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포스팅을 통해 건축가 고 김수근 선생의 작품과 전시에 대한 답사기들을 남겼다. 올해가 그의 사망 30주기인 이유도 있겠으나, 의도적 뿐만 아니라 우연히도 그의 작품을 많이 접하기도 하였다. 아직도 포스팅으로는 남기지 않은 몇몇 그가 남긴 건축물들이 있는데, 그 중 가장 인상깊게 남은 건축물 하나를 오늘 답사기로 남기고자 한다.
경동교회
경동교회의 위치는 장충동이며, 장충체육관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중간 즈음에 있다. 학생 때부터 이미지로만으로 보아도 경동교회의 모습은 특별했다. '붉은 벽돌로 마감된 외벽부터 매우 적당한 비율로 분절된 매스감', '매우 엄숙하고 웅장한 실내 공간' 이와 같은 나름의 정리를 지닌 채 답사를 하였다. 사실 이번 답사 당시에는 외부보다는 내부공간을 보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기에(이전 답사 때는 번번히 실내를 보지 못하였다.) 외관사진이 많이 남기지는 않았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경동교회는 큰 덩어리 하나가 아니라 작은 매스로 분절되어 있다.
아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수 개의 세로로 분절된 매스가 이어 붙은 모양새인데, 흔히들 기도하듯 손을 모은 형상을 추상화 한 것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실제로 그것을 모티브로 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전체적인 비례감이 매우 적절하다는 감을 준다. 분절된 비율 뿐만 아니라, 종횡의 비율, 기울어지는 각도 등 수많은 요소들의 종합적인 결과들이 그와 같은 인상을 준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지극히 건축가의 감각에 달린 부분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건축가는 분명 공학을 다루는 기술자의 면모가 필수적으로 요구되기는 하나, 이와 같은 감각적인 결과물을 볼 때마다 역시 건축은 예술이라는 생각을 한다.
벽돌을 타고 오른 담쟁이덩쿨은 건축물이 더이상 공작물이 아닌 자연물과 같이 보이게 만든다.
겉으로 드러난 창이 없는 외벽은 마치 성벽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외피를 이루는 소재는 붉은 벽돌인데, 정갈하게 잘려 마감된 벽돌이 아닌 부서진 면이 그대로 노출된 파벽돌이다. 이와 같은 재료의 사용 역시 전체적인 건축물의 분위기를 만드는 데에 큰 일조를 한다. 만약 경동교회의 외관이 깔끔하게 선이 떨어지는 벽돌로 마감되었더라면 위에 사용한 표현과 같이 보는 이로 하여금 성과 같다 혹은 자연물과 같다는 말을 듣지는 못했을 것이다. 재료의 사용 혹은 응용 역시 건축가에게 요구되는 주요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경동교회가 공간적으로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좋은 평가를 받는 부분이 바로 출입구이다. 보통의 교회 아니 건물들과는 달리 경동교회의 출입구는 전면이 아닌 배면에 위치하고 있다. 즉, 전면이 닿아 있는 대로변 인도가 아닌 건물을 휘감아돈 뒷 벽에 출입구가 있다.
여러 경동교회에 대한 평을 빌리면 경동교회를 찾는 사용자들은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 건물을 감아 도는 시간이 필요하게 되고, 그 동안 건축물 안으로 들어갈 준비, 혹은 교회라는 공간의 종교활동을 위한 준비를 하게 된다. 즉, 전이공간을 두어 주가 되는 공간과의 만남을 유보하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와 같은 평에는 동의하며, 전이공간으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건물의 얼굴이 되는 전면부의 군더더기를 삭제할 수 있는 디자인적인 역할도 할 수 있는 매우 좋은 선택이었다고도 생각한다.
건물을 감아 돌면서 계단을 오르면 출입구에 닿을 수 있다. 어떤 기독교인은 계단을 오르는 행위까지도 종교적인 행동과 연결짓는 것을 얼핏 들은 기억이 있는데, 나는 종교인이 아닌지라 그정도 해석까진 기억에 남지 않는다.
매우 옛스러운 스테인드글라스들이 개구부를 장식하고 있다.
출입구를 지나 중문을 열고 들어서면 주 공간인 예배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위 사진은 그 장면을 파노라마로 담은 것인데, 그 감동이 전해지지 않아 아쉽다. 그 때의 감정을 글로 표현하기 매우 어려우나, 굳이 풀어 묘사하자면..
우선 외부와 대비되는 노출콘크리트로 마감된 실내는 구조의 형상이 그대로 드러나 마치 동굴 속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기둥이 아닌 벽이 그대로 기울어지면서 보로 연결되는 모습은 김수근 건축의 주된 미학인 브루탈리즘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한다. 약간 어두운 듯하면서도 적절히 위요하고 있는 공간감이 엄숙하며, 본 공간이 종교공간임을 확실히 하고 있다.
다소 거칠지만 강력한 인상을 주는 노출콘크리트의 구조체들.
창이 그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지는 않으나 곳곳의 틈을 통해 빛이 떨어져 한껏 성스럽다.
특히 십자가가 위치한 부분은 가장 높은 탑으로부터 빛이 떨어진다.
예배당을 본 뒤 건물 속 곳곳을 둘러보았는데, 기억에 남는 것들은 그 때의 시대적인 특징인지는 모르겠으나, 매우 작고 아담한 스케일의 건축요소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위 사진은 이층 어느 출입통로인데 한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폭이다.
위 사진은 계단실의 모습인데 이 계단실 역시 한 사람만이 통행할 수 있다. 위와 같이 갑자기 줄어든 스케일은 예배당에서의 거대한 구조물과 대비돼 마치 건물이 부분별로 수축 혹은 팽창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각각 공간의 기능과 중요도에 따라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정도만의 가치를 할애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선택과 집중..)
옛 건물인지라 곳곳에 거친 마감들이 눈에 들어 왔으나, 건물과 묘하게 어울린다.
위 사진의 공간은 옥상층에 위치한 소예배당인데, 경동교회가 최초로 계획된 당시에는 노천으로 설계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의도와 다르게 잘 쓰이지 못해 현재와 같이 지붕을 씌운 형태가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학생 때부터도 종종 들었던 것인데, 실제로 눈으로 확인하니 더욱 안타까웠다. 실제로 노천으로 쓰였다면 주 예배당과는 또다른 매력의 공간이 되지 않았을까.
경동교회의 답사는 답사보다는 감상에 가까웠다. 사진으로만 보던 것을 직접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컸고, 그만큼 기대를 가지고 찾았는데 기대에는 부응했다. 오랜만에 공간이 갖는 힘을 느낄 수 있었고, 또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누군가 종교공간을 만들어보라는 과제를 준다면 과연 지금 당장 경동교회와 같은 강력한 공간을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언젠가 그 만큼 공간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언젠가 갖출 수 있기를 염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