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패턴Urban Pattern은 마치 사람의 지문指紋 처럼 도시의 역사가 땅에 남긴 흔적이다. 그래서 승효상은 'Landscript'라는 단어를 만들며 '지문地文'이라 썼다. 마닐라에서 인트라무로스Intramuros는 스페인 식민기의 지문이다. 인트라무로스는 스페인어로 '벽 안쪽'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그래서 반대개념으로 성벽 바깥 영역은 '엑스트라무로스Extramuros'라 부른다. 인트라무로스는 해안가 안쪽으로 움푹 들어간 마닐라 베이Bay와 파시그 강Pasig River이 합류하는 지점 남쪽에 있다. 파시그 강은 내륙으로 흘러 들어가 마닐라 남동쪽에 있는 Laguna de Bay와 연결된다. 육상교통이 발달하기 전까지 강은 최고의 운송통로였다. 그래서 인트라무로스가 있는 영역은 스페인 식민시기 전부터 무역거래를 위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실제 14C경 이곳은 마자파히트Majapahit 왕조가 통치했고 1485년 경에는 술탄 볼키아Bolkiah가 침범해 지배하기도 했다.

1519년 8월 10일 스페인 세비야를 떠난 페르디난드 마젤란Ferdinand Magellan은 9월 20일 대서양 횡단을 시작했다. 그의 원정대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에서 남쪽으로 우회한 뒤 1521년 3월 16일 태평양을 가로질러 필리핀 제도에 도착했다. 올해(2017년)는 마젤란의 필리핀 도착 496주년이다. 마젤란은 필리핀에 도착한 뒤 한 달 가량 지난 4월 27일 원주민들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 후 43년이 지난 1564년 11월 스페인 탐험가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Miguel Lopez de Legazpi가 이끄는 탐험대가 당시 새로운 스페인이라 불렸던 멕시코의 Barra de Navidad港에서 항해를 시작했다. 그리고 1565년 2월 세부섬에 도착했다. 레가스피는 세부섬에 있는 원주민들로부터 루손 섬the Island of Luzon에 풍부한 자원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Martin de Goiti와 Juan de Salcedo를 파견했다. 원주민들의 제보가 사실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원주민들은 거짓말을 해서라도 스페인 탐험대를 다른 곳으로 보내고 싶었을 것 같다. 1570년 스페인 탐험대는 루손 섬에 도착했다. 그리고 당시 이슬람을 믿고 있었던 원주민들과 몇 개월 간의 전투 끝에 승리를 얻었다. 스페인 탐험대는 원주민들과 평화조약(?)을 맺었다. 강화도 조약이 일본 입장에서만 평화조약이라고 간주되는 것처럼 이 조약도 원주민 입장에서는 평화조약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1571년 6월 레가스피는 마닐라가 스페인 식민지의 새로운 수도라는 것과 스페인 군주의 통치지역임을 선포했다. 당시 스페인 제국의 왕은 필립2세Philip II였다.

스페인 탐험대가 마닐라 통치를 선언했지만 그건 그들과 전투를 한 원주민들에게만 인정받은 권리였다. 1574년 임아봉林阿鳳이 이끄는 중국해적이 마닐라를 쳐들어왔고 그 외 여러 위협이 지속됐다. 결국 스페인 식민정부는 이런 위협으로 부터 자신들의 식민지를 방어하기 위해 1590년 산티아고 데 베라Santiago de Vera 총독의 주도로 성벽 건설을 시작했다. 계획은 Antonio Sedeno에 의해 수립됐다. 성벽은 외부로 부터의 견고한 방어를 목적으로 건설됐음으로 요새화를 위한 특별한 설계와 시공이 필요했다. 이는 스페인 군대의 엔지니어 Leonardo Iturriano가 맡았다. 건설 노동자들은 중국인과 필리핀 현지인들이었다. 인트라무로스의 첫 번째 성벽은 마닐라 베이Manila Bay 해안선을 따라 파시그 강 남쪽으로 67ha 규모를 감쌌다. 인트라무로스 안쪽으로 들어오는 문은 파시그 강 쪽으로 나 있었다. 현재 포트 산티아고Fort Santiago가 있는 자리다. 인트라무로스의 주인이 스페인에서 미국으로 바뀐 1898년에 작성된 지도를 보면 그 형태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성벽은 1872년까지 꾸준히 지어지고 보수됐는데 일반적으로 두께는 2.4m이고 높이는 6.7m 정도다. 

