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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 건축, 민주주의
현창용의 공간·공감
공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건축가 현창용
2021.02.10


※ 이 글은 이데일리에 기재된 글입니다.


서울 용산 인근 남영역 뒤켠, 한 뼘쯤 되는 좁은 창이 촘촘히 박힌 검은 건물이 있다. 검은 벽돌로 깔끔하게 마감된 근대건축물, 가까이 다가가면 ‘경찰청 인권센터’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주 출입구 옆엔 벽돌을 곡선으로 쌓아 멋을 낸 부출입구가 별도로 나 있고 올려다보면 창문들은 조금씩 툭툭 튀어나와 있다. 외관만 보면 정제되고 차분한 디자인의 이 건물은 최근 한 영화로 대중의 주목을 받은 ‘남영동 대공분실’이다. 


건축 공간을 만들어 내는 벽과 바닥은 각각 고유의 열림·닫힘·높이·폭을 가지고 있고, 이는 그 공간을 방문한 사람들의 행위의 배경이 된다. 미술관에 가면 미술품을 관람하기에 가장 좋은 폭의 벽이 설치돼 있고, 유치원에 가면 단차 없는 바닥과 낮은 계단실이 구성돼 있다. 결국 건축가가 도면 위에 그어 놓은 선 하나가 그 공간에 속한 사람의 행위를 예고하는 셈이다. 외관과 형태, 재료, 디자인보다 평면도, 단면도가 제안하는 공간감이 중요한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남영동 대공분실의 평면도를 읽다 보면 마음 한 켠 고통이 밀려온다. 건축가이기에 도면에 담긴 행위의 패턴을 조금 더 정확하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어 더욱 그러하다. 취조를 위한 철저한 구성·동선·시선·개구부·조명·설비 등 건축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너무나 치밀하게 설계돼 있다. 이곳을 사용할, 혹은 이곳에 오게 될 누군가의 행위를 철저히 교차 분석한 섬세하고 성실한 설계의 결과물인 것이다. 


외관에서도 드러나는 좁고 긴 창의 도열. 취조실이 있는 5층의 창은 다른 부분의 창 폭의 8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창들은 외벽보다 돌출되도록 설치돼 있어 내부에서 손이 최대한 닿지 않게 설계돼 있다. 튀어나온 만큼 확보한 내부 공간에는 덧창을 달아 빛을 차단할 수 있다. 수직의 창은 대부분 종교건축 등 성스러운 공간에 사용된다. 하늘에 닿고자 하는 소망의 건축적 현현인 것이다. 이곳의 수직성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탈주도, 투신도 불가능한 좁고 높은 창, 고문의 틈에 마주한 수직의 빛줄기는 이곳에 끌려온 이들에게 어떤 도구로 작용했을까. 감히 그 감정을 상상해도 될는지 망설여진다. 


△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시선을 돌리면 주출입구 옆엔 작은 철문이 하나 설치돼 있다. 주 계단 좌측 별실의 나선형 계단으로 연결되는 부출입구인데 지상에서 5층 취조실까지 다른 층은 거치지 않고 직통되는 철제 계단이다. 5층이니 대략 15m 내외의 높이, 눈이 가려진 채 한발 한발 디딜 때마다 큰 소리로 울리는 철계단의 소음은 공포를 극대화한다. 게다가 계단참(계단이 각 층에 안착되는 평지) 없이 15m를 뱅뱅 맴돌아 오르는 구조의 계단은 공간감마저 상실케 하는데, 이 모든 것이 정신적 타격을 입히기 위한 건축적 장치다. 


그렇게 끌려 온 5층 취조실, 평면도는 건축가가 이 곳을 설계할 때 얼마나 신중하고 성실히 임했는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중복도(복도 양 측에 방이 붙어 있는 구조의 복도) 양 편에 설치된 문들은 모두 어긋나 있다. 피 조사자 간 짧은 찰나라도 시선을 마주치거나 의사소통할 수 없게 하는 공간구조다. 게다가 설치된 문과 벽의 간격이 모두 동일하고 심지어 모든 문의 색을 녹색으로 통일했는데, 이는 피조사자가 혹여 탈출하더라도 바로 계단실 문을 찾을 수 있는 확률을 최소화한다. 


끌려온 이들에겐 혼란의 도구가 된 복도의 ‘균질성’, 그 끝에 마지막으로 접하게 되는 취조실 내부 공간에서는 더욱 세밀한 설계의 성과를 발견할 수 있다. 1980년 당시 우리나라에는 ‘욕실’ 혹은 ‘욕조’ 문화가 보편화되어 있지 않았다. 게다가 이 건물은 허가 당시 ‘남영동 업무시설’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됐는데 각 ‘업무실’마다 욕조가 설치된 기이한 건축물이다. 기이한 점은 또 있다. 각 ‘업무실’의 조명은 복도에서 켜고 끌 수 있게 돼 있다. 그리고 내부에는 형광등 1개와 백열등 1개가 별도로 설치돼 있는데 욕조 앞 의자 위에 백열등 빛이 정확히 내려 꽂히는 구성이다. 건축주·건축가·허가권자 모두 하나의 목적을 공유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이런 건물이 지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계획안은 매우 치밀해, 건축가로서 경외감이 들 정도다. 건축주의 의도를 충실하게 반영했든 건축가 본인의 철저한 계획이었든, 이 건축은 건축주의 목적 실현이라는 가치에 있어서는 매우 완벽한 건축물인 것이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역설적이게도 공간의 힘을 가장 극명히 보여주는 건축적 사례다. 건축주가 원하는 공간 구현이라는 측면에서 최적의 건축이고 아마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팀이 투입됐을 것이다. 당시 정권의 강압이었든 건축가 스스로가 그 주문에 복무했든, 그 목적이 비 민주적이라는 점과 건축가는 이에 너무나도 성실히 응답했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 건축가는 한국 근현대 건축의 거장으로 불리는 무수한 명작을 남긴 건축가라는 점은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나아가 건축과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해 우리 모두가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길 바란다. 지어질 당시의 ‘부국해양연구소’, 30여 년 전의 ‘남영동 대공분실’, 현재의 ‘경찰청 인권센터’는 한국의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했다.

공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건축가 현창용

공주대학교(조교수), 서울특별시(공공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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