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 입장에서 요새는 아이를 데리고 갈 곳이 참 많다. 집 주변에 수많은 Kids Cafe 뿐만 아니라 여러 캐릭터를 활용한 다양한 실내놀이공간 그리고 직업 등 간접체험이 가능한 시설까지. 굳이 Everland나 Lotte world 등 Theme park을 가지 않더라도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많다. 여기에 지자체들이 앞다투어 건설한 '어린이'라는 단어가 붙은 전시 및 문화시설과 도서관 등도 상당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매해 발간하는 '2015년 전국문화기반시설 총람'에 따르면 전국 809개 박물관 중에서 '어린이'라는 단어가 붙은 시설은 총 4개 -경기도어린이박물관(Studio Schiatarella+이상은&예탑, 2011, 아래사진), 인천어린이박물관, 아해한국전통문화어린이박물관(2011), 인천어린이과학관(해안건축, 2011)- 이고 여기에 '서울상상나라(김상길&ATEC, 2013)'가 더 있다. 이 중 가장 오래된 시설은 인천어린이박물관으로 2005년 5월 5일 개관했다. 참고로 전국 930여개 공공도서관 중에서 어린이도서관은 총 70여개로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이 가장 오래됐다(1979년).
내가 어릴 적이었던 때를 생각해 보면 아버지가 아이들을 데리고 갈 만한 곳이 별로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은 그렇다치고 지방에 '국립'자가 붙은 박물관이 지어진 시기는 1975년 이후였다. 그해 부여박물관과 경주박물관이 국립으로 승격됐다. 이후 광주국립박물관(1978년), 진주국립박물관(1984년), 청주국립박물관(1987년) 등이 개관했다. '국립'이 아닌 '우리나라 최초로 개관한 공립박물관'이라는 Title은 인천시립박물관이 가지고 있다. 인천시립박물관이 개관한 시기는 1946년 4월 1일이다. 하지만 공공이 설립한 문화 및 전시시설이 폭발적으로 지어진 시기는 2000년 이후다. 그러니 해방후 '어린이'를 위한 문화 및 전시시설은 전무했다 봐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이날'을 지정해서 그날 만이라도 몇몇 시설을 어린이들을 위해 할애하자는 생각을 할만한 때였다. 그런시기에 어린이를 위한 공원이 1973년 5월 5일, 역시 어린이날에 맞춰 개장했다.
어린이대공원이 있는 서울특별시 광진구 능동 18번지 일대는 조선의 마지막(제27대) 왕인 순종의 妃인 순명황후 민씨의 능이 모셔져 있었던 곳이다. 하지만 1926년 일본인들은 순명황후의 능을 남양주(유릉)로 옮기고 그 자리에 일본인 관리들과 사업가들을 위한 골프장으로 조성했다. 해방 후에도 이 땅은 여전히 '서울 Country Club'이라는 골프장이었다. 1958년 최초의 오픈골프선수권 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단다. 하지만 이 골프장은 제대로 된 Clubhouse시설이 없어서 건축가 나상진 설계로 1968년에 시설을 완공했다. 하지만 Clubhouse가 완공된지 2년이 지난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이 골프장을 옮기고 어린이를 위한 공원으로 조성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당시 서울 Country Club의 면적은 700,885㎡였다(현재는 530,000㎡). 골프장을 어린이 공원으로 바꾸는 기본계획은 당시 홍익대학교 교수였던 나상기가 맡았다(1971년).
