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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 우승 80주년(1936.8.9)
손기정 기념관(2012); 舊양정고등학교 구관(1918), 후관(1927), 서관(1949)
도시설계가 Archur
2016.08.08


 

8월 6일 제31회 하계올림픽이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막했다. 우리나라는 1948년 제14회 영국 런던올림픽에 처음 참가했다. 당시 획득한 메달은 총 2개의 동메달. 그런데 한국인이 메달을 목에 걸었던 건 그보다 빠른 1936년 독일 베를린올림픽 때였다. 당시 마라톤 경기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했다. 하지만 일제치하였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아닌 일본 선수로 출전했었다. 금메달의 주인공은 손기정 그리고 동메달의 주인공은 남승룡이었다. 올해는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한지 80주년이 되는 해다.

손기정은 1912년 신의주에서 태어났다. 출생지(Birthplace)가 북한이니 이를 지역특성화 요소로 활용할 수는 없다. 그래서 한때 손기정기념재단(사무총장은 손기정의 외손자 이준승)은 기념관 건립지로 북한과 가까운 임진각 근처를 고려했었다('손기정기념관 올해엔 꼭 만들 터', 연합뉴스, 2007.3.14). 태어나서 20년 가까이의 생활을 평안북도 일대에서 보낸 손기정이 서울로 오게 된 계기는 1932년 동아일보에서 주최한 하프 마라톤에서 2위에 오른 뒤 이를 통해 양정고등보통학교에 입학을 하면서 부터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사항. 1932년이면 손기정은 20세로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해야 하는 나이다. 그럼에도 어떻게 입학이 가능했을까? 손기정기념관 홈페이지에 따르면 손기정은 양정고보 육상부에서 체계적인 선수생활을 하고 싶어 당시 양정육상부원이었던 고향선배 황대선에게 부탁해 나이를 두 살 줄여 입학했다고 한다. 손기정 입학 당시 그의 스승이자 마라톤 코치였던 사람은 김교신(1901~1945). 김교신에 대한 설명은 주간동아의 기사 '광복 70년 특별기획 대한민국 설계자들⑪', 2015.11.2을 참고하자. 양정고보 육상부는 손기정에 앞서 남승룡을 배출했다. 앞서 언급한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손기정은 2시간 29분 19.2초로 올림픽 신기록을 수립하며 우승했다. 참고로 남승룡이 손기정의 선배지만 나이는 1912년생으로 동갑이었다.

손기정 입학 당시 양정고보는 현재 서울시 중구 만리동에 있는 손기정기념관이 있는 자리에 있었다. 양정고등학교 홈페이지에 나온 연혁에 따르면 양정고보의 전신은 '양정의숙(養正義塾)'으로 1905년 2월 엄주익(1872~1931)이 설립했다(초대 숙장 취임). '의숙(義塾)'은 '공익을 위하여 의연금을 모아 세운 교육기관'으로 휘문중고등학교의 전신도 1906년 민영휘가 설립한 휘문의숙이었다. 엄주익은 한성부판윤, 군부협판, 법부협판 등을 지낸 개화기때 고위 관료로 1904년 근대적인 군사제도 시찰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물을 접하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귀국후 근대적인 교육의 보급이 시급함을 깨닫고 설립한 교육기관이 양정의숙이다.

양정의숙은 1907년 엄황귀비(嚴皇貴妃)로부터 하사받은 토지에 처음 숙사를 마련하였다. 위치는 서부 적선방 도염동으로 지금의 세종문화회관 뒷편 도렴동 일대다. 엄황귀비(嚴皇貴妃)는 근대적 교육기관 설립에 앞장 선 인물인데, 대표적으로 숙명여자대학교가 있다. 그녀의 명칭에서 '귀비(貴妃)''조선시대 후궁에게 내리던 가장 높은 지위'를 일컫는 말이고 '황(皇)'은 황제, 즉 고종황제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엄황귀비는 고종의 후궁이다.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를 당하고 나서 고종의 부인이 됐다. 엄황귀비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의 친모다. 그렇다면 '엄(嚴)'은? 성씨다. 엄주익은 엄황귀비의 친정 조카였다. 참고로 엄주익은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2008년 4월 29일에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명단에 포함돼 있다('[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 대상자 4776명', 오마이뉴스, 2008.4.29).