인트라무로스는 마닐라의 역사지구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구역이다. 스페인 식민정부는 인트라무로스를 요새화 한 뒤 식민지 통치에 필요한 공공기관들을 집중적으로 입지시켰다. 인트라무로스 내부는 필리핀이 아닌 스페인이었다. 당연히 내부의 도시조직은 스페인내 도시조직과 유사하게 만들어졌다. 우선 블럭은 정방형에 가깝게 구획됐다(85m x 90~130m). 도시의 중앙 광장인 플라자 데 로마Plaza de Roma는 마닐라 성당Manila Cathedral 전면에 조성됐는데, 양쪽으로 과거 시청이었던 Ayuntamiento(동쪽)와 총독 관저였던 Palacio del Gobernador(서쪽)가 배치됐다. 인트라무로스 내 도시구성은 스페인 왕이 16세기 후반에 체계화하여 아메리카 대륙내 식민 도시에 적용된 '인디안법'과 동일했다. 이 법의 포고도 1573년 필립2세Philip II가 했다. '인디안법'을 따랐기 때문에 인트라무로스의 중앙광장인 플라자 데 로마에서도 투우를 비롯한 다양한 이벤트가 열렸다. 하지만 1797년 Rafael Maria de Aguilar 총독이 광장을 정원 형태로 바꿨다. 1901년 미국이 필리핀을 통치한 이후에는 미국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William McKinley의 이름을 따 플라자 매킨리Plaza McKinley로 바뀌기도 했다. 참고로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은 미국의 필리핀 통치를 승인한 인물이었다. 광장의 이름이 플라자 데 로마로 복원된 때는 1961년이었다.

1898년 8월, 포트 산티아고에 성조기가 걸리면서 인트라무로스의 주인은 미국이 됐다.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은 마닐라에서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흔적을 미국화하길 원했고 후에 필리핀의 첫 번째 미국 총독이 된 윌리엄 태프트William Howard Taft는 그에 걸맞는 도시 계획을 수립했다. 1900년 필리핀의 첫 번째 미국 총독이 되는 윌리엄 태프트는 윌리엄 매킨리의 결정이 반영된 도시 계획을 수립한다. 후에 윌리엄 태프트는 미국의 27번째 대통령이 된다.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흔적을 미국화 하기 위한 도시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윌리엄 태프트가 고용한 사람은 대니엘 번햄Daniel Burnham(1846~1912)이었다. 마닐라의 역사에서 대니엘 번햄의 이름을 듣는다는 것이 의외였다. 도시·건축史를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대니엘 번햄하면 '시카고'와 '도시미화운동City Beautiful Movement'을 떠올릴 것이다. 번햄은 큰 계획을 추구했다. 그는 '작은 계획에는 인간의 피를 용솟음치게 하는 마술이 없으며, 아마도 그 자체는 실현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희망과 일에서 목표를 높게 잡은' 큰 계획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한 번 기록된 고상하고 논리적인 계획은 죽지 않을 것이며, 우리가 죽은 오랜 뒤에도 살아 있어서 점점 더 맹렬히 스스로를 주장하리라는 것을 기억하라'고 선언했다《틈의 다이알로그, 구영민, Spacetime》. 번햄이 주도한 도시미화운동은 19C 유진 오스만Eugine Haussman이 주도한 파리 대개조계획에 기원을 두고 있다.

