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담은 벽돌집, 금양수산 사옥 설계 건축가 이기철을 미디어에서 주목했다.
대전근현대사전시관 등 대전의 근현대건축자산, 성수동 카페 어니언 등 우리 주변의 재생건축, 고요한 쉼터, 치유의 공간 의왕 성 라자로 성당, 일본식 다세대 주택을 개선한 초연다구박물관 등이 가볼만한 곳으로 추천되었다.
※표지 이미지_대전근현대사전시관 일대
미디어가 주목한 건축가
바다를 담은 벽돌집-금양수산 사옥 설계 건축가 이기철
통속적인 타일과 시멘트 위주 건축물로 채워진 부산 자갈치 시장, 그 곳에 과거의 흙 묻은 기억을 들춰내서 이를 곱씹으며 지역 역사와 이야기를 복원하는 3만여 개의 벽돌 건축물이 들어섰다. 금양수산 사옥이다. 이를 설계한 건축가 이기철은 "개발과 경제성 논리로 일관된, 광복 후 건축 시장 속에서 벽돌은 자갈치 지역에서 더는 유효한 건축 재료가 아니었죠. 값싼 얇은 타일이 건물들의 입면에 속속 적용되었고, 어느새 이 지역에서 벽돌 건물을 찾아보는 게 어렵게 되었습니다"라며 "'얄팍한 두께만큼이나 지역에 대한 고민과 건축적인 성찰 없이 지어진 자갈치의 타일 건물들 사이에서 어떤 건축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작업의 출발이었습니다"라고 기사를 통해 밝혔다. <원문링크>
신문읽고 떠나보는 건축답사
대전근현대사전시관 등 대전의 근현대건축자산
대전근현대사전시관은 영화 ‘변호인’의 법정 장면 촬영장소로 잘 알려진 옛 충남도청(등록문화재 제 18호)이다. 건물 정면 외관의 스크래치 타일과 1층과 2층 사이에 배치한 외부 벽체 장식 문양 등 눈여겨볼 것이 많다. 중앙 로비 바닥의 타일 문양과 천장과 샹들리에를 고정한 지지대 문양, 창과 황동으로 만든 창호 철물 등은 그 자체만으로도 근대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충분하다. 1962년 완공 당시 대전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화제가 되기도 한 대흥동 성당도 있다.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있는 듯한 형상을 갖추고 있는 성당 건물은 고딕 양식의 적벽돌 구조가 주를 이루었던 당시 성당 건물들과 달리 시멘트 벽돌로 마감해 사뭇 다른 모습을 선뵌다. 옛 산업은행 대전지점도 볼만하다. 전체적인 형태는 르네상스 풍 신고전주의로 장중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며, 일제 강점기의 전형적인 형태인 좌우 대칭적 외관을 이루고 있다. 세밀한 장식으로 은근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옛 산업은행 대전지점은 전체적으로 엄격한 질서를 강조하는 고전주의 양식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 특징이다. 대전역 동광장을 지나 동쪽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오래된 가옥들이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들어온다. 바로 소제동 철도관사촌이다. 이 건축물들은 적들이 만들어 놓은 집, 이른바 ’적산(敵産)가옥’이라는 일제강점기의 흔적을 그대로 새기고 있다. 대전역을 중심으로 지어진 관사촌은 북관사촌과 남관사촌이 함께 있었지만 전쟁과 도시화로 대부분 소실됐다. 현재 소제동에 위치한 동관사촌만이 폭격을 피한 건물 40여 채가 아직까지 남아있다고 기사는 전하고 있다. <원문링크>
우리 주변의 재생건축
최근 오래된 창고나 병원·공장 등을 개조해 카페 등 상업 공간으로 만드는 공간 재생 움직임이 활발하다. 일부로 만들려야 만들 수 없는 세월의 더께가 켜켜이 쌓여있어 공간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노후 건물 무조건 허무는 뉴타운 개발과 달라서 새 것에서는 느낄 수 없는 편안함이 있고 기존의 분위기를 살려서 각종 문화행사도 개최되기에 주변의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고 기사는 전한다. 50여 년 동안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던 금속공장은 카페(성수동 카페 어니언)으로 변했다. 1922년에 세워져 현재는 근대문화제이기도 한 부산 초량동의 한 병원건물도 카페로 변신했다. 