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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화의 대표 화백, 의재 허백련 출생(1891.11.2)
의재미술관 / 조성룡&도시건축+김종규&M.A.R.U.(2001)
도시설계가 Archur
2016.11.02

 

의재 허백련(이하 의재)은 고종 황제 집권기인 1891112일에 태어났다. 올해는 그의 125번째 생일이다. 그는 동양화의 분파 중 하나인 남종화의 계보를 잇는 대표 화백이고 서양화가였던 점수 오지호(1905~1982)와 함께 예술의 도시 광주를 대표하기도 한다. 진도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 후 서울을 근거지로 삼았던 의재가 광주에 터를 잡은 건 1946. 그해 무등산 차밭을 사들여 삼애다원을 설립하고 춘설다(春雪茶)를 생산했다. 그리고 1977년 세상을 뜰 때까지 30여 년 동안 무등산에서 생활하며, 자신의 예술세계와 사상을 전개해 나갔다. 그는 이곳에서 사회사업과 함께 교육사업도 했는데, 1948년에는 이보다 2년 앞서 설립한 '광주국민고등학교''광주농업고등기술학교'로 교명을 변경한 뒤 정식인가도 받았다. 일명 '삼애학교'라 불렸는데, 삼애는 '愛天', '愛土', '愛族'이다. 구체적으로 愛天'하늘의 뜻을 받들고 조상을 기리는 것'이고, 愛土'흙을 가까이 하면서 고향을 사랑하는 것'이며, 愛族'이웃과 협동하며 동족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의재미술관은 의재의 이런 뜻을 기리는 기념관이자 그의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이며, 주변 그의 흔적을 드러내주고 설명하는 유적지의 기능을 고루 갖춘 복합문화공간이어야 했다.


 

의재의 흔적이 증심사와 약사암으로 오르는 등산로 양쪽으로 흩어져 있었으므로 미술관 설계에 있어서 신축 부지 외 주변 지역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었다(대지면적 6,048). 또한, 미술관은 주변 의재의 흔적과 기존 건물들을 이어줌과 동시에 영역의 중심이 되어야 했다. 현상설계지침에 제시돼 있기도 했지만 삼애학교 건물도 보존해야 했다. 1999년 현상설계가 열렸다. 현상설계 제출안들은 대부분 산책로를 전면에 둔 긴 경사지라는 대지 특성을 반영하여 긴 매스를 뒤쪽(산책로 반대쪽)으로 켜켜이 쌓았다. 오히려 이런 면에서 조성룡+김종규의 안(아래 이미지)은 달랐다. 그들은 지붕선이 평평한 매스를 가운데 켜를 두고 나란히 배치했다. 현상설계 심사에서 조감도가 상당히 시각적인 인상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평평한 매스는 밋밋해 보일 수 있다.


 

조성룡과 김종규는 '비움과 고요함이 만들어내는 정일한 공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관념의 세계를 느끼는 새로운 풍경을 이 미술관에 담고 싶었다'고 한다(-설계경기 199906-)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전봉희는 조성룡+김종규의 안을 두고 '무등()을 가장 잘 이해했다'고 강조하며, '김종규의 'Landscape' 혹은 민현식 식으로 풀어서 말하는 '땅의 형국을 추상화하는 작업'으로 이러한 난제를 해결'하였다고 평했다(-Criticism: 지형적 공간론의 성공, 전봉희 in 이상건축2001.11(111)-).

 

 

 

주차장에서 1.7km를 걸어 들어갔을 때 적삼목판재, 유리, 콘크리트가 수평적으로 쌓인 의재미술관이 보였다. 그리고 산책로와 연결된 계단이 보였지만 일단 무시하고 산책로와 단차 없이 만나는, '의재毅齋미술관' 이라는 간판이 붙은 출입구로 갔다(위 사진). 왜냐하면 의재미술관은 전시기능이 주(Main)이고 전시관은 내부동선을 연결된 매스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시퀀스(Sequence)를 중요하게 생각한 조성룡의 다른 작품인 SOMA(2004)나 이응노 기념관(2011)과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Sequence는 시점과 종점 설정에 있어 건축가의 의도가 명확하다. 그러므로 동선의 시작점을 건축가가 의도한 지점에 맞추는 것이 좋다. 의재미술관에서 동선의 시작은 앞서 만났던 산책로와 연결된 계단이 아닌 간판이 붙은 출입구다.


