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가 주목한 건축가
독특한 외관의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설계 건축가 이정훈, 오로지 쉼을 위한 공간 VT하가이스케이프 설계 건축가 김대일, 이주한, 최한메, 김한중, 은평한옥마을 낙락헌 설계 건축가 조정구를 미디어에서 주목했다.
서울 논현동 서울세관 사거리에는 얼핏 보아도 눈에 띄는 건축물이 하나 있다.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다. 마치 SF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독특한 외관을 지녔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외관은 베르사유 정원 건축에 적용된 기하학적 패턴을 단계적으로 변용하여 구성한 것이라고 전한다. 건축가 이정훈은 이렇듯, 그의 전작들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의 이력이 말해주듯 현재의 재료들을 낯설게하고 창의적 아이디어를 더하여 가까운 미래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건축물을 설계한다. 좁은 공간에 다양한 활동을 담기 위해서 건축가는 또한 동선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중정을 배치하여 허브공간을 만들었고, 각 실들은 다양한 활동이 가능할 수 있도록 가변형으로 구성하였다. 서양의 건축이 채움을 중시하는 반면 이정훈의 건축은 비움을 통해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기사는 전한다.
애월 바닷가에서 도보로 30분 거리 중산간 마을의 너른 땅을 놓고 건축가 4명이 머리를 맞댔다. 이들은 제주도가 더 이상 한국인들에게 신기한 관광지만은 아니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고 건물주와의 뜻이 맞아 이곳에 오로지 쉼을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막힘과 뚤림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며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건물은 총 3개 동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A, B동이 각 공간을 견제하며 기능과 효율을 위해 서로를 막아주고 있다면 C동은 드넓은 마당을 향해 활짝 열린 구조로 되어 있다. 제주에 있는 많은 좋은 건축들이 그러하듯 이곳도 제주의 자연을 끌어들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아도 될만큼 제주의 속살 또한 보여주기 위함이기도 하였다. 침실과 주방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공간의 지붕도 없애서 자연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한 것도 이 곳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건축가들은 비일상적 경험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덧붙였다. 365일 정주하는 집이 아니라서 가능한 일이었다고도 하였다. C동 옥상에는 넓은 데크를 설치하여 백사장도 있다고 하니, 이 곳은 그야말로 자연 같은 집, 집 같은 자연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건축가 조정구는 요즘의 대표 주거 공간인 아파트는 본인이 비용을 주고 구입한 공간만 누릴 수 있는 반면 요즘의 한옥은 자기 집메만 머물지 않고 마당과 풍경을 누리며 주변 공간까지도 자신의 생활 영역을 문한히 확장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서 한옥을 예찬했다. 그 한 예로서 즐겁고 즐거운 집이라는 의미의 낙락헌을 예로 들었다. 이곳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한옥 아닌 한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한옥 특유의 기와지붕과 대청마루가 있는 지상1층은 현대식 건축의 필로티 구조가 적용돼 지면보다 높이 띄워져 있다. 내부에는 대청마루가 중심에 있고 풍광이 좋은 남쪽에 주방 및 식당이 배치돼 있는 구조다. 이를 통해 대청마루뿐만 아니라 주방 및 식당, 안방 등 모든 공간에서 주변 경관을 바라볼 수 있는 외향적인 한옥이 됐다. 지하1층은 현관과 거실, 방, 주차장까지 갖춰진 현대식 구조다. 지상1층과 다르게 담장으로 가려져 있지만 거실과 비슷한 면적의 선큰마당이 거실 앞에 마련돼 있고 마당 반대편에는 별도의 채광창이 설치돼 내부에 빛과 바람이 통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와 함께 한옥에 부족한 다양한 수납공간도 마련돼 한옥의 단점을 보완하는 쾌적하고 아늑한 주거공간의 역할을 한다. 전통과 현대의 융합은 이렇듯 삶을 보다 더 풍요롭게 한다.
주간동아. 프랑스 절대왕정의 미학을 ‘비움’과 ‘늘임’을 통해 한국화하다.
한국일보. [집 공간 사람]제주 속 다른 작은 제주… 혼자임을 느끼다.