그래서 그가 수립한 도시계획들을 보면 기존 도시 패턴과 상관없는 방사형 도로망과 상징적인 축이 등장한다. 그리고 파리의 개선문이 있는 에뚜알 광장Place de l'Etoile처럼 도시 전체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지점이 설정되고 그 지점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방사도로가 뻗어나간다. Mark Girouard는 자신의 저서 《도시와 인간, 책과함께》에서 '국가 혹은 도시의 긍지와 힘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든, '부자연스러운' 도시의 혼잡함에 대한 상징적 거부였든' 도시미화운동은 '공간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록 공간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공간 그 자체를 위해 공간을 활용하는 것 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도시미화운동의 계획은 '더 적은 사람들이 더 넓은 공간을 사용하게 만드는 것'이었고 '여기서 강조된 것은 유쾌함이 아니라 위엄이었다'라고 생각했다.

번햄의 마닐라 도시계획에서 중심공간은 현재 리잘 공원Rizal Park과 Agrifina Circle 자리다. 앞서 언급했듯이 미국은 스페인의 흔적(인트라무로스)이 아닌 새로운 흔적을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그 흔적을 도시의 중심공간으로 설정해서 스페인의 흔적을 한쪽으로 밀고 동시에 새로운 흔적과 연결시키기 위해 과거 흔적의 상태를 변경시켰다. 인트라무로스에서 일어난 변형 작업은 우선 포트 산티아고를 미군의 필리핀 지부 건물로, Ayuntamiento를 필리핀 위원회 건물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1903년에는 파시그 강에 면한 부분의 성벽도 허물었다. 이후 네 군데를 추가로 헐어 성 바깥에서 안쪽으로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 가장 큰 변화는 성 주변에 해자를 메워 골프장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번햄의 계획과 현재 마닐라의 위성사진을 포개어 보면 방사상의 주간선도로 중 실제 만들어진 것들이 꽤 많다. 문제는 방사상의 도로가 뻗어나가고 모이는 지점 중 어느 하나 제대로 완성된 곳은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현재 마닐라의 위성사진을 보고 이 도시에 방사상의 도시계획이 적용됐다는 생각을 하기란 어렵다. 오히려 미완성으로 만들어진 방사상의 주간선도로들이 무계획적으로 보일 뿐이다. 그러니 '도시미화운동', '기념비적인 도시', 그리고 '위엄'을 마닐라 전체에서 느끼기란 불가능하다. 리잘 공원에서만 그 의도가 희미하게 읽힐 뿐이다.

리잘 공원은 인트라무로스 남쪽에 전체 48ha 크기의 도시공원이다. 리잘 공원이 있는 곳에는 1601년부터 Nuevo Barrio라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은 1762년~1764년 영국이 마닐라를 잠시 점령했을때 작전활동에 거슬린다고 판단해 없앴다. 이후 다시 스페인의 식민지가 됐을때 스페인 군대가 이곳에 주둔했고 연병장과 군병원 그리고 인트라무로스의 해자가 만들어졌다. 1820년에는 100mx300m 크기의 경기장 형태를 띈 공원, Paseo de Luneta가 조성되기도 했다. 식민시기 필리핀에는 시민사회가 형성돼 있지 않았다. 당연히 Paseo de Luneta는 말이 공원이었지 마닐라 시민들을 위한 공공공간이 아니었다. 실제 1823년~1897년 동안 스페인 식민정부가 공공에게 공포정치를 드러내는 공개적인 처형장으로 쓰였다. 이곳에서 총 158명이 처형됐는데, 그 중 1896년 스페인 왕국에 대항해 필리핀 혁명을 이끈 국민적 영웅 Jose Rizal도 있었다. 그는 그해 12월 처형됐다.

