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3일 제20대 국회의원선거가 있었다. 우리는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과 지지정당을 각각 투표했다. 지지정당 득표수에 따라 각 정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수가 정해지는데, 흥미로운건 각 정당의 비례대표 1번이 모두 과학자 또는 수학자였다. 새누리당은 사물인터넷과 클라우드 기술 전문가 송희경, 더불어민주당은 홍익대학교 수학과 교수 박경미 그리고 국민의당은 표준과학연구원장 출신의 신용현이었다. 여기에 더해 세 분 모두 여성이었다. 각 당이 비례대표 의원을 선정하는 -비록 표면적이라 하더라도- 기준은 분명 있었다. 하지만 각 정당의 비례대표의원 그것도 1번을 배정받은 의원들의 면면이 각 정당이 국민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Message의 일부를 드러낸다고 생각해보면 세 정당이 추구하는 바가 이렇게 유사하다는건 조금 한심하다. 더불어 그만큼 우리 사회는 비례대표 1번으로 과학자, 여기에 여성 과학자들을 내세워도 이견이 적은 사회라고 볼 수도 있다. 이견이 적다는 건 여성과 과학에 대한 정책을 정당이 내는 것에 대한 반발이 적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 나라의 과학발전과 여권신장은 지속되어야할 정책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위 사진은 대표적인 여성과학자 마리퀴리).
4월 21일은 '과학의 날'이다. 정부 주관부처는 현재 미래창조과학부로 그 다음날(22일)이 '정보통신의 날'인 점을 감안하여 기념식을 같이 한다. 올해(2016년)가 제49회이니까 1968년에 지정됐다. 그럼 지정일인 4월 21일은 어떤 날일까? 1967년 4월 21일에 '과학기술처'가 발족했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음... 당시는 박정희 정권 시절이니 모든게 정부 주도였던 것 같다. 하지만 한 나라의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사회에 알리고 과학의 대중화를 촉진하기 위한 날'이라는 취지에 걸맞지 않게 지정일 사유는 부처 발족일이다. 장영실(위 사진)이나 옛 선조들의 발명품과 관련된 날짜도 많을텐데... 뭐 비단 기념일 지정 사유 뿐이겠는가? 과학을 위한 공간에서도 그 시대에 상관없이 우리는 관주도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 김수근(1969)
'과학의 날'의 기원이 된 '과학기술처'가 발족되기 2년 전인 1965년 5월 18일, 박정희 대통령과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Lyndon Jonhson은 '한국의 공업기술 및 응용과학연구소 설립에 관한 한미 양국 대통령의 공동성명'을 발표한다. 그리고 그 후속 조치로 '한국 최초의 연구단지'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를 성북구 하월곡동에 설립했다(지금도 KIST본관내 강당이름은 'Johnson강당'이다). 연구단 조성을 위한 사업비는 한미 양국이 공동으로 $5,000,000을 출자했다고 한다. 1960년대 환율이 약 200원대였으니 당시 기준으로 10억대 사업이었던 셈이다. 참고로 1962년 6월 완공된 제2한강교(현 양화대교)의 완공당시 건설비가 5억 1,242만원이었으니 KIST 조성사업은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의 관심을 끌만한 Project였다.
'한국 최초의 연구단지 건설'이라는 명분으로 인해 정치인의 관심이 쏠렸던 Project이니 진행이 원만할리 없었다. 단지 조성을 위한 한국과 미국간의 업무분장은 미국측에서 기획과 자문을 맡고 한국에서 실제적인 진행을 맡았다고 한다. 업체는 미국은 Bechtel社, 한국은 당시 김수근이 속해 있었던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와 무애건축연구소였다. 국내업체 사이에서의 업무분장은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가 본관과 APT, 무애건축연구소가 Masterplan과 연구동, 영빈관 설계로 나누었다. 정인하가 쓴 '김수근 건축론, 한국건축의 새로운 이념형'을 보면 건축물 설계의 순서는 Masterplan 수립 후 연구동 쪽이 먼저 이루어졌고 본관은 연구동보다는 나중에 지어지게 됐다고 한다. 결국 본관 설계는 Masterplan상에서 제시된 사항들과 먼저 설계된 연구동 건물의 배치를 따라야 했다.
