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세계 건축계를 떠들썩하게 한 소식, 바로 중국의 토종 건축가인 왕슈가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할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했다는 것이다. 세계 건축계에서 그의 이름이 거의 거론된 적이 없었거니와, 미주나 유럽의 건축가가 아닌 건축계에선 변방이라 알려진 중국의 건축가였기에 그 놀라움은 더 하였다. 주중한국문화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엄마와 건축에 부쩍 관심이 많아지고 커서 건축가가 되겠다는 큰 꿈을 가진 중학생 딸은 왕슈라는 건축가의 작품이 어떤 점에서 그토록 높이 평가를 받을 수 있었고 건축계는 왜 떠들썩해야만 했을까? 를 생각하며 건축답사여행을 떠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이 책은 시작되었다. 프리츠커 건축상의 수상으로 이제는 스타 건축가가 되었고, 각종 언론에서의 보도내용과 프리츠커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을 통해 대략적인 그의 건축을 엿들을 수 있었지만 나 또한 왕슈 건축을 실제로 들어본 적도 본 적도 없었기에 세계 건축계는 왜 그를 주목했나를 대략적으로나마 알고 싶어서 이 책을 들었다. 그리고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의 생각을 엿듣고 싶었다.
책은 크게 2부 5개 단락으로 되어있다. 1부는 왕슈 건축답사의 첫 번째 여행기로 닝보와 항저우에서의 여행기이고, 2부는 왕슈의 건축을 찾아 두 번째 여행을 떠났던 상해, 쑤저우, 난징에서의 답사기이다. 닝보박물관, 오산방, 닝보미술관, 화마오 미술관, 남송어가 박물관, 쌍산 캠퍼스, 전강시대 아파트, 상해 엑스포 닝보 텅터우 파빌리온, 쑤저우 대학 원정학원 도서관, 산허자이, 화차오 빌딩 등 그의 설계작품들이 소개되고 있으며, 첫 번째 여행 때 만난 작품들(1부)이 왕슈가 건축가로서의 자기의 위치를 굳히게 된, 성숙한 시기의 작품들이라면, 두 번째 여행(2부)에서는 비교적 초창기의 작품들로 그 중에는 대학졸업 무렵 지은 화차오 빌딩도 있다. 왕슈의 한 건축물에 대해 주변의 여건, 일반적인 건축 현황, 문헌이나 인터뷰 자료, 인터넷 등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을 엄마가 요약하여 말한 후엔 딸의 짧은 감상문으로 이어진다. 같이 공감을 했던 부분들 혹은 전혀 다른 느낌들을 서로 나누기도 하고 때론 배경지식이 없다면 조금은 이해하기 힘든 전문적인 얘기도 나눈다. 흔할 수 있는 여행기이지만 한 건축가의 건축철학과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시간적 여행을 통해, 지금의 공간환경과 도시, 개발과 보전, 인류의 삶과 문화를 무겁지 않게 다루고 있다. 무엇보다 여행기의 곳곳에 한 건축가와 그가 설계한 건축물에 대한 존경이 드러나있어 우리의 건축 현실과 비교해볼 때 부럽기까지 했다.
두 저자와 함께 떠난 왕슈 건축의 특징은 무엇보다 토속적 건축이라는 점이다. 그의 많은 설계 작품의 근저에는 중국 전통건축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최신의 공법과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는 그 주위에서 많이 접했던 재료(아마도 예전에는 쉽게 구했을 법한 재료)를 사용하였고, 무엇보다 주변과의 조화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때론 평범하고 무덤덤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웅장한 면도 있고, 친근하면서도 새롭다. 프리츠커상 심사위원장은 왕슈의 작품을 이렇게 평했다고 한다. "왕슈의 작업은 지역의 맥락에 깊이 뿌리내리면서도 보편성을 띠는, 시간을 초월하는 건축이다. 전통이냐 미래냐 하는 논쟁을 이미 초월했다." "광선의 삽입은 단조로움을 타파하는 하나의 중요한 요소다. 또한 각기 다른 재질들이 현존하면서 서로 협조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깔끔한 동선, 간략한 색조, 빛의 참여, 그림자의 투영, 사람의 미미함 ... 이 모든 것이 보는 이를 말 못할 신비감에 빠져들게 한다."
그의 수많은 건축물 중 나를 더욱 매료시킨 건축물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썅산캠퍼스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산허자이이다. 무엇보다 썅산캠퍼스에서는 내외부 파사드의 기하하학적인 패턴이 그렇고 실재로 잘 사용되고 있는지가 더 궁금한 실험가공센터 외부의 산책로처럼 둘러싸고 있는 대나무 계단이 그렇다. 또한 다종의 재료를 한 몸처럼 구축한 그 형태도 감동적이다. 산허자이는 중국 전통 가옥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13개국 24명의 세계 유명 건축가들과 함께 라오산 산림공원 내에 조성한 스팡 당대 예술구에 있는데, 언덕의 꼭대기여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라오산이라는 자연과의 관계방식, 중국 전통가옥의 지붕형식을 본뜬 우아한 곡선 등이 매력적이다. 또한 이곳을 방문하게 된다면 다른 나라의 유명 건축가들의 건축물도 볼 수 있다는 기대감까지 들게 하니, 만약 항저우와 난징을 방문할 계획이 생긴다면 이 두 곳은 꼭 살펴보아야겠다는 생각이다.
엄마와 딸 두 저자는 2번의 답사여행을 하며 왕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있는 그대로를 잘 살리면서 주위 환경에 어울리는 건축을 짓자! 그것이 왕슈의 소신이요, 그의 건축 철학이다.",
"서로 다른 소재를 유연하게 결합시키는 것은 왕슈 건축이 지닌 묘미이다.",
"왕슈의 건축물에서 벽의 존재는 내부와 외부의 분리를 위한 것이 아닌, 내부와 외부를 기이하게 얽기 위한 것으로 나타난다. 벽면은 패턴이 없는 큼지막하고 네모진 구멍들이 제멋대로 뚫려 있는 듯하지만, 신기하게도 궁극적인 조화와 일치를 나타낸다.",
"좋은 건축은 생활의 본질을 표현한다.",
"공간은 역사를 담고 있다."
여행기를 읽다 보면 저자들의 이러한 말들에 충분히 공감된다. 마지막으로 왕슈가 한국을 방문햇을 때 남긴 말을 책 속에서 재인용하여 기록해둔다. 대한민국 건축계의 자각과 발전을 위해...
"영혼이 없는 건축물이 너무 많다.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역사를 파괴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