신문읽고 떠나보는 건축답사
1960년대 한국 모더니즘 성당건축의 사례, 대전 대흥동 성당, 현존 유일 백제 사찰 수덕사, 한국전쟁 당시 정부기능 지속했던 상징적 공간 임시수도 대통령관저(현 임시수도기념관), 상징과 은유의 공간 안중근의사 기념관, 강경의 근대건축물이 소개되었다.
등록문화재 제43호이기도 한 대흥동성당은 1960년대 한국 모더니즘 성당건축의 사례로, 고딕 양식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종탑, 거대한 성당 내부를 기둥 없이 구성한 철근 콘크리트구조, 절판구조의 캔틸레버 캐노피에 의한 정면 주 출입구 디자인 등 1960년대 초기 성당건축으로서 기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기사에 따르면 성당설계는 이창근(돈보스코)이 했고, 당시 설계도는 로마 교황청에 보내졌다고도 한다. 본 성당의 위상을 보여주는 듯 하다. 특히 정면 주출입구의 절판구조 캔틸레버 캐노피의 건축적 표현은 과연 그렇게 붙어있을 수 있는 것이 가능한지의 구조적 특징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할 것이다. 성당의 형태에 대한 사족을 붙여보자면 어릴적 가지고 놀던 블럭 비행기같기도 하다. 보통의 종교시설들이 방주를 연상시키는 반면, 이 곳은 비행기가 연상된다.
덕숭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수덕사. 이 절의 창건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백제 위덕왕(554~597년)의 재위 기간에 지어졌다는 것이 학계들의 정설이다. 총 12개의 백제 사찰 가운데 오늘날까지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절은 수덕사가 유일하다. 1308년 고려 충렬왕때 세원진 국보 제 49호 수덕사 대웅전은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함께 우리나라 대표적인 목조건축물로 고려 시대 건축이지만 백제의 미감도 잘 녹아든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기사는 또한 본 당에 이르기전 이응노 화백의 작품과 달마도를 비롯한 원담스님의 작품을 살펴 볼 수 있는 선 미술관, 한국근대사의 대표적인 신여성이었던 일엽스님과 최초의 서양화가 나혜석의 이야기들을 엿들을 수 있는 수덕여관, 인근의 덕산온천도 소개하고 있다.
임시수도 대통령관저(경무대)는 한국전쟁기(1950~1953) 부산 임시수도 시절 국가 지속 기능을 수행한 대표적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 존망의 긴박함 속에서 정치와 행정, 경제의 교두보로서 국가 시스템의 기본적인 기능이 작동했던 증거물인 것이다. 정부 지속성 유지의 상징적 공간으로서 특성을 간직한 임시수도 대통령관저는 일제강점기인 1926년 8월 준공돼 경남도지사 관사로 사용되다가 한국전쟁기 임시수도 시절에는 대통령관저로 사용됐다. 이후 다시 경남도지사 관사로 사용되다가 1984년 부산시가 건물을 매입해 임시수도기념관으로 개관했으며, 2002년 부산시 기념물 제53호로 지정돼 지금에 이른다. 이 건물은 피란수도기에 발생한 국가적 사건들을 증명하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유산이다. 그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에 건립됐던 관사 건축으로서 갖는 건축적 특성도 중요하다. 건축적인 측면에서는 이 유산은 일제강점기 남한지역에 건립됐던 최대 규모의 도지사 관사 건축으로, 근대기 조선총독부 관사의 건축적 특징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대표적 건축물이다. 1920년대 건립된 도지사 관사로는 유일하게 현존하는 건축물로 희소성을 갖고 있다. 건축 기법상으로는 근대기 서양식 기술이 유입되어 전통 일본식 목구조 양식과 절충되어 가는 과도기적 목구조의 기술발전 과정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남산 도서관 앞 언덕을 천천히 오르면, 우윳빛 상자 모양의 건축물이 나온다. 단정하면서도 꼿꼿하다. 안중근의사 기념관이다. 건축물도 안중근 의사같다. 건축물은 12개의 기둥아닌 기둥으로 되어 있다. 안중근 의사와 뜻을 같이 했던 12의사를 상징한다.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선 다시 땅으로 들어가야 한다. 높이제한이라는 현실적 이유도 있지만, 영역과 영역을 분리하여 마음을 가다듬고자 하는 우리네 사찰건축같은 은유를 담은 것이라 생각된다. 내부의 전시를 다 둘러보고 나올때 쯤에는 밖에서 보았던 우윳빛 기둥이 아닌 투명한 기둥을 만난다. 주변의 풍광과 빛이 이 빛우물을 통해 사방으로 퍼져 나가게끔 되어 있다. 나름데로 생각해보자면 희망을 전하는 곳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남산 자락에 오르면 꼭 한번 둘러보기를 권하는 곳이다. 이 곳은 건축가 임영환, 김선현이 설계하였으며, 2011년 한국건축가협회상(올해의 건축 베스트7)을 수상한 곳이기도 하다.