개원후 KIST단지의 공간적 변화가 있었겠지만 1967년 수립된 Masterplan(아래도면)을 보면 크게 바뀐 부분은 없는 것 같다. 천장산 서쪽 기슭에 배치된 KIST단지는 연구시설이 단지 서쪽까지 밀고 들어온 시가지에서 한켜 물러나 동쪽영역에 남북으로 일직선을 형성하며 배치돼 있다(위 위성사진). 1967년 Masterplan 상에서는 총 3동의 연구시설 -왼쪽에서부터 Research Building(L4)-Fabrication Building(L3)-Research Building(L2)- 이 계획돼 있었고 그 동쪽에 Central Utilities Building이 배치돼 있었다(아래 도면에서 11번 건물). 그 외 북쪽(왼쪽)으로 한 동(L5) 남쪽(오른쪽)으로 두 동(L1)이 확장될 수 있다는 의미를 담은 점선이 건축물의 외곽선을 잡고 있다. 현재 단지 동쪽영역에는 당시 Masterplan에서 제시된 것과 비슷하게 L2 남쪽으로 L1 한 동이 두개의 Mass로 나뉘어 있다(위 위성사진에서 가장 아래쪽 건물). L4 북쪽으로는 L5(삼우설계 2009년 재건축)가 들어서 있고 L5 북쪽과 동쪽으로 1967년 Masterplan에는 없던 건축물들이 배치돼 있다. L5 북쪽에 있는 건물은 KIST 초청정 연구동으로 삼성엔지니어링과 배가건축이 설계했다(1998, 연면적 6,655㎡).
KIST단지 동쪽영역의 연구시설들과 마주보고 있는 서쪽영역에는 가운데 숲을 두고 북쪽에 APT나 기숙사 시설이, 남쪽에 본관이 배치돼 있다. 본관과 연구시설은 Fabrication Building(L3)과 Research Building(L2)사이에서 시작되는 Bridge가 건립기념비와 국기게양대가 있는 Connecting Plaza에서 한번 꺾여 연결된다(아래사진). 연구시설과 본관의 배치만 놓고 보면 KIST단지는 동서가 비대칭이다. 물론 KIST 완공당시(1966년) 주변 상황이 지금과 같지는 않았겠지만 단지 서쪽 경계를 형성하는 화랑로14길이나 이보다 더 서쪽에 있는 월곡로와 연구시설 사이에 숲이라는 완충공간을 두고 있는건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시설의 보안문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1967년 Masterplan과 현재 KIST단지에서 주목한 부분은 접근동선이었다. 1967년 Masterplan을 보면 단지의 주출입구는 본관과 연구시설 사이를 남북으로 지나는 도로 남쪽에 있었다(도면에서 가장 오른쪽). 1967년 Masterplan은 이 부분에 '5. Main approach'라고 Labeling도 해놨다. 현재도 이쪽 방향에 출입구가 있기는 있다. 이 출입구를 통해 남쪽으로 내려가면 국립산림과학원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현재 KIST의 주출입구는 1967년 Masterplan에서 본관 서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 APT와 기숙시설을 연결하는 왕복2차로의 도로를 따라 600m 올라가야 있다. 주 접근동선이 바뀌면서 KIST단지로 들어오는 사람은 원안에서 선형으로 쭉 뻗은 연구시설(오른쪽)과 그 반대편에 조형적으로 만들어진 본관(왼쪽) 그리고 그 사이로 쭉 뻗은 단지내 중심도로(가운데)가 만들어내는 장면이 아닌 본관 구석으로 슬쩍 들어오는 경험을 해야 한다.
사실 내 생각으로는 1967년 Masterplan에서 제시된 '5. Main approach'보다 본관 남쪽을 동서로 지나는 도로를 통해 화랑로 14길부터 동쪽으로 짧게 들어오는 동선이 주 접근로로 가장 적당한것 같다. 1967년 Masterplan에서도 이 동선이 표시는 돼 있다(본관 오른쪽에서 아래로 향하는 도로). 그런데 그 끝이 뭔가 더 있는데 표현하기는 뭐하다는 식으로 뚝 짤려 있다. 현재 이 부분에는 S건설사 아파트 단지가 2007년부터 들어서 있다. 그 이전의 흔적은 S건설사 아파트 단지 북쪽에 있는 밀도 높은 개량형 한옥에서 찾을 수 있다.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주변의 어수선함으로 단지의 주출입구를 그리기가 뭐했던것 같다.
