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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탄신일 2640주년(5월 14일)
담양 정토사 무량수전 / 김개천(2001)
도시설계가 Archur
2016.05.12

 

불교가 시작된 나라는 인도다. 그리고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즉, 우리나라에 들어온 불교는 중국화된 불교다.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가 중국화 됐다는 건 결국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에서 중국의 전통 문화와 상충되는 부분이 변형됐다는 걸 의미한다. 종교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어찌됐든 중국에서 시작된 종교는 유교다. 유교가 중국 전통문화의 전부라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중국 전통문화가 상당히 많이 반영되어 만들어진 종교가 유교라고 볼 수는 있다. 유교와 불교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인간의 철학(유교)이냐, 천국의 철학(불교)이냐에 있다. 불교가 중국화 되려면 죽음 이후의 세계가 아닌 세속의 세계에 대한 만족을 줄 수 있는 행동강령과 그에 따른 보상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어야 했다. 좋게 얘기하면 '인간화'가 불교가 중국화되는 첫 시작이었다. 

이중텐이 쓴 '사람을 말하다'라는 책을 보면 인도인은 번거로움을 가장 잘 참지만 중국인들은 잘 참지 못한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예전부터 대체로 맞거나 괜찮으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가 중국화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게 '간이화(簡易化)'였다. 중국에서 불교를 가장 간이화한 종파가 '선종'과 '정토종'이었다. 선종은 '파(破)자를 앞세워' 모호한 관념들을 제거했는데, 구체적으로 불교신자들에게 '정토무리(淨土無理)', '불야시인(佛也是人)', '독경무용(讀經無用)', '좌선무공(坐禪無功)'을 명확하게 언급했다. 정토종은 더 간이했다. 정토종은 '아미타불'만 암송하면 된다. 정토종이 선종과 다른 점은 서방 정토를 믿는다는 점이다. 불교의 관점에서 볼 때 정토는 부처가 계신 곳이다. 부처는 수없이 많기 때문에 정토 역시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영향력이 가장 큰 것은 '무량수경'에서 말하는 '아미타불 서방정토', 즉 극락세계다. 정토종에 따르면, 이것이 가장 신뢰할 만하다. 무엇보다 아미타불이 영원히 존재하는 구원불이자 서방정토로 사람들을 이끄는 부처이기 때문이다.

 