 

그런데 남쪽끝에 있는 출입구는 산책로를 올라가는 방향(북북서남남동)에서는 계단 다음에 만나는 지점이다. 그래서 계단과 경사로를 통해 출입구를 만나기 전에 전시관 입구로 갈 수 있다(위 사진에서 보이는 경사로를 통해). 그런데 이렇게 되면 설계가의 의도가 꼬이게 된다. 하지만 의재미술관은 무등산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최종 목적지에 이른 후 내려오면서 들리는 경유지다. 왜냐하면 나처럼 의재미술관을 가기 위해 무등산 산책로를 오르는 사람들 보다는 산행과 증심사로 가기 위한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산책로를 내려가는 방향(남남동북북서)에서 보면 출입구는 산책로에서 갈라져 평평하게 뻗어 있는 또 하나 길이 된다(아래사진). 관람객을 전시관으로 끌어들이기 더 쉬워지는 것이다.


 

출입구에서 전시관을 바라보면 오른쪽으로는 사람 키보다 높은 콘크리트 벽이, 왼쪽으로는 사람 키보다 낮은 자연석 담장이 쌓여 있다. 그리고 길, , 담장은 전시관으로 곧게 뻗어 있다(위 사진). 안쪽으로 들어와 오른쪽 콘크리트 벽이 끝나는 지점에 이르면 직사각형 개구부(아래사진)가 나오고 다시 몇 걸음 더 들어가면 티타늄 아연(Titanium Zinc)판으로 마감된 차문화교실이 오른쪽으로 드러난다. 박공지붕을 하고 있는 차문화교실은 현상설계지침에서 보존하도록한 삼애학교 건물이다.


 

의재미술관은 의재의 작품을 전시하는 단순한 목적으로 지어진 시설이 아니기에 전시관 외 다른 프로그램을 담을 수 있는 건물이 필요했다. 현상설계에서 다른 설계사무소들이 제안한 안들이 매스가 길어지거나 커질 수밖에 없었던 건 이런 다양한 프로그램을 단일 매스에 넣으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성룡과 김종규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전시관-마당-차문화교실(구 삼애학교)-관리동(학예연구원실)을 일렬로 배열했다. 세 개의 매스와 마당이 배열된 총 길이는 76m. 그런데 다른 프로그램을 위한 건물이 별도로 배치되면 시설 이용동선은 분산된다. 이렇게 되면 명확한 시퀀스를 의도한 조성룡+김종규의 생각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설계자들은 관람객을 전시관으로 곧장 끌어들이기 위해 그 과정에서 관람객의 주의를 분산시킬 수도 있는 차문화교실과 관리동을 사람 키보다 높은 콘크리트 벽으로 가렸다. 하지만 차문화교실은 프로그램적인 성격이나 의재의 흔적이라는 점을 감안해서 콘크리트 벽이 끝나는 지점에서 뒤늦게 나타나도록 했다.


 

전시관과 차문화교실이 공유하고 있는 마당을 지나 전시관 입구로 들어서면 Lobby에서 전시관 안쪽으로 이어지는 다리(Bridge)가 나온다(위 사진). 건물 안에 다리가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1층이지만 지하층 같은 이벤트홀(아래사진)에 자연광을 끌어들이기 위한 목적을 우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굳이 다리로 처리할 필요는 없었다. 2층 바닥판의 일부를 드러내면 이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다리는 건물 내부의 기능으로만 한정해서 해석하기 보다는 앞서 관람객을 전시관까지 이끈 길의 연장으로 해석하는 게 타당하다. 그래서 건물 밖에 있는 길이 벽과 담장으로 한정된 좁고 긴 공간이듯이 다리도 허공으로 한정된 좁고 긴 공간이다. 이런 의도를 드러내고자 설계자는 같은 바닥재료를 두 공간에 사용했다.


 

길의 연장으로 좁고 긴 공간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하더라도 굳이 건물 내부에서 다리를 만들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은 여전히 남았다. 다리 혹은 좁고 긴 이 공간에서 또 다른 해석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이리저리 건너다 전시관 서쪽으로 열린 유리입면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풍경이 보였다(아래사진). 의재미술관부터 조성룡이 고민하기 시작한 '풍경'이라는 주제가 이 유리입면을 통해 드러나고 있었다.


 

"그는 기억을 소중히 하고 장소를 소중히 하고 흔적을 소중히 한다. 땅을 소중히 여기며 건축을 둘러싼 여러 요소들이 어우러져 이루는 풍경(landscape)을 소중히 한다. 풍경은 그의 건축이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함축한다. 이것이 그가 지닌 건축의 화두이다. 지극히 단순한 명제임에는 분명하나 사실 이런 단순한 논리가 우리네 건축 사회에서는 잘 소통하지 않는다."

