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새로운 댓글알림이 없습니다.
닫기

알림

닫기
로그인

로그인 상태 유지

건축가 로그인

회원가입 ID/PW찾기

* 시스템 리뉴얼로 인해 일반회원 가입 및 로그인은 및 한동안 불가합니다. 이에 양해의말씀드립니다.

아이디 / 비밀번호찾기

  • 가입 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를 입력하시면 임시 비밀번호가 전송됩니다.
  • 이메일 주소가 생각나지 않을 경우 1:1문의하기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아이디 찾기 비밀번호 찾기

회원가입

건축가 회원가입


일반회원 (리뉴얼 중)


회원가입을 하면 에이플래폼의 서비스 약관개인정보보호방침에 동의하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일반회원가입

중복확인

중복확인

회원가입을 하면 에이플래폼의 서비스 약관개인정보보호방침에 동의하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일반회원가입 (선택사항)

성별
남자 여자
생년월일
주소
직업

건너뛰기 >

축하합니다!
에이플래폼 가입이 완료되었습니다.

사용하실 닉네임을 입력하고
플래폼을 시작해 보세요~
닉네임을 입력해야지 최종가입됩니다.

환영합니다!

기업회원가입 (회사유형선택)

건축회사

자재회사

건축회사가입 (1/3)

증복확인

증복확인

회사명
주소
사업자구분
사업자번호

회원가입을 하면 에이플래폼의 서비스 약관개인정보보호방침에 동의하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건축회사가입 (2/3)

대표자명
대표전화
서비스분야

건축분야선택

주거
상업
문교사회
공업

최대 10개까지만 등록가능합니다.

미니카드생성 (3/3)

미니카드에 적용할 이미지를
선택하세요.

로고이미지
(168 x 168px 이상의 jpg, gif, png로 등록해 주세요.)
미니카드이미지
(291 x 164px 이상의 jpg, gif, png로 등록해 주세요.)

홈페이지 유형선택

건축가의 경쟁력 강화와 원활한 경영활동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 3개월 단위 계약

  • Premium

    건축 홈페이지부터 홍보, 브랜딩 데이터분석, 콘텐츠 관리, 기사발행 등
    맞춤 경영지원을 제공하는 플랜

    299,000
    / 월

    신청하기
  • Business

    건축 홈페이지가 필요한
    건축가를 위해 준비한 플랜

    59,000

    19,900 * 이벤트 할인
    / 월

    신청하기
  • Basic

    건축플랫폼에 등록되는 기본 형태

    무료

    신청하기
개인계정 생성
반응형 홈페이지
플랫폼 메인노출
개인 도메인 연결 ×
방문자 통계
홈페이지 디자인 ×
소셜링크 ×
에이플래폼 로고/배너 삭제 ×
이메일 문의기능 ×
전담 콘텐츠매니저 부여 × ×
기사발행 (Kakao, Naver)
사무소 데이터 분석 리포트 분기 발행 × ×
인턴십 매칭 (학교지원금無)
인턴십 매칭 (학교지원금有) ×
에이라운지 입주할인 20% 할인 10% 할인 ×
건축사진작가 할인연결
세무기장 무료/할인
실시간 건축문의 참여 무제한 선착순 선착순
건축중개 × ×

축하합니다!
관리자 승인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홈으로 이동

자재회사가입 (1/2)

증복확인

증복확인

회사명
주소
사업자구분
사업자번호

회원가입을 하면 에이플래폼의 서비스 약관개인정보보호방침에 동의하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미니카드생성 (2/2)

자재 검색페이지에 노출이
되기위해 미니카드를
생성해야 합니다.

카드생성을 완료하세요.

대표이미지
(216 x 162px 이상의 jpg, gif, png로 등록해 주세요.)

취급자재선택

내장재
외장재
단열재
목재
석재
벽돌
창호
냉난방/환기설비
설비
도장/방수
홈네트워크
기타

최대 10개까지만 등록가능합니다.

축하합니다!
자재회사 페이지가 생성되었습니다.

사용하실 닉네임을 입력하고
플래폼을 시작해 보세요~

카탈로그제품사진을 등록하고
회사소개서를 작성하여
회사를 널리 알려보세요.

