김환기의 작품만을 위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달랐다. 개인을 위한 미술관은 작품을 전시하는 목적 외 그 개인을 기념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또 다른 목적도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앞서 올린 백남준 Art Center는 두고두고 아쉽다.

수화 김환기(이하 수화)는 한국 추상미술의 1세대다. 수화는 1913년 2월 27일 전남 신안군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1974년 7월 25일 세상을 떴다. 올해(2016년)는 그가 세상을 뜬지 42년이 된다. 수화는 1933년 동경 일본대학 예술학원 미술부에 입학한 뒤로 서울, Paris, New York 등을 그의 주 활동무대로 삼았다. 그럼 국내에서 장소적으로 김환기 Contents를 활용할 수 있는 곳은 그의 고향인 신안군과 서울 뿐이다. 당연히(?) 신안군은 1999년 2억6천여만원을 들여 생가를 복원했다(한국 대표 근대화가 김환기 생가 방치, 연합뉴스, 2005.7.20). 추상미술을 추구하기는 했지만 수화는 한국적인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도 계속했다. 최순우의 책('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 최순우의 한국미 사랑') 중 '책 머리에-최순우의 아름다움에 부쳐'를 보면 수화가 프랑스 유학에서 돌아와 귀국전을 가졌을때 은근히 최순우에게 화평을 해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한다. 그때 최순우는 '불란서 물을 잠시만 마시고 와도 모두 그림들이 홱 바뀌는데 수화 그림은 조금도 변하지 않아서 나는 좋다'고 했단다. 그랬더니 수화는 '기실은 불란서에 가서 나의 개인전을 갖기 전까지는 그 곳 작가들 그림에 물들까 봐서 전람회 구경도 안 다니고 나를 지키느라 매우 애를 썼다'라고 실토했단다.

1950년대부터는 작품의 주제가 전통적인 소재로 바뀌기까지 했다. 산, 강, 달 등을 주 소재로 자연과 도자기, 여인 등을 통해 더욱 밀도 높고 풍요로운 표현으로 한국적 정서를 아름답게 조형화 했다. 수화 생전에 가깝게 지낸 사이였던 우규승은 환기미술관의 설계자로서 이런 수화의 화풍을 건축화해야 하는 숙제도 이 공간이 수화를 위한 공간이기에 풀어야 했다. 실제 우규승은 '미술관은 수화선생님의 정서와 예술에 어울리는 곳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산, 달, 구름, 바위, 나무같은 자연과 어울리고 한국의 정취가 있으며 현대적인 세련됨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했단다('건축문화 199402').

그럼 수화와 부암동은 무슨 관계가 있기에 김환기미술관이 부암동에 자리를 잡은 걸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아무 상관이 없다. 김환기의 서울 집과 화실은 성북동에 있었다. 환기미술관 Homepage에 따르면 미술관의 위치는 수화와 그의 아내 김향안이 애착했던 성북동 화실과 자연환경이 비슷하다고 한다. 사실 접근성과 인지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환기미술관의 위치는 썩 좋지 않다. 이 동네와 다른 지역을 연결하는 자하문로에서도 200m 가량 떨어져 있고 대지와 연결되는 길도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지 자체도 북쪽에 산을 두고 조망을 확보할 수 있기는 하지만 접근도로와 고저차가 대지내에서 8m이상 날 만큼 급경사지다. 법적여건도 복잡했던 것 같다. 부지의 법적여건을 갖추느라 본관 착공을 설계시작 3년 후인 1991년 9월이 되어서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1992년 11월 5일 준공). 다행스러운 것은 본관 건설 기간동안 인접한 서측부지가 확보되어 1차 공사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웠던 기획전시와 집회공간이 포함된 별관, 주차장, 정원 등으로 구성된 2차 계획이 이루어졌다. 환기미술관에서 기존부지 서쪽에 인접한 2차 부지 확보가 중요했던 이유는 이를 통해 접근도로보다 높게 있는 본관으로의 진입을 여유있게 할 수 있는 공간을 계획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차 부지에 배치된 별관은 1993년 11월에 준공했다(아래사진에서 왼쪽). 4년 뒤인 1997년 11월에는 수향산방도 완공했다(대지면적 2,812㎡, 연면적 1,494㎡, B1~2F). 수향산방은 수화가 애착했던 성북동 화실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성북동 화실과 생활공간을 그대로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참고로 '수향'은 김환기의 호인 '수'화와 부인의 이름인 '향'안의 첫글자를 합친 것이다.