2010년 승효상&이로재가 'KIST Masterplan 및 L4연구동 재건축' 설계자로 선정되었다. Masterplan 수정을 담당한 승효상은 1967년 제시된 Masterplan을 변형시키지 않고 그대로 유지했다. 손댈 곳이 없다는게 그의 결론이었다. 이런 결정의 배경에는 KIST가 확장을 하기에는 쉽지 않은 주변여건을 가지고 있다는 상황과 승효상 자신이 스승의 작업을 건드리는 부담스러운 결정을 하기에는 힘들었을 것이란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어찌됐든 승효상은 2010 Masterplan에서 김수근의 건축언어가 가장 많이 담긴 본관은 보존하고 연구동은 단계적으로 재건축하며, KIST단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공간은 본관 남쪽 잔디광장 지하(아래 조감도)를 활용해서 충당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등록문화재인 KIST 본관동은 지금도 그 구성이 매우 현대적인 건물이다. 그 자체로 훌륭한 건축이지만 Masterplan을 살펴보면 건물만이 아니라 건물과 외부 공간에 주목하게 된다. Masterplan 원안의 가치는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때문에 연구 공간을 확충하기 위해 본관동 앞 잔디광장을 단순히 빈 땅으로 보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다면 그 빈 공간이 갖는 아름다운 풍경이 사라지게 된다. 나는 훗날에도 그 공간에 건물 짓는 것을 막고자 정원 지하에 건축을 하자고 제안했다. Masterplan 원안은 연구시설의 성장 단계를 고려해 성장방향을 연구동들이 나열된 남북 방향 Main 축과 잔디광장 쪽 동서 방향 Sub축으로 설정해 놓았다. 이에 따라 부족한 시설 면적 확보를 위해 Main 축을 따라 나열된 기존 연구동과 Sub축 상의 잔디광장 아래 지하공간을 통합해 활용했다. 기존 연구동은 굉장히 오래되고 구조적으로 위험해 허물어야 했다. 따라서 건물을 같은 위치에 새로 짓되 기존 건물의 공간적 조직을 유지했다."
-Words from 승효상, SPACE2010.02.(507)-
KIST 본관은 마치 바람개비 처럼 네면이 모두 동일한 형태를 하고 있다. 한쪽 방향의 Module(사무영역)이 네 방향으로 동일하게 반복된 ㅁ자 평면으로, 중정이라 할 수 있는 가운데 공간 1층에 강당이 배치돼 있다(김수근은 처음 이 부분에 Atrium을 두려 했다고 한다). 반복된 4개의 입면은 윗부분이 아랫부분보다 크고 돌출돼 있어 강한 Mass감이 느껴진다. 부피가 큰 상층부 Mass를 받치고 있는 구조체는 입면에서 돌출돼 있고 수직수평으로 잘 조직돼 있음으로 인해 System적인 의미가 강하게 읽힌다. 동일한 네 면에서 본관 주출입구가 있는 동쪽입면에는 구인회씨 댁에서 구조적으로 반복되는 Balcony형태의 Canopy가 설치돼 있다(위 사진). 그리고 벽체의 유리입면 부분이 다른 방향의 입면보다 더 넓다. 그래서 외부로 돌출된 구조체가 유리입면을 정교하게 통과해서 Lobby까지 이어진다. 김수근의 치밀한 Detail 처리를 볼 수 있는 장면이다(아래사진).
'김수근 건축론, 한국건축의 새로운 이념형, 정인하'를 보면 현재 KIST본관의 모습은 김수근이 구상한 원안이 아니다. 초기 작업에서 김수근은 '건축주 측에서 제시한 기능적인 요구들, 즉 연구활동을 지원하게될 Computer실과 도서실, 연구소 Community 기능을 담당하게 될 강당과 식당, 그리고 사무실 기능을 효율적으로 구성하라는 요구들을 충분히 분석한 다음, 이것을 구조적인 System과 연관'시키려 했다고 한다. 그래서 초기 안은 사무실 영역과 Service Structure를 분리하여 구조적 역할을 하는 내력벽을 만들고, Office는 그것에 의해서 분리된 공간으로 설계했었다. 하지만 정치세력이 건축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벌어지는 현상이 늘 그렇듯 김수근의 원안은 정치세력이 가지고 있는 공간을 보는 눈과 수준이 맞지 않았다. 그들은 보다 즉각적인걸 원했다. 정말 청와대측의 뜻이었는지 아니면 공사를 총괄한 공병대령 개인의 취향이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공사를 총괄한 공병대령은 청와대측의 뜻임을 강조하며, 본관 건물에 한옥지붕을 씌워서 본관으로서의 기념비적인 성격을 표출하기를 요구했다'고 한다. KIST본관 보다 5년 앞선 1964년에 대형 국책사업인 자유센터를 수행한 김수근은 정치적 자신감으로 자신의 설계를 밀어붙였지만 그래도 초기의 계획안에 수정을 가했다고 한다. 결국 원안의 수정을 통해 'System적인 성격에 기념비적이고 권위적인 면이 부가되어 지금의 형태가 나오게 됐다.' Mass감 있게 처리된 건물 상부는 김수근이 한옥지붕 대신 택한 본관의 기념비적인 성격 표출의 방법인 셈이다.