지금하러가기

나중에 하기

구세군(the Salvation Army) 창립 151주년(1865.7.2)
구세군 중앙회관(1928) & 구세군 한국선교100주년 기념빌딩 / 희림건축(2010)
도시설계가 Archur
2016.07.02

 

요새가 장마라고는 하는데 비는 시원하게 내리지 않고 있다. 오히려 습기를 잔뜩 머금은 대기가 피부에 끈적하게 들러붙기만 한다. 여름의 한창으로 들어가려는 지금 겨울 풍경을 생각하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구세군 얘기를 하려면 아무래도 겨울 풍경을 떠올려야 할 것 같다. 겨울이 오면 왠만한 번화가에는 구세군 냄비가 등장한다. 그해 구세군 모금액이 작년에 비해 늘었다. 줄었다하는 소식은 뉴스의 단골 소재다. 아무래도 우리에게 구세군은 겨울과 어울린다. 하지만 구세군이 처음 창립된 날은 7월 2일이다. 

'구세군'이라는 말은 '구세주의 군대(The Salvation Army)'를 줄인말로 1865년 7월 2일, 영국 감리교 목사인 William Booth(위 사진, 사진을 찾고 Abraham Lincoln인줄 알았다)와 그의 부인 Catherine Booth가 소외된 빈민층의 구제를 위해 영국 London의 Slum에서 가로 전도부터 시작됐다. 당시에는 '기독교 선교회(The Christian Mission)'로 알려졌는데, 1879년 '구세군(The Salvation Army)'이라는 명칭을 채택하고, 상징적으로 조직의 구조를 군대식으로 정했다. 구세군이 한국에 파송된 계기는 1907년 William Booth 대장의 일본 순회 집회 때 참석한 조선 유학생의 요청이었다. 구체적으로 1908년 10월 한국 개척사령관으로 임명된 영국 선교사 Robert Hoggard(한국명 허가두)와 그의 부인 Annie Johns를 포함한 일행이 서울에 도착했다.

구세군 중앙본영 창설과 함께 '구세신문'이 발간됐다. 그리고 1916년부터는 본격적인 사회사업을 벌였다.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한 구세군은 1926년 조선을 방문한 Bramwell Booth(세계구세군 제2대장)의 70세 생일을 기념하고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구세군 사관 양성과 사회사업의 본부로 사용하기 위해 구세군 중앙회관을 짓고자 했다. 건축비 7만원은 캐나다와 미국 사관들 및 구세군 신도들이 모금한 의연금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대지를 매입해야 한다. 당시 구세군이 주목한 부지는 경운궁 북쪽 선원전 영역이었다.

선원전 영역은 경운궁에서 가장 늦은 1900년에 궁역에 편입됐고 1925년 가장 빠르게 배제됐다. 선원전 영역의 해체와 건물의 훼철은 선원전 영역이 경운궁 궁역에 편입돼 있던 25년 중 고종 황제가 서거한 1919년부터 6년간 집중됐다. 이 일대는 고종이 선원전과 함께 '그 인근의 작은 토지를 매입해서 그 한옥들을 철거하고 새 전각을 지어 궁궐의 여인들을 살게 했던(-역사, 전례, 양식으로 본 한국의 교회건축, 김정신-)' 곳으로 궁중의 상궁들은 한일 강제병합(1910)후 이곳을 떠났다. 1920년 2월 16일 경운궁 선원전에 있던 역대 국왕의 어진을 아직 완공도 되지 않은 창덕궁내 舊 선원전으로 옮겼고 그해 1920년 4월에 경운궁 선원전 영역의 일부를 조선은행, 식산은행, 경성일보사에 매각했다. 그리고 현재 정동 Rotary에서 새문안로를 연결하는 덕수궁길도 만들었다(위 사진). 1922년에는 現 덕수초등학교 자리에 경성여자공립보통학교, 舊 경기여고 터(선원전 터)에 경성제일공립고등여학교가 지어졌다. 더불어 두 학교 사이 부지인 정동 1-24에 해인사의 불교중앙포교소가 설립됐다. 구세군이 3천엔에 매입한 부지가 바로 해인사 불교중앙포교소가 있던 부지였다. 1927년 11월에 착공한 구세군 중앙회관은 1928년 준공됐다. 그리고 이 시기에 우리가 구세군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자선냄비'사업도 시작됐다.