"크기는 작고 남아있는 역사물은 없지만 도시적인 차원에서 나는 이 골짜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중략)... 부지주변 부암동 일대에는 1,2층의 단독주택지에 새로운 3,4층 다세대주택이 들어서고 있으며 도로는 아직 정리가 안되었고 도로와 건물과의 관계 역시 지적도에 표시된 제약 이외에는 뚜렷한 성격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환기미술관은 공공성을 띤 건물로서 현존하는 주변건물 및 자연경관과의 조화는 물론 계곡의 지리적 역사성과 동네의 인식성을 부각시키는 역할과 잠재력을 가진다."

-Words from 우규승, 건축문화 199402-

앞서도 설명했듯이 환기미술관의 접근은 서쪽에서 이루어진다. 별관 북쪽 벽을 따라 설치된 계단을 오르면 본관의 남서쪽 Corner가 보인다. 본관으로의 접근은 대각선으로 이루어진다. 이를 의식해서 본관의 현관이 있는 남쪽 Mass는 상설전시실이 있는 Mass보다 반시계방향으로 살짝 틀어져 있다. 그래서 대각선으로 만들어진 접근로에서 보는 본관의 입구는 정면이다(위 사진). 이 장면에서 조금 더 살펴볼 건 건물의 형태와 응시방향이다. 상설전시실이 있는 북쪽 Mass의 형태는 남북대칭이다. 이 경우 본관을 정면에서 응시하면 상당히 Volume감 있게 느껴진다. 부암동의 Context는 작은 건물들이다. 본관이 Volume감 있게 느껴지면 이는 부암동의 Context와 대비된다. 그래서 설계자는 Mass의 응시방향을 틀어서 Volume감을 완화시켰다. 반면, 정면을 응시하는 남쪽 Mass는 폭이 좁다. 그래서 3층 밖에 안되지만 높게 느껴질 수 있다. 이번에는 각 층마다 Mass를 1/3씩 Set back 시켰다(아래사진). 이 두 조형조작은 자잘자잘한 주변 Mass에 대한 대응임과 동시에 관람자가 접근하면서 본관 Mass를 봤을때 Volume감 있는 Ojbet로 느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이 건물은 뚜렷한 정면이 없다. 건물의 입구는 충분히 인식되지만 주(Main) 입면을 꼬집어 지적하기 곤란하다. 그러나 건물의 전경은 대문에서 투시도적인 모습으로 들어온다. 미술관의 외관을 하나의 조각처럼 보이게 하려는 흔한 시도를 이 건물에서는 하지않고 있다. 그저 내부의 전시 공간들을 둘러싸는 벽체와 지붕으로 건물의 형태를 만들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외관에서 강렬한 형태적 동일성을 확인하게 된다."

-Criticism: 공간과 빛이 주인공인 미술관, 강혁, 건축과 환경 199402-

환기미술관의 내부촬영은 금지다. 그럼에도 Shutter를 누르고 싶은 충동을 들게 하는 공간은 두개층이 뚫려 있는 주 전시실이다(위 사진). 주 전시실은 정사각형 평면에 사각형 Frame과 단 하나의 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벽면에 붙어 있는 2층 상설전시실로 연결되는 계단은 1층 전시공간을 둘러싼 벽체 안쪽으로 한켜 물러나 있어서 계단이 만들어내는 사선의 강렬함은 흘깃 보일 뿐이다. 천장 가운데와 네모서리에서 은은하게 떨어지는 빛은 기하학으로 추상화된 공간을 비춘다. 만약 빛이 유리Block을 통해 은은하게 떨어지지 않고 개구부를 통해 강하게 공간을 비췄다면 현재 주 전시설에서 느껴지는 추상화된 공간의 느낌이 덜했을 것이다.

