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이기채는 오직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비록 취처하여 장가는 들었다 하나, 아직 스물을 막 넘긴 나이로, 어머니 청암부인의 말씀을 깊은 속으로 알아듣기에는 어린 때였던 것이다.
"허나, 이처럼 귀하고 아름다운 눈일지라도, 그것은 귀하고 아름다워서 오직 있을 만한 곳에만 있어야 하니라. 사람의 얼굴에도 눈과 눈썹이 아주 없어도 안되지만, 거꾸로 너무 많아서도 안되지 않겠느냐. 가령, 아무리 오색 광채 찬란한 눈이라도, 어떤 사람이 얼굴 사방에 눈이 달려 있고, 또 그것도 모자라 온몸에 다닥다닥 눈이 달려 눈투성이라면 어떻겠느냐.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괴물일 것이다.
마치 산수 너무 찬란하여 여기도 아깝고 저기도 아까워, 군데군데 층층 누각을 겹쳐서 상첩하게 짓는다면, 그 경치 단상하기보다는 오히려 소란하기 시정 같지 않으리. 그곳에는 잡배들이 끓기 마련이라, 바쁘고 시끄러울 뿐 도무지 고졸한 맛이 없고, 주인 많은 나그네 밥 굶는다고, 실이 없으니.
사람이 뜻이 너무 많고, 뜻마다 착수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면 성공투성이여서 좋을 것 같지만, 한 군데 정신을 쏟아 정진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하고, 복도 또한 그러해서, 복투성이 인생이란 어쩌면 눈투성이 몸뚱이처럼 오히려 기괴한 것일는지도 모르지.
경치고, 정신이고, 인생이고 결혈의 묘처는 오직 한 군데 아니면 많아야 두 군데에 불과할 것인즉, 이 자리를 소중하게 아끼고 잘 갊아서 제 생애를 다한 집을 세워야 하리라. 그래야만, 생애는 이 집을 바라보고, 집은 생애를 돌아보는 묘미가 있지 않겠느냐."
청암부인은 미소를 지었다.
- 최명희, <혼불> 제4권 |
최근 이화동 벽화마을의 대표적 주인공들이 사라졌다는 기사를 접했다.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불편을 느낀 주민들 스스로가 공공미술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시행된 벽화들을 지워버렸다고 전한다. 재개발 구역에서 해당 지역이 제외되면서 이에 반발한 일부 주민들이 그림을 지웠다고도 전한다.
벽화마을은 공공미술프로젝트를 통해 구도심을 활성화하고 관광객 유치를 통해 지역경제를 살리고자 시작되었다. 다른 공공사업에 비해 비교적으로 손쉽게 조성할 수 있으며, 전문가뿐 아니라 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점 등이 각광을 받으면서 전국 방방곳곳으로 퍼졌다. 내 기억으로 벽화마을은 영화 <라디오스타>의 배경이 되었던 강원도 영월, 한 아파트 외벽에 영화의 주인공들이 벽화로 그려지면서부터 일반 국민들에게 잘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이제는 전국에 들어선, 그만그만한 벽화마을의 개수를 헤아리기에도 힘든 실정이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일련의 과정과 예상된 결과들에 대해 전문가들조차 너무 쉽게 접근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소설 <혼불>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얼굴 사방에 눈이 달려 있고, 또 그것도 모자라 온몸에 다닥다닥 눈이 달려 눈투성이라면 어떻겠느냐.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괴물일 것이다.' 라고 말이다. 있어야 할 곳에 그 것이 없어도 심각한 문제지만, 이렇게 없어도 될 것들이 그 곳에 가득 들어차 있다면 그것은 괴물이 되고, 폐허가 될 것이다.
관광지나 유원지도 아니고, 일상생활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밀집주거지역의 구도심을 살리는 방안이 무엇인지 그 곳에 사는 사람이 되어 제대로 생각해 보았을까? 벽화를 그리는 것이 과연 진정한 대안이었을까? 관리(벽화의 탈락, 변색)를 어떻게 해야되는지는 생각해 보았을까? 추진된 모든 곳들이 모두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어느 한 곳에서 잘 되었다고하니 너도 나도 아무생각없이 따라하는 것이 문제다.
투성이 사회가 되어 버렸기에 문제다. 그러고보니, 총선을 전후로 우리의 도시 및 주거환경 등을 위해, 여기 저기서 넘처나게 외쳐대는 각종 새로운 목표와 계획, 공약들도 심히 우려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안전, 에너지 절약, 범죄예방, 보행친화, 환경개선, (야간)경관조성 등등이 그렇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와 공간, 자연과 환경을 또 다시 지속적으로 훼손하지 않을까 매우 걱정된다.
수납의 달인들이 말하는 제1의 원칙이 있다. 그것은 우선 필요없는 것들을 버리는 것에서 부터 시작한다. 무엇인가로 채우고자 한다면 우선은 그릇을 비워야지 만이 가능한 것이다. 지금의 이 투성이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우선 비워야 가능할 것이다. 다른 곳에서 하니까, 해 본걸 보니 우리도 하면 좋을 것 같아서, 등등 남을 따하하는 것은 이제 그만두자.
그리고 그 것, 그 곳에 대한 명확한 진단과 분석을 해보자고 제안해본다. 그 것을 그 것 답게, 그 곳을 그 곳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절실한 것이 무엇인지를 냉정하게 판단하고 찾아내보자는 것이다. 정체성을 바로 잡아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정체성은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다.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하는 계절, 너도 나도 모두 하는 투성이가 아니라, 정체성을 찾아가는 투성이들로 좋아지는 곳곳을 상상해본다.
태백 상장동벽화마을(2014. 6 )
대구 김광석 다시그리기길(2015.8)
전주 자만마을(20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