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 가우디는 건축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아는 건축가다. 그가 유명해진 이유는 아마도 그의 건축철학 보다는 그가 설계한 건축물들의 형태 때문일 듯 하다. 특히, 구엘공원(1914)과 성가족 성당La Sagrada Familia은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들르는 필수 방문지다. 그 중에서도 성가족 성당은 가우디 사후 현재까지 짓고 있는 건축물로 더 유명하다. 더군다나 뭐든 빨리 짓고 서둘러 끝내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생기는 우리네 건설방식에서 봤을 때 성가족 성당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식처럼 여겨져 왔다. 6월은 가우디에게 특별한 달이다. 그는 6월 25일에 태어나 6월 10일에 타계했다.
가우디 뿐만 아니라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성가족 성당 설계를 처음부터 가우디가 맡았던 건 아니다. 성당의 건축주인 성 요셉 신앙인평회 평의회Associacio de Devots de Sant Josep는 1877년에 교구 건축가였던 Francisco de Paula del Villar y Lozano(1828~1901, 위 왼쪽 사진)에게 설계를 의뢰했다. Villar는 네오 고딕양식Neo-Gothic Style으로 성당을 설계했고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중인 지하성당Cripta 공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평의회의 대표자이자 본 프로젝트를 기획했던 호세 마리아 보카베리야Josep Maria Bocabella의 건축자문을 담당했던 Joan Martorell(1833~1906, 위 오른쪽 사진)의 반대로 1883년 설계를 그만두게 됐다. Joan Martorell이 초기에는 Eugene Viollet-le-Duc의 영향을 받아 고딕양식을 추구했지만 나중에는 카탈루냐 대학의 모데르니시메Modernisme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가 반대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실제 그는 Villar 사임 이후 성가족 성당의 설계자 되어줄 것을 요청받았지만 거절했고 그의 후배였던 가우디를 추천했다. 사실 가우디에게 Joan Martorell은 꽤 중요한 인물이었는데, 여러 가르침을 받은 것 외에도 가우디의 후견인이자 의뢰인이 되는 Eusebi Guell을 소개해 줬다.
Joan Martorell의 추천으로 성가족 성당의 설계자가 된 가우디는 자신의 74년 생애 중 절반 이상의 시간을 이 프로젝트에 몰두했고 마지막 15년 동안은 전적으로 매달렸다. 그럼에도 가우디는 설계 의뢰를 받자마자 성당의 대략적인 모습을 그리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가 성당을 본격적으로 설계하기 시작한 시기는 1903년 이후였다. 하지만 1891년 봄, 건축주인 호세 마리아 보카베리야가 평의회 회원들과의 아침식사에 초대했을 때 가우디는 성당의 완성된 모습과 그에 따른 전체구상에 대해 얘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에 "이 교회가 세워지는 중요한 이유는 신의 집과 기도와 명상의 집을 만드는 것입니다. 인간을 종교적 감정의 표현과 연결시킬 수 있는 모체가 될 것입니다. 이 예술작품은 자신과 주위의 상황 속에서 적합한 장소를 발견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교회는 종교를 올바르게 볼 수 있는 넓게 열려진 공간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성당은 가우디 타계 100주기에 맞춰 2026년~2026년 쯤 완공될 예정이다. 하지만 성가족 성당이 수세기에 걸쳐 건설 하고 있다는 사실로 주목받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성당 완공이 정말 득이 되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마치 피사Pisa의 사탑이 계속 기울어져야 있어야 하는 것처럼. 사실 중세시대 지어진 유럽의 여러 성당들의 건설기간을 고려하면 성가족 성당이 2026년에 완공된다 하더라도 144년이라는 건설기간이 그렇게 긴 것도 아니다. 가우디가 죽은 뒤 성당은 Domenech Sugranyes의 감독하에 1938년 스페인내전 때까지 공사가 진행됐다. 하지만 카탈루냐 무정부주의자들에 의한 전쟁으로 가우디가 남긴 유서와도 같은 작업의 흔적들이 상당부분 파괴됐다. 그래서 현재 진행중인 작업에서 어느 정도는 현대적인 해석이 포함될 수 밖에 없었다. 1940년부터는 Francesc Quintana를 비롯한 몇몇의 건축가들이 작업에 참여해 왔고 1984년부터는 1940년부터 참여했던 Lluis Bonet i Gari의 아들인 Jordi Bonet i Armengol이 감독관으로 있다.
