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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고암 이응노의 113번째 생일(1904.1.12)과 타계 28주기(1989.1.10)
수덕여관과 고암 이응노생가기념관 / 조성룡(2011)
도시설계가 Archur
2017.01.10

 

지역 특성화를 위한 지방자치단체간 경쟁이 치열해 지면서 특성화를 위한 컨텐츠(Contents) 잡기 경쟁도 심해졌다. 이 중 지자체에서 눈에 불을 켜고 찾는 컨텐츠는 이름 있는 누군가의 출생지(Birthplace). 출생지는 유일하기 때문에 다른 지자체에서는 가질래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생가가 정확하지 않을때는 지자체간 분쟁의 소지가 발생한다. 그런 인물 중 한 명이 고암 이응노다. 지리한 논쟁 후 현재 이응노의 출생지는 공식적으로 충청남도 홍성이다. (2017) 112일은 그의 113번째 생일이다.

이응노 출생지를 두고 충남 홍성군과 다툰 지자체는 인접한 예산군이었다. 출생지가 아니어도 예산군에는 그의 흔적이 남아 있다. 수덕사로 진입하는 길에 차례로 놓인 문() 중 두 번째에 해당하는 일주문 서쪽에 수덕여관이 바로 그것이다(위 사진). 그가 수덕여관과 처음 관계를 맺게 된 계기는 나혜석이라는 시인이자 서양화가다. 뭐 조금 상상력을 더하면 수덕사가 그가 태어난 곳 근처이니 그가 이 일대를 자주 다녔을 것이라는 추론은 충분히 할 수 있다. 1950년부터 1956년까지는 수덕여관에서 작품활동도 했다. 그리고 '동베를린 사건'으로 대전교도소에서 옥고를 치른 뒤 다시 파리(Paris)로 가기 전인 1969년까지 첫 번째 부인이 있던 이곳에 머물렀다. 85년간의 그의 일생(1904~1989)중 대략 7~8년 가량을 수덕여관이라는 장소와 인연을 맺은 셈이다.

'동베를린 사건'뿐만 아니라 '백건우 윤정희 납치사건' 등으로 우리에게는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시됐던 이응노였기에 그의 흔적이 있던 수덕여관도 사람들은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다 20012월 수덕여관이 경매에 나왔다. 출품(?)을 의뢰한 사람은 1944년 이응노가 수덕여관을 사들여 운영(?)을 맡긴 그의 첫 번째 부인이었다(-'이응노 화백 옛집 경매나온다', 한국일보 2001.02.04-). 수덕여관이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된 시기가 20075월 경이니 당시 수덕여관의 상태는 상당히 안 좋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경매의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으나 그해(2001) 이응노의 첫 번째 부인 박귀옥 여사는 세상을 떴다. 참고로 이응노는 '백건우 윤정희 납치 사건'의 배후로 몰려 곤욕을 치룬뒤 1983년 프랑스에 귀화했다. 그리고 1989110일 파리에서 세상을 떴다. 올해(2017) 110일은 그의 타계 28주기다.

현재 우리가 보는 수덕여관 건물은 복원된 것이지만 수덕여관 건물 북동쪽에 있는 바위에 새긴 이응노의 작품은 진품이다(위 사진). 1969년 이응노가 '동베를린 사건'으로 대전교도소에서 옥고를 치룬 뒤 이곳으로 와서 남긴 작품이다. 이응노는 이 돌조각 하나하나를 새기면서 '이 그림 속에 삼라만상 우주의 모든 이치가 다 들어있다'고 했다. 이 정도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땅이라면 예산군도 지자체를 살리는 컨텐츠로 '이응노'를 활용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는 된다.

