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네틱 아트(Kinetic Art)'라는 예술 장르가 있다. '움직이는 예술'로 설명되는데, '어떠한 수단이나 방법에 의하여 움직임을 나타내는 작품의 총칭'으로 정의된다. 요새 가장 핫(Hot)한 공간 중 하나인 성수동에 있는 대림창고 갤러리 카페 컬럼(Co:lumn) 입구에도 미술가 양정욱의 신기한 키네틱 아트 작품이 전시돼 있다(아래사진). 키네틱 아트의 시작은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의 모빌(Mobile)이다. 갓난아기 심심하지 말라고 아기 시선에 맞춰 천장에 달아주는 장남감이 모빌이다. 아마 우리도 그 붕붕 떠 있는 모빌 한번 잡아보겠다고 허우적 거렸을 듯 하다. 모빌이 발전한 키네틱 아트를 대표하는 예술가가 쟝 팅겔리(Jean Tinguely)다. 1925년 5월 22일 스위스의 프리부르(Fribourg)에서 태어난 팅겔리는 세 살때 바젤(Basel)로 이주해서 성장했다. 1941년~1944년 동안에는 바젤의 으용미술학교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기도 했다. 그가 바젤을 떠난 시기는 1952년으로 첫 번째 아내 Eva Aeppli와 파리로 갔다. 파리에서 주로 작품활동을 했던 팅겔리는 1991년 8월 30일 베른(Bern)에서 생을 마감했다. 올해는 그가 타계한지 25주기 되는 해다.
그럼, 스위스 내에서 '팅겔리'라는 컨텐츠를 활용할 수 있는 도시는 그가 태어난 프리부르와 그가 자란 바젤 그리고 생을 마감한 베른으로 압축된다. 1993년 팅겔리 미술관 건립을 위한 최초 부지는 취리히(Zurich)州에 있는 Schonenberg였다. 팅겔리의 생애와 별 상관없는 도시가 선정된 이유는 미술관 건립을 주도했던 Paul Sacher의 집과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위스의 예술 후원자이자 지휘자였던 Paul Sacher(1906~1999)는 바젤을 대표하는 또 다른 미술관은 Schaulager(Herzog & de Meuron, 2003)를 건립한 Maja Oeri의 두 번째 남편이었다. Schonenberg 부지에 건립된 팅겔리 미술관 설계도 마리오 보타(Mario Botta, 1943~)가 맡았다. 보타는 팅겔리가 죽기 전부터 개인적인 친분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Schonenberg 부지도 현재 바젤에 있는 팅겔리 미술관과 처럼 공원 안이었는데 차량진입의 문제로 무산됐다고 한다.
바젤은 팅겔리 생애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스위스 도시였다. 더군다나 1977년에는 바젤 도심에 있는 Theaterplatz에 'Carnival Fountain'이라는 작품을 설치하기도 했다(아래사진). 이런 인연으로 Basel은 '팅겔리' 컨텐츠를 갖게 된다. 참고로 팅겔리 컨텐츠를 놓친 베른은 1879년 12월 베른에서 태어난 파울 클레(Paul Klee)와의 인연을 발전시켜 파울 클레 미술관(Paul Klee Museum, Renzo Piano, 2005)을 지었다. 그가 태어난 프리부르에는 미술관까지는 아니지만 과거 트램차고를 개조한 'Espace Jean Tinguely - Niki de Saint Phalle'라는 전시시설이 있다. 다시 팅겔리 미술관 얘기로 돌아와서, 1994년 10월 착공한 팅겔리 미술관은 1996년 8월 준공했다. 쟝 팅겔리 타계 5주기 되는 날이었다. 미술관이 일반에 개관된 시기는 그해 10월 3일이었다. 미술관 개관 3주년이 되는 1999년 5월에 미술관 건립을 주도했던 Paul Sacher가 세상을 떴다. 그리고 다시 2년이 지난 2001년 5월 팅겔리의 두 번째 아내이자 역시 예술가였던 니키 드 상 팔(Niki de Saint Phalle, 1930~2002)도 미국 샌디에고에서 생을 마감했다.