- 조성룡과 의재미술관: 건축은 늘 자연과 하나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주연 -

 

 

유리입면을 통해 건물 내부로 쏟아져 들어오는 풍경에는 의재의 흔적이 남아 있는 문향정(농업고등기술학교를 운영하면서 실습용 축사로 지었던 건물, 현재 건물은 이종환 설계, 위 사진), 춘설헌, 의재의 묘가 포함돼 있다. 상상력을 조금 더하면 의재미술관 동쪽에 있는 차밭에서 차를 재배하던 의재가 허리를 펴고 한 숨 쉬며 바라본 풍경이기도 하다. 땅에서 설계를 풀어가는 조성룡에게 풍경은 땅의 기억을 드러내는 가장 큰 수단이다. 이곳에서는 30년간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의재가 바라본 풍경이 의재와 관람객을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이런 방식은 이응노 기념관(2011)에서도 동일하다. 그런 측면에서 2층의 서쪽 유리입면은 의재와 관람객을 연결하는 장치다. 혹자는 유리입면과 수직 프레임으로 나뉘어 보이는 무등산의 풍경을 두고 병풍을 언급하지만 그 이전에 -내가 보기에- 수직 프레임은 풍경의 간섭을 최소화하기 위한 설계자의 노력이다. 그가 외부의 풍경을 내부로 끌어들이고자 할 때 유리에 설치된 프레임은 시선의 간섭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최소화 돼야 한다.

 

 

 

관람객은 서쪽 유리입면을 통해 풍경을 바라보면서 현재의 시간에서 의재가 같은 풍경을 바라보던 시간으로 넘어오게 된다. 일종의 타임머신(Time Machine)인 셈이다. 그리고 다음 시퀀스로 동쪽에 배치된 전시실의 의재 작품들을 감상하게 된다. 이런 시퀀스 속에서 다리는 전이공간이다. 일반적으로 다리는 떨어진 이쪽 공간과 저쪽 공간을 연결하는 장치다. 의재미술관 로비와 휴게실을 연결하는 다리는 이런 물리적인 기능을 넘어 '현재의 시간''의재의 시간'을 연결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다리를 통해 휴게실에 이르면 동선은 동쪽(앞쪽)과 남쪽(오른쪽)으로 갈라진다. 남쪽은 앞서 얘기한 지하층 같은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다. 1층에는 썬큰가든(Sunken Garden) 같은 느낌의 이벤트홀을 가운데 두고 세미나실과 수장고 그리고 화장실이 있다. 동쪽에는 기획전시실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이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으로 넘어가는 지점이다(위 사진). 프로그램적으로 얘기하면 전시관람 동선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이 지점은 외부중앙경사로 아래에 배치돼 있다. 그래서 마치 부속공간을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시퀀스를 중시하기 위해 건물 안에서 동선을 순환시키려다 보니 공간이 구겨졌다. 더군다나 기획전시실로 가려면 계단을 올라야 한다.


 

기획전시실은 반 층 높이로 스킵(Skip)된 두 개의 긴 회랑으로 나뉘어 있다(위 사진). 이는 전시관 가장 동쪽에 배치돼 있음으로 인해 동쪽에서부터 내려오는 지형을 실내공간 구성까지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기획전시실이 비교적 긴 장방형 매스임에도 북쪽 상부에 있는 수평띠창과 남쪽 반투명유리로 인해 실내공간은 밝다(아래사진). 하지만 조성룡+김종규의 현상설계 안을 보면 기획전시실 천장에 긴 천창 5개가 더 뚫려 있었다. 현재 이 천창들은 없다. 현상설계 당시 현재 기획전시실은 상설전시실이었다. 조성룡+김종규는 "서양화 위주의 전시공간과 달리 한국화 전용 전시공간의 성격과 정서를 나타내기 위하여 크기와 채광이 조절"될 수 있도록 하였고 "관람통로의 중간중간에 외부로 트인 넓은 유리면으로 주변의 풍경이 내부로 들어오고, 반투명한 경사통로를 통하여 2층의 기획전시장(3층 상설전시실)으로 연결되는 산책로를 형성"하고자 했단다(-설계경기 199906-).


