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가와 예술가가 만났을 때 뮤지엄이 시작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구겐하임 뮤지엄도 탄광사업으로 재벌이 된 메이어 구겐하임Meyer Guggenheim의 넷째 아들 솔로몬Solomon(위 사진에서 오른쪽)이 자신보다 30세나 어린 예술가 힐라 리베이Hilla Rebay(위 사진에서 가운데)를 만나면서 탄생됐다. 1937년 솔로몬은 구겐하임 재단을 설립하고 초대 재단이사와 큐레이터Curator자리에 힐라 리베이를 앉혔다. 솔로몬은 미술품 수집을 위한 재원을 지원했고 힐라 리베이는 전시 및 수장활동을 맡는 일종의 파트너쉽Partnership 체제였다.
1939년 두 사람은 E54th st 24번지에 있는 자동차 전시장 자리에 'Museum of Non-objective Painting'이라는 이름의 미술관을 설립했다. 구겐하임 뮤지엄의 모태가 되는 미술관이다. 힐라 리베이는 1952년까지 미술관 관장으로 있었는데, 이 시기에 구겐하임 재단의 소장품 수는 급격하게 늘어났다. 자연스럽게 새로움 미술관 건립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새로운 미술관 건축에 대한 임무도 전적으로 힐라 리베이가 맡았다.
힐라 리베이는 새로운 미술관이 지금까지 박스 매스Box Mass 벽에 그림이 걸려 있는 형태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설계자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를 지명했다. 건립 부지는 지명 때만 해도 정해지지 않았다.
1944년 라이트가 내놓은 첫 번째 계획안은 소프트 아이스크림Soft Icecream을 거꾸로 엎어놓은 것 같은 형태였다. 이를 시작으로 라이트는 7번의 설계변경과 749장의 도면을 그린 후 현재 안을 확정했다. 라이트의 나이 76세에 시작한 프로젝트는 그가 죽고난 뒤 6개월이 지난 1959년 10월 21일에 개관했다. 올해(2017년)는 개관 58주년이 되는 해다.
1952년 힐라 리베이가 관장직에서 물러난 뒤 솔로몬의 형이었던 다니엘Daniel Guggenheim의 아들 해리Harry Guggenheim가 이사장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제임스 존슨 스위니James Johnson Sweeney를 새로운 관장으로 임명했다. 스위니는 미술관의 소장품 범위를 추상회화에서 조각작품으로까지 확대했고 이를 전시할 수 있도록 라이트에게 요청했다. 그리고 이때 'Museum of Non-objective Painting'이라는 이름을 'Solomon Guggenheim Museum'으로 바꾸었다.
건축사에 이정표를 세웠던 많은 건축물들이 그렇듯 구겐하임 미술관도 건설기간 동안 논쟁을 겪었다. 라이트는 10년이 넘는 설계기간 동안 변경되는 뉴욕시의 건축법규를 포함해 맨해튼Manhattan 건축으로 불리는 박스 형태에서 벗어난 원형 매스를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원형 매스 형태가 미술관 주변 어퍼 이스트 사이드Upper East Side에 있는 고급주택가 분위기를 해친다는 민원과 심지어는 건물 전체를 연결하는 경사로에 방화구획을 만들 수 없다는 제약 등과 맞서싸워야 했다.
이런 논쟁과 비난은 1956년 착공현장에서 시위가 벌어지는 상황까지 이어졌고 미술관 개관 후에도 계속됐다. 심지어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 프란츠 클라인Franz Klein, 로버트 머더웰Robert Motherwell 같은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이런 추한 형태의 미술관에는 전시할 수 없다는 항의서안을 작성하기도 했다. 분명 이런 논쟁의 중심에는 미술관을 다섯바퀴 반 휘감고 돌아가는 경사로가 있었다.
라이트가 설계한 경사로는 당시 관점에서 봤을 때 그림을 걸고 조각을 놓아야 하는 전시시설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전시시설에 경사로가 설치된 선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1930년대 바티칸 박물관Vatican Museum에 만들어졌다. 1948년에는 라이트가 리모델링Remodeling을 한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의 모리스 기프트 샵Morris Gift Shop에 만들어졌다(위 사진). 그러나 최소한 이 두 경사로는 움직임을 위한 공간이었지 그곳에서 멈춰서서 작품을 감상하는 공간은 아니었다.
어찌됐든 구겐하임 미술관의 10도 경사로는 그림을 벽에 걸 때 어느 레벨Level을 기준으로 걸어야 할지 언제나 논쟁을 만들었다. 또한, 폭이 큰 그림을 걸 때 벽체가 휘어져 있어서 가운데 빈공간이 생겼다. 이런 문제는 분명 라이트의 디자인이 가지고 있는 약점이었다. 더군다나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의 작품처럼 크기가 커지는 현대미술의 경향은 경사로의 기울기로 인해 결정돼 버린 제한된 천장고가 담아내기에는 불가능했다.