미국은 필리핀의 또 다른 식민 통치자였지만 스페인과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의도로 미국은 1901년 9월 리잘Rizal기념비를 세웠다. Roxas Boulevard에 면해 바다쪽을 바라보고 있는 리잘기념비는 국제현상설계를 통해 2등작으로 선정된 스위스 조각가 Richard Kissling이 디자인했다. 번햄 계획에서 리잘 공원은 지금처럼 블럭 전체가 공원으로 된 모습은 아니었다. 그의 계획을 보면 현재 세 개의 영역으로 나뉘는 리잘 공원 중 가운데 영역(Roxas Boulevard와 Ma.Orosa st 사이)의 가운데에 오픈 스페이스Open space를 두고 정부 건물을 ┌┐자로 둘렀다. 이 건물 중 Ma.Orosa st에 면해 있는 매스가 필리핀 의사당 건물이었다. 필리핀 의사당 건물 뒤로는 반원 평면의 광장을 두고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도로와 그 사이 블럭에 중정을 둔 건물을 꽉 차게 배치했다. 현재 Agrifina Circle자리로 양쪽에 있는 the Museum of the Filipino People(舊 농무부 건물)과 the Museum of Natural History(舊 재무부 건물)만 지어져 있다. 이 지점에서 도시의 축은 북쪽으로 인트라무로스의 동쪽 해자를 따라 파시그 강까지 닿았다. 지금도 그 선형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이 축을 따라 National Museum of the Philippines과 마닐라 시청이 있다.

1941년 12월 일본군이 필리핀을 침략했다. 이때 우리에게도 친숙한 맥아더MacArthur 장군은 마닐라 전체를 '무방비 도시'로 선언하고 전 병력을 바탄 반도로 후퇴시켰다. 국제법상 무방비 도시가 선언되면 공격을 금지하고 군사적인 목표물이 있는 경우에만 공격이 허용된다. 무방비 도시는 영어로 하면 'Open City'다. 도시를 공부하면서 'Open'이라는 단어가 이런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맥아더의 '무방비 도시'선언은 의미가 없었다. 인트라무로스는 2차세계대전 기간내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큰 피해를 입었다. 도시 조직의 5%만 남았고 성벽의 60%가 붕괴됐다. 뭐 심지어는 '무방비 도시'를 선언한 맥아더 장군 조차 1945년 수세에 몰린 일본군이 인트라무로스로 퇴각했을때 엄청난 포격을 가해 16,600여명을 사살했다고 한다. 인트라무로스의 재건은 1951년 시작됐다.

1946년 7월 4일 미국에 대한 독립선언이 열린 장소는 리잘 공원이었다. 이후 여러 정치적 이벤트가 이곳에서 열렸는데 이를 위한 10,000석 규모의 Quirino Grandstand를 서쪽 끝에 만들었다(1946년). Quirino Grandstand의 첫 번째 버전은 Juan Arellano가 설계했다. 이후 1949년에 Federico Ilustre의 설계로 개조됐다. 1948년 필리핀의 여섯 번째 대통령으로 취임한 Elpidio Quirino는 선거에서 승리한 뒤 이곳에서 선서를 했다. 그 뒤로 역대 필리핀 대통령들이 취임선서를 하는 곳이 됐다. 객석이 있으려면 무대가 필요한 법. Quirino Grandstand 동쪽에는 다양한 이벤트가 벌어지는데 번햄 그린Burnham Green이라는 오픈 스페이스가 있다. 마닐라를 방문해서 '번햄 그린'이라는 이름을 들었을때 이 번햄이 대니엘 번햄을 의미한다는 건 몰랐다.