세상의 모든 종교시설들이 그렇듯 성가족 성당도 기독교의 상징으로 가득차 있다. 가우디는 설계를 시작하면서,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이 꿈 속에서 신과 만나게 해준 하늘로 향하는 계단Stairway to Heaven을 떠올렸다. 그래서 그는 푸니쿨라Funicula 형의 탑으로 Villar가 설계했던 네오 고딕양식을 대신하는 안을 만들어냈다. 《가우디 공간의 환상, 다빈치》이라는 책에서 가우디는 "별은 천체궤도를 따라 공전한다. 그리고 자전을 하는데 나선형을 이루며 회전한다. 성가족 성당의 기둥은 힘의 벡터Vector에 따른다. 이것은 안정성의 궤도이며 균형을 의미한다. 기둥의 형태는 별이 미끄러지듯 회전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진다. 이 회전운동 또한 나선형을 이룬다. 모든 양식이 종합된 성가족 성당의 기둥장식은 이 원칙에 따라 적용되었다. ...(중략)... 고고학적인 전통주의와 과거의 양식을 즉흥적으로 취급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들과 달리 나는 합리성에 의거한 생생한 전통주의를 추구했다."고 말했다.
완성될 성당은 총 18개의 탑으로 구성될 것이라고 한다. 18개는 예수님의 12제자와 4명의 복음서 저자, 그리고 성 마리아와 가장 높은 탑은 당연히 예수님을 상징한다. 예수님을 상징하는 탑의 높이는 170m 정도고 그 위에 십자가가 올려질 계획이다. 흥미로운 점은 가장 높은 탑의 높이는 바르셀로나의 몬주익Montjuic 언덕 보다 1m 가량 낮은데, 이는 가우디가 자신의 작품이 신의 작품을 능가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재 성당의 동, 서, 남쪽 파사드Facade 중 동쪽의 Nativity facade와 서쪽의 Passion facade가 완성됐고 남쪽 Glory facade는 공사 중이다. 성당의 주 입면인 Glory facade는 내가 이곳을 처음 방문한 2000년 기초공사를 시작했었다. 두 번째로 갔던 2005년에는 한창 공사중이었다. 세 파사드는 예수님의 탄생에서 죽음까지 이르는 삶을 담고 있다. 동쪽의 Nativity facade(위 사진)는 1892년 지어지기 시작해 성당의 공사가 중단된 1935년 이전에 완료됐다. 그래서 이 파사드는 가우디가 직접 감독했다. 예수님의 탄생과 예수의 인간적인 부분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Nativity facade는 '탄생'이라는 키워드에 맞게 하루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면을 향하고 있다. 파사드에 있는 3개의 문 -비단 Nativity facade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은 기독교에서 중요시 여기는 세 덕목인 '믿음', '소망', '사랑'을 상징한다. Nativity facade 상부에 올려진 4개의 탑은 St. Barnabas, St. Jude, St. Simon, St. Matthew를 상징한다.