김개천이 담양에 설계한 정토사 무량수전도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모신 법당이다. 원래 불교에서 부처가 계신 곳, 즉 정토(淨土)는 수없이 많은 여기저기(Ubiquitous)다. 그런데 중국을 거쳐 '인간화', '간이화'되면서 중국인들이 받아들이기 쉽도록 '어디다'라고 콕 찝어주기 위해 서쪽을 정했다. 본인들이 있는 곳에서 '서쪽으로 십만 억 국토를 지난 곳에 극락정토가 있고 그곳의 사람들은 수명이 한량이 없으며, 부처님의 무량한 지혜광명은 온 사방을 비추는데 아무 장애가 없다'라고, 그러니 그곳에 가고자 하는 이는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하면 되다는 행동강령까지 콕 찝어 얘기해준 종파가 바로 정토종이다(-아미타경(阿彌陀經)-). 이러한 개념의 제시도 어려울 수 있으니 정토종 사찰의 본당 이름을 무량수전(無量壽殿)으로 붙였다. '수명이 한량 없는 절'. 무량수전 자체가 극락정토, 서방정토를 상징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너무나 유명한 무량수전이 있다. 바로 영주에 있는 부석사 무량수전이다(위 사진에서 오른쪽). 부석사 무량수전도 서방정토를 상징하기에 건물 자체의 전면은 남쪽을 향해 있지만 그 안에 있는 아미타불 불상은 서쪽에 앉아 동쪽을 응시하고 있다. 그런데 담양의 정토사 무량수전에서는 반대로 배치돼 있다. 정토사 무량수전의 아미타불은 동쪽에 앉아 서쪽을 응시하고 있다(아래사진). 이게 어찌된 일인가? 잠시 생각해 보면 무량수전에 앉혀진 아미타불이 서쪽에 앉아 동쪽을 응시해야 한다는 것은 앞서 얘기했듯 불교가 중국화 되면서 정토종에서 나온 '서방정토'를 대중들에게 쉽게 이해시기키 위한 형식이다. 그렇다면 그 형식에 앞서 근본적인 개념은 '부처가 계신 곳, 즉 정토는 수없이 많은 여기저기다'이다. 정토종이 제시하는 형식에서는 어긋나 있지만 그 이면의 근본 개념에는 어긋나 있지 않은 것이다. 대세에 지장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개천이 담양 정토사 무량수전 설계 당시 '굳이 형식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명확하게 대답할 근거는 없다. 현재 무량수전의 배치에서 아미타불의 위치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바꾼다한고 크게 문제될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땅과 건물이 앉혀진 주변 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건축가에게는 아미타불을 서쪽에 앉힐 경우 신경쓰이는 부분이 발생한다. 담양 정토사 대지는 동쪽 고비산, 봉황산에서 북서쪽 영산강 방향으로 흘러내려가는 북서사면이다. 이는 반대로 대지로 접근하는 동선 측면에서 보면 큰 방향이 -현재 접근로인 깊은실길이 그렇듯- 북서에서 남동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량수전의 경우 정토사 대지에서 남동쪽 끝에 있기 때문에 무량수전으로의 동선도 북서쪽에서 시작된다(위 위성사진). 그렇다면 서쪽에서 동쪽을 보고 배치되는 아미타불 불상은 전체적인 동선을 등지게 된다. 더군다나 건물의 북쪽과 남쪽 입면을 모두 개방할 수 있도록 설계한 김개천 입장에서는 등지고 있는 불상이 경(景)을 막고 있는 것 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불상을 동쪽에 배치해서 북서쪽으로부터 들어오는 동선을 바라보도록 지금과 같이 배치하면 무량수전 북쪽에 있는 앞마당-무량수전 동쪽에 배치된 아미타불 불상-무량수전 남쪽에 있는 연못 사이에 경계가 사라져 Panorama처럼 펼쳐질 수 있다. 더군다나 준공 당시 아미타불 불상은 현재와 같이 금으로 칠해신 불상과 화려한 색의 탱화가 아닌 도색도 안한 하얀색 벽에 6자의 한문만 적혀 있었다. 주변 풍경을 압도할 만할 장면이 아니었다.

 

"담양 정토사는 사방의 문을 열면 법당이 사라지고 사각형의 공간만 남는다. 실존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거짓말 같은 법당이다. 공간의 영역과 한계가 한정되지 않는다. 또한 사방의 문을 열어 젖히면 법당 뒤 연못이 안으로 들어오고 산도 법당 안으로 들어온다. 외부공간이 내부공간으로 들어와 안과 밖의 경계가 없어지고 함께 조응하는 것이다. 그 순간 법당안의 사람은 산과 물, 자연, 우주의 중심에 앉아 있게 된다. 경계없음은 경계는 존재하나 때로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음을 이룩하고 또한 경계 자체가 탈공간적으로 뒤바뀌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탈경계가 아닌 무경계의 건축이 된다."

- Words from 김개천 in 이용재's Blog -

 

내가 담양에서 소쇄원 다음으로 정토사 무량수전을 보고 싶었던 이유는 좁게 봤을때는 '불교건축의 현대화'에 있었고 넓게 봤을때는 '전통건축의 현대적 해석에 대한 다른 견해'를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토사 무량수전은 건축물의 용도만 보면 종교 및 집회시설이다. 종교시설은 그 종교가 뭐가 됐든 그 종교가 갖는 교리 그리고 그 종교의 궁극적 지향점 -천국, 정토, Eden동산 등등- 을 상징하려는 노력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노력은 건축물이 지어지는 시대의 산업화, 동시대의 철학을 반영하고자 한다. 하지만 수백년, 수천년간 지어져온 각 종교의 건축물들은 나름의 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동시대 건축의 흐름을 반영하는 방식이 그렇게 자유롭지는 않다. 현재도 천주교 시설의 상당수가 적벽돌의 유사 Gothic Style로 지어지고 상가에 세들어 있는 개척교회가 가짜 뾰족탑을 세우려고 하는 건 이를 잘 보여주는 단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천주교, 개신교 건축보다 불교건축이 훨씬 더 긴시간 동안 지어져 왔다. 그래서 천주교, 개신교 건축보다 불교건축의 현대화는 불교라는 종교 그 자체보다는 전통건축이라는 더 무거운 대상의 현대화와 맞물린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현대에 지어진 불교건축은 여전히 그 머리에 기왓장 올린 부피만 커진 콘크리트 한옥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설계자에게 사찰의 본당인 무량수전 설계는 '전통건축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해석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맞닿게 만든다. 물론 이 질문 앞에서 설계자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콘크리트로 덩치를 키운 한옥일 것이다. 실제 정토사 무량수전도 이 일대에서 활동하는 지역 건축가가 서쪽을 바라다보는 기와집 건물로 초기 설계가 완료된 상태였다고 한다. 하지만 공사비가 너무 많이 들어 재설계를 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김개천이 설계자로 정해졌다(이용재의 Blog에 따르면 무량수전의 공사비 예산은 총 공사비 3억으로 평당 150만원이었다고 한다, 연면적 573㎡).