팅겔리와 니키 드 상 팔이 공동 작업한 The Stravinsky Fountain(위 사진)이 설치된 퐁피두 센터(Center Georges Pompidou)의 초대관장이었던 폰튜스 훌텐(Pontus Hulten)은 팅겔리의 작품을 'Meta Mechanic'이라고 불렀다. 여러가지 부재(部材)가 혼합사용된 그의 작품은 역동적인 움직임을 가지고 있다. 베레나 크리거(Verena Krieger)는 팅겔리를 '확고한 무정부주의자이며 네오 다다이즘(Neo-Dadaism) 미술가'로 정의한다. '그는 자신의 미술을 '명백한 반항의 형식'과 '전복적인' 것으로 파악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만든 그림 그리는 기계가 창조적으로 행동하도록 놔두지 않고 자신의 생산물을 다시 잘게 자르는 기계를 만들었다. 그 밖에도 그는 스스로를 파괴하는 기계도 개발했다. 팅겔리가 이와 같은 파괴 경향을 기계에 반영시킨 것은 한결같은 행동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천재 예술가를 파괴하기는 했지만, 그 자리에 기계를 새로운 '신'으로 대신 세우는 일을 한 셈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예술가란 무엇인가, Verena Krieger-). 흥미로운 건 팅겔리는 나중에 자신이 만든 기계에 대한 특허 신청을 냈다.
마리오 보타는 바젤에 있는 팅겔리 미술관을 설계하면서 각기 다른 주변 컨텍스트(Context)를 해석하고 이에 대응하는 것에 가장 집중했다. 그래서 그는 팅겔리 미술관이 도시의 보이드를 다시 활력있게 만드는 시도와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타가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미술관이 앉혀진 대지가 주변 조직과 쉽게 연계하기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대지는 19C에 조성된 Solitude Park 동쪽 끝이다. 그러니까 대지를 기준으로 서쪽은 미술관이 지어진 후에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야 하는 열린 공간이 있다. 대지 남쪽으로는 라인강(Rhein river)이 흐른다. 라인강은 시각적으로는 열려 있지만 물리적으로는 다가설 수 없는 공간이다. 반면, 북쪽(Grenzacherstrasse)과 동쪽(Schwarzwaldbrucke)에는 간선도로가 지나간다. 시각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연결이 어려운 조건이다.
우선, 보타는 나뭇잎 단면의 구조체 다섯개를 수평으로 붙여서 긴 스팬(Span)을 추가적인 구조체 없이 덮었다. 이를 통해 대부분 큰 크기의 팅겔리 작품 20점을 전시할 수 있는 실내공간을 확보했다. 또한 팅겔리의 작품을 높은데에서도 볼 수 있도록 중간층에 메자닌(Mezzanine floor)을 만들었다(위 사진). 전체적인 평면은 ㅁ자로 동서 48.7m, 남북 61.2m 길이다. 미술관 매스의 높이는 높이 12.6~15.4m고 연면적 6,057㎡ 규모다(전시면적 2,866㎡). 보타는 'The large ground-floor space can be divided up by massive moving walls that scurry along between the architraves, creating a fragmented environment of five sections that commune with the adjacent park'라고 설명한다(-Mario Botta's Homepage-).
내부공간보다 주변 컨텍스트를 고려해 설계한 부분은 외부 네면이다. 우선, 간선도로에 면한 북쪽과 동쪽에는 이렇다할 개구부를 만들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간선도로에서 발생하는 소음을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팅겔리의 작품을 작동시키면 각 요소들의 움직임이 주요 감상 포인트이지만 그 움직임에 따라 발생하는 기계음도 주의 깊게 들을 필요가 있다. 건물 북쪽과 동쪽에 설치된 두꺼운 벽(Solid wall)은 감상자가 그 기계음에 집중토록 하기 위한 장치다. 두꺼운 벽이 설치된 북쪽과 동쪽 중에서도 동쪽은 철길도 있고 해서 길 건너로부터의 접근이 아예 불가능하다. 그래서 보타는 코너에 'Tinguely'의 싸인을 간판처럼 내건 것 외에 어떤 요소도 설치하지 않았다(위 사진). 반면 북쪽은 길 건너편 주거지역에서 접근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반대편(남쪽)으로 만들어진 주출입구로 연결되는 통로와 그 통로를 덮은 나뭇잎 단면의 작은 구조체를 설치했다(아래사진).