세월을 거치며 증축된 미로 같은 공간 구조와 오래된 목조 창틀, 타일 문양의 바닥 등이 고색창연하면서도 이색적이다. 또한 국제시장 6공구의 한 주단집도 내부의 가구와 소품을 최대한 이용하여 공간을 만들었다고 한다. 1970년대초 정미소로 지어진 대림창고는 복합문화공간이 되었고, 카페 앤트러사이트의 합정, 제주점은 신발공장과 전문공장이 새롭게 된 곳이다. 기사는 얼음창고를 개조한 인천 중앙동 아카이브카페 빙고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낯설지만 친숙할 수밖에 없다는 것, 세월이 주는 디자인의 힘이라는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원문링크>
고요한 쉼터, 치유의 공간 의왕 성 라자로 성당
의왕 오전동 모락산 자락에 성 라자로 마을이 있다. 라자로 성인의 이름을 딴 이 마을은 한센병 환우들이 치료를 받고 재활하기 위한 공동체로 생겨났다. 이름에서 풍기듯 이곳은 천주교(수원교구)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은퇴한 사제들이 여생을 묵상하며 보낼 수 있도록 조성된 사제 마을과 피정을 원하는 일반 신도를 위한 공간도 있다. 그리고 치유와 휴식이 필요한 모두에게 열린 성당, 성 라자로 마을 예수성심 성모성심 성당이 있다. 1975년 건축가 유희준이 설계했다. 성당의 앞쪽은 살짝 들려서, 푸른 숲의 물결을 헤치고 나아가려는 배의 모습같기도 하고, 푸른 물결이 솟구쳐 하얗게 포말을 일으킨 파도처럼도 보인다는 최예선 문화유산 칼럼니스트의 느낌처럼 서양 교회의 양식을 따르지 않고 자유롭게 설계됐다. 외형에서 느껴지듯 내부에서도 완만하게 상승하는 곡선으로 처리된 천장이 제단을 향해 뻗어있고 십자가상이 걸린 제대 뒤의 스테인드글라스, 거대한 바윗돌을 깎은 듯한 거칠거칠한 제대와 특별한 장식없이 말끔하게 정돈된 벽면은 간결하면서도 신실하게 다가와 묘한 공간감까지도 느낄 수 있다고 전한다. <원문링크>
일본식 다세대 주택을 개선한 초연다구박물관
알다시피 인천은 1883년 개항과 함께 일본, 중국 그리고 서양의 문물들이 끊임없이 들어와 인천의 곳곳이 채워졌다. 우리에겐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국의 문물이었지만, 인천을 찾은 이방인들에겐 모든 것이 이역만리 타국에서 고향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방인들이 들여온 문물 가운데 특히 주거 문화는 특별한 영향을 끼쳤다. 지금의 초연다구박물관도 그렇다. 건물은 1층과 2층이 나무 계단으로 이어져 있고, 2층의 높이가 1층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형태를 띠고 있다. 건물주는 "큰 도로를 향해 난 출입문을 통해 1층이 연결돼 있었고, 문을 열고 들어오면 부엌이 있었다"면서 "집 중앙에는 복도가 나 있어 큰 도로를 향해 방 3개가 나란히 나 있고, 미닫이 형태의 문이 있었다"고 리모델링 전의 모습을 설명했다. 또한 "측면으로 난 출입문을 통하면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있고, 2층에는 화장실과 방이 4개가 있었다"면서 "화장실에 맞닿은 방은 신당처럼 꾸며져 있었다"고 기사는 전한다. 기사에 따르면 이 집은 일본식 주거 형태 중 하나인 나가야(長屋) 주택 형태로 지어졌다고 한다. 나한 건물 안에 여러 가구가 밀집해 거주하는 일본식 다세대 주택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일본에서 건축역사를 전공한 재생건축 전문가 이의중 건축재생공방 대표는 "나가야 주택은 지금도 일본의 도쿄나 오사카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형태의 민가 주택"이라며 "개항과 함께 인천을 찾은 사람들의 주거 문제가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을 것이고, 넓지 않은 토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지금의 연립주택과 같은 나가야 주택이 개항장 일대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고 전하였다. <원문링크>
* 2016년 47번째 주, 편파적인 건축안내원이 편파적으로 정리한 건축뉴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