김개천은 2004년 출간한 그의 책 '명묵의 건축: 한국전통의 명건축 24선'에서 전통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24개 건축물을 통해 한국미의 원형에 대한 그의 담론을 피력했다. 정확한 시기상으로는 정토사 무량수전이 책 출간 전에 완공됐지만 그가 수행했던 작업을 통해 정리된 담론을 책을 통해 정리했다고 보는 순서가 맞을 것이다. 그 책에서 김개천은 '외형상 작고 평범해 보이는 우리의 전통건축은 우주만큼 넓고 깊게 체감되는 무한의 건축으로 완성하였고, 물질의 진정한 가치를 구현하였던 예술적 성취들은 현대 미학이 추구하는 이상과도 맥이 닿아 있을 뿐 아니라 그 미적 한계에 새로운 형식을 제안하고 있기도 하며 자연과의 조화가 아닌 자연의 경지를 이룬 건축적 인문세계를 보태어 자연을 더욱 풍부하게 하였다.'고 정의한다. 그러면서 '동양인이 추구했던 비례의 원리는 공간적 상태가 아닌 시간과 공간의 위치와 변화에 따른 각자의 상이한 체험이 중심이며, 나아가 심미적 체험과 생명의 원리와 같은 변전하는 질서의 비례로서 자율적인 동시에 상대적이다. 그것은 형태만이 아니며 건축이 아닌 것이 없듯 자연의 모든 것을 포괄한 대상을 넘는 대상으로 한계를 넘어서려 하였다. 마치 필묵으로 느낄 수 없는 필묵을 느끼게 해야 하는 동양화의 필법과도 같다.'고 설명한다.

 

사실 정토사 무량수전을 일견했을때는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이 잘 와 닿지 않는다. 외관만 봤을때 전체적인 모습은 Cement Mortal로 마감의 Box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조금더 자세하고 어여쁘게 보면 Mass 동서쪽으로 90cm 가량 돌출된 지붕을 네개의 보가 지탱하고 있는 모습과 북쪽 앞마당에 면한 1층부가 안쪽으로 들어가 있는 모습이 전통건축의 처마를 연상시킨다는 정도... 하지만 무량수전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남쪽 연못에 면해 설치된 격자문이 겉모습으로 판단한 내 얕은 시각과 지식을 반성하게 만든다. 무량수전 내부에서 연못이 있는 남쪽을 바라봤을때 격자문을 통해 보이는 산과 연못 주변의 나무들은 아리아리해져서 무엇이 나무이고 무엇이 산인지 구분하기 힘들어진다. 심지어는 그 풍경이 Pixel화 된 그림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실경(實景)처럼 보이지 않는 수준까지 도달한다(아래사진).