서울 Country Club이 폐쇄된 시기는 1972년 8월 28일이었고 같은해 11월 조성사업을 위한 기공식이 열렸다. 개장은 앞서 얘기했듯이 1973년 5월 5일. 나상기가 설계한 Clubhouse는 '교양관'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교양관'. 왠지 대학 Campus 내에 있어야할 것 같은 건물의 명칭이다. 뭐 대학 Campus내에 있는 '교양관'이라면 '교양과목을 강의하는 공간'이라 생각하면 되겠지만 어린이대공원내 교양관의 목적은 그 시작부터 성격이 모호했다. 게다가 어린이대공원을 만들어준 세대가 교양이라는 것을 배워본적도 없지 않은가? 시설이 있어야할 목적이 모호하니 건물은 계속 새로운 Program을 담기 위해 변경됐다. 그리고 그때마다 공간의 모습은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변했다. 교양관은 식당, 전시공간, 관리사무소 등으로 바뀌었다.
2008년 12월 29일 서울시 푸른도시국은 '교양관 Remodeling 기술 용역 타당성 심사'를 실시했다. 완공후 40년간 건축물에 가해진 변화를 정리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푸른도시국이 생각한 Program을 담기에는 교양관의 기존 규모가 너무 컸다. 이듬해(2009년) 1월, '어린이대공원 교양관 Remodeling 공사 설계 용역(2009.3.3~2010.10.15)'이 발주됐다. 용역을 수주한 회사는 (주)알파오메가종합건축사사무소 外 2개 회사. 용역이 진행되던 중 그해 7월, 푸른도시국은 교양관 Remodeling에 따른 타당성을 재검토하고 추진 방향을 재고했다. 그리고 다음달인 2009년 8월, 교양관 건립계획을 Remodeling에서 신축으로 변경했다. 푸른도시국이 어린이대공원 관리사무소 용도로 필요했던 시설은 작았기 때문에 Remodeling 비용이나 신축비용이나 비슷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푸른도시국의 신축 결정을 10월 말 서울시디자인심의를 열어 검토했다. 그런데 이 심의에서 교양관을 Remodeling해서 근대건축 문화적 자산으로 남기자는 권고가 나왔다. 푸른도시국의 방향이 원안대로 재변경된 것이다. 하지만 푸른도시국은 신축과 Remodeling 결정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체됐고 그 결과 연내 발주를 위해 신축공사로 12월 9일 발주했다. 낙찰자는 우이종합건설(주)외 1개 회사.
교양관의 운명은 신축으로 결정된 것 같았다. 적어도 2009년까지는 그래 보였다. 그런데 2010년이 되자 상황이 바뀌었다. 푸른도시국 산하 동부푸른도시사업소가 2009년 10월 서울시디자인심의 결과에 따라 교양관 Remodeling 계획을 다시 검토했다. 1월 19일에 교양관 Remodeling 관련 전문가 현장 자문이 실시됐고 교양관을 신축이 아닌 Remodeling으로 변경하자는 의견이 다시 전달됐다. 당연히 준공시기는 연기됐고 공사기간도 연장됐다. 2010년 3월에는 교양관 Remodeling사업계획을 푸른도시국에서 동부푸른도시사업소로 이관했다. 기본계획 재수립이 필요했고 재수립 이전(2010.06.11)까지 실시설계는 중단됐다. 2010년 3월 26일 3개월도 채 안되는 용역기간이었지만 '어린이대공원 교양관 Remodeling 공사 기본계획 용역'이 발주됐다. 낙찰자는 (주)건축사사무소 조성룡도시건축. 그런데 이런 작업은 대게 적절한 보수가 따르지 않는다. System이 그렇게 만든다. 조성룡도시건축이 '기본계획 용역'을 수행하려면 수의계약을 해야 하는데, 관 발주 수의계약 용역비의 한계는 3,000만원이다.