국립과천과학관 / Terry Farrells+삼우설계(2008)
KIST완공 후 39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2008년, '정부와 경기도가 21세기 첨단지식 기반 사회 구축을 위한 범국민적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 제고와 과학기술에 대한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과학기술문화기반 조성을 설립할 목적'으로 국립과천과학관을 준공했다(-한국뮤지엄건축100년, 서상우&이성훈-). 과천-의왕간 고속화도로가 동측으로 꺾이는 상아벌지하차도(대공원IC) 동쪽, 서울대공원의 광활한 주차장 북서쪽에 위치한 국립과천과학관 대지(대지면적 245,189㎡)는 과천-의왕간 고속화도로(W)-경마공원대로(N)-대공원광장로(E)-대공원대로(S)로 둘러싸인 오각형 평면의 형태를 하고 있다. 설계자는 인위적인 남북배치가 아닌 기존부터 있던 지하철4호선 대공원역 5번출구가 있는, 대지의 남남동쪽 방향을 축의 시작으로 잡고 양쪽의 대지 선형(동쪽은 대공원광장로, 서쪽은 대공원대로)을 따라 과학관 Mass의 선형을 잡았다. 결국 대공원역-진입광장(과학광장)-과학관-천체투영관으로 이어지는 축을 중심으로 대칭된 Mass를 대지의 형태를 비빌언덕으로 생각하고 뽑아낸 것이다.
나의 해석이 틀릴 수도 있지만 하얀 백지에서 지금 과학관과 같은 유선형의 Mass를 그려냈다고 생각하기란 빈 공간에 두개의 직선이 우연히 만나는 것보다 가능성이 더 낮은 얘기다. 결국 건축물이 들어설 대지가 지닌 Context 하나하나가 건축가에게 비빌 언덕이 됐다고 생각하는게 훨씬 현실적이다. 어찌됐든 설계자가 만들어낸 형태를 대중이나 전문가 집단(심사위원들)에게 추상적으로 Appeal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형태를 뽑아내게 된 Design Process 하나하나를 설명하다 보면 Presentation 제한시간이 다 돼 질의응답으로 넘어가 버릴 것이다. 결국 설계자는 자신이 뽑아낸 형태를 한마디로 설명해 줄 구상적인 Image를 필요로 하게 된다. 그리고 그 Image가 그 건축물이 담아낼 Program과 맞아 떨어진다면 Appeal 전략은 어느 정도 완성됐다고 볼 수 있다. 국립과천과학관이 찾은 Image는 평면상으로는 성운을 의미하는 'Nebula', 혹은 '눈(Eye)'이 됐고 3차원적으로는 '비행기', '우주선'이 였다.
