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승환 지음 | 현암사 | 2022년 03월 24일 출간
도슨트와 떠나는 기분 좋은 도시 산책
익숙한 장소의 낯선 매력을 발견하는 시간
현대미술 작품은 종종 우리를 당황하게 만든다. 나름대로 그 의미를 해석해보려고 하지만 쉬이 추측하기 어렵다. 그럴 때 우리는 도슨트를 찾게 된다. 도슨트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면 작품을 둘러싼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고 이해의 폭을 훨씬 넓힐 수 있다. 우리 주변의 공간을 해석해주는 ‘스페이스 도슨트’가 있다면 어떨까? 그와 함께라면 익숙한 도시의 낯선 이야기, 낯선 건축물에 담긴 친숙한 역사를 발견하게 되어 도시 공간과 건축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스페이스 도슨트』는 이런 생각에서 출발했다.
『스페이스 도슨트』는 도시설계 전문가인 저자가 도슨트를 자청하여 자신만의 시각과 풍부한 자료를 통해 도시 공간과 건축물에 대한 독특하고 흥미로운 해석을 전하는 책이다. 저자 방승환은 일과 시간에는 도시설계 전문가로, 퇴근 이후에는 도시와 건축에 관한 글을 쓰는 작가로 살고 있다. 그동안 업계에 종사하며 모은 자료와 여러 매체에 연재한 글들을 바탕으로 재미와 깊이를 모두 잡은 스페이스 도슨트 투어를 책으로 엮었다. 각종 문헌, 설계안, 건축가들이 남긴 기록, 위성사진, 조사보고서, 법률적 부분 등 풍부하고도 순도 높은 자료들은 도슨트의 해설을 탄탄히 뒷받침하며 흥미로운 볼거리와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국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직접 촬영한 사진들로 현장감과 몰입도를 높인 것도 『스페이스 도슨트』의 큰 장점이다. 수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한 도슨트의 독특한 해석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주변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서울, 인천, 아산, 군산, 여수, 통영
국내 곳곳을 여행하는 스페이스 도슨트 투어
서울시청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2002 월드컵 당시 시청 앞의 응원 열기와 겨울을 즐기려는 스케이트장의 활기다. 그러나 그 사이에 정비된 광장의 유무라는 큰 변화가 있다는 사실을 함께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서울시청 앞 월드컵 응원은 그에 못지않은 아스팔트의 열기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으며 이후 그곳에는 잔디 광장이 조성되었다. 이 잔디 광장은 겨울이면 스케이트장으로 탈바꿈한다. 그렇다면 서울광장은 어떤 과정을 통해 잔디 광장이 되었을까? 이어서 지어진 지금의 서울시청 신청사의 첫 설계안은 어땠을까? 시청과 광장의 풍경은 설계자의 의도대로 완성되었을까? 스페이스 도슨트는 우리가 익숙한 공간을 떠올리는 사이에 자주 낯선 질문을 던지고 그에 답하는 동안 우리의 경험이 새로워지도록 돕는다.
스페이스 도슨트는 서울 외에도 다양한 장소들을 누비며 국내 곳곳의 매력을 발견한다. 자신의 땅을 지역사회에 어울리는 방향으로 바꾸고자 애쓴 한 토박이의 의지와 인더스트리얼 건축 양식이 잘 어우러진 인천의 코스모40, 공간과 건축의 상징성을 과감히 제거하고 다양한 통로와 동선으로 관람객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긴 아산의 이순신기념관, 일제강점기 수탈의 중심이었으나 건축가들의 만남과 교류, 성장과 이별이 담긴 군산의 근대건축관, 병은 아픔이지 선악의 징후가 아님을 보여준 여수의 애양원, 작은 것들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통영의 신아SB조선소 부지 등 다양한 매력을 뽐내는 18개의 투어를 마련해 독자들의 방문을 기다린다. 도슨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 가까운 곳으로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스페이스 도슨트 투어 끝에 남는 것
작은 것들을 위한 이야기
‘로비-1층-2층-카페-3층-4층-루프’로 구성돼 있는 스페이스 도슨트 투어를 마치고 나면 나만의 도시, 나만의 고향, 나만의 동네를 가지고 싶어진다. 낯섦을 발견하는 저자 특유의 시각을 따라 내 경험을 리뉴얼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으로 돌아가 도슨트처럼 생각해보자. 우리 집 근처의 골목은 어떤 형태였는지, 동네 지명은 왜 그렇게 붙여진 것인지, 입에 오르내리는 건축물은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그에 얽힌 기억이 떠올라 익숙한 공간이 새롭고 사랑스럽게 보이기 시작한다.
