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이데일리에 기재된 글입니다.
41년 전 5월 구 전남도청은 역사적 사건의 무대였다. 1980년 광주에서 민주화운동 시민군 본부로 사용된 이 청사는 현대사의 갈림길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시대의 증언자다. 외지인들의 눈에는 백색 콘크리트 덩어리로 보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겐 평생 잊을 수 없는 지독한 아픔과 기억이 각인된 건축이다.
5·18의 산 증인이란 상징성 뒤, 전남도청은 한국 건축사에서 중요한 역사적 사료이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에 지어진 건축물로 한국인 건축가 고(故) 김순하 건축가가 직접 참여해 지은 유일한 건물이다. 이와 함께 건물 정면의 코린티안 장식(그리스 신전의 기둥 양식)을 차용한 창, 곡선으로 처리한 코너 부위, 테라스의 도입 등 동시대 건축물에서 찾아보기 힘든 건축적인 시도들이 풍부한 건축물이기도 하다. 본청뿐 아니라 별관, 경찰청, 민원실, 상무관까지 5개 동 모두의 건축적 표현과 시공 섬세함은 원형의 보존이 필수적이다.
△ 구 전남도청 모습
이같이 귀한 건축물을 우린 지금 방문할 수 없다. 접근이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2년 노무현 정부에서 ‘광주 문화수도 육성’ 정책의 일환으로 전남도청 일원을 ‘아시아 문화전당(ACC)’ 예정부지로 확정, 국제 설계 경기를 거쳐 2005년 착공함으로써 90여 년의 도청의 역사가 변화를 마주했다. 당선된 계획안에서는 전남도청을 포함한 5개 동의 외형을 보존하고 전시관 1~5관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했고, ACC 측은 계획안에 기반해 전시콘텐츠를 이식해 운영하고자 했다.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조감도
물론 전시의 내용은 5·18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의 역사적 의미와 도청의 공간적 특성을 반영해 ‘5·18 민주평화기념관’으로 명명하고 민주, 인권, 평화정신을 공유할 수 있는 전시관으로 꾸미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도청 내의 총탄 흔적, 당시 상황실, 방송실, 시민군 대변인실 등을 원형대로 재현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런데도 5·18 유공자와 유가족들, 그리고 ‘옛 전남도청 복원을 위한 범 시·도민 대책위원회’ 및 관련 단체들은 ‘보통의 전시관’이 보여주는 어쩔 수 없는 공간의 훼손을 염려해 정부와 ACC 측의 계획에 반대하고 있다. ACC 조성 과정에서 본관과 별관 사이의 연결 부위가 이미 훼손됨으로써 양측의 대립은 심화한 상태다.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경
건축가의 눈으로 바라보는 전남도청은 5·18의 역사적 가치, 근대 건축 문화재로서의 건축적 가치 중 어느 하나만을 취할 수 없는 건축물이다. 역사의 증언자이자 건축적 사료라는 두 가치 모두 보존돼야 하고, 모두 전달돼야 한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정부 및 ACC와 대책위 및 관련 단체 사이에 그어진 평행선이 접점을 찾아야 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마치 유리 상자의 모형처럼 건축물의 원형을 온전히 보존한다고 해서 그날의 비극과 건축적 가치들이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작품만 있고 큐레이터는 없는 박물관처럼 방치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반면 다른 ACC의 전시장들처럼 전시물 설치 운영 등을 위한 공간디자인이 가미된다면, 이 역시 진정한 가치들을 가려버릴 위험이 있다. 이는 그날의 광주를 기억하는 시민들이 ACC의 손을 들어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