"국립과학관은 'Touching the Universe'라는 화두로 건축에서 과학을 통해 우주로, 미래로 펼쳐지는 인류의 Vision을 보이고자 하였다. 과학 기술의 끝없는 도전과 탐구 정신, 그리고 도약을 형상화하기로 하고 첨단 비행체가 우주를 항해 솟아오르려는 비상의 순간으로 이 구상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첨단 비행체를 Motive로 한 과학관 건물의 유선형 형태에 전면으로 기울어진 Facade를 결합해 과학 발전의 역동성을 과감히 표현하였다. 과학관의 눈을 상징하는 천체관을 중심으로 배치해 상징적 중심축을 형성하였다. 인위적인 남북축 배치를 지양하고, 대지에 순응하는 배치로 주변 산세, 도시 여건과 자연스러운 조화를 꾀하였다."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Brochuer에서-
Turnkey방식으로 삼성Consortium(설계사: 삼우, 공간, 건설사: 삼성, 대동, 코오롱)이 선정됐다. 상대는 대림Consortium(설계사: 희림, 정림, 건설사: 대림, 현대산업개발, 동부)이었다. 국립과천과학관을 둘러보면서 시설규모(연면적 : 49,582㎡, B1~3F, 전시면적 18,699㎡)면에서나, 우리나라 최초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공동으로 약 4,500억원을 투입하여 건립한 취지면에서나 나름 내세울 만한 건축물 치고는 좀 지루하고 밋밋하단 느낌이 들었다. 이런 저런 공간의 부분부분을 얘기하기 전에 -이런 부분은 잘 모름으로- 일단 건축물 Mass 전체에 대한 얘기를 해보면 낮게 깔린 Mass의 비례가 좀 어색하단 느낌이 든다. 과학관의 Image로 든 비행기를 예로 들어보면 뭔가 바람의 저항을 고려해서 유선형으로 잘 빠진 Mass 형태라기 보다는 어떤 사례를 따라하려다만 느낌이라고나 할까? 자동차로 얘기하면 신차를 설계하기는 했는데 기존 차체를 사용해서 비례가 깨진 느낌이랄까? 왜 이런 느낌이 드는걸까?
우선 Turnkey때 제출한 배치도(폭 400m, 높이 38m)와 현재 완공된 위성사진을 같은 Scale로 놓고 보면(높이 33.3m), 과학관 Mass의 폭이 짧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위 두사진). 정확한 수치는 도면을 확인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대략 위성사진에서 재보면 서쪽은 35m, 동쪽은 25m가량 짧아졌다. Mass가 좌우대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략 좌우 30m, 총 60m 가량이 짧아진 것이다. 물론, 기본설계대로 건축물이 실제 지어지는게 더 이상할 정도로 발주처의 요구에 의한 설계변경은 당연한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글 처음에서 언급했듯이 과천국립과학관이 대지의 형상을 비빌언덕으로 Mass가 그려졌다는데 있다. 이 경우 대개 그 Mass는 정형적인 기하학적 평면을 갖기 보다는 이형적인 평면을 갖게 된다. 국립과천과학관도 'Nebula', '눈', '비행기'의 Image를 떠올리도록 유도해서 그렇지 Mass자체만 놓고 보면 이형적인 평면이다. 이런 이형적인 평면의 Mass 형태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일까? 주관적인 기준 같지만 그건 '설계자의 감각'이다. 선을 그리는 설계자가 -정확하게 얘기하면 수많은 설계실무로 쌓인 내공을 가지고 있는 설계자의 눈과 손- 적당한 길이와 적당한 각도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그려진 Mass를 향해 '왜 폭이 300m가 아니라 321m입니까? 왜 45도가 아니라 42.2도 입니까?'라는 질문을 하면 설계자는 '그냥 이게 적당하다고 내 손이 결정했으니까요'라는 답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국립과천과학관은 평면 뿐만 아니라 전면으로 기울어진 입면 기울기, 지붕이 점차 쳐져 내려오는 각도, 양쪽 Mass가 가운데에서 꺾여진 정도, 평면적으로 가운데에서 끝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정도 등 모든게 설계자의 감각으로 결정된 그리고 그 모든게 '적당하게' 어울려 하나의 3차원적 Mass를 만들어낸 'Holistic Composition'이다. 이러한 과정으로 결정된 Mass는 어느 한 곳에 변화를 주면 그에 따라 다른 모든 부분에도 그 적당함을 찾는 과정이 따라야 한다. Frank Gehry가 설계한 Disney Concert Hall의 규모를 1/10 줄인다고 가정했을때 이에 대응하여 Frank Gehry가 그 전체적인 구불어짐을 지금의 형태에서 1/10 줄인다고 지금과 같은 느낌이 날까? 아마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다른 Mass의 형태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Holistic Composition한 Mass로 설계된 건축물은 작은 부분의 변경에 따라 하나의 요소만 바꾸면 끝나는 건축물 Mass가 절대 아니다.
Mass의 규모가 쪼그라들었어도 -줄어들었다는 표현보다는 이 표현이 국립과천과학관의 Mass 변화를 표현하는데 더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대칭된 Mass에 그 중심을 '서울대공원역-과학광장-과학관 Atrium-천체투영관(내부직경 25m의 Dome구조)-천체관측소-노천극장'으로 이어지는 축에 둔다는 개념은 유지됐기에 과학관 건물 정면이나 북쪽 입구로 나와 천체투영관 앞에서 보는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은것 같다. 하지만 그 두 장면 사이에 공간인 과학관 Atrium의 공간감(아래사진)은 뭔가 좀 부족하단 느낌을 들게 한다. 여기에도 앞서 과학관 Mass전체에서 느낀 것과 같은 이유가 있다.
