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한 점 없는 하늘 덕에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낄 수 있던 오늘, 집안 일로 충북 청주를 들르게 되었다. 오랜만에 서울 근교를 벗어나는 기회인지라 이 기회를 빌미로 답사를 해볼 생각으로 답사지를 천천히 떠올려보았다. 그러던 중 얼마전 고 김수근 건축가의 건축물의 목록을 둘러본 기억이 있는데 그 중, 국립청주박물관이 있었던 것이 상기되었다. 다행히 목적지에서도 멀지 않은 위치에 있었고, 날씨도 뒷받침 돼 기분좋은 답사를 할 수 있었다.
국립청주박물관
국립청주박물관은 고 김수근 건축가의 1987년작으로 그가 작고한 해가 1986년인 것으로 보아 그의 유작과도 같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간단한 개요를 확인하기 위해 찾은 자료를 보니 기본설계 담당자로 현 이로재 건축사사무소의 대표인 승효상 선생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 점 또한 흥미로웠다.
박물관은 청주의 변두리 즈음에 있는 우암산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었다. 초입에서부터 드러난 건축물의 큰 특징은 산의 지형을 따라 놓여진 나즈막한 매스감이었다. 별동으로 지어진 2층의 건축물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축물의 전시관을 이루는 동들은 단층이었으며 횡으로 긴 형태를 취하고 있어 숲에 파묻힌 느낌을 주었다. 전체적인 건축이 자리한 모양새와 취한 자세를 확인하기 위해 주전시관으로 향하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차장을 지나 가장 먼저 보이는 건물은 지붕 너머로 산능선이 보이게끔 낮게 자리하고 있다.
(위 아래 사진)
건축물 자체도 주변 형세와 어울리게끔 자세를 취하게 계획한것으로 보이지만, 추가적으로 주변 조경을 풍성하게 조성해 보는 이로 하여금 전체적인 박물관 영역이 숲 안에 자리한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또한 건축물을 여러 갈래로 분절하였는데 이 또한 지형에 순응하기 위한 선택으로 보였다. 더불어 그 사이 공간은 아래 사진과 같이 관람객이 아닌 박물관의 관리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였다.
건축물 외관을 이루는 요소 중 비중이 큰 요소는 한 눈에도 알 수 있듯이, 한옥의 지붕을 연상케 하는 지붕의 형상과, 그 지붕을 가로지르는 강한 수직의 선과 벽면을 따라 흐르는 수평의 선들이다.
지붕의 곡선은 분명 한옥의 것을 차용했을 것으로 보이나, 그것의 각도와 처마의 꺾어지는 형상이 약간은 낯설게 보이기도 했다. 아마 이와 같은 느낌 탓으로 고 김수근 건축가가 부여박물관에서 왜색논란으로 큰 홍역을 앓았지 않았나 추측해본다. 어찌됐건 묘한 곡선을 지닌 지붕은 주변과의 조화를 위한 선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건축물의 강한 선들이 표현하는 것은 김수근의 건축의 주된 언어 중 하나라고 한다. 그런 면에서 국립청주박물관은 그 표현이 아주 강하게 혹은 과하게 표현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위 사진을 보면 수직의 선과 수평의 선이 건축물의 전체적인 면을 감싸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것이 곧 건축의 전체적인 파사드를 이루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어찌보면 굉장히 장식적인 표현들로서 기능과의 결구를 따지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건축가의 스타일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맞지 않나 생각해본다.
의도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요철을 갖은 벽 혹은 담은 담쟁이 넝쿨로 둘러쌓여 한껏 자연과 하나되어 있었다.
자료를 보면 주요 벽체는 PC 판넬이라고 하는데, 실제 벽체에는 마치 노출콘크리트로 타설한 듯 볼트자국이 남아 있는데, 이는 인위적으로 파 넣은 것으로 보였다.
지붕의 선을 이루는 요소 역시 요철로 표현돼 있고, 처마 끝에서도 일정 길이만큼 돌출돼 그 효과를 더욱 극대화 하고 있다.
전체적인 외관을 둘러보고 주전시관의 정문으로 향하였다. 정문을 이루는 요소는 횡으로 긴 매스를 대각선으로 연결한 평지붕의 또다른 매스를 통해 구성하였는데, 살짝 이질적인 느낌이 있었으나, 계획상으로 보았을 때는 적절한 위치에 있는 것으로 보였다.
실내 공간의 구성은 횡으로 긴 매스의 형태를 그대로 받아 들인 모양새였다. 긴 매스를 따라 전시관들이 순서대로 이어지며, 지형의 높낮이차를 따랐는지 전시관 사이사이는 낮은 경사의 경사로로 이뤄져 있었다.
전시실 공간은 자연광을 제한하기 위해 창이 없으나, 대신 연결 복도 공간은 창을 두어 빛이 내부로 스며들었다.
전시실 내부의 천장은 평천장으로 박공형태인 지붕과는 달랐는데, 아마도 그 사이 공간은 환기, 조명 등의 주요 설비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실내에 비치된 대피로 표지판을 통해 전체적인 건물의 구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전시관을 나와 주변의 건축물을 둘러보았는데, 모두 같은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위 사진은 어린이박물관의 모습으로 층수가 더 높고 측면 창이 구성된 것을 제외하면 같은 맥락을 취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선선한 날씨가 뒷받침 해준 덕에 매우 쾌적한 답사를 할 수 있었다. 최근 들어 고 김수근 건축가의 작품을 수차례 답사하게 되었는데, 그에 대한 여러 측면의 평가가 있으나 자기만의 색깔을 지닌 굵직한 건축가였음은 확실한 듯 하다. 자신만의 건축언어를 구축하고, 후대의 건축가들로부터는 존경과 연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상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