사업구도에서도 좀 모순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기존 설계자로 (주)알파오메가건축이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기본계획 설계자로 조성룡도시건축이 나중에 정해졌기 때문이다. (주)알파오메가건축 입장에서 조성룡도시건축은 굴러온 돌이 될테고 조성룡도시건축 입장에서는 그들이 제시하는 Idea나 Concept이 기본계획 수준에서 머무는, 그래서 실시계획 시에는 변경될 여지가 충분해 보였다. 한지붕 두가족이 됐든 세가족이 됐든 용역은 완료되는 법. 2010년 6월 30일 조성룡도시건축은 기본계획 용역을 완료한다. 아니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달인 7월 9일 동부푸른도시사업소는 (주)알파오메가건축에게 실시설계 재개를 요청했다. 실시설계는 3달 후인 10월 15일에 완료됐다. 앞서 언급한 기본계획 수립과 실시설계 수립자의 상이함과 기간의 어긋남을 극복하기 위해 2010년 10월부터 완공예정일인 2011년 4월까지 기본계획 설계자의 의도가 충분히 반영된 공사 진행을 위해 기술지도위원이라는, 지금까지 일반적인 건축과정 상에서는 없었던 직책이 생겼다. 그리고 그 직책에 기본설계자 조성룡과 최춘웅(고려대학교 건축학과 교수)이 임명됐다. 기본계획을 수립한 조성룡도시건축 실무 담당자가 공사감리를 위해 현장에 상주하기도 했다. 지금도 '꿈마루'라는 건축물에서 조성룡이 맡은 공식적인 직책은 '기본계획 및 현장기술지도자문'이다. 2011년 4월 15일, 교양관은 공모한 시설명인 '꿈마루'라는 이름을 새로 달게 됐다. '꿈마루'는 '어린이들의 꿈이 넘쳐나는 공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러한 땅과 건축물이 가지고 있는 역사로 인해 조성룡의 꿈마루 작업은 어린이대공원 교양관 그리고 그 이전 서울 Country Clubhouse라는 과거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꿈마루는 조성룡 작업 흐름에서 '과거 이야기'를 땅에서 풀어내고자 했던 '선유도공원(2002) →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지명설계안(2007) → 이응노 기념관(2011)'의 연장선상에 있다. 조성룡은 꿈마루라는 공간에서 과거 서울 Country Clubhouse일때의 공간과 비록 건축업자에 의해서 많이 훼손되고 왜곡됐더라도 교양관일때의 공간도 드러나길 바랬다. 꿈마루에서 '풍경을 보는 주체'가 현재 꿈마루일때 보는 풍경 뿐만 아니라 서울 Country Clubhouse였을때 풍경과 교양관이었을때 풍경도 보는 주체가 되길 바란 것이다. 조성룡은 '새로 필요한 시설은 기존 건물 내부에 삽입하고 중심 공간을 비워 외부 공간으로 변경하여 공원 전체 동선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개념'을 기본설계의 원칙으로 세웠다(-Words from 조성룡, 꿈마루, 보존된 미래 in SPACE 201109(526)-). 건물을 실질적으로 사용할 주체도 당시 교양관의 연면적 만큼의 공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구체적인 수치를 보면 Remodeling前 교양관의 건축면적은 20,196㎡, 연면적은 27,424㎡였다. 교양관이 꿈마루로 된 이후 건축물의 건축면적은 1,778㎡, 연면적은 3,350㎡로 각각 90%, 88% 줄어 대부분의 공간이 외부화 됐다. 외부공간으로 바뀐 부분은 꿈마루와 이어지는 동선과 관계 맺는 유동적 공간(Fluid Space)이 됐다.
조금더 구체적으로 조성룡 설계 개념을 살펴보면, 그는 꿈마루라는 공간에 존재하는 '세 겹의 시간'을 건축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그가 생각한 첫번째 시간의 겹은 1970년대 지은 Concrete 구조물이었다(위 사진). Twin Columns과 Slab 그리고 그 사이를 다시 작은 기둥으로 지탱하는 중간층 공간과 12m x 24m의 큰 지붕, 수평으로 길게 뻗어나간 상판 구조로 구성된 골조가 조성룡이 생각한 첫 번째 시간의 겹이었다. 이 시간은 아마도 건물이 서울 Country Clubhouse로 불렸던 시간의 흔적이다.