기본설계당시 설계자는 지하철에서 Deck를 따라 과학관 2층을 진입하는 Section을 제안했다. 그리고 그 Deck 아래, 즉 과학관 전면에 주차장을 두고 후면을 옥외공간으로 100% 활용토록 했다. 전면 주차장이야 건물 전면에 상징성 및 광장의 휴게 공간화를 위해 후면으로 이동시킨 조정은 타당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부분도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과 같이 도시광장으로서 충분히 기능할 수 있는 공간은 뭔가로 채워 공원화 시켜놓고 과학광장 처럼 시설물의 전면광장 이 외의 기능을 상상하기 힘든 공간은 '광장' 본래의 취지대로 비워놓는, 상황에 맞지 않는 전략을 전개시키는 걸 보면 좀 웃기긴하다. 어찌됐든 과학관 2층으로 Deck를 통해 들어오는 설계자의 제안은 실시설계때 대지 Level을 따라 1층으로 접근하는 안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렇게 함으로서 3층 높이의 Lobby Hall에서의 공간감이 좀 이상하게 됐다.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현재 Lobby에서의 느낌은 '그냥 높다'가 전부다. 동선의 중심으로서의 분주함이다. 관람자들의 이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라는 느낌은 없다. 이는 1층에 선 관찰자의 눈이 Lobby Hall을 보는 순간 위쪽 방향으로만 이동하기 때문이다. 즉, 한 눈에 공간을 인식하는 범위에서 아래는 없고 윗 공간만 있는 것이다. 비록 부분투시도이기는 하지만 Turnkey때 제안한 설계자의 Image를 보면 2층으로 접근한 관찰자의 눈은 Lobby Hall을 보는 순간 위와 아래 방향으로 계속 이동한다. 즉, 한 눈에 공간을 인식하는 범위가 위 뿐만 아니라 아래로도 넓어지는 것이다.
원안에서 2층은 Upper Hub로 주 진입로를 받는 Lobby Hall로 쓰이고 1층은 Lower Hub로 모든 전시실을 방사형으로 연결하는 동선의 중심이 됨으로서 두개 층에서 이동을 포함한 사람들의 행위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된다. 더하여 설계자는 이 두개층을 연결하는 Escalator를 Void 공간에 두어 분주함을 더했다. 현재 1~2층을 연결하는 Escalator는 Void공간 양쪽으로 조용히 물러나 붙어있어 마치 백화점에 놓여있는것 같다. 이 외 입면변화 등 아무리 생각해도 난 실시설계로 지어진 지금의 모습보다는 처음 설계자가 제안한 모습이 더 괜찮다고 생각한다. 해석과 입장의 문제일 수도 있기에 '국립과천과학관 건립지'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인용해 보도록 하겠다. 판단은 글을 읽고 공간을 직접 방문한 사람들의 몫이다.
"(기본설계에서 실시설계로 이행시) 설계자문위원회의 설계개선 내용
① 주 진입로를 2층으로 계획. 대지 Level차를 이용한 공용공간의 이원화를 통하여 수직적 영역구분. Upper Hub 공간을 Lobby Hall로 쓰고 Lower Hub 공간을 중심으로 전시실을 방사형으로 배치하여 선택적 관람동선 제공.
⇒ 과학관 전면 광장을 평지화하고 주진입로를 1층으로 조성 이에 따라 1,2층 Open공간을 확대하여 개방감을 높이고 중앙홀 양쪽의 경사진 벽면에 의한 High-tech한 Image창출. 2층 전시중앙홀 면적 증가로 인한 과학관 후면(옥외전시장 쪽) 개방감 확대.
② 주차장을 1층에 두고 전면광장을 Deck로 상부에 둠
⇒ 주차장을 건물 후면에 배치하고 전면부는 휴게공간화
③ 입면계획은 수직성강조, 주 진입로를 2층에 배치함에 따라 수직적 개념 강조
⇒ 주 진입동선을 1층으로 변경함에 따라 수평적 개념을 강조"
-국립과천과학관 건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