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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듈러 주택과 모듈러 이론
현창용의 공간·공감
공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건축가 현창용
2020.01.30

※ 이 글은 이데일리에 기재된 글입니다.   


△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준공된 국내 첫 모듈러 행복주택 ‘라이품’ 전경 (ⓒ사진.연합뉴스) 


△ 국내 첫 모듈러 행복주택 ‘라이품’ 주택 내부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준동된 ‘모듈러주택’ 실증단지인 라이품(Lipoom). 모듈(module)이란 측정 단위 혹은 공작물의 기본 단위를 의미하며, 건축에서는 흔히 건축물을 동일한 평면의 반복으로 만들어 낼 때의 기본단위를 뜻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모듈러주택이 각광받는 이유 역시 ‘단위’의 힘에 있는데 공장에서 단위세대(unit)를 만들어 현장에서는 붙이고 쌓아 조립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효율성이 모듈러주택 시장을 확산시키고 있고 나아가 정부의 주택정책에 반영되고 있다.


라이품을 구현한 건설기술연구원은 모듈러주택에 대한 설명에서 ‘12가지 실증기술’에 주목했다. 모듈 하나의 무게가 대략 25t인 점을 감안해 모듈을 운반하기 위한 운송기술을 개발했고 모듈 간 접합의 방식도 연구했다. 단위세대를 쌓고 붙이는 과정에서 결함이 생길 수 있는 내화, 내진, 단열에 대한 독자적인 해결책 역시 마련했다. 국책연구소가 첨단 건설기술을 동원하고 개발했다는 점에 비춰 정부가 모듈러주택에 거는 기대감을 짐작게 한다 .


다만 이 같은 라이품의 준공에서 우리가 모듈러 주택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모듈러(modular)’ 개념의 기원을 찾아보면 우리의 모듈러주택엔 ‘건설’만 있고 ‘건축’은 없음을 찾아낼 수 있다. 모듈러 이론은 근대건축 거장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에 의해 연구돼 세상에 태어났다. 그는 인간의 신체 척도와 비율을 기초로 ‘황금분할’을 찾아내 건축적으로 수치화시켰는데, 인간이 다리를 뻗거나 팔을 벌렸을 때 불편함이 없는 기초 치수들을 규정해 건축물을 설계하는 방법론을 내놓은 것이다.


△ 르 코르뷔지에가 연구한 모듈러 이론의 다이어그램


△ 위의 다이어그램을 바탕으로 설계한 최초의 모듈러주택인 ‘위니테 다비타시옹(Unite d’Habitation)‘ 


이러한 모듈러 이론은 주로 그가 대형 집합주거공간, 즉 아파트를 설계할 때 적용했다.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최초의 모듈러주택인 ‘위니테 다비타시옹(Unite d’Habitation)‘은 빈민층을 위한 대량 공급주택으로 계획됐다. 건축가를 통해 맞춤형 주택을 짓고 살 수 없는 저소득 계층을 위한 이 집은 보편적인 인체치수와 활동 유형을 분석해 편안하면서도 삶의 질이 높은 공간으로 각 단위세대 공간을 설계했다. 이 공간은 시간이 지날수록 차별화된 가치를 갖게 됐고 완공된 지 60여 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부유층이 입주해 있다. 이는 모듈러주택의 가치가 같은 세대를 반복해 짓는 단위성 뿐 아니라 거주성을 위한 치밀한 설계에 기반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건축적 목적을 위해 건설은 수단이 된 셈이다.


즉 모듈러 이론은 편안한 거주, 곧 삶을 위한 도구였다. 반면 수십 년이 지난 지금 한국에서 주목하는 모듈러주택은 단지 효율성에 집중한 모습이다. 코르뷔지에의 모듈러주택 역시 같은 단위의 집합으로 쌓아올리기에 건설 효율성을 담보하지만 이는 결국 ’사람‘이 사용하는 공간에 대한 건축적 연구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세워지고 있는 모듈러주택은 대량 공급 효율성, 공사 효율성, 공급가격 효율성, 공기 효율성 측면에서 다루어지고 있으며, 각 단위세대의 내부공간이 어떤 삶을 담기 위한 것인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물론 주거에 대한 부담이 상상을 초월하는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모듈러 주택은 탁월한 해결책일 수 있다. 그럼에도 최근 모듈러주택에 대한 담론들은 우리가 집이라는 공간에서 파생되는 많은 요소들 중 ’정량적‘ 가치에만 몰입해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아파트 문화가 만들어 낸 ’집의 도구화‘ 풍조는 모듈러주택의 효율성만을 부풀려 재생산해 내고 있는 것이다. 


모듈러주택 도입기인 지금 ’건설‘과 ’건축‘이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건축적 해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가 모듈러주택을 통한 주택 공급에 발 벗고 나선 이상 모듈러주택 시장의 확대는 지속될 것이고 현장에서 건설하는 기존 집합주거공간의 건설 형식을 바꿀 새로운 방법론으로 대두될 가능성도 있다. 이제 ’얼마나 빨리‘, ’얼마나 싸게‘ 지을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와 함께 ’얼마나 좋은‘ 거주(dwelling)가 가능한지에 대한 연구가 병행돼야 한다. 건설의 기술과 함께 건축과 삶의 기술이 뒷받침될 때 모듈러주택의 힘은 증폭될 것이다. 기술이 적용될 대상은 결국 우리 삶의 터전인 집이 될 것이란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공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건축가 현창용

공주대학교(조교수), 서울특별시(공공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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