주 전시실을 ㅁ자로 감싸고 도는 계단을 통해 2층에 오르면 Barrell Vault로 덮혀 있는 상설전시실이 나온다. 그리고 상설전시실 가운데에서 주 전시실 상부에 조성된 중정으로 나가는 문이 있다(위 사진). 하지만 이 문은 잠겨 있다. 환기미술관은 Mass의 Form만 봤을때는 Landscape Architecture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8m의 지형차를 1층의 입구에서 3층의 중정으로 나가는 문을 통해 극복하는 관람동선을 계획했다는 면에서 보면 Landscape Architecture 개념을 어느정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Landscape Architecture가 그렇듯 입구와 출구가 분리되도록 설계된 환기미술관도 출구는 폐쇄된채 운영되고 있다. 만약 3층에 중정으로 나가는 출구가 열려 있었다면 관람객은 환기미술관 진입이 이루어지는 가장 낮은 단(段)에서 시작해 자연스럽게 가장 높은 단(段)에 이르게 된다.

중정에서 관람객은 북-동(위 사진)-남쪽으로 나 있는 입구로 나올 수 있다. 어떤 입구로 나오든 계단을 통해 1층 본관 입구로 내려오게 된다. 이때 관람객이 이용할 수 있는 계단은 모두 세가지다. 기본적으로 상설전시실을 가운데 두고 시계방향과 반시계 방향으로 내려올 수 있고 남동쪽 대지경계를 따라 만들어진 계단을 통할 수도 있다(위 사진에서 왼쪽). 미술관 내부에서 주 전시실을 가운데 두고 ㅁ자로 계단이 둘러싸 있듯 외부에서도 본관을 두고 계단이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관람객은 전시를 감상하고 중정으로 나 있는 입구를 통해 밖으로 나와 세 갈래의 계단 무엇을 이용하든 외부공간을 느끼면서 관람을 마무리하게 된다.

중정이 배치된 가장 높은 단(段)에서 미술관 입구가 있는 두번째 단(段)으로 이동하는 세 개의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이 계단들이 미술관이 앉혀진 부암동이라는 Context를 건축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계단의 시작과 끝이 한 곳으로 모이더라도 그 동선의 Option을 세 가지로 나눴다는 점이 부암동의 복잡하고 좁은 길들을 상징한다(위 위성사진). 부암동 처럼 자연발생적으로 취락지가 형성된 지역은 필요에 맞게 도로가 만들어 진다. 비록 그 선형이 다소 중복되더라도 나중에 만들어진 도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더해진다. 반면, 택지개발사업으로 조성된 지역에서는 동선이 중복되지 않는다. 최적의 도로계획을 통해 도로율을 가능한 낮추고 분양면적을 극대화시키기 때문이다. 환기미술관에서 이와 같은 개념으로 동선을 계획했다면 계단은 굳이 세 개까지 만들 필요는 없었다.

두 번째는 그렇게 선택가능한 세 개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환기미술관 주변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 풍경의 배경이 부암동을 둘러싼 북악산과 인왕산 일 수도 있지만 그와 더불어 부암동을 이루는 자잘자잘한 건물들도 전경(前景)을 이룬다. 그리고 본관 남쪽에 축을 틀어 배치된 후퇴된 Mass와 층지어 내려오는 대지경계선에 놓인 담벼락이 자잘자잘한 주변 건물과 어우러 진다. 마지막으로는 계단의 형태다. 세 계단 중 대지 북쪽에서 서쪽으로 나 있는 계단과 동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계단은 부정형의 대지경계선을 따라 만들어진 담벼락으로 인해 계단과 통로를 따라 이동하며 보는 장면이 다양하다. 여기에 기하학으로 설계된 본관 Mass로 인해 다음 공간이 예측되지 않을 만큼 영역의 경계가 다양해 진다(아래사진).

