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월간 전원생활에 연재하는 글입니다.
창문을 열어 바람을 들였던 여름과 가을을 지나, 겨울이 왔다. 창을 닫고, 유리를 통해 집으로 볕을 들인다. 유리창 가득 들어오는 볕은 겨울 낮 더욱 깊숙한 곳까지 공간을 밝히고 데워 집다운 따스함을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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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와 함께하는 생활
아침에 유리창으로 들어온 빛이 방을 밝히고 눈을 뜬다. 창을 열어 환기를 하고 집 안의 식물들을 살핀다. 집 안에서 키우는 식물들이 많아지면서, 환기뿐 아니라 빛 때문에도 창을 연다. 식물을 키우기 전에는 유리창 한 겹이 실은 얼마나 많은 빛을 차단하는지 알지 못했다. 유리를 통한 빛은 간접광이 필요한 식물들 몫이고, 직광을 좋아하는 식물들은 열린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받는다. 식물들이 적절하게 빛과 바람을 쐬고 있는지 확인하고 나면,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선다. 유리를 통해 사방의 시야를 확인하며 운전을 하고 사무실의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 앉는다. 손님이 오면 유리문을 통해 미리 눈인사를 하며 나가 맞는다.
일어나서 움직이고, 일을 하는 모든 공간에 유리가 있다. 도시에선 눈을 두는 곳마다 건물 전체가 유리로 된 빌딩들이 있다. 이렇게나 우리에게 익숙한 재료인 유리는 건축 역사에 있어서는 비교적 신소재에 속한다.
새로운 건축 재료, 유리
건축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했던 과제 중 하나는 건축물에 구멍을 내는 것이었다. 구멍은 빛과 바람을 불어넣어 공간을 살 만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구멍을 내는 것 자체, 그다음에는 최대한 큰 구멍을 내는 것이 큰 숙제였고, 곧 구멍을 여닫는 방법도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처음에는 나무로 구멍을 열고 닫았고, 이후 빛은 받아들이면서 비바람은 막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유리 자체는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까지 로마와 중국에서 발명되어 제조되었지만, 판유리를 만들어 창에 적용하는 방법을 찾아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중세 유럽에서 유행했던 스테인드글라스도 큰 판유리를 만들 수 없어 작은 유리조각을 이어 붙이다 보니 나온 결과물이었다. 초기에는 비교적 투명한 유리를 사용했지만, 사람들이 조각 유리를 이어붙이며 그림을 만들어내고 색을 넣게 된 건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중세까지 유리창은 가장 중요한 건물인 교회, 관공서, 귀족의 저택에서나 특별한 공간적 장치로 사용되었고, 대부분의 유리 제품은 사치스러운 장신구나 장식품이었다.
19세기 유리 생산이 대중화되면서 유리는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전까지 유리는 건축물에서 구멍을 막는 역할만 수행했고, 그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누구도 하지 않았다. 19세기 중반 런던 박람회에서 조셉 팩스턴(Joseph Paxton)이 선보인 수정궁(Crystal Palace)은 유리와 철로만 이루어진 거대한 유리온실이었다. 이는 유리에 대한 개념을 바꾸어, 유리는 더 이상 구멍을 막는 건축물의 부속 재료가 아니라, 건축물의 중요한 재료 중 하나가 되었다.
이후 많은 건축가들이 유리를 외피, 공간의 위계를 흐리는 경계, 모호한 공간을 구성하는 매개체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하면서 건축물의 재료로서 유리의 의미와 위상은 달라졌다. 이와 함께 다양한 색상, 강도의 유리가 개발되면서 지금 우리는 다양한 유리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공간에서 만나고 있다.
소통 가능한 경계
유리온실이나 아트리움에 들어서면 빛이 가득한 밝은 공간이라는 느낌에 압도되곤 한다. 유리 공간 안으로 들어오는 빛은 길가나 공원의 빛보다 부족하다. 그런데도 그런 느낌을 갖게 되는 건 이 공간이 투명하지만 분명히 경계 지어진, 실내임을 알기 때문이다. 빛으로 가득 찬 실내공간은 뭔가 다른 공간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렇듯 유리는 투명해 시각적으로 열려 있지만 이쪽과 저쪽을 확실히 구분한다.
