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추사관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건축물은 건축가 승효상 선생의 '제주 추사관'이다. 몇 해 전 학교 졸업 여행으로도 제주를 여행한 적이 있는데, 그 당시에는 여행 자체를 답사를 주된 목적으로 했기에 건축물 리스트를 정리를 했었다. 그런데 제주 추사관은 그 당시에는 리스트에 넣지도 않았었고, 아예 모른채 주로 안도 타다오의의 건축물과 그 당시 근작을 위주로 보게 되었다.
이번에는 그 외의 건축물을 답사해야 했고, 그 중 가장 눈에 들어온 건축물이 바로 제주 추사관이다. 건축가 승효상이라는 그래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건축가의 작품이자, 특유의 철학을 기반으로 한 건축적 표현이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본 건축물은 유홍준 선생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제주편에서 언급된 것을 통해 알게 되었다.
건축물의 외관
추사관이 위치하고 있는 동네는 매우 한적한 시골마을의 모습이다. 실제로 추사 김정희가 유배된 곳을 건축의 장소로 삼았기에 그랬을 것으로 보인다. 그와 같은 한적한 시골마을에 추사관은 전혀 이질적이지 않은 외관으로 자리하고 있다. 추사관의 전시공간 대부분은 실제로 지하에 묻혀있고, 외부로 드러난 부분은 전시실의 한 부분과 지상으로 향하는 계단 뿐이다. 그렇기에 외부에서 보이는 매스 또한 한덩어리에 불과하며 그 부피(볼륨) 자체도 주변을 압도하지 않는다.
겉으로 보이는 양을 제한한 것은 추사관이 가져야할 자세에 대한 건축가의 해석으로 볼 수 있다. 유배지를 기반으로 세워지는 전시관인 것과 과도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 추사의 모습 등을 고려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그와 같은 선택, 혹은 표현에 개인적으로는 공감하고 동의한다.
형태적으로는 박공지붕의 횡으로 긴 창고형의 모습인데, 나의문화유산답사기의 내용을 빌리자면 동네주민들로 하여금 '감자창고'와 같다는 평가를 들었다고 한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실제 추사관 주변이나 제주 곳곳의 창고의 형태와 매우 흡사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형태가 기인하게 된 가장 납득할 만한 이유는 추사의 세한도에서 찾을 수 있다. 세한도에 그려져 있는 박공 지붕의 동그란 창을 가진 건물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외관을 이루는 주요 재료는 목재 사이딩으로 고급의 재료는 아니었다. 준공 후의 지난 시간을 머금은 듯 색이 바래 있다.
지붕과 계단부위는 징크계열의 금속패널로 마감했으며, 그 외의 건물에 쓰인 재료는 유리뿐이고, 주변의 조경은 제주 현무암 돌답과 식재로 마무리했다. 이렇듯 추사관의 외관은 독특하게 튀지 않으며 주변과 섞이듯 매우 검소하다.
건축물의 공간
앞서 이야기했듯이 추사관의 전시공간은 대부분 지하에 있기에, 주출입구 역시 지하에 위치하고 있다.
지하로 향하는 계단에는 지그재그의 경사로가 있는데, 딱히 법적인 것과는 관계 없는 디자인상의 요소로 보이는데, 괜히 과하게 느껴지지만 사용자들은 꽤나 재밌어 한다.
전시공간의 구성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수어개의 전시실을 병렬적으로 놓되 그 사이에 하늘이 열린 중정(선큰)을 두어 자연광을 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전시실인 만큼 딱히 자연광이 요구되지는 않았겠으나, 공간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지하 공간에 숨통을 틔워주는 정석적인 해법을 사용한 것이다.
병치된 전시실 간의 벽은 전시벽이 돼 전시품이 걸려 있다. 사이를 넓게 벌리면 아일랜드형 전시부스를 두는 등 단순하고 명쾌하게 전시공간을 구성했다. 추사관에 전시되는 전시품들의 유형이 대부분 서적류인지라 특별한 전시형태가 요구되진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이유로 전시공간 구성도 크게 무리 없이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전시공간 중 가장 큰 변화가 이뤄지는 부분은 외부에서 확인되는 매스 내부의 공간으로 실내에서는 지하부터 지상까지 뚫린 매우 높은 천장고를 지니고 있다. 반복되던 전시공간 구성 중간에 위치한 이 공간은 특별한 장치가 있는 것은 아니나, 높은 천장고와 외부의 형태가 그대로 이어진 내부의 형태 등의 모습들이 다른공간과 대비되는 효과를 준다.
동선상으로도 가장 마지막에 위치하기에, 지상으로 향하는 계단이 자리하고 있다. 계단을 오르면 지면과의 접점에 위치한 측창도 확인할 수 있고, 노출콘크리트로 마감된 벽면이 가까워진다.
가장 마지막 공간에는 녹슨 철로 제작된 추사의 흉상이 자리하며 공간의 끝났음을 암시한다. 콘크리트로 마감된 담백한 공간을 덩그러니 놓여진 추사의 흉상이 모두 채우고 있다.
내가 느낀 추사관의 전시공간은 각 공간마다 특별한 무언가을 지니기보다는 전체적인 흐름이 매끄럽게 구성된 느낌이었다. 전시 용도에 맞게 충실하게 구성된 기본적인 전시공간을 지나 동선 말미에 극적인 공간으로 마무리되는 순서가 관람객들로 하여금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고 생각한다. 전시공간 이외의 사무공간, 수장고 등의 부속공간은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으나, 전체적인 구성으로 유추하면 전시공간 너머 기능 맞춰 배치했을 것으로 보인다.
건축물의 디테일
단순한 공간 구성만큼 건축물 자체에 매우 희귀하거나 독특한 디테일이 있지는 않았다. 대신 전체적인 느낌을 위한 기본적인 큰 맥락은 지키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수직성을 강조한 강화유리문(위)
떠있는 느낌을 강조하기 위한 콘크리트 매입등과 마감 높이를 맞추기 위한 콘크리트 단차 시공(아래)
금속으로 제작된 매달린 형태의 전시부스(위).
보통 전시부스 부분은 인테리어에서 별도로 했을 확률도 있으나 본 건축물은 건축공사에서 모두 마무리한 것으로 보였다.
마감면에 맞춰 매 시공한 철문(아래).
외부 마감면의 접합부분. 특별하진 않으나 몰딩없이 최대한 바로 만나게 시공한 듯한 모습이다.
추사관은 결코 최신식, 최첨단, 최고의 건축은 아니었다. 그러나 건축개념의 시작부터 디자인까지 적절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구성된 것으로 보였고, 공간의 구성 또한 그것에 맞게 적절한 수준으로 이뤄져 완결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최근의 건축 동향에 비교한다면 별것 없는 자칫 하찮아 보일 수도 있는 건축물일지 모르나, 인문학적인 시선으로써 바라본다면 정말 잘 짜여진 구성을 지닌 건축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최근 들어 대단하고, 독특한 것에 자극을 받아오던 내게 오랜만에 건축이 추구할 기본적인 가치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만들어준 건축물이고 답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