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이데일리에 기재된 글입니다.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국민이 50%를 넘어선지 오래다. 주택 총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5년 기준 53.12%, 무려 2670만명 이상의 국민들이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70% 이상이 산지(山地)인지라 주거지로서의 조건을 갖춘 곳이 한정적이고, 문화적으로 지방분권보다 중앙집권적 성격이 강하다. 게다가 시민들의 삶의 터전을 모조리 짓밟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복구와 재건의 효율성을 위해 더더욱 모여 살아야만 했다. 결국 한정된 도시에 살 만한 거주지를 마련하는데 아파트만 한 것이 없었으며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아파트란 건축유형이 성공을 거둔 세계 유일의 국가가 됐다.
사그라들 줄 모르는 청약 광풍과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곧 ‘아파트 대책’이 되어버린 작금의 상황을 보며, 아파트는 한국의 도시들을 대표하는 건축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눈앞을 막아서는 아파트는 그 도시의 경관을 좌우한다. 그렇다면 아파트가 도시와 소통하는 창구는 없을까. 그것은 바로 아파트의 가장자리를 둘러싸고 있는 ‘발코니’를 통해 가능하다.
사실 한국 아파트에서 약 1m 내외의 발코니는 신기루 같은 존재다. 밟고 설 수 있는 분명 ‘존재하는’ 공간임에도 그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건축법과 주택법 상 건축물의 외곽에서 1.5m까지의 발코니(노대)는 면적에서 제외된다. 즉 허가단계에서 발코니 면적은 바닥면적에서 제외된다. 이때 법규와 건설업자 간 오묘한 장단이 어우러진다. 건설사들은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는 모양새가 되고, 소비자들에게는 이른바 ‘서비스 면적’이란 괴상한 개념으로 생색내기까지 가능해진다.
게다가 발코니 외곽에 ‘샷시(sash)’라 잘못 불리는 전면 창호를 설치할 수 있게 되면서 ‘불법 확장’의 역사까지 시작된다. 대안으로 마련된 ‘합법적 확장’은 인허가 시 ‘기본형’과 ‘확장형’ 도면을 함께 제출토록 해 공사단계에서 희망자에 한해 사전 확장시공을 허용하기에 이른다. 최근 모 단지의 입주자 1500세대 중 확장을 선택하지 않은 세대가 4세대뿐이라 하니 결과적으로 아파트 발코니 확장은 일반화된 것으로 보인다.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지만 버젓이 거실과 방으로 사용되고 있는 발코니. 관련법규가 가지고 있는 약점과 그 틈을 파고든 건설업에 대한 비평은 접어두고, 우리는 결국 아파트라는 건축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완충공간이자 각 가구의 삶이 표현되는 반외부공간인 발코니를 잃게 됐다. 아파트는 이제 평면뿐 아니라 외관(facade) 마저 획일화돼 개인 삶의 개성이 구축될 여지를 상실했다. 삶의 다양성이 소거되고 ‘새시(sash)의 건축’이 되어가는 아파트 건축의 발자취가 안타깝다.
국민 절반 이상이 거주하는 아파트의 위세는 당분간 꺾이지 않을 듯하다. 실내공간의 최대 확보에 대한 집착을 넘어 도시공간의 주된 구성원으로서 도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할 때다. 아랫집, 윗집, 옆집과 같은 곳, 같은 모양으로 둘러친 새시(sash)에 숨겨진 시간들은 결국 단절되고 내향적인 삶의 패턴을 생산한다. 아파트가 삶을 은폐하는 건축으로 남지 않기를, 나아가 다양성을 전달하는 건축으로 진화해 나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