벽돌조로 지어진 구세군 중앙회관은 1층에 사무실, 2층에 집회 및 예배당이 배치돼 있다(연면적 1,461㎡). 북동쪽과 남서쪽에 날개가 대칭으로 붙은 H자 평면으로 Renaissance 양식 혹은 신고전주의 양식에 가깝다. 이현이와 박언곤은 '구세군 중앙회관의 건축적 특성에 관한 연구(대한건축학회 학술발표논문집 제23권 제2호, 2003.10.24~25)'에서 '창의 수직적 배열과 함께 수평적 Cornice가 Baluster 없이 벽의 제일 윗부분에서 발견되는데, 이는 난간과 같이 나타나기도 하고, 난간 없이 사용되어 지기도 한다'며, 이러한 수법이 'Renaissance 수법을 차용한 신고전주의에서 공간의 단위를 나란히 배열하는 체계로 변화되면서 가능한 배열 방법이다'라고 설명한다.

구세군 중앙회관의 설계자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London의 Clapton Congress Hall을 Model로 지었다고 한다. 건물 Facade를 봤을때 가장 눈에 띄는 요소는 전면 중앙에 배치된 4개의 원기둥과 그 위에 올려진 Pediment다(위&아래사진). '1928'이라는 준공년도와 함께 '救世軍士官學校'라고 새겨져 있는 석판 편액이 가운데 삽입된 Pediment는 날개 mass 지붕을 이루는 Pediment와 각 mass 1층에 뚫려진 출입구 상부 Pediment와 함께 건물의 인상을 결정한다. 가운데 Pediment를 지지하는 웅장한 4개의 기둥은 얼핏보면 Doric Style 같지만 몸체에 Fluting(세로 홈 장식)과 Triglyph(세 줄기 세로 홈이 진 무늬)가 없는 것으로 봐서는 Doric Style이 아닌 Tuscan Style로 보는게 더 맞다. 또한 네 개의 기둥은 모두 같은 간격이 아니라 가운데 주출입구가 있는 사이의 간격이 더 넓다(정확하게는 기둥 폭을 D로 봤을때 3D-5D-3D).

임석재는 '사회미학으로 읽는 개화기-일제강점기 서울건축'에서 구세군 중앙회관의 건축 양식을 두고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언급했다. 일단 긍정적인 측면은 본 건물의 건축 양식이 Europe 중세 양식과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청교도를 대표할 만한 특징 -수직 앙천성, 도상 장식, Gothic Style을 피한 특징- 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교리적으로 신교도가 구교도와 다르다는 것은 선언했지만 건축 양식적으로는 독립적인 양식을 만들어내지 못한 상황에서 Europe 중세 양식의 대안으로 택한 고전주의양식을 구세군 중앙회관이 잘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구세군 중앙회관 이전에 이러한 건축 양식적 의의를 보여주는 건물은 30년 먼저 지어진 정동제일교회(1898)다. 하지만 동시에 신교도의 건축은 독자적인 양식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고전주의 양식에 머무름으로서 부정적인 영향도 낳게 됐다는 것이 임석재의 주장이다. 그가 얘기하는 신교도 건축의 고전주의 양식의 부정적인 영향은 '일반 상가 건물이나 Office Building의 동일성을 허락하는 Model이 됐다'는 것이다. 즉, 한정된 재정으로 인해 간략화된 고전주의 양식이 '간결한 육면체 윤곽 속에 가지런하게 배열된 동일된 창'으로 변환되면서 '자본의 운용과 축적 등 자본주의의 효율 논리에 적합한 구성'이 됐다는 주장이다.

"구세군 중앙회관에 나타난 동일성이 대표적 내용이다. 동일성은 건축미학일 뿐 아니라 압축 근대화, 물질문명, 물질화 등과 연계된 사회적 주제이기도 하다. 비대칭을 기본 특징으로 갖는 (우리나라의) 전통미학에서 동일성의 미학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거부감과 이질감을 느끼게 되는데 교회 건축에서 봤던 동일성의 미학은 이것을 누그러뜨리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근대 학교 건축에 나타난 동일성 마저 합해지면 이제 동일성은 이질적으로 느껴야 할 낯선 서양미학이 아니라 하루라도 빨리 받아들여야 할 근대적 선진화의 상징으로 둔갑하게 된다.

