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이데일리에 기재된 글입니다.
△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의 혁신적인 디자인은 광산업의 쇠퇴와 함께 최악의 경제난을 겪은 낙후도시 빌바오를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변신시켰다. 오래된 궁전의 안뜰에 유리 피라미드를 앉혀 완벽한 현대미술관으로 재탄생한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은 연간 900만 명의 순 입장객으로 압도적인 방문객 1위 미술관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구겐하임과 루브르에 방문하는 이들은 과연 내부에 설치된 작품만을 보러 가는 것일까. 어쩌면 프랭크 게리와 이오밍 페이가 디자인한 미술관 건축 자체를 보러 가는 이들이 입장권을 구매한 이들보다 많을지도 모르겠다. 미술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자 지역, 도시, 나아가 국가의 문화적 수준을 보여주는 건축이기 때문이다.
미술관이 특별한 건축으로 통하는 데 그만한 이유가 있다. 예술작품은 작가 개인의 예술혼을 바탕으로 탄생한다. 이것이 대중에 전달돼 사회화되는 것은 ‘미술관 건축’ 없이는 불가능하다. 예술과 인간을 매개하는 공간, 그 자체로서 예술이 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미술관만의 이런 특성은 건축가들에게도 특별하게 다가온다. 어떤 건축보다도 금전적인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우며 건축가의 상상력과 디자인 감각이 발휘되기 쉽기에 그러하다.
△ 부산 현대미술관
이런 관점에서 우리나라에 지어진 한 시립미술관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총 430억 원을 들인 2013년에 기획해 2018년 6월 개관한 ‘부산 현대미술관’이다. 부산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한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제일의 항구도시다. 게다가 문화적으로는 부산 국제영화제, 부산 비엔날레를 개최하며 세계적 이목을 집중시키는 역량을 갖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시민들로부터 ‘공장’, ‘아울렛’, ‘창고’라 불리는 디자인을 보여준 부산 현대미술관에서는 이러한 부산의 문화적 역량을 찾아볼 수가 없다. 내부엔 미술관의 기본인 항온항습장치조차 없어 지난해 말 급히 보강공사를 했고 외관에 대한 각계 인사들의 질타가 있자 부랴부랴 외국의 벽면 녹화(외벽에 식물을 식재하는 건축기법) 전문가를 초빙해 눈 가리기를 시도했다.
해당 미술관 건립의 과정을 되짚어보면 지금의 모습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미술관처럼 지역, 국가의 문화 정체성을 상징하는 건축물은 보통 국내외 건축가들을 대상으로 설계공모를 시행한다. 공모 안들은 건축계,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엄정히 심사해 최고의 디자인을 선별하는데, 때에 따라 당선작으로서의 공감을 얻는 안이 없을 경우 재공모를 하기도 한다. 건축가들의 노력, 심사위원의 혜안, 발주기관의 신중함이 삼위일체가 돼 선정된 당선작은 3~5개월간의 설계 기간을 통해 공사에 들어갈 준비를 마친다. 이후 시공사들을 대상으로 입찰이 진행되고, 건축가는 시공자의 디자인 구현 과정을 감리함으로써 계획의 취지가 어긋나지 않게 한다. 중요한 건축물인 만큼 건축가와 시공자는 서로 견제, 보완하는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끌고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부산 현대미술관은 설계시공 일괄입찰(턴키) 방식으로 설계자와 시공자를 한 번에 묶어 선정했다. 보통 턴키방식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설계자와 시공자가 미리 하나의 집단으로 참여해 시공이 쉽고 시공비가 절약되는 계획안을 만들 수 있다. 게다가 설계공모 방식처럼 설계자와 시공자를 별도로 선정해야 하는 절차를 생략할 수 있기도 하다. 이런 특성상 보통 대규모 공장이나 아파트 등 효율성과 경제성이 우선되는 프로젝트, 혹은 일정과 예산의 여유가 매우 부족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한 방식으로 사용된다. 다만 턴키방식은 최근 들어 프로젝트의 결과물들이 미적, 공간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짐이 드러남으로써 점점 외면받고 있다. 애초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된 건축물이 예술 문화를 상징하는 건축 작품으로 탄생할 확률은 존재하지 않았던 셈이다.
부산 현대미술관은 지자체 최초로 2번째 공립미술관을 짓는 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의 발족 자체는 부산이 우리나라에서 문화적 기반이 가장 탄탄한 도시임을 공표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그 건축적 결과물은 미술관, 나아가 공공건축물을 대하는 관의 입장과 수준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전시공간은 마련됐으니 목적은 달성한 것인가. ‘공장’ 같은 미술관이지만 ‘본전’은 보았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시(市)의 문화적 수준을 끌어내리는 미술관이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나을지 모른다.
서상우 홍익대 건축학과 명예교수는 미술관을 일컬어 “예술가와 사회의 상호 관계 위에 구축된 건축으로, 시대의 거울이라 불릴만하다”라고 말했다. 미술관이란 거울을 통해 우리가 들여다볼 수 있는 시대는 어떤 모습인가. 부산 현대미술관의 사례에서 우리는 예술의 시대성에 한참 뒤처져 있는 공공건축의 현재를 본다. 정부가 건립하고 공무원이 실무를 이끌어가는 공공건축. ‘내 건물을 짓는다’는 사명감까진 바라지 않더라도 적어도 미술관과 같은 상징적 공공건축의 건립을 기획하거나 혹은 담당하게 된다면 조금 더 성의 있는 행정, 숙고하는 과정을 보여주었어야 한다. 이 건축은 누구를 위한 것이며, 사회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