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이데일리에 기재된 글입니다.
△ 대형 복합쇼핑몰의 모습
복합쇼핑몰은 다양한 시설들의 복합 뿐 아니라 수많은 이해관계를 발생시키고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사회적 산물이다. 건설부지 인근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어 직접적인 이득을 보는 주민들과 지역 상권과의 상생 문제 등 대형 쇼핑몰 입점이 가져올 폐해를 우려한 주민들 사이에 마찰이 끊이지 않는다. 건립 계획 시점부터 지역사회를 들썩이게 만드는 복합 쇼핑몰의 탄생이 건축, 도시공간에 던지는 화두는 과연 무엇일까.
이름 그대로 복합쇼핑몰은 쇼핑을 필두로 레저, 문화, 치유, 식음 공간이 하나의 건축물 안에 밀집된 형태의 대형 상업공간을 의미한다. 복합쇼핑몰 안에 진입하는 순간 우리는 여가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의 건축공간 내에서 해결할 수 있다. 이른바 ‘덩어리 건축’이라고도 불리며, 전통적인 도시의 곳곳에 산개해 거리 풍경을 만들어 내던 다양한 상업공간들을 하나의 껍데기 속에 뭉쳐놓은 방식이다.
일정한 환경의 내부공간을 만들어 내고 다양한 상업시설을 한 번에 접근할 수 있다는 효율성 측면에서 이런 ‘덩어리 건축’은 분명히 장점을 가지고 있다. 다만 덩어리를 생산하는 과정은 많은 함정을 품고 있다. 그중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복합쇼핑몰이 흡수해 버린 도시공간의 다양성이 우리 도시를 ‘걷기 싫은 도시’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덩어리 건축'과 '걷고 싶은 도시'
‘걷고 싶은 도시’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보행환경, 교통, 기후 등 많은 요소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지점은 ‘거리의 힘’에 있다. 그리고 그 힘은 결국 거리를 구성하는 개성 넘치는 상업시설들의 연속으로 만들어진다. 유럽의 도시들이 끊임없이 찬사를 받는 이유는 도시를 경험하는 매 순간 시선과 발길을 잡아끄는 다양성에 있다. 아스팔트와 보도블록으로 매끈하게 정비돼 있지 않아도 우리는 그런 도시들을 걸으며 시간 가는 줄 몰라한다. 보행하며 발견하는 저층의 다양한 상점들의 향연이 보행자에게는 도시의 풍성함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 저층의 다양한 상점 모습은 걷고 싶은 도시를 만든다.
‘덩어리 건축’은 이러한 ‘걷고 싶은 도시’의 가능성을 모조리 빨아들인다. 거리를 거닐고, 상점을 발견하고, 상품을 구경하며 때론 구입하기도 하는 ‘행위’는 동일하지만 덩어리 건축 속에서는 도시적 ‘경험’이 결여된다. 도시공간이 사람에게 선사하는 경험이 모여 그 도시만의 특색을 정의하게 한다고 본다면 몇몇 덩어리 건축들만이 드문드문 들어앉아 있는 도시가 결국 생명력을 잃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걷기 싫은 도시에서는 모두가 쉽게 자동차에 올라탄다. 그리고 덩어리들은 사람과 자동차를 함께 집어삼킨다. 덩어리에 갇힌 사이 머물러 줄 사람이 없는 도시는 황폐해진다. 말끔하지만 싱거운 걷기 싫은 도시는 곧 도시공간 자체로서의 경쟁력을 상실하게 돼 이벤트적이고 순간적인 즐거움밖에 내세울 것이 없게 된다.
우리가 ‘덩어리’에 열광하는 사이 조금씩 사라져 가는 도시의 ‘다양성’에 대해 떠올릴 때다. 현대는 주요 도시의 정체성이 국가적 정체성보다 우위를 점하는 ‘도시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도시들이 그 고유의 특색을 세계인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서는 ‘걷고 싶은’ 도시공간의 회복이 그 노력의 중심에 놓여 있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