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2016년) Donald Trump가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덩달아 주목받은 건축가가 있었다. 대통령 선거전 Trump가 당선되면 자신이 프랑스로 망명 갈 것이라고 프랑스 대통령 Francois Hollande가 말했다는 사실을 밝힌 Frank Gehry였다. 둘의 악연은 2010년 Gehry가 설계한 Beekman Tower가 Trump World Tower보다 높은, 뉴욕 맨해튼內 최고층 주거타워가 되면서 부터 시작됐다. 당시 Trump는 Beekman Tower가 더 높기는 하지만 공공 학교와 함께 있는 최고급 주거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Gehry는 자신이 이전에 Trump의 프로젝트를 거절한 적이 있는데 이에 대한 원한 때문에 그런 비판을 한다고 말하며 '어찌됐든 그의 헤어스타일은 맘에 들지 않는다'고 응수했다. Trump가 대통령이 된 후 Gehry가 프랑스로 망명갔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올해(2017년) 2월 28일, Gehry는 88세가 된다. 망명을 가기에는 너무 많은 나이 아닐까?

2002년 첫 번째 미국여행때 렌트카도 없이 LA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 중에는 Santa Monica도 있었는데, 목적은 Gehry의 초기 작업들을 둘러보기 위함이었다(그래서 글에 삽입된 사진의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초기 작업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사실 Santa Monica일대에 Gehry가 설계한 작업들은 그의 나이 50대 이후에 했던 것들이다. 그는 늦은 나이에 뜬 건축가다. Santa Monica일대의 작업 중 가장 의미있는건 아무래도 자기의 집을 개조한 Gehry House(1978)다(위 사진). Gehry는 1978년에 했던 이 작업을 통해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설계 개념으로 'A dumb little house with charm'과 'Cheapscape architecture'라는 두 가지 개념을 제시했었다. 'Cheapscape'라는 단어가 생소한데,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값싼 재료인 함석판, 쇠사슬, 합판과 유리를 이용해서 만들어내는 경관을 의미한다. 기존 건물을 증축할 때는 기존 건물과 어울리도록 하는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Gehry는 Cheapscape를 통해 집을 이루는 각 요소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Gehry House 증축 부분을 건물 전체로 확대시킨 작업이 Spiller House(1980)다. Gehry는 현재 우리가 패스트푸드, 광고, 값싸게 만들어져 그냥 쓰고 버리는 것, 비행기를 타거나 택시를 잡기 위해 달려가는 정신없는 상황으로 이루어진 문화 속에 있는데, 여기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뭔가 마무리되어 있는 것보다 우리 문화를 더 잘 표현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고안된 즉흥주의 Improvised Adhocism' 전략을 만들어 냈는데, 이는 사람들에게 뭐가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기대감을 고조시키고 신선함을 줄 수 있다고 한다(-길들이는 건축 길들여지는 인간, 이상현, 효형출판-).

Santa Monica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곳은 3rd Promenade다. 보행자 전용도로로 세 블럭에 걸쳐 있는 3rd Promenade 남쪽 끝에 Santa Monica Place(1981)가 있다. Santa Monica Place의 구성은 동쪽과 서쪽에 백화점, 북쪽과 남쪽에 주차장이 있고 이를 十자 형태의 쇼핑몰이 연결한다. 미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쇼핑몰 구성이다. 하지만 Gehry는 장방형 평면을 바탕으로 하는 Santa Monica Place에서 사선의 변화를 十자 동선에 주었다. 그래서 백화점과 상점 안에서 느껴지지 않는 역동성이 쇼핑몰을 이동할 때 느껴진다. 물론 이런 장면을 현재 Santa Monica Place에서는 볼 수 없다. 이유는 1991년과 1996년 두 차례 리노베이션 후 2010년 Jerde Partnerships의 설계로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했을때 Santa Monica와 가장 어울리는 Gehry의 작업은 Norton House(1984)다. 바닷가를 끼고 있는 Santa Monica에서 Ocean front walk를 따라 걷는건 기분 좋은 일이다. Norton House는 Ocean front walk와 25th st이 만나는 곳에 바닷가를 바라보며 서 있다. 일반적으로 바닷가를 바라보고 있는 집은 워터프론트 조망을 극대화하기 위해 바닷가 쪽으로 넓은 창과 발코니Balcony를 둔다. 매스의 형태도 조금이라도 바다와 가까워지기 위해 대지경계선에 바싹 붙인다. Norton House 좌우에 있는 건물들도 이렇게 설계돼 있다. 하지만 Norton House는 본Main 매스를 뒤로 물리고 바다쪽으로 빨간색 오두막을 마치 전망탑처럽 세웠다. 전망탑이 만들어진 이유는 의뢰인이 과거 인명구조 안전요원이었고 당시 전망대에 앉아 있기를 좋아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Gehry는 이런 의뢰인의 이야기를 전망대라는 건축공간으로 풀어냈다.

