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도시를 방문했을 때 가장 보고 싶었던 장소를 제일 먼저 간다(적어놓고 보니 당연한 소리네). 처음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를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간 곳은 Mario Botta가 설계한 SFMoMA(1995)였다. 그리고 몇 년 후 두 번째로 도시를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간 곳은 Morphosis를 이끄는 Thom Mayne이 설계한 San Francisco Federal Building(이하 SF Federal Building)이었다. Mission st과 7th st이 만나는 교차로 서쪽에 지어진 SF Federal Building은 미국 내에서도 가장 유럽적이라는 도시에 마치 거대한 기계장치가 놓여진 것 같았다.
샌프란시스코의 어번패턴Urban Pattern을 보면 가장 눈에 띄는 요소는 Market st이다(위 구글 위성사진에서 붉은색 도로). Market st을 중심으로 도시는 크게 동서로 나뉘고 기본적으로는 그리드 블럭이지만 방향과 디멘션Dimension 그리고 세장비가 다른 두 패턴이 충돌한다. 성격도 달라서 Market st의 남쪽 흔히 SOMA(South of MArket)라고 불리는 지역은 샌프란시스코의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어두운 곳으로 인식돼 왔다. SF Federa Building은 SOMA 지역에 있다(위 구글 위성사진에서 노란색 박스). Market st(NW), Embarcadero S st(E), Townsend st(SE), 그리고 101 Fwy이나 13th st(S)으로 영역이 한정되는 SOMA의 변화는 샌프란시스코 뿐만 아니라 다른 대도시들이 겪어온 워터프론트Waterfront의 변화와 함께 한다.
19C중반까지만 해도 SOMA지역은 부유한 사람들을 위한 저밀도 주거지였다. 그러다 20C초 도시내 공업지역이 필요해 지면서 재료 및 생산품의 운반이 편리한 베이Bay일대가 중공업지역으로 바뀌었다. 자연스럽게 이 일대에 살았던 부유한 사람들은 SOMA 지역과는 먼 Nob Hill이나 Russian Hill과 같이 전망이 좋은 곳으로 이동했다. 그들이 떠난 SOMA에는 중공업단지 운영에 필요한 공장이나 발전소가 지어졌고 기존 주택은 공장 노동자들을 위한 열악한 주거지로 바뀌었다. 이런 변화를 촉진한 계기는 1906년 발생한 지진이었다. 다른 지역에 비해 더 큰 피해를 입은 SOMA지역에 베이 브릿지Bay Bridge(1936, 위 사진)와 101 Freeway가 건설되면서 공업지역으로 발전할 수 있는 위한 기반이 마련되었다. 20C말 도시의 공장들은 임대료가 낮은 외곽으로 다시 이전했고 SOMA지역은 활력을 잃었다. 여기에 더해 워터프론트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면서 Embarcadero Waterfront 재개발에 대한 요구는 커졌다.
Embarcadero Waterfront 재개발을 시작으로 SOMA지역 전체에 대한 재개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서는 열악한 도시환경에 따른 현상 -예를 들어 낮은 임대료 등- 을 필요로 하는 계층과의 충돌도 일어났다. 특이하게도 샌프란시스코에서 이러한 계층이 저소득층 보다는 동성애자들이었다. 충돌의 정점이었던 1970년대를 지나 1980년대에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AIDS 같은 병이 퍼지면서 이 지역을 떠나게 됐고 자연스럽게 충돌은 잦아들었다. 결국 SOMA지역을 재개발하자는 주장은 힘을 받게 됐고 1953년에 처음으로 수립됐던 재개발 계획이 1981년 Moscone Convention Center South(HOK, 1992)의 완공으로 본격화 됐다. Moscone Convention Center가 있는 Yerba Buena Gardens(2개 블럭의 면적은 35ha, 아래사진)은 SOMA지역에서 일어난 첫 번째 대규모 재개발 프로젝트였다.