내가 이곳을 방문했을때 라이트의 작품이 전시돼 있었는데, 도면은 그렇다 치고 모형을 전시하기 위해 경사로 기울기에 맞춘 받침대가 설치돼 있었다. 이 외에도 천창을 통해 자연광이 쏟아지는 가운데 공간이 경사로 전시실보다 밝아서 전시몰입을 방해했다.
이런 논쟁의 중심에 있는 경사로는 분명 이동을 위한 공간이다. 라이트는 이동을 위한 공간을 전시품을 감상하는 머뭄의 공간으로 바꾸려 했고 이 과정에서 논쟁이 일어났다. 하지만 논쟁의 결과를 떠나 분명한 건 관람자는 경사로를 통해 미술관 입구에서 부터 자연스럽게 관람을 시작할 수 있게 됐고 이로써 갤러리Gallery 형태로 정형화된 뮤지엄 건축에 전환을 가져왔다. 또한, 역逆 나선형 형태의 매스를 지닌 구겐하임 미술관은 뮤지엄의 형태가 높은 표현력과 지극히 개인적이라 하더라도 용인될 수 있다는 인식의 포문을 열었다. 현재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뛰어난 조형성을 지닌 뮤지엄 건축의 시작이 바로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1969년 페기 구겐하임Peggy Guggenheim은 1951년부터 베니스Venice의 팔라초 베니에르 데이 레오니Palazzo Venier dei Leoni에서 열었던 전시품들을 구겐하임 재단에 기증했다. 페기는 1942년 맨해튼에 있는 자신의 화랑에서 <금세기의 미술>이라는 제목을 걸고 뉴욕파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기 시작했었다. 막스 에른스트Max Ernst의 부인이기도 했던 페기는 세계대전 중에도 마크 로스코Mark Rothko와 잭슨 폴록의 작품들을 구입했는데, 그래서 뉴욕파의 화가들에게는 위대한 여사제였다. 구겐하임 재단은 페기의 기증품을 전시하기 위해 베니스 구겐하임 분관을 만들었다.
1992년에는 늘어난 소장품을 관리, 보관하기 위해 미술관 북동쪽에 10층 높이의 타워와 내부 리모델링 공사를 했다. 설계는 찰스 과스메이Charles Gwathmey와 로버트 시걸Robert Siegel이 맡았다. 그들이 설계한 타워 입면에는 맨해튼 그리드Grid가 새겨져 있는데, 라이트가 설계한 나선형 매스와는 전혀 다른 건물처럼 보이게 하려는 의도였다고 한다(위 사진 왼쪽).
이후 구겐하임 재단은 베를린Berlin(도이치 뱅크Deutsche Bank와 협력, 전시공간은 리처드 글러크먼Richard Gluckman 설계), 2008년 폐쇄된 라스베가스Las Vegas(렘 쿨하스Rem Koolhaas 설계), 멕시코Mexico 과달라하라Guadalajara(2011, 엔리크 노텐Enrique Norten설계), 아부다비Abu Dhabi(2011, 프랭크 게리 설계, 위 이미지), 루마니아Romania 부쿠레슈티Bucharest(2010), 리투아니아Lithuania의 빌뉴스Vilnius(2011, 자하 하디드Zaha Hadid 설계, 아래 이미지), 스페인Spain 수카리에타Sukarrieta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빌바오Bilbao(프랭크 게리Frank Gehry, 1997)에 분관을 개장했고 또 개장할 계획을 세웠다.
구겐하임 분관은 모두 주목할 만한 형태로 설계됐다. 데얀 수직Deyan Sudjic은 "미술관이란 야심과 부의 결합물을 연료로 해서 재단이사진과 관장과 건축가 사이의 끊임없는 내분의 결과로 태어난다"고 하면서 "구겐하임의 전략은 미술관의 에고티즘Egotism 성향과 기념비적 건축 만연현상을 극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로 꼽았다. 여기에 "경쟁적 수집충동과 쇼맨십Showmanship도 한몫한다"고 지적했다. 수직은 "이 전쟁의 전투와 군벌의 흔적은 과시적 건축물, 후원자 이름을 딴 갤러리, 대외선전용 소장품이라는 형태로 남는다"했다《바이 디자인by Design, 홍시》. 다른 뮤지엄들은 차치하더라도 최소한 구겐하임 분관의 과시적 건축물들은 라이트가 설계한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 그 중 경사로에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