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르셀로나의 신호등은
내 첫 유럽여행 계획을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렸다.
기억도 거의 없는 어릴 때를 제외하면, 제게 바르셀로나는 첫 해외여행지입니다.
대학생의 혼자 떠나는 첫 유럽여행, 가득 부풀어오른 설렘을 안고 유럽여행지 곳곳을 조사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바르셀로나에 4일 정도 있다가 스페인 남부의 그라나다를 들를 예정을 짜고 그 다음 말라가나 코르도바, 세비야 등 어떤 도시로 가면 좋을지 고민했던 기억, 빠에야가 맛있다던데 어느 맛집이 있는지 추천해달라는 스페인어를 외우려고 했던 기억 등이 생생히 떠오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글의 제목처럼 되었습니다. 바르셀로나 공항에 도착해 시내에 첫 발을 내딛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순간 그 모든 계획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4일간 머무르려고 생각했던 바르셀로나 일정은, 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9일로 늘어났습니다. 원래 계획의 두배 길이에 하루를 더 더한 날짜입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간단합니다.
신호등이 노란색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얘기하면, 제 친구들은 황당한 표정으로 절 보고는 합니다만, 전 진심입니다.
도시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의 시스템은 사람들을 위해 작동해야하고, 그 기준은 사회적약자, 교통약자가 되어야합니다.
사회적약자가 배려받는 도시는 모든 시민이 배려받는 도시이고, 교통약자에게 편한 도시는 모두에게 편한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노란색은 도시계획에서 경고를 나타내는 색입니다.
밝고 눈에 띄는 색이기 때문에, 가독성이 높아 누구의 눈에나 쉽게 띄는 색입니다.
시력이 약한 사람에게도 노란색은 다른 색과 확연히 구분되어 보일 것입니다.
바르셀로나의 노란색 신호등은 이 도시가 얼마나 시민들을 배려하는지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신호등이 노란색인 것을 보자마자, 이 도시를 보기에 처음 계획한 4일은 너무 짧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도시의 품격은 랜드마크 따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느끼는 도시의 품격은 보도의 포장재질은 무엇인지, 간판의 크기나 위치는 어떤지, 횡단보도나 육교는 어떻게 생겼는지, 가로수는 어떻게 심어졌는지, 골목에 주차된 자동차는 있는지 등 일상적으로 지나치는 소소한 것들에서 옵니다.
실제로 신호등이 아니더라도, 바르셀로나 곳곳의 모습은 시민들에 대한 배려로 가득했습니다.
쓰레기통이 1분마다 하나씩은 나올 정도로 많아 쓰레기를 버리기 쉬웠고, 넓은 보도는 걷기에 좋았습니다. 전신주는 발에 걸리지 않도록 뿌리가 땅 속에 제대로 박혀있었고, 하늘을 가리곤하던 전깃줄도 찾기 어려웠습니다. 간판은 충분히 작아서 건축물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곳곳에 공공자전거가 있었습니다. 곳곳에 공원과 벤치가 많았습니다.
신호등이 노란색이었던 바르셀로나는, 정말 아름답고 편안한 도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