 

기획전시실 동쪽 구석으로 가면 3층 상설전시실로 연결되는 경사로가 보인다. 상설전시실 방향으로 올라가는 이 경사로는 앞서 다리가 연장된 건물 내 길이다. 폭도 비슷하고 경사진 상태도 유사하다. 다만 바닥마감재가 목재다. 경사로 양쪽은 불투명 유리로 막혀 있다. 하지만 빛은 통과할 수 있어서 통로는 밝다. 그래서 오히려 통로 끝의 상설전시실이 더 어두워 보인다(아래사진). 실제 상설전시실에는 산수화, 수묵화를 장기간 전시해야 하므로 자연광을 차단했다. 작품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현재 관람동선은 상설전시실에서 끝난다. 미술관에서 가장 깊은 영역인 상설전시실까지 들어간 관람객은 지금까지의 동선을 거슬러 나와야 한다. 부자연스럽다. 관람동선이 이렇게 된 이유는 상설전시실에서 외부중앙경사로로 나오는 출구를 차단했기 때문이다. 출구는 아래사진 왼쪽, 원기둥 뒤쪽에 있다.


 

"미술관의 내부를 구성하는 것은 서로 엇갈린 방향으로 놓인 여러 개의 판상이다. 여기서 내외부공간의 구분은 무의미하고 단지 미세하게 조작된 다양한 판들의 치수와 경사도에 따라 등산로를 오르며 몸에 익숙해진 다리의 느낌과 율동을 그대로 유지하며 물 흐르듯 갈 길을 이어 나간다. 이러한 판상의 연쇄는 곧 외연화된 등산로이고 무등을 가장 잘 이해한 작품이라는 생각은 여기서 비롯한 것이다. 여기서 관람자는 경사가 이끄는 방향을 따라 이리저리 나아가면서 종국에는 최초 그것을 시작한 장소로 되돌아 나와 가던 길을 이어나가게 한다."

-Criticism: 지형적 공간론의 성공, 전봉희 in 이상건축2001.11(111)-


 

조성룡은 의재미술관을 통해 '풍경'을 고민했고 이후 전개한 작업을 통해 '풍경으로서의 건축'을 발전시켰다. 공동설계자인 김종규는 이 프로젝트에서 'Landscape'을 펼쳤다. 김종규는 29세가 되는 1989년에 영국 AA School을 졸업했다. 그리고 1993년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1996년 김종규는 '명동대성당 축성 100주년 기념 공모전'에 출품해서 우수작으로 선정됐다. 당시 이 공모전은 당선작을 내지 않았다. 김종규가 제안한 개념은 '지형적 공간'이었다.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오브제(Objet)로 서 있는 건축물과 땅의 견고한 경계를 허물고 주변 대지와 건물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 개념'이었다. 이 개념은 1990년대부터 유럽에서 본격화된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쳐(Landscape Architecture) 개념과 일맥상통 한다.


 

그런데 이 개념 좋은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쳐가 현실화 되면 그 공간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게 '접근금지 펜스''출입통제'. 흐름을 막는 것이다. 의재미술관 상설전시실의 폐쇄된 출구도 마찬가지다. 건물 내외부를 흐리며 이동하는 동선이 어느 지점에서 막히는 것이다. 의재미술관에서는 건물 내부에서의 전시관람동선이 상설전시실에 있는 출구를 통해 건물 상부로 나오는 부분에서 막혔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가장 큰 이유는 시설의 관리 및 안전을 위한 동선의 통제다. 랜드시케이프 아키텍쳐 개념으로 설계된 대부분의 전시시설들이 그렇지만 의재미술관에서도 동선을 통제하지 않으려면 2층 입구와 3층 출구를 각각 관리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출구를 막아 입구를 출입구로 만들어야 한다. 다른 방법도 있다. 관람동선을 순환형으로 만들어 출입구를 하나로 만드는 것이다.


 

의재미술관 상설전시실의 출구는 건축물에 전개된 조성룡의 풍경으로서의 건축 개념에서도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 출구가 폐쇄됨으로서 건축물에서 전개되는 모든 시퀀스가 끊기게 된다. 전시관 입구를 들어온 뒤 상설전시실까지 관람객은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 뒤 이어서 의재의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상설전시실에 난 출구를 통해 외부중앙경사로로 나가면 관람객에게는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이 다시 주어진다. 하지만 앞서 2층 유리입면을 통해 관람객에게 주어진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왜냐하면 그 사이에 관람객에게 주어진 의재의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을 통해 의재의 작품과 미술관 주변의 풍경을 오버랩(Overlap)시킬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상설전시실의 출구를 통해 외부중앙경사로 나가 접하는 풍경은 2층의 전체 유리입면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풍경과는 상태가 다르다. 2층에서 보였던 풍경이 수직 프레임으로만 나눠진 무등산의 모습 그 자체였다면 외부중앙경사로에서는 주변풍경과 의재미술관이 어우러진 모습이다.