Yerba Buena Gardens을 중심으로 SOMA지역의 재개발 흐름은 Market st 동쪽에 있는 Mission st을 따라 워터프론트 방향(북동쪽)으로 진행됐다. SF Federal Building을 기준으로 봤을 때는 반대쪽이다. 그래서 이 건물이 준공될 때에도 여전히 그 주변의 환경은 열악했고 오픈스페이스Openspace는 부족했다. 이러한 컨텍스트Context를 고려해서 Thom Mayne은 대지에 ㄴ자 평면으로 건물을 배치하고 교차로에 면한 부분에 오픈스페이스를 만들었다(위 구글 위성사진 참고, 대지면적 8,000㎡). 그런데 가로에 면해 오픈스페이스를 배치할 경우 자칫 잘못하면 주변 가로의 활력 마저 떨어뜨릴 수 있다. Thom Mayne은 이를 감안해 교차로에 면해 98카페도 배치했다(아래사진). 단층짜리 98카페 건물과 본동 사이에는 오픈스페이스가 있지만 구겨진 듯한 본동의 지붕이 입면을 따라 내려와 카페 건물 지붕으로 이어지면서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다만, 오픈스페이스 바닥에 깔린 모래는 바람이 심한 도시의 미기후를 고려하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초기에 Thom Mayne은 SF Federal Building의 컨셉으로 'Resistance(저항)'를 제시했다. Resistance는 회색 콘크리트 벽과 주문제작한 지그재그 형태의 9Wood 나무 천장과의 병치(원문 'juxtaposing gray concrete walls with custom, zig-zagged 9Wood wood ceilings')였다.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설명은 Thom Mayne의 홈페이지를 비롯해 위키피디아wikipedia에도 실려 있었다. 그런데 현재는 두 사이트 모두에서 'Resistance'라는 컨셉은 사라졌다(설명이 남아 있는 사이트 링크 http://architectuul.com/architecture/san-francisco-federal-building). 현재 Thom Mayne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이 건축물에 대한 설명은 'a benchmark for sustainable design in its use of natural energy sources'다. 조금더 자세한 설명은 아래와 같다.
"Broadly understood, the project has developed around three primary objectives: the establishment of a benchmark for sustainable building design through the efficient use of natural energy sources; the redefinition of the culture of the workplace through office environments that boost workers' health, productivity, and creativity; and the creation of an urban landmark that engages with the community."
-Thom Mayne & Morphosis 홈페이지-
'Resistance'라는 단어가 사라진 경위는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난 이 건물을 설명하는데 'Resistance' 만큼 적당한 개념은 없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이유는 주변 도시조직과의 관계 때문이다. 내가 봤을때 SF Federal Building은 SOMA지역에 있지만 북쪽 Market st 건너편에 있는 Civic Center와의 관계에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런데 그 관계는 '어울림'이 아닌 'Resistance'다. 일단 프로그램적인 측면에서 Civic Center와 SF Federal Building은 공공행정 및 서비스라는 범주로 묶일 수 있다. 하지만 Civic Center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San Francisco City Hall(1915)에서 봤을때 이 건물은 축 방향을 거스르고 있다(위 사진). Civic Center는 San Francisco City Hall을 중심으로 대략 800m 길이의 축이 질서를 만든다. 축 양쪽으로는 Asian Art Museum과 SF Public Library(Pei Cobb Freed, 1996), The Art Institute of California SF 등이 있고 축과 Market st이 만나는 지점에는 United Nations Plaza(Mario Ciampi + Lawrence Halprin, 1979)가 조성돼 있다.
사실 샌프란시스코는 축에 의해 지배되는 기념비적인 도시는 아니다. 그럼에도 부분적이기는 하나 이런 기념비적인 패턴이 삽입된 이유는 Daniel Burnham이 샌프란시스코 재설계 계획을 수립했었기 때문이다(1906년 4월 17일, 위 도시계획도). 물론 Thom Mayne이 배치한 본동은 대지가 있는 Market st 남쪽 블럭의 방향(NE-SW)을 잘 따르고 있다. 다만 그 방향이 Market st 북쪽 블럭의 방향(E-W)과 충돌되고 동시에 본동의 높이가 71m로 높아서 Civic Cener의 축을 거스르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연면적 56,205㎡).
