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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티(Piloti)를 위한 변명
현창용의 공간·공감
공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건축가 현창용
2020.11.27

※ 이 글은 이데일리에 기재된 글입니다.


2017.11 관측 이래 2번째로 큰 규모의 지진이 포항을 덮쳤다. 많은 현지 주민들이 피해를 보았고 전국 국민들 또한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지진은 인간의 눈으로 포착해 낼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이지만, 그 흔적은 우리의 공간에 상처를 남긴다. 특히 삶의 기반인 건축물의 파괴는 지진이 가져오는 가장 큰 피해로 꼽힌다. 당시 포항 지진 피해 장면 중 가장 주목받았던 것은 곧 주저앉을 듯 꺾이고 부서진 기둥이 건물을 힘겹게 받치고 있는 장면이다. 이 부분은 ‘필로티(piloti)’로, 주차장 등으로 활용하기 위해 저층을 개방해 기둥들만 남아있는 공간이다. 지진으로 기둥이 파괴되며 상부의 주택이 속절없이 주저앉는 이 한 장의 사진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퍼지며 필로티 구조에 대한 불안감이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확산되었다.


△ 뼈대만 드러내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필로티 구조 건물 1층 기둥 (ⓒ사진.연합뉴스) 


필로티의 개념은 근대건축 거장 중 한 명인 건축가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에 의해 1920년대에 소개됐다. 그는 현대건축과 구조물의 설계에 기본이 되는 5원칙을 발표하는데 그중 하나로 필로티를 꼽았다. 르코르뷔지에는 필로티를 통해 건축의 대부분을 들어 올림으로써 비워진 1층이 거주자와 이웃의 휴식처가 되고 기능적으로도 벌레, 습기, 열기를 막는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필로티는 그리 놀랍지 않으나 대부분의 집을 ‘벽돌을 쌓아 올려’ 만들던 20세기 초에는 사실상 ‘건축 혁명’이라 불릴 만했다.


하지만 우리의 필로티는 르코르뷔지에의 원론과는 조금 다르다. 삶의 질과 거주공간의 기능을 위한 비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세대·다가구주택 등 우리나라의 소규모 주택 건축물은 대부분 주차장 마련을 위해 필로티 구조가 불가피한데 현행 주차장법을 준수하며 주택을 신축하기 위해서는 면적에 따라 가구당 0.5대에서 1대까지의 주차공간을 ‘대지 내’에 확보해야 한다. 자동차가 계단을 오를 수는 없는 노릇이니 1층은 결국 벽이 없을수록, 또 기둥이 얇고 수가 적을수록 신축에 유리한 조건이 되는 셈이다. 이런 필로티 주차장을 가진 건물들이 모여 주택가를 이루고 우리가 그곳을 걸으며 마주치는 것은 우두커니 선 자동차 혹은 비어 있는 콘크리트 바닥이다. 아기자기한 상점의 온기는커녕 좁은 골목 구석구석 자동차가 다니니 사람들은 비켜서기 바쁠 뿐이다. 게다가 해가 저물면 필로티는 암흑의 공간이 되어 홀로 걷는 퇴근길의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드는 공포의 대상이 되곤 한다.


도시를 조성해 가는 도시계획과 이를 유지해 가는 제도는 시민들의 삶의 질을 담보로 하기에 세심하고 치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주택가의 필로티는 도시공간에 대한 비전 없이 단편적으로 마련된 주차 관련 법규가 양산한 괴물이다. ‘주차난’이라는 고밀도 도시의 사회적 문제를 민간에 떠넘긴 모양새다. 공동체의 주차 문제 해결을 위한 거시적 차원의 고민 없이 각 건물에서 발생하는 주차는 각 대지 내에서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의 방임적 제도는 좁디좁은 골목 끝에 있는 작은 주택에까지 차량을 끌어들였다. 이런 골목에서 쾌적하고 안전한 커뮤니티는 다른 세상 이야기일 뿐이다.


일부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공적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해 주택가의 일정 반경 범위 내 국유지를 공유주차장으로 조성해 보행 중심 커뮤니티를 만들려 노력하고 있다. 건축물 내에서 주차를 해결하지 않아도 되니 건물의 1층을 비우지 않아도 된다. 1층은 접근성이 좋아 생활에 꼭 필요한 상점들이 들어오기 좋기 때문에 밤에도 밝고 생기 넘치는 거리가 조성된다. 차량의 진입이 적정 범위에서 통제돼 보행 위주의 안전한 골목이 가능하다. 필로티로 인한 도시공간 황폐화를 막기 위한 이러한 공유주차장 제도는 국내에서도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일부 지자체의 건축가들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안하고 있기도 하지만 실현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건축은 주관적인 미와 공간감을 제외하면 결국 ‘제도의 물리적 산물’이다. 이러한 건축이 모여 도시가 되기에 도시공간은 국가의 제도가 얼마나 세심하고 효과적이며 깊이 있게 만들어졌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바로미터로 작동하기도 한다. 건축물을 하나의 객체로 바라보던 기존 제도의 관점을 바꾸는 일은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도시공간과 건축, 그리고 그 위에서 살아가는 개인과 공동체의 삶의 방식을 바꾸는 시작이 될 것이다.

공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건축가 현창용

공주대학교(조교수), 서울특별시(공공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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