또한 유리는 빛을 반사하는 특성이 있어 유리면의 양쪽 중 밝은 곳에서 바라보면 투명하면서도 유리 면 자체가 명확히 인식된다. 커튼월 공법으로 지어진 도시의 마천루들은 낮에는 반짝이는 큰 덩어리로 인식되고, 저녁에는 내부의 빛을 밖으로 뿜어내는 등대와 같은 이미지로 인식된다. 이런 특성을 가시적 투명성이라 한다. 일반적인 건축 재료들 – 콘크리트, 돌, 나무 등 – 과 물성이 확연히 다르므로 건축물의 디자인에 있어서도 유리 부분은 포인트가 된다. 유리창을 어떻게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건물의 인상은 달라진다.
유리는 시각적으로 소통이 가능하고 투명하면서도 그 존재가 인식되고 이곳과 저곳을 구분하는 독특한 재료다.
다양한 유리
주택 한 채를 짓는데도 다양한 유리들이 사용된다. 유리의 단점은 단열에 취약하다는 점과 깨지기 쉽다는 점인데, 용도에 따라 단점을 보완한 유리들을 사용한다.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유리는 창문 유리다. 주택의 거실이나 침실에 설치되는 창은 보통 이중창이나 시스템 창호를 설치하는데, 이중창은 창을 두 번 열어야 완전히 열리는 창이고 시스템 창호는 단열과 기밀성을 보완한 창호로 한 번에 완전히 열 수 있다. 보통 복층유리를 많이 사용하지만 최근에는 삼중 유리도 많이 사용한다. 복층유리나 삼중유리는 두 장 또는 세 장의 유리를 창호 프레임에 밀착하여 끼우고 유리 사이를 건조한 가스로 채운 유리다. 한 장의 유리보다 단열 성능이 훨씬 뛰어나고, 결로도 어느 정도 막아낼 수 있으며, 방음의 역할도 한다. 당연히 한 장보다 강도도 뛰어나다. 생활공간의 경우 모든 창유리를 복층 이상으로 사용해야 하지만, 유리가 많아질수록 창의 두께가 두꺼워지고 창문의 무게도 무거워지며 비용도 상승하기 때문에 상황에 맞게 선택하는 것이 좋다.
보통 창의 유리를 우리는 투명하게 인식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색이 들어가 있거나 특수 코팅이 되어 있다. 최근에는 대부분의 적외선을 차단시키는 로이(Low-E) 코팅이 된 유리를 많이 사용하는데, 여름에는 실외 태양의 복사열을 차단하고 겨울에는 실내 난방 기구에서 발생하는 적외선을 반사하여 단열효과가 뛰어나다. 자외선 차단율도 비교적 높아 실내의 가구나 카펫 등의 변색을 줄일 수 있다.
빛은 받아들여야 하지만 시선은 차단해야 할 때는 하얗게 된 반투명 유리를 사용하고, 난간이나 샤워 칸막이 등에는 특수 열처리로 강도를 향상시킨 강화유리를 사용한다. 강화유리는 일반 유리의 3~5배의 강도를 가지고 있으며 설사 깨지더라도 모나지 않게 콩알처럼 부서진다. 최근 중문 등에 많이 사용되는 망입 유리는 디자인 때문에 유행하고 있지만 실은 매우 강한 산업용 유리다. 두꺼운 판유리에 철망을 넣은 것으로 파손 방지, 화재 방지를 위해 사용되며 깨져도 파편이 흩어지지 않는다.
밝고 따뜻한 집을 위한 유리
아무리 유리의 성능이 좋아지고 다양한 보완 방법들이 나와 있어도 유리는 골조와 단열재, 외장재와 내장재로 이루어진 다른 벽들에 비해 단열과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유리창은 비싸다. 큰 창은 공간의 투명성을 확보해주고 시원한 전망을 제공해주므로 매력적인 장치지만, 그만큼 단점도 있으므로 환경과 상황에 맞게 계획해야 한다. 강화유리는 비교적 안전하지만, 비싸기도 하고 깨질 확률이 없진 않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유리창을 통해 거실 깊숙이 스며드는, 다정하고 따스한 겨울날의 볕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