전체적으로 유기적이고 다소 그로테스크Grotesque한 Nativity facade와는 대조적인 깔끔한 직선에 간결한 구성으로 만들어진 Passion facade(위 사진)는 가우디가 1911년에 디자인의 원형을 완성했다. 하지만 실제 작업은 1952년 시작하여 1982년 완성됐다. 파사드에 있는 조각은 Josep Maria Subirachs의 작품이다. Passion facade는 Nativity facade가 담고 있는 내용과는 정반대인 예수의 '고난'과 '희생' 그리고 '죽음'을 담고 있다. 그래서 Passion facade는 하루가 끝나는 서쪽을 향해있다. 파사드 상부에 있는 4개의 탑은 St. James, St. Bartholomew, St. Thomas, St. Philip을 상징한다. 완전히 대조적인 Nativity facade와 Passion facade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디자인 된 남쪽의 Glory facade(아래사진)는 신의 영광을 나타낸다. Glory facade 상부에 건설될 4개의 탑은 St. Andrew, St. Peter, St. Paul, St. James를 상징한다. 성당 북쪽의 Apse facade는 St. Mary를 상징하는데, 처음 성당건설을 시작한 지하성당 상부에 건설됐다. 고딕 양식을 연상시키는 이 부분을 구성하는 탑들은 각 수도회의 설립자를 상징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성가족 성당의 내부는 공사현장이다. 가우디는 성당의 규모를 고려해 일반적인 성당과는 다르게 5개의 통로Aisle를 갖춘 라틴십자가Latin cross형태로 설계했다. 내가 이곳을 처음 방문한 2000년에는 성당의 트랜셉트 볼트Transept Vault와 애프스Apse 건설을 위한 가운데 주랑 볼트vault가 완성돼 있었다. 두 번째로 방문했던 2005년에는 성당 양측면 파사드를 제외한 측벽이 만들어지고 있었고 부분부분 Joan Vila-Grau가 작업한 스테인드 글라스Stained Glass도 눈에 들어왔다.
가우디가 지속적으로 유지해온 '자연'이라는 모티브는 성가족 성당에서도 유지됐다. 까사바트요Casa Batllo(1906, 위 사진)에서의 직접적인 차용과 까사밀라Casa Mila(1912, 아래사진)에서의 건축물 형태와 구조적인 모습으로의 발전은 어떻게 보면 성가족 성당을 위한 일종의 실험이었던 것 같다. 실제 가우디는 이 두 작품을 설계하는 동안에도 성가족 성당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리고 성가족 성당에서 표현하고 있는 '자연'은 단순한 형태적인 차용을 넘어 그 안에 자신의 논리를 적용시키는 과정을 보여준다. 흔히, 성가족 성당에 대해 입체기하학에 뿌리를 두고, 고정된 비례 체계에 따라 조정되었다고 평가한다.
"The column design inspired in trees. ...(중략)... The columns start from a squared base, that evolutes changing into a two helicoids spinning in the opposite direction. These ways are created some grooves that increase in lumber as the column grows up."
"The vaults are the result of the intersection of the geometrical forms(Hyperboloids and Paraboloids). The circular orifices of the hyperboloids are used for lighting and ventilation."
"Gaudi considered that nature's creations are always beautiful to contemplate in that they are the perfect application of form to object and their use and purpose. His harmony embodied in nature always surprises us as much as before the most immense of trees as before the smallest insect."