두 번째 이유는 주변 건축물과의 관계 측면이다. 샌프란시스코는 조지안 양식Georgian Style의 건물들이 주主를 이루는 도시다. Civic Center로 범위를 좁히면 고전주의 양식Classicism과 보자르 양식Beaux-arts style으로 건물들이 설계돼 있다. 반면 SF Federal Building은 앞서도 언급했 듯이 거대한 기계장치 같다. 굳이 의장적인 양식을 얘기하자면 하이테크 스테일Hi-tech style(?). 물론 새로 지어지는 건축물이 과거의 양식을 따를 필요는 없다. 또한, SF Federal Building의 외관은 2005년 프리츠커상Pritzker Prize을 받음으로써 이제는 하나의 시그니쳐Signature가 된 Thom Mayne만의 건축언어를 보여준다. 하지만 Civic Center내에 있는 Pei Cobb Freed가 설계한 SF Public Library(1996)의 설계전략과는 완전히 상반된 자세이기도 하다. SF Public Library의 네 입면은 기본적으로 정사각형 모듈이 지배하고 있지만 Civic Center내 다른 건물과 마주하고 있는 북쪽과 서쪽은 코니스Cornice나 창틀, 물매 등을 덧붙여 가능한 양식적으로 어울리도록 했다. 반면 다른 건물들과 마주하고 있지 않은 남쪽과 동쪽 입면은 이런 건축 요소들이 생략된 채 창과 입면이 모던Modern하게 처리돼 있다(아래사진).
SF Federal Building은 2007년 12월 타임지가 선정한 '가장 경이로운 현대건축물 10'에 선정됐다. 이 사실만으로도 준공과 동시에 이 건물은 충분히 도시의 랜드마크Landmark가 됐다. 하지만 단어 그대로 '랜드마크(어떤 지역을 대표하거나 구별하게 하는 표지)'가 됐는지는 몰라도 도시의 컨텍스트를 충분히 반영한 랜드마크라고 볼 수는 없다. 앞서 삽입한 Thom Mayne 홈페이지 글 세 번째에 나온 'the creation of an urban landmark that engages with the community.'는 방식에 따라 아주 논쟁적인 주제다.
반면, '자연에너지원을 활용한 지속가능한 디자인'은 현재 어떤 분야의 디자인에서도 신성불가침이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Thom Mayne 홈페이지에서도 'Resistance'라는 컨셉을 지우고 이 내용을 전면에 내세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SF Federal Building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연환기시스템으로 들어오는 자연바람에 날리는 서류들을 사무실 집기로 눌러야 하고 자연채광을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태양빛을 막기 위해 우산을 펼치는 수고를 감내해야 한다고 한다. 또한 Thom Mayne이 종사자들의 건강과 상호교류를 위해 3층 마다 엘레베이터가 서도록 한 결정도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친환경 건축 설계의 초점은 결국 사용자의 생활환경에 있다. 이를 묵살하고 친환경 기술 적용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는 설계에 대해 Jason McLennan은 '지속가능한 설계는 환경 성능과 사람의 건강과 안녕 증진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설계 과정 전반에 적용하는 일종의 철학이다. 친환경을 대변하는 기술 몇 가지를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그 건축물을 무조건 녹색건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지속가능한 설계철학, Jason McLennan, 비즈앤비즈-)
2017년, Thom Mayne은 73번째 생일을 맞았다. 그리고 그가 프리츠커 상을 받은 지도 12년이 지났다. 물론 그의 건축이 인정받는 이유가 단순히 '친환경 건축'에만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비록 거대한 기계장치 같다 하더라도 그의 건축은 혁신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우리는 그의 건축을 통해서 우리가 하고 있는 친환경 건축이 단순히 친환경 기술을 집약해 놓은 목업하우스Mock-up house는 아닌지, 친환경 건축에서 디자인은 과연 무슨 역할을 하는지 다시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도시차원으로 넓히면 유비쿼터스Ubiquitous도시에서 한 단계 진화한 스마트시티Smart city에서 디자인의 역할은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