저자는 시민들이 도보로 와서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일반 시민, 환자, 피해자, 유명하지 않은 선교사, 지역 주민 등을 향한 따뜻한 시선은 일상의 소중함을 돌아보게 하고, 이제는 도시 공간과 건축물의 역할이 재정립되어야 할 때임을 시사한다. “우리에게 어울리는 광장이 서유럽의 광장이라고 볼 순 없지 않을까?”라는 책 속 구절에서 독자는 우리나라의 환경적, 정서적 특징을 반영하는 것이 가장 의미 있는 설계라는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일상의 공간, 지역사회와 접촉하려는 설계안, 크지 않은 규모의 건축물에 주목하는 도슨트의 이야기들은 우리 주변의 공간에 대한 관심과 그에 감사하는 마음을 떠올리게 한다. 작은 것들을 돌아보려는 도슨트의 노력은 『스페이스 도슨트』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큰 메시지일 것이다.
목차
Lobby. “반갑습니다. 스페이스 도슨트입니다.
1F
서울시청 앞 광장: 서울만의 다양성을 담다
제주 4·3평화공원: 아직 우리는 그 사건을 정의할 수 없습니다
아산 충무공 이순신기념관: 리얼리스트 이순신을 만나다
안성 미리내 성지와 103위 시성기념성당: 순교자의 별이 잠들다
2F
문화역서울284: 역사驛舍와 역사歷史의 복합문화공간
서천 봄의 마을: 주민들을 위한 도시의 사랑방
제주 유민 아르누보 콜렉션과 글라스하우스: 땅끝 두 개의 문門
여수 애양원: 병은 아픔이지 선악의 징후는 아니다
Cafe. 담양 소쇄원과 용인 알렉스 더 커피
3F
옛 남영동 대공분실: 두려움과 절망마저 삼킨 무표정한 검은 벽돌
춘천 KT&G상상마당: 어린이를 위한, 상상을 담은 비행기 날다
대구 제중원과 선교사 사택 :백성을 치료하고 근대의식을 싹틔우다
인천 코스모40: 사라진 공장과 남아 있는 40번 건물
4F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문화를 품은 동네 언덕
양구 박수근미술관과 공원: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리다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 근대 건축가들의 이야기
국립 아시아문화전당: 붉은 봄
Roof. 통영과 옛 신안SB조선소 부지: 작은 것들의 가치
주
저자 소개
[방승환]
오프라인에서 도시계획설계 전문가, 온라인에서는 도시건축 작가 Archur로 산다. 홍익대학교에서 도시계획을, 서울대학교에서 도시설계를 전공한 뒤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에 입사했다. 13년간 마스터플랜 수립, 도시설계, 개발계획 수립 업무를 하다 회사를 그만두고 『닮은 도시 다른 공간』을 썼다. 성균관대학교에서 스마트시티 전공 박사과정 중이며,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에서 국가 스마트시티 사업 중 하나인 <스마트시티 글로벌 이니셔티브 선도지원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브리크》 온라인 미디어, 금성출판사 《책나무》, 국토연구원 《월간 국토》, 《에이플래폼 건축이야기》 등 다수의 지면에 글을 싣고 있으며 이탈리아, 제주, 군산 건축캠프 리드건축가, 서울국제건축영화제 GT(Guest Talk)로 참여하면서 도시 장소와 건축 공간을 설명하는 스페이스 도슨트로 활동하고 있다.
블로그 : Archur가 해석하는 도시건축(blog.naver.com/archur)
인스타그램 : @archur1224
책 속에서
[p.10]
이 책은 이야기로 지은 미술관입니다. 공간에 대해 제가 해석한 이야기를 스페이스 도슨트가 되어 여러분들에게 들려드리기 위해 썼습니다. 물론 실제 존재하지 않는 미술관이지만 그럼에도 층으로 나뉘어 있고 중간에는 잠시 쉴 수 있는 카페도 있습니다. 각 층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 장소와, 그렇지 않지만 스페이스 도슨트로서 독자들에게 꼭 소개해드리고 싶은 장소가 함께 있습니다. 스페이스 도슨트의 안내를 통해 여러분들은 익숙한 장소의 낯선 역사를, 잘 몰랐던 장소와 관련된 친숙한 인물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 이제 곧 스페이스 도슨트의 투어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소지품은 보관소에 맡기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p.21~23]
당선작의 핵심은 2003개의 LCD모니터를 바닥에 설치하는 것이었다. 당선작을 제안한 서현은 LCD모니터를 세상과 시민들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봤다. 그리고 자신의 안을 ‘빛의 광장’이라 설명했다. 디자인 자체만 보면 빛의 광장이 보여주는 바는 별로 없었다. 광장이라는 공간의 속성이 비어 있음이듯 빛의 광장도 빈 공간 그 자체였다. 그래서 서현은 설계안 자체보다 광장의 운영 방식과 이를 통해 드러날 현대사회의 속성을 설명하려고 했다.