얘기가 너무 멀리갔다. 다시 양정의숙 얘기로 돌아와서, 1913년 9월 조선교육령에 의해 양정고등보통학교로 설치 인가 받은 후 현재 손기정기념관이 있는 자리로 옮겨온 시기는1918년 11월이었다. 1920년 6월 13일자 동아일보에 신축한 양정고보의 구관 사진이 실려있다(위 흑백사진). 현재 손기정기념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연면적 1,561㎡)로 사진이 흐릿해서 현재 상태와 정확한 비교가 어렵지만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다만 포치(Porch)는 많이 다르다. 현재 손기정 기념관의 포치는 벽돌의 상태를 봤을때 새로 지은 것이고 과거 사진과 비교해보면 정면 아치 상부가 과거 벽돌에서 대리석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과거에는 포치 윗 부분에 벽돌로 된 난간이 설치돼 있었다. 전체적으로 현재 포치는 대리석이 많이 사용돼서 그런지 무거워 보인다(아래사진). 준공 당시 구관에는 교실 12개가 있었고 그 남서쪽으로 200㎡ 규모의 강당이 있었다(아래x2사진 왼쪽).

현재 구관 뒷편에 청소년 독서실(230석 규모)로 사용하고 있는 후관(연면적 884㎡)을 증축한 시기는 1927년이었다. 그리고 1932년에 운동장을 확장했다. 이때 손기정이 양정고보에 입학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나갈때도 손기정은 양정고보 소속이었다고 한다. 손기정은 21회 졸업생이 됐고, 1949년 8월 후관 남서쪽 부지에 서관(1,327㎡, 아래사진)이 신축됐다. 서관은 현재 체력단련실, 생활체육교실, 골프연습장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양정고보는 한국전쟁때 만리동 교사를 떠나 대구와 부산에 임시학교를 개교했다. 만리동 교사로 복귀한 시기는 1953년 9월. 1957년 9월에는 별관을 준공하고 이듬해 8월에 구관과 별관에 교실 증축, 舊 강당 철거, 본관 신축 작업을 했다고 한다. 현재 손기정 체육공원내 남아 있는 시설은 구관, 후관, 서관 뿐이다. 그럼 한국전쟁 후 지어진 본관과 별관은 어디에 있었을까?

위 1972년 위성사진을 보면 현재 남아 있는 세 동 外 몇 개의 건물이 더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현재 남아 있는 세 동과 같은 방향으로 서관 남동쪽(現 배드민턴장 자리)에 一자 Mass가 하나 더 있었다. 그리고 그 4개 동을 마치 하나로 연결하려는 듯 직각방향으로 매스가 있었다. 남쪽 부분이 더 두꺼웠던 이 매스는 아래 사진에서 왼쪽을 보면 5개층 정도였던 것 같다. 그리고 구관과 후관 북동쪽, 현재 손기정 두상이 있는 자리에 강당이 있었다. 강당은 1965년 과학관과 함께 완공됐다. 강당을 제외하고 현재 배드민턴장 자리에 있었던 건물과 직각 방향으로 놓여 있었던 건물이 본관과 별관이었을 듯 하다.

양정고등학교는 1985년 12월 목동 신시가지내 학교용지 할애요청을 신청하여 1988년 2월 이전했다(현재 위치는 양천구 목동 안양천로 1039). 흥미있는건 새로지은 건물 중 도서관 건물을 만리동에 있는 구관과 똑같이 지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가끔 인터넷에는 이 도서관 건물이 구관으로 소개되어 있기도 하다. 양정고등학교 교사 김병수의 블로그에 나와 있는 도서관 사진을 보면 구관의 과거 모습과 유사하다(위 사진). 심지어 앞서 언급한 손기정기념관의 포치보다 양정고등학교 도서관 건물의 포치가 원형에 가깝다. 다만 1층 창문 상인방 가운데 뒤집어진 사다리꼴 같은 석재 부분이 1층과 2층을 나누는 돌림띠와 떨어져 있다. 손기정기념관과 1920년 6월 13일자 동아일보 기사에 삽입된 사진에서는 돌림띠와 가운데 사다리꼴이 붙어 있다.

목동으로 이전하고 남은 舊 양정고등학교 건물과 대지는 1987년 9월 18일에 손기정체육공원으로 조성됐다(공원면적 29,682㎡). 1990년 12월 31일에는 손기정 두상도 세웠다(원형제작은 박재소, 위 사진). 두상 앞에는 1936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우승시 손기정 선수가 받은 월계수 묘목을 심은 손기정 월계관 기념수가 있다. 2000년에는 공원 남동쪽 일부 (대지면적 4,400㎡)에 지하주차장을 만들었다. 현상설계를 통해 김상길&ATEC건축이 설계자로 선정됐다. 지하2층(지상1층), 연면적 6,997㎡ 규모에 주차대수는 199대다. 'Concept 2000.2.'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손기정공원 지하주차장의 계획배경 및 목표는 '공원지하활용 및 공영 주차장 건립을 통해 손기정공원 주변지역의 주차난 해결'이었고 '상부에 조성되는 공원은 상징성과 예술성을 고려했다'고 한다(아래사진). 현상설계시 준수사항은 '자연 지형 및 기존 지형형태를 최대한 유지하는 것''기존 테니스장 위치를 유지하는 것'이 있었다.