두 번째 시간의 겹은 3개 층을 Zigzag로 연결하는 경사로와 상판, Precast Concrete판 그리고 수직으로 층을 연결하는 승강기를 설치하거나 개방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상판을 일부 들어내 변형된 부분이었다. 거칠게 사용했거나 훼손된 흔적과 그 흔적을 그대로 두고 그것과는 분명히 다른 재료로 연결하거나 덧댄 부분도 두 번째 시간의 겹에 포함된다. 이 시간은 건물이 어린이대공원 교양관으로 불렸을 시간의 흔적이다(위 사진). 마지막으로 세 번째 시간의 겹은 관리 사무실과 화장실, Book Cafe, 외부공간이 된 통행로 바닥 등 새로 필요에 따라 신축하는 부분이다(아래사진). 이 시간은 앞으로 건물이 꿈마루로 불릴 시간으로 원래 건물 뼈대의 질서가 오히려 잘 드러나도록 전혀 다른 재료를 결합해 조정한 시간의 겹이다.
'조경'으로 해석하든 '풍경'으로 해석하든 'Landscape'이라는 단어는 주변 땅(Land)의 형상(~scape)을 전제로 했을때 성립되는 개념이다. 땅의 형상은 건축물이나 구조물이 앉혀지지 않은 공간을 의미한다. 그래서 '풍경으로서의 건축'으로 표현되는 조성룡 건축에서 Landscape은 단순히 건축물의 밖을 의미하는 외부공간이 아니다. 그의 건축에서 외부공간은 내부공간과 공간적으로나 시각적으로 하나로 엉켜있다.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선유도공원을 두고 이 공간을 설계한 사람이 건축가냐 조경가냐라는 논쟁이 벌어졌는지도 모른다. 꿈마루가 서울 Country Clubhouse였을때 Locker Room으로 쓰였던 공간에서 상판을 걷어내고 만든 Picnic정원은 벽체만 있을 뿐 공간적으로나 동선적으로 외부공간과 연결된, 외부와 내부의 개념이 뚜렷하지 않은 공간이다. 뿐만 아니라 조성룡은 꿈마루 남쪽을 지나는 길에서 1층으로 연결되는 곡선의 Ramp를 화단으로 바꾸었다. Ramp는 Landscape Architecture의 대표적인 건축언어다. 꿈마루에서 Ramp는 -구조적인 문제로 더이상 사용할 수 없다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아예 조경의 한 요소(화단)가 되어 버렸다(아래사진).
지금도 건축현상설계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Landscape Architecture형태의 건축물들은 자연지형을 최대한 활용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대지를 건물 상부나 내부로 끌어들이는 크든 작든의 작위적임이 존재한다. 하지만 꿈마루는 조경과 건축의 경계를 허문, 그것도 건축가에 의해 건축의 영역을 먼저 허문 건축물이다. 애초 건축물에 포함됐던 공간은 사라진 벽체로 더이상 건축 내부 공간이 아닌, 처음에는 건축물 바깥이었던 공간과 연결된 외부공간이 됐다. 그렇다고 과거 건축물의 흔적을 완전히 지운 것도 아니다. 어렵게 찾아 Corten강으로 복원한 꿈마루 입구의 입면 Frame(아래사진)은 꿈마루가 서울 Country Clubhouse였을때의 건축적 흔적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부분이 꿈마루의 입구라고 표현하는게 맞는지도 의문스럽다. 이미 Corten강으로 된 입면 Frame은 Frame만 남고 입면이 없기 때문이다. 마치 열주공간처럼 건물 내부와 외부에 아주 흐릿한 경계를 만들 뿐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어린이대공원이 개장했음에도 내 어릴적 기억에 이 공간에 대한 기억은 없다. 