[p.78~79]
기념관의 의미는 남은 이들로 하여금 누군가의 삶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상징적인 형태가 중요하다.19 103위 기념성당도 103명의 성인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에게 그들의 삶을 기억하게 하는 요소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설계자는 외부에 피라미드와 오벨리스크, 내부에 고딕양식을 적용했다. 그런데 이 둘은 외부와 내부의 불일치가 심한 조합이다. 피라미드와 오벨리스크는 이집트 예술에서 나오는 양식으로 이집트인의 초점은 현세가 아닌 내세에 있었으므로 그들은 현세를 초월하려는 바람을 담아 피라미드를 올리고 오벨리스크를 세웠다. 아마도 설계자가 이 둘을 통해 드러내고 싶었던 건 ‘제의성(祭儀性)’이었던 것 같다.
[p.130]
안도 다다오가 심어놓은 또 다른 장치는 벽의 외장 처리다. 두 개의 ‘ㅁ’ 자 벽은 시멘트 블록과 노출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있고 ‘ㅇ’ 자 벽은 흰색 페인트가 매끈하게 칠해져 있다. 노출콘크리트 건물을 나온 방문객은 수평 틈 사이의 성산일출봉을 다시 마주한다. 탈맥락화된 성산일출봉은 방문객에게 궁극의 공간(-1)에서 나와 일상의 공간(+1)으로 향하는 중간계(±0)로 돌아왔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이 지점부터 일상으로 조금씩 돌아가는 또 다른 여정이 시작된다.
[p.262]
설계자의 의도대로 미술관 부 출입구를 통해 안마당으로 나왔다면 관람자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는 두 가지다. 자연의 구릉을 올라 박수근 묘로 가든지 아니면 인공의 구릉에 올라 미술관 주변 풍경을 둘러보는 것이다. 설계자가 미술관 언덕에서 관람자가 바라보길 희망한 풍경은 양구군 시내의 전경이 아니다. 설계 자는 양구군을 둘러싼 자연의 풍경을 관람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은 박수근이 21세(1935)에 춘천으로 떠나기 전까지 바라봤던 풍경이다. 미술관 주변의 경치는 박수근과 우리를 이어주는 일종의 타임머신이다. 상상력이 있다면 그 타임머신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생가라는 자리만이 가질 수 있는 이점이다.
[p.290]
코스모40의 신축 건물은 기존 건물을 넘나들며 순환 동선을 이룬다. 바깥에 설치된 계단을 통해 3층 코스모 라운지로 오른 뒤 두 개의 홀을 거쳐 다시 1층으로 내려올 수도 있고 코스모 라운지에서 신축 건물로 바로 이동할 수도 있으며, 그 중간에 테라스로 나갈 수도 있다. 이러한 선택 과정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기존 건물과 신축 건물이 각각 다르다. 신축 건물이 산업시대의 모던함과 산업화로 누리게 된 삶의 윤택함을 떠오르게 한다면, 기존 건물은 새로운 산업혁명에 자리를 내준 기계시대의 퇴조와 산업화의 처연함으로 다가온다.
[p.312~323]
신아SB조선소의 거대한 두 장치를 보면서 이 땅에서 작은 것들의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러다 일행에 뒤처졌습니다. 걸음을 재촉하는데 앞서가는 두 근로자의 뒷모습이 보였습니다. 우리를 안내해준 두 근로자는 통영에서 태어나 통영에서 자라 통영 최고의 직장이었던 신아SB에서 일했습니다. 하지만 회사가 정리되는 과정에서 LH 소속으로 옮겨 이제는 조선소 부지를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두 근로자의 딱 벌어진 어깨는 조선소에서 육체노동으로 단련된 시간을 담고 있었습니다. 순간 저 근로자들의 기억이 이 땅이 가지고 있는 작은 것들의 진정한 의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