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이데일리에 기재된 글입니다.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는 ‘다시·세운 프로젝트’ 1단계 사업을 마치고 2017년 9월에 개방했다. 건축계 거장 김수근의 작품이자 최초의 주상복합 건축이라는 타이틀에 달고 오랜 시간 버텨온 건물이기도 하다. 재생사업을 통해 널찍한 광장이 전면에 조성됐고 광장을 통해 바로 2층으로 진입할 수 있게 함으로써 입체적인 기존 건축물의 장점을 살렸다. 서울시는 ‘다시-세운 상가 프로젝트’를 보행과 산업, 공동체를 재생하는 3가지 테마로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그 중 보행 재생은 세운상가가 세워질 당시 김수근 건축가의 야심 찬 목표이기도 했던 ‘남산-종묘 간 녹지 축 연결’을 되살리기 위한 시도다. 서울시는 산업과 공동체 재생을 통해 청년 창업공간과 기존 산업 간 공존한다는 가치를 강조해 왔다.
△ 기존 세운 상가의 모습
세운상가를 둘러싸고 반복되어 왔던 논란과 찬사의 역사는 그 근원을 같이한다. 이 건물은 종로 거리에서 시작돼 충무로까지 길게 연결된 주상복합 건축물이다. 북악산에서 시작해 창덕궁과 종묘를 이루는 북쪽의 녹지를 남쪽의 남산골과 연결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계획이었다. 그러다 보니 세운상가군의 평가는 ‘남북축의 경관적 통합’이라는 비전과 ‘서울의 전통적 동서축의 단절’이라는 비평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동해 왔다. 그간 많은 행정가에 의한 철거·재생 논의가 끝내 결론지어지지 못했던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세운상가가 논란 속에서도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개념(Concept)의 힘에 있다. 박정희식 조국 근대화의 유물이라는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녹지 축을 남북으로 이어 내겠다는 건축적 개념은 이 건축물이 견뎌올 수 있었던 핵심 가치다. 즉 세운상가를 재생하겠다는 시도에는 근본적으로 이러한 개념의 현대적 재해석과 회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야 했다. 적어도 김수근 건축가가 50여 년 전 제안했던 개념에 대한 나름의 해답과 건축적 대책이 나머지 재생 계획과 균형을 이루는 주요 요소로 다루어져야 했다.
△ 재생사업을 마친 세운상가 전경
그런데 ‘다시·세운상가’에서는 그 핵심 개념이 다시 세워지지 못했다. 1967년 당시 김수근의 구상에 의해 만들어졌던 보행통로의 외관 보수와 환경 개선 정도에 그쳐 녹지 축 연장의 비전이 살아있는 녹색 공중 보행로로 되살아 날 가능성은 사라져 버렸다. 세운상가는 입체적인 공중연계를 통해 남북의 녹지 축을 회복하겠다는 ‘도시 계획적 가치’가 동서단절의 육중한 콘크리트 덩어리라는 ‘존재의 가치’를 압도해야만 철거되지 않고 재생된 당위성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도 다시 세운상가는 소프트웨어 차원의 내부 프로그램에 대한 재구성과 홍보에 치중돼 재생돼야 할 건축의 본래 가치는 프로젝트의 초점에서 벗어났다.
△ 세운상가에서 내려다 본 광장
건축 재생은 그 건축물이 ‘아직 존재함’을 전제로 한다. 즉 재생의 대상이 된 건축은 기능적으로 노후했음에도 그를 초월하는 가치가 숨어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건축물을 재생하려면 그 가치를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다방면의 전문적 처치를 실험해 회복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시도 없이 그저 오래된 건물을 버리지 않고 재사용했음에 만족한다면 ‘가치를 위한 재생’이 아닌 ‘재생을 위한 재생’에 그칠 것이다. 공간을 그저 되살려 쓴 프로젝트는 이미 민간에 넘쳐나며 공공 프로젝트마저 비슷한 재사용으로 유구한 건축의 가치를 흐린다면 그 결과물은 지루한 피로감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저명한 도시사회학자인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는 대표 저서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에서 활력있는 도시의 조건을 나열한다. 그 중 “도시는 보행자들이 상호작용할 기회를 주는 밀접한 교차점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문장은 다시·세운상가 프로젝트에 비평의 관점을 제공한다. 50여 년 전, 김수근 건축가는 세운상가를 계획할 때 이러한 도시를 꿈꿨을 것이다. 세운상가의 남북 녹지·보행축 회복은 오랜 시간 논란의 중심에 섰던 세운상가의 존재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려놓을 기회이자 제이콥스의 활성 도시의 조건과도 맞아떨어지는 핵심 개념임은 분명해 보인다.
서울시는 다시·세운상가와 함께 서울시 4대 재생사업으로 불리는 서울로 7017, 마포 문화비축기지, 돈의문 박물관 마을을 필두로 100여 곳에서 동시다발적 문화 재생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물론 성장시대 재개발 전략이 아닌 협치를 바탕으로 한 도시개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고 있음은 공간을 다루는 행정의 모범적 변화로 기억될 만하다. 그러나 몇몇 재생 프로젝트들은 시설 외관과 홍보에 치중한 단기 프로젝트에 그쳐 건축 재생의 근본 가치에 대한 전문적인 탐구가 부족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도시재생의 결과물이 급조된 성과주의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재생 대상의 가치를 깊이 있게 이해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함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