"Gaudi's forms, no matter how surprising, always obey logic whether it be aesthetic, geometric or structural, each part corresponds and contributes to the totality of the work"
-성가족 성당의 설명 문구에서-
가우디는 "슬프게도 내 손으로 성가족 성당은 완성시키지 못할 것이다. 내 뒤를 이어서 완성시킬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교회는 장엄한 건축물로 탄생하리라. 많은 예술가들이 형태와 양식의 다양함 속에서도 통일성을 잃지 않을 것이다. 한사람이 저지른 부주의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수정되기도 한다."고 말하며 자신 사후에 진행될 일에 대한 일종의 가이드라인Guideline을 남겼다《가우디 공간의 환상, 다빈치》. 성가족 성당은 분명 가우디가 설계한 건물이다. 하지만 착공한 지 100년이 넘은 지금도 그의 설계에 따라 지어질 수 있었고 또 앞으로 반세기를 더 건설할 수 있다는 건 성당이 있는 바르셀로나라는 도시와 사회 그리고 시민들 때문이다. 어쩌면 이 사실을 가우디는 알고 있었을 듯 하다. 흥미로운 건 도시를 대표하는 하나의 대작이 한 사람에 의해서가 아닌 세대를 거듭하고 여러 건축가들의 손을 거치는 것이 어쩌면 으레 당연한 과정이고 그래왔던 상황인데, 철근콘크리트와 모더니즘이라는 사조의 등장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모더니즘 시대의 한 마스터Master의 작품을 누군가가 손대는 것 자체가 이미 변절인지도 모른다. 현대 미술이 그렇듯 당시 건축은 한 건축가의 지고지순한 생각을 담고 있을 뿐 사회적으로 통용됐던 미적 기준이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또 그 안에는 어려운 추상예술이 '해석은 너의 몫이지'라는 무책임함(?)을 관람객에게 얘기해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걸 느끼게 하는 대상을 만들어 내는 건 한 명에 의해서만 가능했다. 즉, 모더니즘 건축이 표현하고 담아내고자 하는 담론은 그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 한 사람에 의해서만 가능했다. 물론, 한 세기 동안 지어지는 과정에서 성가족 성당 공사에 대한 회의적인 문제제기도 있었다. 예를 들면 지금과 같은 도시환경과 이데올로기Ideology 속에 사는 시대에 절대적인 신을 기념하기 위한 건축물이 필요한가?라는 의문이나 시대가 변하고 그에 따른 미의 기준도 변한 지금 가우디의 설계에 따라 성당을 완성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등이었다. 이런 의문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았는지 가우디는 "There is no reason to regret that I cannot finish the church. I will grow old but others will come after me. What must always be conserved is the spirit of the work, but its life has to depend on the generations it is handed down to and with whom it lives and is incarnated."라고 말했다고 한다(출처: 성가족 성당 홈페이지).
2005년 성당을 두 번째로 갔을 때 처음 봤을 때 보이지 않았던 점이 보였다. 그 중 하나가 성당을 둘러싼 도시패턴Urban Pattern과 그 다음에 대한 내 나름의 예측이었다. 성당은 바르셀로나 2지구인 앙상쉐Ensanche(Eixample)지구를 구성하는 133.3m X 133.3m 블록 안에 있다(아래 구글 위성사진). 물론 성당을 처음 건설하고자 했던 보카베리야가 대지를 매입할 당시 주변상황이 현재와 같지는 않았다. Ensanche지구의 개발이 1860년에 처음 시작됐고 성당 건설이 시작된 1882년에 대지는 Ensanche지구 외곽이었다. 현재 성당은 하나의 블록 안에 있고 Nativity facade가 면해 있는 북동쪽 블록에는 연못이 있는 공원이, Passion facade가 면한 남서쪽 블록에는 일반적인 오픈스페이스Openspace가 있다. 그리고 정북방향으로 Avinguda de Gaudi가 Hospital de St.Pau와 일반적인 그리드 블록Grid Block을 찢고 직접 연결돼 있다.
성가족 성당 박물관에는 성당의 시대별 성장을 보여주는 사진이 전시돼 있다. 하지만 내 눈에는 성당의 성장 만큼이나 성당 주변의 개발되는 과정이 더 흥미있게 보였다. 그 과정을 보면서 성당이 완공됐을 때 성당 정면에 어느 정도의 광장을 확보하는 것이 좋을 텐데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광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성당 남동쪽에 인접한 블록에 있는 기존 건물들을 수용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성당은 Ensanche지구의 한 블록 안에 갇힌 상태가 된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우디의 설계대로 성가족 성당의 건설을 지켜준 바르셀로나가 이번에는 성당 완공과 함께 건물을 더 빛나게 해주는 기회를 줄지 궁금했다. 이런 걱정을 나만 한 것은 아니었다. 작년(2016년) 10월 17일 아키데일리archdaily 기사를 보면 성가족 성당 완공에 앞서 해결되지 않은 세 가지 갈등을 언급했는데, 그 중 마지막 갈등이 성당 전면 광장 조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