2004년 5월에는 82㎡규모로 손기정기념관도 개관했다. 하지만 이 기념관은 지금의 기념관과 달리 손기정기념재단과는 상관 없이 중구청 주도로 지어졌다. 손기정기념재단이 설립된 시기는 2005년 6월로 재단 사무실은 수원월드컵경기장 2층에 있었다. 2007년 10월 중구청과 손기정기념재단은 재단 사무실을 손기정체육공원내로 이전하고 손기정기념관을 건립하는 문제에 대해 합의했다. 이듬해(2008년) 8월 이전했다. 그리고 2009년 11월 시끄러웠던 손기정 금메달과 우승상장 그리고 월계관이 육영재단으로부터 반환됐다.

2010년 1월 예산 300억원을 들여 2012년까지 손기정체육공원에 손기정기념관을 짓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1,915㎡의 부지에 연면적 8,800㎡로 신축이었다. 연합뉴스 기사에 실린 이미지를 보면 시설은 기존 건물을 모두 헐고 그 자리에 배치됐다. 그러다 그해 11월 기존 건물을 증개축하는 것으로 사업방향이 변경됐다. 사업비는 58.5억원으로 다시 책정됐다('만리동에 '손기정기념관' 만든다', 연합뉴스, 2010.11.9). 2011년 9월, 시공테크가 전시 시공업체로 선정됐다. 그리고 손기정 탄생 100주년, 타계 10주년이 되는 2012년 10월 14일 손기정기념관이 개관했다.

손기정기념관과 체육공원을 보면서 우선 옛 양정고등학교 구관, 후관, 서관이 뻔한 전시관, 내용없는 기념관으로 쓰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 감사했다. 그리고 그 활용방안이 전혀 생각지 못했던 청소년 독서실과 체육센터라는 것이 새로웠다. 또한 공원내 체육시설들 -축구장, 테니스장, 배드민턴장- 을 지역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모습이 활력있어 보였다. 물론 너무 주민 친화적이어서 손기정기념관을 찾는 사람이 적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실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간하는 '2015 전국문화기반시설 총람'에 따르면 손기정기념관의 2014년 관람인원은 8,449명으로 日 평균 28명에 불과했다. 전국 781개 박물관 중 579위로 평균 아래다(781개 평균 2014년 관람인원은 127,100여명). 2013년에는 年 12,445명이 방문했는데, 日 평균 44명이었다. 내가 이곳을 방문했을때도 일요일이었데 나 혼자 기념관을 둘러봤다. 하지만 한적한 기념관과 달리 공원내 체육시설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기념관 마지막에 할아버지가 된 손기정 사진과 '조국 땅에서 구김살 없이 달릴 수 있는 젊은이는 행복하다. 그들이 달리는 것을 누가 막겠는가!'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어쩌면 이 문구가 손기정기념관이 다른 기념관과 달리 무엇을 기념해야 하고 또 현재 우리에게 어떤 메세지를 전달해 주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일지도 모른다. 시공테크도 비슷한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이 문구가 적힌 손기정의 사진을 전시동선 마지막에 배치했을 것이다. 하지만 전시관의 구성은 다른 기념관들과 달리 차별적이지 않다. 무엇보다 역사적 건물을 리모델링한 전시관 치고는 내부에서 그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전시를 위한 공간 뿐만 아니라 손기정이 다녔을거라 가정하고 만든 옛날 교실도 재현된 코너일 뿐이다(아래사진).

손기정기념관 뿐만 아니라 후관과 서관 내부에서도 역사적 건물의 흔적은 읽을 수 없다. 그냥 새 건물이다. 기념관 주변에 조성된 체육시설과 공원은 구김살 없이 달릴 수 있는 공간을 젊은이들에게 제공해 주면서 손기정을 -직접적으로는 아니지만- 기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렇다면 옛 양정고등학교의 남은 세 건물도 그런 기회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전시동선 마지막에 적힌 메세지를 우리에게 전달하는 인간 손기정의 당시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면 어떨까? 구체적으로 역사적 건물의 흔적이 읽히는 청소년 독서실과 체육센터를 만드는 시도를 해보는건 어떨까? 내 바램이 너무 과한가? 손기정 기념관에서 반복적으로 다루는 내용은 그가 금메달을 딴 극적인 과정이다. 이번 리우 올림픽에서는 또 어떤 선수가 극적인 장면을 연출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극적인 장면을 보며 그 주인공이 그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도 함께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여기에 내 개인적인 바람을 하나 더 추가하자면 그 선수를 국민의 영웅이 아닌 선수 개인으로 봤으면 좋겠다. 그래야 메달 색깔이 아닌 그 선수가 하는 그 한 경기, 한 경기를 재미있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설계가 Archur

Archur가 해석하는 도시, 건축.
저서. <닮은 도시 다른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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