충남 강경에는 등록문화재로 등록된 근대 건축물만 11곳에 달한다. 그중에서도 빨간 벽돌로 만들어진 고풍스러운 건물이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다고 기사는 전한다. 첫번째는 강경역사관이다.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등록문화재 제324호)이다. 1905년 한호농공은행 강경지점으로 설립되었으며 강경을 대표하는 금융 시설로 줄곧 사용되어져 왔다. 아직도 내부엔 금고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강경의 역사와 옛 물건들도 살펴볼 수 있다고 한다. 현재 강경역사문화안내소로 사용되고 있는 '구 강경노동조합'(등록문화재 제323호)도 당시 번성했던 강경의 상권을 보여준다. 근대 한옥의 건축 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 '구 연수당 건재 약방'(등록문화재 제10호)도 있다. 전통적인 한옥 구조에 상가 기능을 더한 건물에선 일본 건축물의 분위기도 느껴진다. 1920년대 촬영된 강경 사진 속에 현존하는 유일한 건물로 역사적 가치가 높다. 더불어 기사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갑문인 강경갑문(등록문화재 제601호)과 강경읍에 세워진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 강경중앙초등학교 강당(등록문화재 제60호), 아치 형식의 건축 양식이 독특한 강경성당(등록문화재 제650호) 등도 같이 소개하고 있다.
서울경제. [休]속세서 번뇌한 예술혼, 천년고찰서 해탈하다.
부산일보. [피란수도에서 평화수도로] 1. 임시수도 대통령 관저
건축도시정책
서울시는 한양도성 옛 길 620개 발굴했으며, 이를 골목길 재생사업과 연계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골목길 재생 활성화를 위한 제언이 이어졌다.
시는 도성대지도와 1912년 최초로 축척을 사용한 경성부 지적원도를 함께 활용해 일제강점기 때 도시계획으로 만들어진 길을 제외한 한양도성 내 고유의 길을 발굴했다. 향후 시는 이번에 발굴한 옛길을 골목길 재생사업과 연계해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탐방 프로그램도 만들 예정이라고 전한다. 골목길 재생사업은 구역을 정해서 재생하는 ‘면’ 단위 기존 사업과 달리 골목길을 따라 1㎞ 이내의 소규모 방식으로 관리하는 ‘선’ 단위 재생사업이다. 이러한 곳에서 다양한 프로그램과 관련 활성화 사업들이 진행되어 서울의 구석구석을 보다 즐겁게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아낄까 싶다.
지난 3월 14일, 서울시청 대회의실에서는 골목길 재생 활성화를 위한 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이 자리에서 서울시는 모든 도로를 너비 4미터 이상으로 규정한 건축한 건축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골목길이 있는 동네에서의 소규모 건축이 위축되었으며, 이로 인해 결국 동네는 낙후되고 대규모 재개발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대지경계선에서 1미터 내외로 들여지어야만 하는 조항도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충호 서울시립대교수는 일정 기준 이상의 주거 환경이 보장되어야 한다고도 하였고, 건축가 신승수는 화재 및 안전에 대응하여 소방차로를 대신할 수 있는 효율적인 옥외 소화전의 개발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고도 하였다.
아주경제. 서울시 한양도성 옛 길 620개 찾았다...골목길 재생사업과 연계
* 2018 weekly 11(2018.3.11~3.17)
* 표지 이미지_서울 남산 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