미술관 서쪽은 시각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연결가능한 공원과 면해 있다. 보타를 이를 감안해서 전시벽을 유리로 처리하고 벽의 위치도 지붕 끝선에서 뒤로 후퇴시켰다. 그리고 벽 안쪽을 ㅁ자로 잘라내 주출입구로 연결되는 회랑(Great front portico)을 만들었다(위&아래사진). 전시를 둘러보고 미술관을 나왔을때 내부에서 스며 나오는 주황색 조명이 공원에 따스함을 부여해주는 것 같았다. 보타가 가장 신경써서 설계한 부분은 남쪽 라인강에 면한 입면이다. 아무래도 도시 어디에서나 박물관을 인지시키는 방향이 이곳이기 때문이다. 우선 남쪽 입면 1층에 건물 전체적으로 사용된 알사스(Alsace)지방의 사암(Sandstone)과 대조를 이루는 검은색 강판을 사용해 입구를 만들었다. 그런데 입구가 있는 이 부분은 └┘자로 매달된 유리 입면의 매스로 인해 잘 보이지 않는다.
미술관을 방문한 관람객은 주출입구를 통과해 본 전시실로 가기전에 이 매스에 설치된 경사로를 오르게 된다. 보타는 이 과정을 일종의 전이공간으로 봤다(위&아래사진). 전이공간에서 관람자가 바라보는 풍경은 라인강과 반대편에 있는 바젤시내다. 보타는 'This architectural "promenade" gives the visitor time to prepare himself mentally before entering the exhibition space on the first floor, forcing a dialogue between the consumer and the context. It allows the visitor to form an intimate relationship with the urban space of the large river. A particular feature of the internal space is the full sunlight that from time to time falls in unusual configurations upon the various exhibition floors'라고 설명한다(-Mario Botta's Homepage-). 마리오 보타가 르꼬르뷔지에(Le Corbusier)에게서 건축을 사사받았다는 사실이 생각나는 공간이다.
김홍기는 팅겔리 미술관이 '요한 호이징가(Johan Huizinga)가 강조한 호모 루덴스(Homo Ludens)의 단면을 보여준다(-호모 루덴스; 유희에서의 문화의 기원-)'고 설명한다. 김홍기가 봤을때 '일반적인 미술관이 인식론적인 차원에서 미술관의 메세지를 전달하는데 주력하는데 비해, 팅겔리 미술관은 유희적이다. 그곳에는 현대미술의 난해함과 심각함보다는 움직임과 웃음, 놀이와 놀라움이 존재한다. 몇 개의 모터(Motor)들이 작동해 냄비나 북을 두드리며 유머러스한 음악을 연주하기도 하고, 거대한 기계음을 내며 돌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팅겔리의 작품이 그저 마냥 유희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의 작품에는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스(Modern Times)'처럼 기계문명에 대한 깊은 파토스(Pathos)가 깔려 있다. 팅겔리 작품 속에 내재한 희극성은 우연성, 부조리성, 모순성에 있다. 기계와 인간의 부조리한 상황, 기계답지 않은 모순성, 기계의 순기능과 역기능 사이 존재하는 모순들이 그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Serial: 미술관을 세운 사람들, 쟝 팅겔리 미술관, 김홍기 in PLUS 2010.8(280)-).'
보타는 팅겔리 미술관이 외부에서 봤을때는 압축적이지만 유연하고 내부에는 모듈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공간적인 장치에는 풍부함이 있다는 것을 그 자체로 밝히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전면에 포르티코(Portico)와 라인강변의 빛나는 통로가 방문자들에게 새롭고 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고 봤다. 미술관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역동적인 팅겔리의 작품과는 대조적으로 고전적이면서도 견고한 보타의 건물이 장난치고 있는 아이를 감싸고 있는 아빠의 팔처럼 군소리 없이 담아내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