...(중략)...

(반면) 두 건물 -구세군 중앙회관, 정동제일교회- 모두 Catholic 건축의 과도한 장식 사용에 반대하는 편에 서기 때문에 검소함의 미학을 중요한 목표로 표방했다. 구세군 중앙회관의 단순한 구성은 종교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헛간'을 선례 Model로 삼은 데서 기인한다는 점이다. '헛간'은 종교개혁 이후 청교도 쪽에서 독립적 교회 건축 양식을 하루아침에 창출하지 못하는 대신 자신들 교회 건축의 큰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사용한 건물 개념이다. 중세 말 Catholic의 타락과 화려한 교회 건축을 같은 것으로 보며 그 대안의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사회미학으로 읽는 개화기-일제강점기 서울건축, 임석재-

물론 인용한 임석재의 주장에 대해 우리나라가 아닌 서구의 Office Building 역시 효율성과 경제성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서구의 Office Building 또한 고전주의 전통미학에서 동일성의 미학으로 변화하는 우리나라의 과정과 동일한 과정을 거쳤는지는 따지고 볼 문제다. 하지만 여기서 그의 주장이 옳으냐 그르냐를 더 길게 논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다만 구세군 중앙회관의 고전주의 양식을 두고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는 정도만 알고 넘어가는게 좋을 것 같다.

1955년부터 구세군 중앙회관은 구세군 대한본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1959년에는 구세군 한국개전50주년 기념사업으로 1,2층 일부를 증축하고 2층 강당 천장을 높이는 공사를 했다. 이때 강당의 층고를 높이기 위해 Hammer Beam Truss구조를 사용했는데, ┴형의 직선형 목재로 짜서 Arch형으로 둥글게 다듬어 붙여 구조화시켰다(위 사진). 강당이라는 용도를 고려하여 무주공간을 만들기 위해 고안된 방법이다. 이 목조 Hammer Beam Truss 구조는 14C 영국 건축의 Hall에서 많이 사용됐던 방식인데, 흥미로운 건 양식적으로 Gothic Style이라는 점이다. 구세군 중앙회관에서 건물의 외관은 Renaissance양식 혹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간결하고 웅장한데 반해 내부의 이 Truss 만큼은 화려하고 장식적이다. 위 임석재의 주장을 잠깐 빌려오면 이 Gothic Style의 첨가가 개신교의 고전주의 양식이 결국 Catholic 건축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에 굴복당한것으로 봐야 하나? 아니면 재정적인 문제를 고려하여 간략화된 고전주의 양식이 동일성을 물려주다가 그 건물 자체가 역사적, 조직의 위계적 권위를 갖게 되는 순간 Europe 중세 양식의 권위를 가져오고자 했던 건가? 와 같은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더 이야기를 하려니 내 건축적 지식이 참 짧다.

1959년 증축 과정에서 좌우대칭이었던 양측 날개의 계단부분을 개축하고 중앙입구에 강당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중앙계단(위 사진)을 철근 콘크리트로 증축하기도 했다. 1971년 12월에는 구세군 중앙회관에서 북서쪽으로 320m가량 떨어진 곳(종로구 새문안로 69, 아래사진)에 구세군회관이 완공됐다. 연면적 6,862㎡ 규모로 새문안안로에 면한 Facade보다 서울역사박물관으로 향한 서쪽 입면이 더 특징적이다. 다시 구세군 중앙회관 얘기로 돌아와서 1981년까지 구세군 대한본영으로 사용됐던 이 건물은 2003년 10월 구세군 대한본영 자산부 주관으로 Remodeling이 이루어졌다. 2004년부터는 구세군 역사박물관으로 쓰이고 있고 2014년 3월에는 서대문구 충정로역에 있는 구세군 한국선교100주년 기념빌딩 5~6층을 사용하던 구세군 대한본영이 다시 이곳으로 이전해 왔다.

