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이데일리에 기재된 글입니다.
오벨리스크란 이집트에서 피라미드와 함께 분묘의 기념비로 건립된 탑이다. 일명 방첨탑(方尖塔)이라고도 불린다. 대부분 오벨리스크는 20~30m 사이로 알려져 있는데 고대인들에게 이런 높이의 첨탑은 태양에 가장 가까운 지점이자 태양신의 권력 그 자체로 인식됐다. 이집트 문명의 상징 중 하나인 이 오벨리스크는 이후 대부분 유럽으로 약탈당했다. 결국 고대의 ‘힘’을 얻고 싶었던 새로운 세력들의 욕망, 그리고 앞선 문명을 짓밟고 빼앗은 권력이라는 ‘상징성’을 위한 전리품이었다.
이집트에서 시작된 ‘높이, 더 높이’는 중세를 거쳐 신을 위한 교회 첨탑으로 이어졌다. 이어 도시화가 진행된 이후에는 새로운 재료와 새로운 기술을 바탕으로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높이의 초고층 건축물을 탄생시켰다. 200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인간에게 높고 뾰족한 탑이 전달하는 감성은 고대와 현대가 일치하는 것이다. 혹자는 남근의 형태를 모방한 생명과 힘의 상징으로 해석하고 혹자는 바벨탑과 연관 지으며 우상의 숭배를 논하기도 한다. 건축적으로 인간이 높은 탑을 보며 갖게 되는 의식적 감성은 바뀌지 않았다. 현대의 마천루는 고대의 오벨리스크의 형태적·인식적 오마주(homage)인 셈이다.
△ 오벨리스크와 밀라노 두오모 성당의 첨탑
같은 듯 다른 이야기인 은마아파트 재건축을 들여다보자.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회는 49층의 초고층 아파트로의 재건축을 꿈꾸며 끊임없이 서울시 건축위원회를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는 2017년 추진위가 제안한 ‘49층 계획안’을 들춰보지도 않았다. 심의 자체를 하지 않았다. 주거지역에서의 최고 층수는 35층이라는 기존 룰 안에서 다시 계획하라는 설명이다. 이런 설명에도 은마아파트 조합은 기존 14층 높이의 4,424가구를 49층 6,054가구로 재건축하는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은마아파트 재건축 이슈는 많은 의문을 낳게 한다. 은마아파트는 무엇을 위해 ‘높이’를 꿈꿀까. 추측건대 ‘사업성’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왜 한국의 아파트는 높아지면 값이 오르는 것일까. 단골인 ‘조망권’을 거론할 수 있겠지만 ‘대치동’은 입지적 특성상 뛰어난 조망 점을 찾기 어려운 데다 35층 높이만 해도 조망에 불리한 조건이라고 하기에는 주변 건물들의 스카이라인은 그리 높지 않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와 왜 높아지면 값이 오르는 것일까. 기업의 사옥도, 독재자의 성전도 아닌 ‘집’임에도 말이다. 높아져야만 가격이 오르고 그 돈이 권력이 되기에 ‘집’조차도 마천루를 꿈꾸는 현상으로 풀이된다. 우리는 오벨리스크 콤플렉스(obelisk complex)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