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이데일리에 기재된 글입니다.
△ 철거되는 인천 중구 근대건축물.(ⓒ 사진.이데일리/인천도시공공네트워크 페이스북)
인천, 군산, 부산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항구도시들이면서 동시에 조선시대부터의 문호 개방 중심지였다. 필자는 이러한 항구도시에 방문할 기회가 생기면 내륙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건축물을 찾아보고 그 건축의 역사적 근원을 되짚어 보곤 한다. 특히 항구도시에 남아있는 오래된 건축물들은 대부분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고 서구의 건축문화 도입 초창기에 디자인 돼 ‘한국화’ 되기 전의 근대건축물의 원형이 보존돼 있기도 하다.
그중 수도 서울과 가장 가까운 도시인 인천의 유서 깊은 건축물들이 존재를 위협받고 있다는 소식이 종종 들려온다. 특히 115년 전에 지어져 보존돼 있던 비누공장을 허물고 주차장을 만든 인천 중구의 행정적 처사가 많은 비판을 받으면서 인천에 있는 근대건축물들을 보존해야 한다는 시민단체의 목소리는 더욱 커져가고 있다. 이에 인천시는 행정구역 안에 있는 근대건축물을 전수조사하고 문화재청에 의뢰해 문화재 지정에 나서는 등 비판을 잠재우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큰 건축물을 서둘러 문화재로 지정하는 방안을 찾겠다는 입장인 것이다. 하지만 이미 몇몇 근대건축물은 민간 건설업자에 매각되거나 무분별하게 개보수돼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온전히 보존하기 어려운 실정이기도 하다.
‘근대건축문화재’는 ‘문화재’라는 단어의 무거움으로 인해 공공시설인 듯 느껴지지만 대부분의 건축유산은 사유물이다. 인천의 경우도 인천양조장, 극동방송국, 동양제철화학, 애관극장 등 문화재 가치가 높은 건축물이 모두 사유재산이기에 사실 소유주의 자발적 참여가 없는 한 완벽한 보존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재급 건축물은 오랜 시간 그 모습 그대로 존재해 왔기에 세대를 뛰어넘는 많은 시민들의 기억, 그리고 건축을 둘러싼 역사적 사건들이 기록돼 있다. 부동산 가치로서 ‘사유재’ 혹은 ‘공공재’의 판단뿐 아니라 역사의 현장으로서 근대건축의 양식적 보존으로서의 가치가 함께 분석돼야 하는 이유다. 사유재산으로서의 개발과 활용을 인정하면서도 그 문화적 가치를 설득하고 그에 합당한 보상을 제안해 우리의 과거가 휘발돼 버리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 두말할 것 없이 국가의 몫이다.
하지만 현실은 열악하다. 이번 인천 중구 공장 철거와 같이 행정적 실책이 발생해 여론이 악화된 이후에나 조금씩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나마도 관련 공무원에게 맡겨져 실질적인 건축적 가치가 아닌 건축물의 ‘연령’, 홍보에 활용할 만한 ‘스토리’ 등의 정량적, 대중적 기준으로 판단되기 십상이다. 더 많은 근대건축유산이 훼손되기 전 지역별 역사, 건축 전문가들의 힘을 모아 근대건축문화재를 관리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 역시 그 중심에는 국가가 있어야 한다.
건축문화재에 대한 국가의 방임 속 개선의 불씨는 역시 시민들로부터 시작됐다. 다행스럽게도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는 건축물을 소유한 시민들이 모여 ‘건축문화재 소유자 협의회’를 출범시켰고 올해로 10년이 됐다. 전국의 건축문화재 소유자들이 모여 아무런 대가 없이 문화재 보존과 국가의 정책적 반영을 위한 노력을 해 오고 있는 것이다. 사유재산의 공익적 가치를 소유자들 스스로 이해하고 사회에 되돌려 주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국가는 뒷짐지고 있는 모양새가 안타깝기만 하다.
근대건축문화재가 가치 있는 이유는 그 건축물이 우리의 역사적 현장 자체이거나 혹은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배경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역사는 소유자 개개인의 사적인 역사가 아닌 우리 대한민국의 국사(國史)임은 어린아이도 아는 사실일 것이다. 국가의 역사가 담기는 그릇, 보존의 주체는 물론 정부여야 한다. 도시의 건축적 경쟁력이 국가의 성장 동력인 현대사회, 과연 이번에도 국가는 뒤로 숨고 결국엔 민초들이 지켜 내는 역사가 반복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