2000년쯤 되니 사람들 생각이 바뀌었다. 그리고 불과 몇 십 년 전에 얘기됐던 내용도 진실이 아니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응노 컨텐츠를 가장 먼저 활용하기 시작한 지자체는 대전광역시와 홍성이었다. 2004년 대전과 홍성은 '이응노미술관'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홍성이 이응노의 고향이라는 사실에 대해 예산군의 반론은 심하지 않았다. 그럼 대전은? 대전의 논리는 이응노의 초창기 작품활동을 한 배경이었고 1967년 동베를린 사건으로 복역한 곳도 대전교도소였다는데 있었다('이응노 미술관 대전 홍성 잇단 건립', 한겨례, 2004.02.11). 참 그런 연결고리로라도 이응노라는 컨텐츠가 대전시에는 매력적이었나 보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지자체의 행정적, 경제적 영향력에 따라 유치가 결정된다. ()이 광역시를 이기기는 힘들다. 게다가 이 시점에 홍성군은 예산군과 이응노의 진짜 고향에 대한 논쟁을 시작한다. 당시 예산군이 고암의 출생지로 '예산군 덕산면 낙상리 산24'를 주장한 근거는 덕산면사무소에 보관된 고암의 제적부였다. 예산군 입장에서 봤을때 수덕여관과 함께 그의 출생지가 예산이라면 지금까지 홍성군이 벌여온 이응노 기념사업에 대한 주도권을 가지고 올 수 있었다('이응노 화백 고향 논란', 연합뉴스, 2004.03.11). 논란은 20081013, 대전지법 홍성지원에서 이응노의 조카가 고암의 출생지를 '예산군 덕산면 낙상리 산24번지'에서 '홍성군 홍북면 중계리 386번지'로 고쳐 달라며 제기한 '제적부 정정 허가신청'을 허가하면서 종지부를 찍었다('이응노 화백 고향 예산 아닌 홍성', 한겨레, 2008.10.13).

홍성군과 예산군 사이에 일어난 이응노 출생지에 대한 논란은 끝났지만 그렇게 해서 두 지자체에게 남겨진 건 감정적 앙금이었다. 게다가 두 지자체는 살을 맞대고 있으며, 이응노라는 컨텐츠가 아니더라도 충남도청이 이전하는 내포신도시 조성 때문에 계속적인 협의를 해 나가야 하는 관계였다. 그런데 두 지자체는 심지어 새로 지을 충남도청의 정문 방향에 대해서도 다른 목소리를 냈다. 이응노라는 컨텐츠만 놓고 봐도 결과가 어떻게 됐든 수덕여관을 중심으로 하는 예산군과 출생지로서 홍성군이 전개할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수덕여관이 됐든 생가와 기념관이 됐든 단일의 공간으로는 외부인을 끌어모으는데 한계가 있었다. 예산군의 수덕사, 수덕여관, 선미술관과 홍성군의 생가, 기념관은 이응노라는 컨텐츠로 묶여야 서로서로를 더 잘 살려줄 수 있다.

예산군은 '이응노 출생지'라는 컨텐츠는 잃었지만 공식적으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수덕사와 수덕여관에 '()'이라는 불교사상을 끌어들여 '선 미술관'20103월 완공했다(위 사진). 수덕여관 남쪽에 410규모로 지어진 선미술관은 비대칭 C자 평면을 하고 있다. 동쪽으로 열린 미술관의 평면은 수덕사로 접근하는 길로부터 연결시키겠다는 의도가 읽혀지고 건물 전체를 덮고 있는 자 지붕 프레임(Frame)과 기둥은 전통 목구조를 암시한다. 아무리 찾아도 설계자는 알 수 없기에 설계자의 의도를 인용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건축물 자체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더라도 홍성군과 그렇게 치열한 감정싸움까지 벌였던 '이응노'라는 컨텐츠를 보여주는 공간치고는 너무 졸렬하단 생각이 들었다. '2016 전국문화기반시설 총람'에 따르면 선 미술관의 일평균 관람인원은 32명으로 개관일수(311)를 감안하면 관람 인원은 9,952명이다.

