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이데일리에 기재된 글입니다.
“서울은 동서를 가로지르는 큰 강을 끼고 있어 남북이 단절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한강 가운데 인공섬을 만든다면 훨씬 인간미 넘치는 도시재생이 될 것이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건축가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의견이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유명 건축가 크리스티앙 포잠박(Christian de Portzamparc)의 부인이자 투 포잠박(Two Portzamparc) 건축도시연구소의 공동대표, 엘리자베스 포잠박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서울 잠실 5단지 재개발 국제설계공모에 참여 하기도 했다.
포잠박은 한강을 서울의 심각한 지역단절을 야기하는 한 축으로 평가했고, 서울을 더욱 멋진 도시로 만들기 위해 한강에 인공섬을 놓을 것을 제안했다. 그는 덧붙여 넓은 폭의 한강 다리 중간지점에 인공섬이 있다면 강남과 강북을 걸어 다니는 사람이 중간에 쉬어갈 수 있고 훌륭한 주말 레저 공간이 될 것이기에 도시재생의 좋은 사례가 될 것으로 평가했다. 파리의 센 강이 적절한 강 폭으로 인해 파리 시민들의 산책로가 될 수 있었음을, 또한 뉴욕의 이스트강에 만들어진 인공섬 루스벨트섬이 하나의 작은 도시이자 관광지가 된 사례를 들었다.
하지만 포잠박의 이번 제안은 두 가지 측면에서 서울과 한강의 성격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을 통해 나왔다고 보기 어렵다. 첫째 한강이 도시의 관광자원이기 이전에 ‘자연’이라는 점, 둘째 한강을 둘러싼 서울이라는 도시의 역사적 ‘맥락’이 고려되지 않았다. 또 이러한 오류는 파리의 센 강, 뉴욕의 이스트 강 등 그의 사례를 도시적 차원에서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뚜렷하게 드러난다.
파리의 센 강은 가장 넓은 폭이 200m가 채 되지 않는 작은 강이다. 가장 좁은 곳의 폭은 100m 정도로 건너편 사람이 훤히 보일 거리다. 이에 비해 한강의 스케일은 압도적이다. 최소폭 620m, 최대폭은 1.2㎞인데 단일 시계(市界)에 끼고 있는 강으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강이다. 사실상 한강은 도시 사이를 흐르는 경관요소 정도로 해석할 수 없는 거대한 수공간이자 자연 그 자체이다.
다만 오히려 이런 거대한 자연이 서울이라는 대도시를 만나 도구화되기를 반복해 왔을 뿐이다. 자연 발생한 모래톱이 있을 정도로 대형 하천이었던 한강은 1960~1970년대 서울의 난개발 시대를 거치며 심각한 오염을 겪는다. 이때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권을 획득하면서 ‘한강 종합개발계획’이 실행된다. 유람선 통행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한 바닥 준설과 오염물을 없애기 위한 강변 정비 그리고 고속화도로 건설 등이 시행됐고 한강은 거대한 콘크리트 둑 사이를 흐르는 검푸른 물만이 남게 됐다. 엄청난 폭의 강변북로, 올림픽대로로 둘러싸인 한강은 종합개발계획 이후 걸어서 접근할 수 없는 ‘갇힌 강’이 되고 만 것이다. 거대한 자연을 인공의 도구로 만든 일, 인간의 끝 모를 힘과 위대한 능력의 증거로만 보아야 할까. 과거의 서울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면 현재의 서울은 달라야 함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뉴욕의 이스트 강과 루스벨트섬에 대한 그의 비유는 더욱 서울을 위한 조언이라 보기 힘들다. 뉴욕 맨해튼과 퀸즈를 가로지르는 이스트강에 건설된 인공섬 루스벨트섬은 우리의 남이섬 같은 관광 섬, 밤섬 같은 생태섬이 아닌 또 하나의 도심 공간이다. 맨해튼과 퀸즈의 도시적 풍경이 섬을 통해 매개되는 모양새를 하고 있는데, 이는 섬을 기준으로 한 좌·우의 도시적 맥락이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뉴욕의 대부분 공간은 계획도시로서 완벽한 격자형 도로체계를 가지고 있다. 두 격자 도시 대륙을 잇는 인공섬은 양쪽의 맥락을 계승해 자연스럽게 도로와 건물이 들어설 수 있었다.
한강은 다르다. 포잠박은 한강이 서울을 가로지르기에 단절의 원흉이라 평가했지만, 서울이 한강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나뉘어 있었던 것은 한강의 역사에서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한강이 서울을 가르는 것이 아닌 서울이 한강 이남으로 확장되었다고 표현하는 편이 적절하다.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와 한남대교가 건설되기 전까지 600년 이상의 시간 동안 서울은 한강의 북쪽이었다. 한국전쟁 후 경제개발과 함께 맞이한 서울 확장의 시대에 북한에 가까워지지 않으면서 인천항과는 가까운 남·서쪽 국토가 개발되며 비로소 한강은 위아래로 서울을 접하게 된다. 그가 인공섬을 통해 잇겠다고 하는 서울의 북쪽과 남쪽은 이처럼 너무나 다른 역사 속에서 완벽히 다른 형태를 갖고 있다. 고도(古都)의 자연발생적이며 자유분방한 도시 체계를 가진 강북, 합리성을 기반으로 계획된 격자 체계의 강남. 이를 인공섬으로 이어 붙여 만든 돌연변이 공간의 존재 이유가 고작 ‘주말 레저’라는 것은 세계적인 건축가의 사고에서 나온 것이라 믿기 어렵다.
한강과 함께 한 천년의 역사. 우리는 우리 나름의 한강에 대한 철학과 한강을 다루는 방법을 만들어 가야 한다. 서울 청담동 명품거리의 부티크 숍과 아파트 단지 재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얻은 얕은 경험에서 비롯된 외국 건축가의 안내를 받을 일이 아니다. 이미 콘크리트 운하가 돼버린 한강이 또다시 토건개발로 누군가의 돈벌이 수단이 돼선 안된다. 한강에 대한 우리의 숙제는 또 다른 인공물의 구축이 아닌 재자연화, 즉 한강의 본성이었던 자연을 회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