참고로 이 전망대는 처음에 흰색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소니Sony TV광고 촬영때 강렬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 빨강색이 칠해졌다. Gehry는 본 건물을 설계하면서 건물이 있는 Santa Monica Venice지역의 혼돈스러울 정도로 다양한 문화적 컨텍스트 속에서 어떻게 하면 Norton House가 두드러져 보일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가장 많이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고민의 해답이 값싼 재료의 꼴라쥬 구성이었다. 여기에 Gehry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건물 외벽에 빨강, 파랑, 노랑색이 칠해지면서 팝아트적인 느낌까지 더해졌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전했지만 2002년 방문 당시 Gehry의 사무소는 1520-B Cloverfield blvd에 있었다. 미국 서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건물 외관을 하고 있었던 건물에서 세계적인 랜드마크가 쏟아져 나온다는 사실이 조금 신기했었다.

자신의 사무소를 설계한 시기(1988년)에 준공한 건물 중 Edgemar Center도 있다. Santa Monica에서 가장 중심이라 할 수 있는 Main st에 면한 이 건물은 가운데 작은 마당과 몇 개의 상점들로 이루어져 있다. 흥미로운 점은 1984년 부지를 매입한 Abby Sher가 Gehry에게 1908년에 지어졌던 기존 얼음 저장 창고 구조를 보존해 달라고 요구했고 결국 Gehry도 이를 받아들여 설계했다는 것이다.

Edgemar Center내 건물들은 시멘트 외장에 타일로 마감된 부분도 있고 철재 패널로 마감된 부분도 있다. 그래서 전체적인 느낌은 판매시설 보다는 기존 얼음 창고가 그대로 이어진 것 같다. 심지어 건물 상부에 덧붙여진 철 프레임Frame 때문에 고철 수집상 같기도 하다. 이관용은 《Los angeles; 자유와 실험, 진보를 향한 건축도시, 미술문화》에서 설치예술을 해 놓은 것 같은 분위기로 느꼈다고 한다. 고철 수집상이 됐든 설치예술이 됐든 Gehry는 Edgemar Center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어울릴 수 있도록 엘레베이터 샤프트 Elevator Shaft 외관을 철망으로 둘렀다. 철망은 밖에서 봤을때 내부가 아리아리하게 보이지만 모서리가 각져 있어서 연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Santa Monica에 설계한 Gehry의 작업 중 가장 유명한 것은 Chiat Day Advertisement Agency Building이다.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이 건물 가운데 삽입된 Claes Oldenburg의 쌍안경이다. 1989년 프리츠커상Pritzker Prize을 받을때 Gehry는 자신의 예술가 친구들 -Jasper Johns, Bob Rauschenberg, Ed Kienholz 그리고 Claes Oldenburg- 이 부러진 나무나 종이처럼 매우 싼 재료들을 가지고 작업을 했고 이를 통해 아름다움을 만들었다고 설명하면서 이러한 작업이 자신에게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가라는 질문을 불러일으켰다고 밝혔다. 이런 질문에 대한 Gehry의 답 중 하나가 'Cheapscape'다. 그 중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보는 요소를 크게 확대해서 그동안 무심하게 지나쳤던 것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토록 한 Claes Oldenburg의 작업은 건축 매스가 주는 강렬함과 직감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Gehry의 건축언어와 잘 맞았다. Chiat Day Advertisement Agency Building은 이 두 사람의 합작품이다. 이 작업 후 두 사람은 예술적인 동반자로서 서로의 작품세계를 공유했고 그들만의 방법론을 지켜나갔다고 한다.

