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많이 들어간 도면
디자인하고 있네
학부 건축수업 중의 일이다.
학생이 예쁘게 꾸며온 어떤 모형을 보고, 설계 선생님이 삐뚤어진 미소를 지으며, '이런 걸 보면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디자인하고 있네' 라고 한댔다. 뭔가 충격적인 이야기였으므로 아직도 기억을 하고있다.
디자인을 하는 게 뭐가 문제라고?
설계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면, 실현시켜 줄 시공사를 찾는다. 뜻과 금액이 딱 맞는 시공사를 한 번에 찾을 수 없음으로 두세 군데 연락을 취해 설계 도면대로 짓는데 얼마나 드는지 문의한다. 같은 도면을 보고 시공사마다 의견이 상이하다.
"이것은 디자인 주택이라 돈이 많이 듭니다."
나는 이 집은 꾸미고 복잡한 디테일이 없으니 많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말은 하지만 시공사는 의견이 정반대이다. 웬 디자인? 디자인이라고 한 게 없는데?
새 프로젝트의 수납이 들어갈 벽을 정리하면서 생각을 한다.
'벽의 깊이가 900mm까지 가능하니 웬만하면 사람이 들어가고도 남는다. 양쪽 면에서 접근이 가능하니 양쪽 다 쓰게 하자. 한쪽만 쓰는 공간은 전화부스 두 개를 넣어서 사무실에서 멀리 안 나가고 전화를 받게 하면 유용하겠다. 나머지는 충분한 깊이를 반으로 나눠도 깊은 책꽂이 양쪽으로 쓴다. 한쪽에 350 다른 쪽은 벽 두께 빼도 450mm이니 웬만한 물건은 다 던져놔도 되겠다. 면을 나눠서 사람이 많이 지나가는 공간에는 보여주고 싶은 물건을 넣어 쇼케이스가 되면 좋겠고, 안쪽에는 탕비실과 복사기 물품들을 보관할 수 있게 선반을 만들어 보자. 높이는 350mm 면 괜찮으니 전체 모듈을 350mm으로 해서 반이 되는 곳과 반의 반이 되는 곳까지 나눠서 보기에는 가지런하되 단조롭지 않은 랜던한 패턴으로 보이면 좋겠구나. 너무 무거운 물건이 들어가면 안 되고, 전체 크기를 봐서 600 이하의 높이로 한정하자. 이 정도 사이즈면 기성제품을 사서 넣어서 금액을 다운시켜서 쓸모 있고 경제적인 면이 되게 해야지...'
계획하는 사람의 생각은 복잡하다. 하지만 정리된 도면은 아주 심플한 그리드 양쪽 면이 다른 수납벽이다. 이유 없는 크기와 색깔이 없다. 생각이 많이 들어갔지, 디자인이 많이 들어가있지 않다. 학부 때 선생님이 지적한 '디자인 하고 있네'는 의미 없는 불필요한 장식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생각이 없으니 꾸며넣었다는 의미였다.
시공사는 생각이 많이 들어간 도면을 보고 디자인이 많이 들어갔다고 한다.
생각이 많이 들어가 있지만, 디자인은 단순한 디자인이 분명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