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이데일리에 기재된 글입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고 또 잠자리에 드는 곳, 바로 집이다. 우리의 ‘집’, 즉 주거용 건축물은 보통 크게 두 가지로 양분되곤 한다. 쉽게 입에 오르는 부동산 용어로는 ‘아파트 vs 빌라’, 건축법에서 사용되는 용어로는 ‘아파트 vs 다세대·다가구주택’ 정도가 되겠다. 1990년대 이후 아파트가 지배했다면 그 이전은 3~4층 규모의 소규모 집단주거 건축의 시대였다. 아직도 대부분 구도심 공간을 채우고 있는 적벽돌 건물들은 한국 도시의 하나의 유형(typology)을 이루고 있다.
최근 이러한 적벽돌 건물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서울시와 성동구가 성수동의 붉은벽돌 건물이 밀집해 있는 지역인 서울숲길 인근을 ‘붉은벽돌 마을’ 시범사업 대상지로 정해 지역 건축자산으로 보전하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성수동은 주택들뿐 아니라 적벽돌로 지어진 공장, 창고 등의 산업시설도 많이 분포해 있는데 사용 연령이 50년 이상인 적벽돌 건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적벽돌 건축 사례를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도 75% 이상이 찬성, 참여의 의사를 밝혔고 사업설명회까지 개최하는 등 도시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구체적인 노력이 민·관을 아울러 싹트는 분위기다.
△ ‘붉은벽돌 마을’ 사업 첫 지원대상으로 선정된 건물 / ⓒ 성동구청
△ ‘붉은벽돌 마을’ 사업 첫 지원대상으로 선정된 건물 / ⓒ 성동구청
적벽돌의 역사는 우리의 근대화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적벽돌은 건축재료로서는 ‘점토벽돌’이라 불리는데 말 그대로 흙을 구워낸 벽돌인 셈이다. 일제 강점기 이전 점토벽돌은 건축재료 중 가장 고급이었다. 현대인들이 ‘전벽돌’이라 부르는 짙은 회색의 벽돌이 주를 이뤘는데, 백토 반죽에 탄가루를 섞어 색을 내고 이를 한 장 한 장 가마에 구워 낸 재료이다 보니 주로 궁궐이나 사대부의 집에 담장과 기둥사이 벽체를 구성하는 데 한정하여 사용되었다. 고급 재료였던 전벽돌이 지금의 적벽돌로 보편화되는 데는 ‘가마’의 기술 보급이 결정적이었는데, 일제 강점기를 전후해 약현성당, 명동성당 등의 종교 건축이 선교사들에 의해 지어지게 되면서 대규모로 벽돌을 구워내는 가마 기술까지 같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 1892년 명동성당 착공을 시작으로 적벽돌은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건축재료 중 하나가 되었다.
적벽돌의 대량생산을 기준으로, 이전 시대는 한옥의 시대였다. 한옥은 현대에 이르기까지도 우리 건축의 ‘전통적’ 혹은 ‘한국적’이라는 타이틀을 놓친 적 없다. 이는 한옥의 건축적, 문화적 가치가 압도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이후 한국 건축의 정체성을 규정할 만한 유형적 특성이 생산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건축이 구성하는 도시 경관의 정체성은 국가별 ‘관광공사’ 따위의 기관에서 억지로 만들어 내는 슬로건이 아니다. 그리스 산토리니의 백색 회벽, 런던의 화강석 건물들, 스페인의 붉은기와는 ‘계획된’ 것이 아닌 ‘자연발생적’인 도시의 색이다. 다시 말하면, 도시의 색을 규정할 때 우리는 애써 ‘멋진 것’을 골라낼 필요가 없음을 뜻한다. 도시의 과거와 역사를 대변하는 ‘존재’의 자연스러움은 도시 경관의 정체성이 지녀야 할 최고의 덕목인 것이다.
이쯤에서 허심탄회하게 우리의 근현대 건축을 돌아보자. 유례없는 개발의 시대를 통과하며 우리에겐 ‘적벽돌 건물’과 ‘아파트’가 남았다. 두 건축은 우리 건축사의 산증인이나 마찬가지다. 아파트는 그 존재의 이유가 집을 적층해 지상부를 비워냄에 있기에 오목조목한 골목길과 도시를 탐험하는 재미를 선사하긴 어려운 유형이다. 결국 우리의 구 도심에 고루 분포해 하나의 ‘면’을 이루는 적벽돌 건축 군락은 우리의 근현대 건축이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경관적 자산인 것이다.
일부 선진국들은 주요 도심의 건축물들을 정부에서 개별적으로 관리하기도 한다. 특히 영국이 가장 강력한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데, 30년 이상 된 건축물들에 대해서 그레이드(Grade) 1~3으로 분류, 보존할 가치가 있는 건축물로 분류해 관리하고 있다. 이렇게 분류된 건축물 혹은 지역은 각각 역사적 가치기준이 부여돼 이를 엄격히 심의하는 관계 기관의 승인을 얻기 전까진 함부로 재료와 구조를 바꿀 수 없게 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프로그램에 동참하는 소유자에게는 큰 혜택으로 보답한다.
이런 차원에서 성수동을 바라보는 서울시와 성동구의 시선은 우리의 건축자산 관리가 선진화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개발’의 전제로 ‘보존’을 두는 태도의 변화가 시작됐다는 점, 건축물의 특정 요소 즉 ‘재료’라는 구체적인 주제를 통해 도시 경관의 성격을 규정하고자 했다는 점은 정부의 관점이 문화적이고 실증적인 방향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제 적벽돌 건물이 ‘흔해빠진’ 혹은 ‘노후한’ 철거의 대상으로 남을지, 우리 도시만의 ‘언어’이자 ‘개성’이 될지는 정부의 세심한 행정을 통한 가치 부여에 달렸다. 성수동에서 시작된 ‘도시의 색’ 찾기가 사람들의 발길을 불러 모을 수 있을지 기대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