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이데일리에 기재된 글입니다.
도심 주택가에 위치한 수많은 3~5층 규모의 작은 다세대·다가구주택. 소위 ‘빌라’라 불리는 이들 건물들 가운데 상부가 한쪽을 향해 깎여나간 형태로 지어진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일부 건물들은 계단식으로 깎여나간 부분에 불법 증축을 해 실내로 사용하고 있는 것 역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 급히 덧댄 듯 건물 하부의 주 재료와 다른 재료로 대강 마무리해 건물 전체의 인상을 망가뜨려 놓곤 한다.
필자는 지난해 한 주택 프로젝트를 의뢰받았다. 강북 노후 도심에 다세대주택을 신축하고자 했던 건축주와 설계 초기 작업을 진행했다. 설계 진행하던 중 건축주가 계단식으로 형성되는 북측 외부 베란다 바닥에 생활하수 배관을 계획해 달라는 연락을 해 왔다. 준공 후 불법 증축을 하고자 나름 치밀하게 준비하려 했던 것이다. 설계 과정에서부터 불법 행위를 관망하고 있을 수는 없는 데다, 이는 우리 도시 풍경을 망치는 주범임을 알고 있는 입장에서 더 이상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없었다. 결국 “그런 생각을 갖고 계시다면 설계를 진행할 수 없다”라고 고사했다.
불법 증축의 유혹은 우리 건축법의 부실함에 기인한다. 불법 증축은 ‘일조 등의 확보를 위한 건축물의 높이제한’에 의해 건축에 제한을 받는 북측 면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건축물을 신축할 때 프로젝트 대상지 북측 대지의 햇빛을 가리지 않게 하기 위한 법률이다. 현행 건축법 시행령은 건축물을 지을 때 북쪽 대지경계선에서 기울기 2분의 1의 가상 사선을 그려, 신축 건축물이 그 사선을 넘지 못하게 규제하고 있다. 도시 과밀화에 대응해 최소의 생활환경을 설정하기 위해 1971년에 도입됐다. ‘일조권 사선’이라 불린다. 제한 내 짓기 위해 건물의 북쪽 면은 계단 형태로 깎여 나가게 되는데, 앞서 짚은 바와 같이 이 부분은 준공 후 불법 증축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어 도시미관 훼손, 일조권 분쟁 등 많은 사회적 문제의 온상이 되곤 한다.
해당 법규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주택의 양적 공급이 엄청난 기세로 확장되던 1970~80년대 ‘햇빛’을 ‘환경’의 요소로 다루기 보다 최대한의 도시개발을 위한 민원 최소화 기준으로 해석해 만들어진 법임을 알 수 있다. 빛이라는 환경을 누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장치가 아닌 건축물의 최대 개발을 위한 물리적 기준으로서 마련된 법규다. 태양의 빛이 계절에 따라, 낮과 밤에 따라 내리쬐는 방향과 양이 천차만별이라는 건 당연하다. 그럼에도 단순히 ‘북쪽 땅과 가까운 부분을 2분의 1 기울기로 깎으라’는 단편적인 법규가 생산한 건물들이 주변 대지의 채광을 효과적으로 보장할 리 만무하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 수많은 분쟁들이 있어 왔고 실제 법원 판례 중 이 법에 의해 적법하게 지었더라도 실질적으로 빛이 가려지게 되는 부분에 대한 피해 보상 판결이 난 사례도 있을 정도다. ‘일조권 사선’의 현행법이 시대착오적임은 쉽게 눈치챌 수 있다.
해외의 경우는 어떨까. 가까운 일본의 경우 비슷한 법규가 존재하는데, 1970년대부터 도입된 ‘일영 규제’를 통해 조정하고 있다. 우리 법과의 차이점은 북쪽만이 아닌 태양의 이동 경로에 따른 동·남·서향의 건축 가능 범위를 세부적으로 규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법을 근거로 해 각 지자체의 건축 허가 담당자가 설계에 세부적으로 관여해 주변 이웃들의 ‘빛’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게끔 하는 제도가 마련돼 있다. 흐린 날이 많기로 유명한 영국의 경우 접근 방향 자체가 다른데, 건물의 제한을 통해 적정 채광을 도입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우리의 ‘일조 등의 확보를 위한 높이제한’과는 결이 다른 ‘채광권법’이 1959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채광권 보호를 위해 건축물에 대한 디자인 방향 설정은 물론, 일조량의 계산 방법까지 세부적인 지침을 부여하고 있다. 법규를 통해 채광이 생활의 최우선 가치임이 공유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과 영국의 경우 이러한 탄탄한 법 제도 하에 일조권이 분쟁으로 이어지거나 소송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삶의 질에 대한 시민들의 기준은 높아가지만 삶의 가장 중요한 바탕인 건축 환경을 다루는 법규의 수준이 기대에 못 미치는 현실이다. 우리의 정북방향 높이제한 법에 대한 건축계의 우려는 이미 해묵은 문제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한국, 생의 환경에 대한 요구 수준은 끊임없이 상향될 것이다. 그러나 변화하는 시대상을 구체적으로 그려내지 못하는 법규는 오히려 건물들의 불법행위를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불법건축행위의 결과물이 이웃의 빛에 대한 권리 침해를 가속화하는 결과를 낳고 있음이 안타깝다. 건물을 최소비용, 최대 면적을 위한 ‘건설’의 결과물로 바라보는 시대는 지났다. 건물은 최적의 삶을 위한 최선의 공간, 즉 ‘건축(建築)’의 산물로 이해되는 시대. 그리고 이에 걸맞은 선진화된 법규의 탄생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