이곳이 내 삶의 배경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난 그 공간이 풍경이 됐든 뭐가 됐든 한 개인의 기억 속에 있을때 공간의 가치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어릴적 그 풍경을 바라봤던 내가 있던 풍경을 지금 보는 것과 지금 처음 그 풍경을 보는 건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어린이대공원은 지금까지 나에게 만큼은 그렇게 기억될 만한 그래서 그 기억을 간직하거나 상기시킬 만한 공간은 아니다. 하지만 조성룡을 통해 어린이대공원은 내가 기억할 만한 공간이 됐고 이를 계기로 나상진을 비롯한 1960~1970년대 건축을 바라보는 시점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꿈마루가 주말이면 주차하기도 힘든 어린이대공원에서도 이상하게 외져 있음은 사실이다. 거의 대공원 한가운데, 그것도 정문을 들어와 거의 바로 있다는 Site Positioning에도 불구하고 대공원의 분주함에서 꿈마루는 제외돼 있는 것 같다. 이런 사실을 좀 안스럽게 볼 수도 있다. 공원관리 입장에서도 그런 점이 안타까웠는지 건물에 간판을 달았다. 하지만 난 그런 한적함이 좋다. 아는 사람만 누리는 한적함이라 해도 좋지만 어린이들을 위한 공원이라고 그 공원 모든 곳에서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들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Picnic정원이 도시락을 먹으러 온 가족들로 가득차는 것도 좋지만 어린이대공원이라는 공간 내에 조용하게 식사할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하다는게 내 생각이다.
내가 지금까지 찾은 어린이들을 위한 시설들은 언제나 사람들로 바글바글하고 현란했다. 그 현란함에 공간을 이루는 알록달록한 원색의 장식들이 그 강도를 더했다. 그에 비해 꿈마루는 어린이들을 위한 시설임에도 지금까지 보아 온 시설들과는 다르다. 오히려 이 공간에 어린이라는 대상을 갖다 붙이는게 더 억지스럽다고 느껴질 정도다. 꿈마루는 바글바글하지도, 원색의 동그라미, 네모도 없다. 3층 Book Cafe로 오르는 계단 벽에 그려진 ㅎ자 나무열매 그림과 Book Cafe 입구에 걸려 있는 책들이 그나마 이 공간이 어린이들을 위해 지어졌다는 직접적인 Message다. 매화를 상징한다는 ㅎ자 나무열매 그림은 시각Designer 안상수의 작품이다(아래사진). 그는 꿈마루의 Sign System Design을 맡아 작업했다. 참고로 안상수는 40년전 당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학생으로 서울 Country Clubhouse가 교양관으로 바뀔때 Project에 참여했었다고 한다. 그가 가지고 있는 꿈마루 공간에 대한 남과 다른 기억이다. 그리고 그는 그 기억 속에 배경으로 자기만의 풍경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어린이가 쓸 것이라고 빨강·노랑 등 원색만 쓰고 세모·동그라미 모양만 줄기차게 쓰는 것은 고정관념이다. 아이들의 미적 감각을 무시하면 안 된다. 무채색이지만 독특한 구조에 이야기를 간직한 이곳이 많은 어린이에게 색다른 체험의 공간이 되길바란다."
-Words from 조성룡, 헐릴뻔 한 건물을 되살렸다. 잊혀진 건축가가 살아났다 in 중앙일보 2011.05.03-
글을 쓰는 동안 건축물의 현재 이름인 '꿈마루' 외에도 과거 이름인 '서울 Country Clubhouse'와 '교양관'을 번갈아 쓸 수 밖에 없었다. 몇 번이고 명칭을 통일해서 다시 쓰려 했지만 그 공간에 포개져 있는 그 시대 흔적을 얘기할 때마다 현재 이름인 꿈마루로 부르는게 영 어색했다. 꿈마루는 그런 공간이다. 과거에 것을 그대로 드러내 놓고 있기에 과거의 이름으로 부를 수 밖에 없는, 현재 그 건축물의 이름으로 그 공간을 부르기에는 뭔가 어색한 그래서 과거의 기억과 풍경을 떠올릴 수 밖에 없는 그런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