특히, Gehry는 Claes Oldenburg와의 협업을 통해 작업활동 무대를 유럽으로 넓힐 수 있었다. 1984년 비트라Vitra를 설립한 Willi Fehlbaum의 자식들이 그의 70번째 생일에 'Balacing Tools'라는 이름의 조형물을 선물했다. 조형물을 디자인한 예술가가 Claes Oldenburg와 Coosje van Bruggen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의뢰인 중 한명이었던 Rolf Fehlbaum(Willi Fehlbaum의 아들)은 Claes Oldenburg의 절친인 Gehry를 알게 됐다. 결국 Rolf Fehlbaum은 Gehry에게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Vitra Design Museum 설계를 의뢰했다.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은 1989년 준공됐고 이후 Gehry는 비트라 캠퍼스 인근 Basel에 비트라 국제본사Vitra International Headquarters 설계도 맡았다. 이 건물은 1994년 준공됐다.

다시 Chiat Day Advertisement Agency Building 얘기로 돌아와서. 이 건물과 쌍안경은 방문전 내가 보아왔던 도판을 통해 상상했던 것보다 더 일반적인 LA풍경 속에 서 있었다. 쌍안경 아래에는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경사로가 설치돼 있다. 만약 이 건물이 지금 보다 더 보행자 중심의 환경 속에 있었다면 쌍안경을 배경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며, 이 일대의 랜드마크가 됐을 것 같다. 참고로 이 건물에 쌍안경이 들어서게 된 이유가 무척 밋밋하다. Chiat Day Advertisement Agency Building의 의뢰인은 Gehry에게 자신들이 광고를 만드는 회사이기 때문에 건물이 예술적이어야 되고 그 안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건물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런 요구에 Gehry는 1984년 베니스 극장도서관을 위한 제안때 사용했었던 Claes Oldenburg의 쌍안경을 순간적인 충동으로 다시 세웠다고 한다. 건물의 정면은 건물의 기능을 외부에 알리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Gehry는 광고회사와 전혀 상관없는 쌍안경을 충동적으로 배치해 버렸다. 그럼에도 이 건물은 쌍안경 때문에 꽤 유명해졌다.

Ando Tadao는 《안도다다오의 도시방황, 오픈하우스》이라는 책에서 'Gehry가 미국, 특히 LA라는 도시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지극히 상징적이다'라고 했다. Ando는 LA가 '전통 없는 도시, 촉수를 사방으로 뻗치며 꿈틀거리는 정체 모를 생물처럼 고속도로로 전역이 연결되어 엄청난 에너지로 쉼 없이 활동하는 도시, 무한한 속도, 오로지 쾌락만을 추구하는 맹목성, 그리고 방종에 가까운 자유로움까지 그야말로 자본주의의 사생아라 부를 도시'이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들었다. 결국 Ando가 LA라는 도시에서 찾은 상징은 '자유'였다. 그 자유는 '전통이 없는 대신 옭매일 것이 없는 자유'였고 '지켜야 할 것도 없는 자유'였다. 그래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Deyan Sudijc도 《거대건축이라는 욕망(The Edifice Complex : The Architecture of Power), 작가정신》에서 'Los Angeles는 다양한 형태가 충돌하면서 색다른 조합을 이루는 곳이며, Gehry는 그런 맥락을 느슨하고 자유로운 접근법으로 건축에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Donalds Trump는 미국의 대통령이 됐다. 그리고 Gehry가 프랑스로 망명을 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사실 Gehry가 망명을 간다 하더라도 Trump가 당선됐다는 그 자체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Trumps가 Gehry라는 건축가, 더 넓게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을 자신의 재임기간 동안 포용하지 못한다면, 예술가들의 토대라 할 수 있는 다양성을 죽인다면 그 이유 때문에 Gehry가 프랑스로 망명할 수는 있다. 그런데 Trump가 당선 직후 취하는 행동들을 보면 왠지 Gehry는 88세라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로 망명갈 것 같다. Trump당선과 Gehry망명 간의 관계는 아직 미정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예술가 블랙리스트Black List 작성은 이미 일어난 일이다. 박근혜와 최순실 시대가 안타까운건 여러 방면에서 대한민국이 뒤로 갔다는 것, 시대 역행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Trump 집권 후 Gehry가 참을 수 없는 건 바로 그 뒤로 가는 행위, 시대 역행 분위기일 듯하다. Gehry가 맘에 들어하지 않았던 Trump의 헤어스타일이 시대 역행의 상징이다. 나도 Trump의 헤어스타일이 맘에 안든다. 물론 박근혜의 올림머리는 더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