대전지법의 결정으로 홍성군은 기존에 추진하고자 했던 이응노 생가 복원과 기념관 건립사업에 탄력을 받았다. 2008513일에 홍성군은 '고암 이응노화백 생가복원 및 기념관 건립사업 건축설계경기 및 제작물 제작설치를 위한 현상공모 공고'를 냈다. 공모방법은 건축설계업체와 전시업체간 공동응모였다. 이 외 공고문에 나온 주요 내용을 보면 부지면적은 23,503, 생가가 포함된 건축 연면적은 1,018. 추정사업비는 477,300만원이었는데 이 중 전시공사에 10억이 투입된다. 그럼 건축 설계비는 얼마일까? 19,800만원이다. 기초금액이 이 정도니까 낙찰가는 더 낮았을 것이다.

2008721, 홍성군은 공모 당선자로 '조성룡 도시건축사무소'를 선정했다. 그리고 같은해 119, 홍성군은 건축과 전시분야의 기본계획안을 공개했다. 기본계획 내용 중에는 '고암이 예술적 영감을 얻었던 수덕사, 용봉산, 일월산 등을 풍경문화 벨트로 연계시켜 고암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모색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홍성군, 고암 이응노 화백 생가 복원 기념관 기본계획 마련, 대전일보, 2008.11.09). 현장에서 조성룡은 이런 내용을 우리에게 강조했다. 수덕사-수덕여관-선미술관-이응노 생가 및 기념관은 '이응노'라는 이름으로 엮일때 더 빛을 발할 수 있다. 또 그래야 과거 우리가 이응노에게 가한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반복하지 않고 있다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조성룡은 기념관에 대한 설명에 앞서 이를 둘러싼 외부공간 그리고 외부공간에서 보이는 산과 주변 마을길을 먼저 설명했다. 그는 우선 대상지 북동쪽에 있는 용봉산과 남서쪽에 있는 일월산을 먼저 언급했다. 수암산-용봉산으로 이어지는 산자락은 홍성으로 진입하면서 남북으로 길게 늘어져 있다. 내포신도시는 이 두 산을 서쪽에 두고 동쪽으로 방사형 패턴으로 조성됐다. 용봉산은 홍성군에서는 주산(主山)이다. 일월산은 용봉산에서 이어지는 산맥의 끝자락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이응노의 출생지인 중계리가 있다. 조성룡은 용봉산은 바위산이고 일월산은 흙산이라 설명했다. 그래서 용봉산은 남성성을, 일월산은 여성성을 상징한다고 했다.

용봉산(위 사진)과 일월산(아래사진)은 산세도 다르다. 용봉산은 산을 덮은 녹음보다 녹음을 비집고 튀어나온 암석이 더 많이 보인다. 그래서 거칠고 강하다. 반면 일월산은 어떤 암석도 없이 녹색으로 곱게 덮혀 있다. 그래서 부드럽다. 여기에 조성룡은 건축가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상상력을 더한다. 비록 이응노가 이 땅에서 보낸 시간은 10대말까지 였고 이 당시에는 전문적으로 그림을 그리지도 않았지만 이후 이응노가 전개한 작품활동에서 그가 본 이 땅에서의 풍경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을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 그랬다.

위 사진에서 내가 들고 있는 아래 인쇄된 사진은 조성룡이 기념관 설계 시작때(2008) 땅이 가지고 있던 모습이다. 기념관 조성전 땅이 가지고 있던 패턴은 현재 대상지 주변 논 패턴에서도 읽을 수 있는 지형을 최대한 따른 반듯반듯한 모습이었다. 이는 기계로 농사를 지을 때 편한 패턴이다. 하지만 이응노가 이 땅에 살았던 1920년대까지 땅의 패턴은 직선보다는 지형에 맞춘 곡선의 선형이었을 것이다(아래 두 위성사진 참고). 조성룡은 옛 문헌을 뒤져 과거 이 땅이 가지고 있던 패턴을 찾아냈고 그 선형을 외부공간 조성에 활용했다. 사실 이 방법은 새롭지 않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건 '왜 조성룡은 사라진 옛 지형을 굳이 살리려 했는가'이다. , 건축가가 거기서 디자인 모티브를 찾아낸 이유다. 그게 정당해야 한다.