구세군 대한본영이 2010년 7월 15일부터 2014년 3월 구세군 중앙회관으로 다시 이전해 갈때까지 있었던 곳이 구세군 한국선교 100주년 기념빌딩(이하 구세군 빌딩)이다. 충정로 삼거리 북쪽, 충정로와 경기대로가 만나는 지점 동쪽에 있는 대지(대지면적 3,435㎡)에 지어진 이 건물은 이름 그대로 구세군 한국선교 제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졌다. 2006년 12월 18일 설계사 선정을 위한 공모전 결과를 발표했는데, 당선작은 희림건축(아래좌측 조감도), 우수작은 한원포럼(아래우측 조감도)이 선정됐다.

두 안은 고층 mass를 어디에 두느냐에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인다. 희림은 충정로 삼거리에 면한 남쪽에, 한원포럼은 이와 반대로 대지 가장 북쪽에 배치했다. 심사위원은 당선작에 대해 '구세군의 선교목적과 기독정신이 잘 표현되었고, 예술적이며 도시의 미관과 잘 어우러져 지역민들에게 더욱 친근한 100주년기념관과 업무용 빌딩이 들어설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평했다. 설계자가 정말 설계를 잘한 것 같다. 선교목적, 기독정신과 같은 비물리적인 개념이 잘 건축화됐다고 평하니.

구세군 빌딩의 고층 Mass에는 임대 Office가 배치돼 있다. 그리고 저층 Mass에는 교회, 문화시설(구세군 Art Hall 총 529석), 판매시설 등이 설치돼 있다(B6~17F, 연면적 31,948㎡, 용적률 479%). Mass의 형태와 높이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성격의 시설을 하나의 건물 안에서 풀어내는건 현상설계에 참가한 두 회사 모두가 가장 비중있게 고려했을 부분이다. 희림의 안이 Appeal된 것도 대지의 형태와 충정로에 길게 면해 있다는 특성을 고려하여 충정로와 경기대로가 예각으로 만나는 부분에 곡선으로 완만하게 만든 고층 Mass를 배치하고 그 북동쪽에 충정로를 따라 가로에 대응할 수 있도록 직선을 강조한 저층 Mass를 설계한 것 때문이었을 듯 하다(아래사진).

구세군 빌딩은 충정로가 신촌로로 이름이 바뀌면서 살짝 꺽이고 서소문로와 중림로가 합류되는 지점에 있는 대지에 곡선 Mass로 고층 건물을 설계하여 경관적으로 꽤 눈에 띈다. 더군다나 2014년 3월 아현고가가 철거되면서 구세군빌딩은 도시로 더 잘 드러나게 됐다(아래사진). 이에 반해 한원의 안은 고층 Mass가 이 지점에서 물러서 있음으로 인해 확실히 Impact가 떨어진다. 구세군빌딩은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새문안로와 충정로를 따라 서쪽으로 진행되는 20층 높이의 Office 건물 신축 흐름의 서쪽 끝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구세군 빌딩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다시 구세군 중앙회관에 대한 앞서 인용한 임석재의 해석이 떠올랐다. 구세군 중앙회관과 구세군 빌딩은 얼핏 봤을때 건물을 지은 주체만 같을 뿐 외관에서 공유되는 부분은 전혀 없다. 하지만 '구교도와 차별화를 선언한 신교도 → 신교도 중의 하나인 구세군 → 신교도가 자신의 건축양식으로 채택한 (신)고전주의 혹은 Renaissance양식 → 우리나라로 들어오면서 재정적 상황을 고려하여 간략화되어 적용된 구세군 중앙회관의 고전주의→ 간략화된 고전주의에서 효율성을 부각시킨 육면체 윤곽과 그 속의 가지런하게 배열된 창 → 이 모습이 수직으로 쌓여 만들어진 고층 Office Building Model → 이런 Model이 적용돼 설계된 구세군 빌딩'이라는 과정을 떠올리면 결국 구세군 중앙회관과 구세군 빌딩은 단군할아버지와 나의 관계쯤은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왜 감흥이 없는지...

도시설계가 Archur

Archur가 해석하는 도시, 건축.
저서. <닮은 도시 다른 공간>

건축이야기꾼의 다른 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