"환기미술관은 항상 작은 산사에 이른 것 같은 느낌을 주곤 했다. 부암동의 골목길이 마치 깊은 산 속의 오솔길처럼 좁고 정신없이 구불구불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건축이 의지할 수 밖에 없는 땅과의 관계를 건축가가 잘 풀어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정형의 대지에 축을 달리 하는 두 건물이 기존의 경사를 거스르지 않으며 배치되어 있다. 그렇기에 거대한 축대를 만들고 평평하게 땅을 돋우는 현대의 많은 건물들에서는 느끼기 힘든 편안함이 있다."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 오기사-

환기미술관의 세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이 생각 저 생각을 이 풍경 저 풍경에서 하다 문득 김환기의 작품 중 '집(위 그림, 1936)'이라는 그림이 떠올랐다. 그림을 구성하는 요소요소는 기하학으로 추상적이지만 그 집합이 만들어내는 모습은 전통가옥에서 볼 수 있는 문살이나 바닥 Pattern이다. 그리고 환기미술관 내외부를 계단이 휘감고 있듯이 그림에 그려진 Zigzag한 선은 끝도 시작도 없이 연결돼 있다. 난 환기미술관이 '집'이라는 이 그림을 공간으로 현실화 시켜놨다고 생각한다.

사실 생각해 보면 우리네 마을과 지형은 뗄 수 없는 관계다. 승효상은 '지문(地文; Landscript)'이라는 책에서 '서울의 Landmark는 산이 이루는 풍경'이라고 정의했다. 그에 말에 따르면 'Landmark라는 말은 1960년대 미국 도시계획이론가 Kevin Lynch가 도시를 설명하면서 쓴 단어인데, 이는 서양 사람들의 도시를 설명하는 말이지 우리의 도시를 일컫는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도시에서는 '아름다운 산세가 이미 중요한 Landmark'이고 그러므로 '서울의 도시 속에서 건축물은 그 자연의 Landmark를 훼손하지 않도록 고만고만하게 지어야 했다'고 설명한다. 즉, 서울의 도시 Image는 '작은 것들이 모여서 만드는 집합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부암동을 보면 부암동은 서울의 도시 Image를 축소해 놓은 동네다. 여기에 설계자는 높은 천정고가 필요한 전시실 및 공용공간을 갖춰야 하는 미술관과 작은 Scale을 지닌 부암동을 어울리도록 하기 위해 상당한 Program을 지하공간에 배치시키고 Mass를 분절시켰다. 분절된 Mass는 원거리에서 주변 자잘자잘한 Context와 어울리는 집합형태를 형성한다. 분절된 Mass의 배치 또한 대지가 지닌 축의 방향과 계곡의 방향을 고려하고 수직적인 틀도 급한 경사지라는 특성을 살려 세 단(段)으로 구분했다.

"환기미술관은 건물 보다 내-외부 공간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중심이 되도록 설계되었다. 그로 인해 미술관의 풍경은 전체적으로 점증하는 상승적 흐름의 땅의 박력을 잘 드러내게 되었고 건물들은 소박한 전통 가옥의 분위기를 재현하듯 편안한 풍모를 자아낸다. 둔탁한 산세와 경합하지 않고 한발 물러서 있는 지혜로운 처신을 보여주는 것, 한국성의 구현을 평생의 숙제로 삼았던 김환기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서구적인 화법의 수단으로 한국의 정신을 표현하고자 했던 김환기의 삶처럼 건축 역시 현대적 건축 기법으로 지어졌지만 우리 고유의 공간적 정서를 표현하려고 의도 했던 것이다."

- 클라우드 님의 Blog -

나는 많은 사람들이 환기미술관에서 한국전통건축의 느낌을 언급하는 이유가 건물과 벽체의 외장재로 화강석, 고압벽돌 등을 사용하여 전통건축의 재료처리방식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이유는 환기미술관이 공간구조나 Mass의 처리, 수직적인 공간 틀을 통해 어울리고자 했던 주변의 모습이 흔한 우리네 마을의 모습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누군가는 '우리네 마을'이라는 범주에서 산사(山寺)를 떠올릴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옹기종기 모여 있는 취락지를 떠올렸을 뿐이다.

 

도시설계가 Archur

Archur가 해석하는 도시, 건축.
저서. <닮은 도시 다른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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