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와 사진작가들은 이 곳을 가을에 가보기 좋은 사찰이라고 하였다. 이 사찰이 위치한 산의 단풍이 가을이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고창 선운사얘기다. 그러나 여행좀 해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곳을 초봄(4월~5월)에 가야 제격이라고 하였다. 그 때쯤 한창 만개해 있을 동백꽃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는 여기에 덧붙여 선운사에서는 동백꽃의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땅의 연륜과 인간의 체취가 함께하기 때문이라고도 하였다.
선운사 가는 길, 도솔천 2005.4
세상의 고찰들이 그렇지만 이곳에도 독특한 창건신화가 있다. 지역적으로 보면 이 곳을 백제의 사찰이라고 하는 것이 마땅한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이다. 신라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설과 백제 위덕왕 24년(577)에 고승 검단(檢旦, 黔丹)선사가 창건했다는 두 가지 설이 바로 그것이다. 신라 진흥왕이 만년에 왕위를 내주고 도솔산의 어느 굴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이때 미륵 삼존불이 바위를 가르고 나오는 꿈을 꾸고 크게 감응하여 중애사(重愛寺)를 창건함으로써 이 절의 시초를 열었다는 설이 그 하나다. 그런데 당시 이곳은 신라와 세력다툼이 치열했던 백제의 영토였기 때문에 검단선사의 창건설이 정설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한다.
선운사 가는 길, 도솔천 2005.4
검단스님의 창건과 관련해서도 여러 가지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본래 선운사의 자리는 용이 살던 큰 못이었는데 검단스님이 이 용을 몰아내고 돌을 던져 연못을 메워나가던 무렵, 마을에 눈병이 심하게 돌았다. 그런데 못에 숯을 한 가마씩 갖다 부으면 눈병이 씻은 듯이 낫곤 하여, 이를 신기하게 여긴 마을사람들이 너도나도 숯과 돌을 가져옴으로써 큰 못은 금방 메워지게 되었고 그 자리에 절을 세우니 바로 선운사의 창건이다라고 하고 있는데(http://www.seonunsa.org/ 선운사 소개)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내용과는 좀 차이가 있다. 검단스님은 "오묘한 지혜의 경계인 구름[雲]에 머무르면서 갈고 닦아 선정[禪]의 경지를 얻는다" 하여 절 이름을 '禪雲'이라 지었다고 전한다.
선운사 경내에서 바라 본 천왕문 2010.4
선운사 만세루 2005.4
선운사 만세루 2010.4
선운사 만세루,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53호이다. 백제 위덕왕 24년(577)에 검단 선사가 선운사를 짓고 남은 목재를 사용하여 지었다는 설도 있고 도 고려시대의 건물이라는 말도 전해진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건물은 19세기 말에 보수된 것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비대한 자연목을 껍질만 벗기고 다듬지 않은 채 그대로 사용하여 소박함과 함께 넉넉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선운사 대웅전 2005.4
선운사 대웅전 2005.4
선운사 대웅전, 보물 제 290호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을 한 다포계 건물로 폭은 좁고 옆으로 길쭉하게 지어졌다. 조선 시대 중엽 무렵에 세워진 건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정면은 화려하게 꾸민 반면에 배면은 비교적 간단하게 처리한 조형적 특징도 잘 보여주고 있다. 정면에는 ‘대웅보전(大雄寶殿)’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일반적으로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앙에 봉안하고 좌우에 협시불을 모신다. 그러나 선운사 대웅전은 중앙에 비로나자불을 모시고 좌우에 약사여래불과 아미타불을 봉안하여 불상과 전각의 명칭이 일치하지 않는다. 18세기 후반까지 대웅전이라 하지 않고 대법당이라 불렀던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운사 동백꽃 2005.4
선운사를 꼭 가 봐야 하는 이유 중 하나, 바로 동백이다. 수령이 500년 이상이라고 하며,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되어있다.
선운사 경내에는 동백꽃 이외에도 수선화나 튤립도 볼 수 있다. 봄이었기에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내친김에 도솔암도 가보기로 했다.
도솔암 가는 길 2010.4
도솔암 가는 길, 진흥굴 2010.4
진흥굴, 이 굴은 숭불왕으로 유명한 신라 24대 진흥왕이 부처님의 계시를 받아 당시 백제땅인 이 곳에 의운국사를 시켜 선운사를 창건케하고, 왕위를 퇴위한 후 선운사를 찾아 수도했다는 암굴이다. 또한 진흥왕은 그의 중애공주와 도솔왕비의 영생을 위해 굴 윗 산에 중애암을 그리고 만월대 밑에 도솔암을 각각 세웠다고 한다. 선운사 본당에서 서쪽으로 2km 지점에 위치한 이 굴은 길이 10m, 높이 4m의 동굴이다.
도솔암 극락보전 2010.4
도솔암은 마애미륵부처와 도솔천 내원궁에 지장보살이 주석하고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미륵, 지장 기도도량이라 한다. 정확한 창건사실은 알 수 없으나 선운사와 함께 백제 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조선후기의 도솔암은 상도솔암, 하도솔암, 북도솔암 등 세 암자로 나뉘어져 독자적인 이름을 갖게 되엇는데, 이 가운데 북도솔암이 지금의 극락보전이 있는 자리다. 1703년(숙종 29년)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2010.4
보물 1200호로 지정되어 있는 도솔암마애불. 도솔암의 서편 암벽 칠송대에 새겨진 높이 13m, 너비 3m에 이르는 거대한 마애불상이다. 전설에 의하면 백제 위덕왕(554~579)이 검단선사에게 부탁하여 암벽에 불상을 조각하고 동불암이라는 공중누각을 짓게 하였는데, 조선 영조때 무너졌다고 한다. 마애불 위쪽으로 구멍이 나 있는데 이 것이 공중누각의 흔적이라고 한다. 마애불은 고려 초기의 마애불 계통 불상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다고 하며, 조송된 이래 이 불상의 가슴 중앙에는 신기한 비결이 숨겨져 있다는 전설이 전하여, 동학농민전쟁 무렵에는 동학의 주도세력들이 현세를 구원해줄 미륵의 출현을 내세워 민심을 모으기 위해 이 비기를 꺼내가는 사건이 발상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하도솔암이 있었던 곳이다.
도솔천 내원궁 2010.4
도솔천 내원궁.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25호로 지정되 있다. 천인암이라는 험준한 바위 위에 세운 법당으로 상도솔암이라고도 한다. 거대한 바위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기단 없이 편편한 곳에 자리를 잡아 원형초석만 두었는데, 기단이 없어 건물이 낮아지므로 하인방의 높이만큼 되는 장초석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건물의 규모는 작지만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올려 안정감을 주고 있다. 고통 받는 중생을 주원한다는 지장보살을 모신 곳으로 금동지장보살좌상은 보물 제280호로 지정되어 있다. 도솔암마애불에서 이 곳에 오르려면 365계단을 올라야 한다.
올 봄 시 한 편, 노래 한 곡 들으며 선운사의 정취를 느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선운사 동구_서정주
선운사 골째기로 /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았습니다. /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선운사 동백꽃_김용택
여자에게 버림받고 /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 악물고 / 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여자 때문에 /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 / 눈물을 /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 선운사 뒤안에 가서 / 엉엉 울었다
선운사_송창식
선운사에 가신적이 있나요 / 바람불어 설운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적이 있나요 /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맘처럼 하도 슬퍼서 /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거예요
선운사에 가신적이 있나요 /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에요
선운사에서_안치환(최명미 시)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산 넘어가는 그대여 /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 영영 한참이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