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이데일리에 기재된 글입니다.
최근 한 건축물이 낯설지만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시민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좋은 아이디어, 혁신의 디자인이라는 찬사도 이어졌다. 시흥 하늘휴게소다. 서울 외곽 순환 고속도로에 위치한 상공형(上空形) 휴게소로 일반적인 상·하행선 양방향의 지상 휴게소를 고속도로 상공에 띄워 통합한 휴게소다.
고속도로가 대부분 산지, 농지를 가로지르는 탓에 휴게소를 마련하는 일은 대규모의 자연환경 훼손이 수반돼 왔다. 또 이에 대한 토지 보상비 등 국고의 소비 역시 만만치 않았다. 이처럼 그간의 일반적인 휴게소가 ‘고속도로의 수평적 확장’ 이었다면 시흥 하늘휴게소는 '수직적 확장, 그리고 통합‘이라는 입체적 건축 개념을 통해 환경과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움켜쥐었다.
△시흥휴게소 전경. 도로공사 제공
우리나라와 같이 가용한 국토면적에 비해 경제 규모, 인구밀도가 높은 국가에서 이러한 입체 공간 아이디어는 큰 힘을 발휘한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도시공간 중 20%가 도로라고 하니 도로 상부 공간 활용은 도시공간의 양과 질을 좌우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간 도로의 상공과 지하에는 공공기반시설 즉 육교와 고가도로 및 지하철 부속 시설만을 설치할 수 있도록 규제돼 있었기에 우리는 20%의 공간을 오로지 ’통행‘에만 활용하고 있었다.
정부는 이러한 규제를 올 5월부터 재검토해 ’입체 도시개발 활성화 방안’을 발표한 데 이어 지난 3일에는 국회 국토교통위에서 ’도로 공간의 입체개발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발의하는 등 입체 도시 개발의 문턱을 낮추려는 시도를 활발히 하고 있다. 시흥 하늘 휴게소 역시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의 일환이자 그 시작점으로 해석된다.
사실 많은 선진국은 고밀도 시에서의 입체적인 공간 활용을 보편적인 도시개발 방법론으로 채택하고 있다. 사용 가능한 도시공간의 켜(layer)를 복수로 인식하고 지하 공간 위 지상 도로, 보행로, 그 위에 건축물 관통형(drive-through) 고가도로와 공중주차장 등을 입체적으로 계획하는 것이다. 산책로, 녹지를 끊고 지나가는 간선도로와 주차 출입구는 지하화하거나 고가에서 연결해 지상 공간의 보행 친화성을 높인다. 물론 교통 효율성은 높아지고 건축물과의 접속은 쉽고 빨라진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만 하더라도 고밀도시의 효율성 확보를 위해 건물을 관통하는 도로와 공중에 만들어진 환승센터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뉴욕의 high line 공원.
반면 그동안 입체 도시개발 규제에 묶여있던 우리의 도시공간은 수평적 확장을 반복해 왔다. 짧은 시간 고도성장을 거듭해 온 한국의 도시는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기 어려울 만큼 단기간에 도시화 됐다. 도시개발은 인구수용을 위한 양적 공급에 치중됐고 필요한 만큼의 도로와 건물을 땅 위에 수평적으로 늘어놓기에 급급했다. 우리의 근 현대화 과정에서 불가피한 선택들이었지만 이러한 수평적 확장은 직장·주거의 원거리화, 환경오염, 기성 도심 쇠퇴 등의 도시문제로 직결되고 있다.
입체 도시를 위한 법, 제도적 개선과 실재하는 공공시설의 등장은 우리 도시가 새로운 세대를 맞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입체 도시는 수평적 확장이 유발한 도시면적 비대화, 도시경영 비효율화를 완화할 수 있는 건축적 열쇠로 주목받는다. 돌이켜 보면 올 한 해 동안 대두되었던 경부고속도로 지하화, 영동대로 개발, 상공형 휴게소 개통 등의 일들은 ’입체 도시‘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개별 건축물과 달리 도시공간의 사용 주체는 공중, 즉 일반 시민들에게 있다. 앞으로 거듭될 입체 도시로의 진화가 공적인 이익을 위한 새로운 도시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