 

상설전시실의 출구로 나가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지만 마음을 접고 순간이동으로 외부중앙경사로 상부에 이르러 보자. 이곳에서 우선 서쪽을 바라보면 앞서 2층 유리입면에서 보았던 같은 풍경이 전시관 서쪽 매스 상부 입면을 덮은 적삼목과 함께 보인다(위 사진). 의재미술관 이후 조성룡의 작품에서 건물의 입면 마감재는 그 입면의 배경이 되는 컨텍스트(Context)의 성격에 따라 결정된다. 그의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주변과의 관계맺기'의 한 방법이다. 적삼목은 자연을 배경으로 하는 입면에 주로 사용되는 재료다.

 

 

방향을 바꿔 외부중앙경사로가 내려가는 남쪽을 바라보면 좌측으로는 노출콘크리트가, 우측으로는 불투명 유리가 시야를 좁힌다. 그리고 그 좁은 통로 바깥으로 무등의 한 봉우리가 보인다. ()을 반사하지 않는 노출콘크리트와는 대조적으로 불투명 유리는 반대편에 있는 노출콘크리트 벽체와 무등의 한 봉우리를 반사시킨다. 봉우리의 녹음은 불투명 유리에 반사된 상()을 통해 확장된다(위 사진).


 

주변 풍경과 의재미술관이 어우러지는 장면(Scene)은 외부중앙경사로를 내려와 경사로(북쪽)를 바라봤을 때 가장 극적이다(위 사진). 이 장면은 의재미술관에 사용된 모든 외부마감재와 불투명 유리로 마감된 툭 튀어나온 매스로 구성된다. 외부중앙경사로를 다 내려오면 관람객은 마당에 이른다. 내가 이곳을 갔을 때는 마당에 소나무를 심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설계경기 당시 조성룡+김종규는 마당을 "미술관 전체의 중심영역"으로 설정했다. 그래서 마당이 "오동나무숲과 대나무숲을 만나며, 장소의 기억과 의미를 제공하는 장소"가 되길 바랐다(-설계경기 199906-). 조성룡에게 마당은 1989'신세대의 한국건축 3인전-마당의 사상' 전시회부터 전통을 고민하는 매개체였다. 의재미술관에서 마당은 앞서 설명한 관리동차문화교실마당전시관으로 이어지는 동선()과 미술관 주변에 있는 차밭마당산책로 건너편의 춘설다헌춘설헌차제조공장으로 이어지는 동선()의 교차점이다.


 

조성룡+김종규는 시작단계부터 미술관의 공간들을 주변 의재의 흔적들을 연결하는 문화 산책로(Cultural Promenade)의 중심시설로 생각했다. 연면적 1,562의 시설을 계획하면서도 주변과의 관계는 미술관 주변 반경 300m를 포괄한 것이다. 주변과의 관계 정립은 조성룡 작업에서는 건축물의 규모와는 상관없이 계획 단계부터 반드시 고려해 왔던 사항이다. 마당의 영역을 전시관과 차문화교실 사이 공간으로 한정하면 사실 마당이라기보다는 전시관 입구의 전면공지 수준이다. 하지만 차문화교실이 놓여 있는 공간까지 생각하면 마당의 영역이 넓어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현재 차문화교실의 모습은 아쉽다. 더군다나 현장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었는데 차문화교실은 과거 1950년대 지어진 삼애원을 개보수한 건물이었다. 내가 현장에서 이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건 내부에 남겨진 기존 구조체인 지붕 목재 Truss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현재 외관이 과거의 모습을 너무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방향으로 마당에 오든 마당을 빠져나오는 경로는 전시관 서쪽에 설치된 경사로다(위 사진). 경사로를 다 내려와 산책로를 따라 산을 내려갈 수도 있고 다리를 건너 미술관 서쪽에 있는 의재의 흔적을 둘러볼 수도 있다. 여기까지가 조성룡+김종규가 의재미술관에서 의도한 시퀀스다.

도시설계가 Archur

Archur가 해석하는 도시, 건축.
저서. <닮은 도시 다른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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