조성룡은 설계 당시 이응노의 흔적은 커녕 생가라고 하는 건물 조차 남아 있지 않은 땅에서 이응노가 살던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볼 수 있는 용봉산과 일월산에 기댔다. 용봉산과 일월산은 조성룡이 찾아낸 이 땅에서 보낸 이응노의 시간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을 연결하는 끈이다. 하지만 조성룡은 그 끈을 더 강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땅이 가지고 있었던 사라진 패턴을 살려낸 것이다. 비록 당시 이응노가 살던 때 이 땅에서 키우던 작물이나 식물은 아니겠지만 과거 이응노가 이 땅에서 보던 땅의 형상을 조성룡은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마치 타임머신(Time Machine)을 타고 이응노가 이 땅에서 시간을 보냈던 1900년대 초로 돌아가 그가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하기 전 작품활동의 모티브가 된 고향의 산천, 용봉산과 일월산을 배경으로 펼쳐진 풍경을 방문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응노 기념관은 개관전 건물 완공 직후부터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이때 언론의 한결 같은 평가는 '건축물이 자연과 하나가 됐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내가 주목하고 싶은 또 하나는 관점은 '왜 조성룡이 주변환경과 하나가 되는 건축을 설계했을까?'. 더불어 '정말 건축물과 주변 환경이 하나가 되는 것 만을 추구했을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이런 의문은 그래도 조성룡이 설계한 이 건축물의 프로그램이 단순한 박물관도 전시관이 아닌 고암 이응노를 기념하는 '기념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조성룡은 '건물과 들판, 기념관 앞에 조성한 연밭은 별개가 아니다. 이 모두가 하나의 풍경이다. 건물만이 기념관이 아니라 산과 들판, 길 등이 모두 어우러진 풍경 전체가 기념관이다.'라고 한 언론에서 얘기했다(-중앙일보 2011.02.21-). 기념관 내부에 들어선 우리들에게 조성룡이 처음으로 꺼낸 얘기는 '관람객이 자연적인 선형을 살려 설계한 외부공간에서는 편안함을 느끼길 바랬고 이와는 반대로 기념관 내부에서는 불편함, 어색함을 느끼기 바랬다'였다. 이유는 우리가 이응노라는 예술가이기 이전에 대한민국의 한 국민에게 가한 행위를 미안해하고 반성했으면 하는 바램 때문이었다. 이는 결국 조성룡도 자신이 설계한 건축물이 '기념관'이라는 프로그램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염두해 두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기념관 내부에서 내가 가장 주목한 부분은 애초 기념관 자체가 주변 환경과 하나가 됨을 추구했다는 개념이었다. 주변환경과 하나가 됨은 외부에서 봤을때 시각적으로 두드러지지 않는 건축물 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런 의도라고 한다면 건축물을 땅에 묻으면 그만이다. 주목해야 할 말은 '하나가 됨'이다. '하나가 됨'은 건축물 내부에서 본 바깥의 풍경과 이용자가 건축물 내부에서 하는 행위가 일치해 그렇지 않을 때 보다 더 나아짐을 의미한다. 이응노기념관 내부에서 관람자는 그의 작품을 감상한다. 그냥 이응노의 작품을 보는 감상하는 공간과 그의 작품을 보면서 그가 이 땅에서 봤던 풍경을 번갈아 보는 행위는 분명 다르다. 남쪽으로 놓인 4개의 육면체 사이사이를 통해 기념관 내부로 흘러들어오는 바깥 풍경은 과거 이응노와 현재 관람자를 연결하는 또 다른 타임머신이고 다시 그 사이사이에 놓인 이응노의 작품은 이응노가 우리에게 하고자 하는 말이다.

 

도시설계가 Archur

Archur가 해석하는 도시,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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