그런데 사찰의 본당에 들어서자 마자 불상이 아닌 바깥 풍경을 가장 먼저 바라본다는 나의 행위가 조금 낯설었다. 경남 양산시에 있는 통도사 대웅전에서 불상 대신 금강계단을 조망할 수 있는 수평으로 긴 창을 본 적은 있지만 창을 통해 보이는 장면은 불상이 앉혀져야 할 재단 위에 있었기 때문에 낯설다는 생각은 안들었다. 더군다나 담양 정토사 무량수전에서 바깥 풍경을 실경처럼 보이지 않게 하는 격자문까지 사라진다면 무량수전은 더이상 건축물이 아닌 존재가 된다. 벽이라는 면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점적인 기둥만 남은 무량수전은 담양 여기저기에 놓인 별서 형식의 정원건축과 같은 모습이 된다. 여기에 무량수전 남쪽의 산과 녹음을 반사하는 연못은 물(水)이라는 물성을 넘어 풍경을 반사시키는 장치가 된다. 이런 장면 속에서 관찰자 왼쪽(무량수전내 동쪽)에 놓인 불상과 탱화가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발휘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무량수전의 불상과 탱화는 지금의 모습처럼 현란하고 주목을 이끌려고 애쓰지 않고 애초에 6자의 한자만 Simple하게 적혀 있을때 더 존재감이 있었을 듯 하다.

사찰의 본당에서 관찰자를 맞이하는 첫 번째 장면이 불상이 아닌 사찰 주변의 자연이라는 점은 서방정토를 지켜야 하는 아미타불이 서쪽이 아닌 동쪽에 앉아 서쪽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배치와는 다르게 배치된 것과 마찬가지인 생각을 공유한다. 즉, '부처가 계신 곳, 즉 정토는 수없이 많은 여기저기다'라는 생각에서 보면 사찰의 본당에서 관찰자를 맞이하는 첫 장면이 꼭 불상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성철 스님의 '부처님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이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항상 설법을 하고 있다. 심지어 저 산꼭대기에 서 있는 바위까지도 법당에 계시는 부처님보다 몇백 배 이상의 설법을 하고 있다. 그뿐 아니다. 모양도 없고 형상도 없고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허공까지도 항상 설법을 하고 있다. 온 세상에 설법 안 하는 존재가 없고 불사 안 하는 존재가 하나도 없다'라는 말씀에 따르면 본당에서 신자들에게 무정설법(無情說法)을 하는 주체는 불상 보다는 자연과 풍경일 수 있다.

정토사 무량수전 자체만 보면 사찰 건축과 그 배치를 얘기할때마다 늘상 나왔던 '일주문-천왕문-불이문(안양문)-본당'으로 이어지는 점층적 접근과정, 내향적 공간 배치 심지어 형태적으로 기왓장 올려진 콘크리트 한옥 건물 등과 같은 답습적인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정토종에서 불교의 중국화를 위해 만든 형식이 적용되어 있지 않고 심지어 신자들이 본당에서 예배드려야 될 대상도 불당이 아닌 주변 자연 그리고 풍경으로 바뀌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토사 무량수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바는 정토종, 그리고 불교가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과 전혀 어긋나 있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이 점이 무량수전 설계에 앞서 불교건축의 현대화, 전통건축의 현대석 해석에 대해 설계자는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 김개천이 제시하는 답이다. 이런 점을 높게 평가 받아 정토사 무량수전은 2001년 한국건축가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건축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일반 대중 그리고 신자들에게는 여전히 이런 개념의 전개와 적용이 어려운 것 같다. 2008년(위 항공사진)만 해도 사찰내 건물이 어수선하고 그 중에는 파란색 Slate 지붕이 올려진 건물도 보인다. 그러다 2009년 Version부터 공사가 들어간 정토사는 2011년 부터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정리된(?) 배치를 갖게 된다. 그 변화되는 과정 속에서 항상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물이 대지(대지면적 1,496㎡) 남쪽에 연못을 면하고 동서로 긴 직사각형 평면으로 배치된 무량수전이다(설계기간 1999.2~1999.9, 시공기간 1999.10~2000.9). 무량수전 주변 건물들(대웅전 등)은 기와가 올려진 콘크리트 한옥으로 돌아왔고 무량수전 앞마당으로 연결되는 경계에는 '安養門'이 세워졌다(아래사진). 눈으로 보이는 구체적인 무언가가 없다면 그들은 생각하지 않는다. 안양문 위에 투명 아크릴로 덧씌운 지붕을 보며 차라리 이 안양문이 기와 올린 한옥지붕의 문이었다면 그들은 덜 어색해 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설계가 Archur

Archur가 해석하는 도시, 건축.
저서. <닮은 도시 다른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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