리잘 공원을 중심으로한 번햄의 계획은 미완성으로 끝났다. 오히려 그의 계획대로 조성된 곳은 번햄 그린 주변이었다. 번햄은 해안가를 따라 나무가 열지어 있는 넓고 긴 대로Boulevard를 계획했다. 현재 해안가를 따라 조성된 Roxas Boulevard가 여기에 해당된다. 그리고 그 배경으로 장대한 호텔을 하나 그려넣었는데, 그 장면이 인상깊었던지 윌리엄 타프트는 그 투시도를 실제로 구현하고 싶었다. 그 호텔이 번햄 그린 북쪽에 있는 마닐라 호텔이다. 번햄은 당시 뉴욕에서 활동 중이었던 건축가 William Parsons(1872~1939)를 추천했다. William Parsons는 예일대학과 파리 에콜 데보자르Ecole des Beaux-Arts에서 건축을 배웠다. 도시를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개조하려는 집단이 나타나면 반드시 그 집단의 뜻을 구현해주는 건축가가 등장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건축가는 '도시 건축가City Architect'와 같은 직함을 달게 된다. 마닐라에서는 William Parsons가 그 역할을 맡았다. 건축가 입장에서도 자신이 설계한 건축물로 한 도시를 채우는 기회이니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다. William Parsons는 마닐라 호텔 외 그 건너편에 있는 Manila Army and Navy Club(1912)과 Manila Elks Club(1911) 건물도 설계했다.

마닐라에는 도시팽창을 막는 요소 -서울 같은 경우 산- 가 없다. 인트라무로스와 리잘 공원을 중심으로 도시는 끝없이 커져나갔다. 1903년 22만 정도였던 인구는 1960년 114만명에 육박했다. 2015년 마닐라의 인구가 178만 정도라는 것을 보면 필리핀 독립 직후 마닐라의 도시화가 얼마나 급속도로 일어났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서울과 면적이 비슷한 마닐라 대도시권(614㎢)으로 범위를 넓히면 인구는 1,287만명으로 늘어난다. 대도시권 밖으로 도시화지역이 860㎢나 더 펼쳐져 있다. 마닐라의 위성사진을 보면 블럭이라 할 만한 구획없이 도시조직으로 꽉 차 있다. 마치 누군가가 분비물을 쏟아 놓은 것 같은 도시조직에는 어떤 오픈스페이스도 녹색의 공간도 없다. 마닐라 도시 팽창기때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며 만들어진 슬럼Slum지역이다. 슬럼지역이 도심 주변에 켜켜이 덧대지면 도시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기능을 만들기 위한 부지 확보가 힘들어진다. 이 상황에서 도시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두가지. 첫 번째는 바다를 메워 새로운 땅을 만드는 방법이고 두 번째는 기존 시설을 이전하고 이전적지를 활용하는 방법이다. 마닐라 시가 취한 첫 번째 방법이 바로 마리나 베이에 만들어진 베이시티Bay City와 엔터테인먼트 시티Entertainment City다. 그리고 두 번째 방법은 보니파시오 글로벌 시티Bonifacio Global City다.

Adrian Forty는 《건축을 말한다, 미메시스》에서 르네상스때 알베르티Alberti부터 이후 유진 오스만, 대니앨 번햄 그리고 1950년대와 1960년대의 도시설계자 등 많은 도시 계획가들이 '질서 정연하게 보이는 것이 실제로도 질서 정연할 것이라는 생각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는데, '그것은 오류였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20C에 들어와 상트페테르부르크와 파리의 역사를 살펴보면, 물리적 질서를 갖춘 도시가 정치적으로도 안정된 도시라고 가정할 근거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Adrian Forty는 앞서 언급한 도시설계자들이 '도시가 존속하면서부터 있어왔던 도시의 무질서에 대한 불평'에 대해 '도시를 살 만한 곳으로 만들려면 약간의 질서를 부과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질서는 '건물, 거리, 광장이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는 도시'였다. 대니앨 번햄이 마닐라에 수립한 도시계획도 도시의 물리적인 질서를 만들어 그 도시가 가지고 있는 무질서를 해소하고자 한 의도가 있었다. 하지만 번햄의 계획은 미완성으로 끝났고 이후에도 마닐라에서는 도시의 물리적 질서를 만드려는 시도가 여러차례 있었다. 하지만 마닐라 그 어디에서도 이 도시가 그리고 이 사회가 안정돼 보인다고 생각되는 곳은 없다. 오히려 질서가 부여된 곳은 누군가 쏟아놓은 분비물 속에 피어있는 곰팡이 처럼 더 큰 이질감만 느껴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