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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위에 필 꽃, 돈의문 박물관마을
현창용의 공간·공감
공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건축가 현창용
2019.11.14

※ 이 글은 이데일리에 기재된 글입니다.


출처. 돈의문 박물관마을

출처. 돈의문 박물관마을'돈의문 박물관마을’이란 단어를 놓고 뉴스를 검색해 보면 ‘유령마을’ 혹은 ‘유령도시’, ‘졸속행정’, ‘예산낭비’ 등의 키워드로 작성된 비판이 주를 이룬다. 도시공간을 조성해 내는 국책사업들은 엄청난 규모의 혈세가 들어가기에 기획부터 설계, 시공, 운영까지 국민과 여론의 감시를 받아야 함은 당연하다. 돈의문 박물관마을 역시 이러한 공적 영향력 하에 있어야 함도 마땅하다. 그럼에도 지난 2018년 4월 10일 개관 이후 방문자 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다는 이유로 마을 조성의 취지마저 왜곡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돈의문 박물관마을은 서울 종로구 교남동 일대 ‘돈의문 도시환경정비사업’이 시작되면서, 경희궁 자이 아파트 단지를 짓는 사업조합이 종로구에 기부채납한 부지에 위치한 마을이다. 현행법상 기부채납하는 ‘공원’의 경우 자치구에 귀속된다. 그러나 ‘문화시설’을 기부채납하는 경우 소유권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법적 근거는 아직 마련돼 있지 않으며 전례조차 없다.


돈의문 박물관마을의 경우 마을의 조성과 운영은 서울시가, 토지는 종로구에 위치하는 상황에서 두 자치단체의 이해관계가 모호한 법적 근거 위에 놓이게 됐다. 소유권이 법적으로 불명확하니 임대인 설정이 불가능하고 기존에 계획했던 공방, 한옥 게스트하우스, 갤러리 등의 문화시설로서의 임차계약이 불가능한 상태다. 이에 지난해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성공적으로 종료된 후 대부분의 마을 내 건축물이 사용자를 찾지 못해 비어있다.


법제적 미숙함 위에 놓여 ‘유령마을’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곳. 그렇다면 이 마을의 건축적 가치는 어떨까. 돈의문 박물관마을은 1800년대의 조선 지적체계가 그대로 남아 도시 맥락을 이루고 있는 마을이다. 쉽게 말하면 200년 전 도로였던 곳이 아직 도로로 남아 있고, 건물과 필지 단위 역시 그대로 유지돼 온 희소성 높은 마을이란 뜻이다.


출처. 돈의문 박물관마을



서울과 같이 전쟁을 겪어 초토화된 역사를 가진 도시에서 ‘도시조직(urban tissue)’이 보존된 곳이 남아 있다는 점은 건축적으로 또 도시적으로 매우 귀중한 자원이라 할 만하다. 게다가 이러한 유구한 도시 맥락 위에 비교적 잘 보존된 한옥과 근대 건축물들이 군집해 있기에 돈의문 박물관마을은 다른 도시재생 대상지에 비해 그 가치가 높다. 이런 가치를 이해하고 재개발조합으로부터 기부채납 형식으로 이곳을 보존해 낸 것은 문화적으로 완숙한 도시행정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서울시와 종로구의 다툼 역시 서울시와 종로구의 불찰은 아니다. 모법(母法) 자체가 모호하기 때문에 각 구민 혹은 시민의 이익을 쟁취하기 위해 존재하는 자치구의 입장에서 굳이 물러설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간 수많은 재개발과 아파트 단지 신축이 반복되어 왔지만 보통 최소 비용으로 조성한 공개공지나 공원 정도를 형식적으로 사회에 환원해 왔을 뿐 ‘문화시설’을 기부채납한 전례도 없었기에 이번 기회에 면밀히 검토하고 법규를 개정해 합리적인 전례를 만들어 놓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


역사적인 장소에 문화를 담아 키워나가는 일엔 인내의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돈의문 박물관마을은 ‘시간’이 필요하다. 합리적 비판의 범주를 넘어서는 압박이 반복된다면 여론에 못 이겨 졸속히 해결하려다가 귀중한 건축, 도시자원을 잃을 수 있다. 전통을 기반으로 한 공간에 ‘방문자 수’라는 일차원적이고 정량적인 조건을 만족시키려 멀티플렉스 극장, 스타벅스, 맥도날드, 주점을 입점시킨 공간이 결국 어떻게 변질되었는지 우리는 그동안 수없이 목격해 왔다. 몇 남지 않은 도시의 원형과 맥락을 지키기 위해 우리 모두가 조금 더 관대해질 수 있길 바란다. 돈의문 박물관마을은 아직 우리의 기다림이 필요하다. 

공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건축가 현창용

공주대학교(조교수), 서울특별시(공공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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