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하는 《2016 전국문화기반시설 총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222개의 미술관과 826개의 박물관이 있다. 이 중 등록일 기준 가장 오래된 미술관은 1986년 8월 25일 등록 및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전신은 1969년 경복궁에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이다. 이후 1973년 덕수궁 석조전 동관으로 이전했다가 과천에 신축미술관을 준공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은 덕수궁미술관(1998), 서울관(2013), 청주관(2018)을 포함해 4관으로 나뉘어 있다. 서울관 개관에 따라 연관람 인원은 역전됐지만 그럼에도 국립현대미술관의 본관은 과천관이다(2015년 연관람 인원: 서울관-1,101,565명, 과천관-708,609명).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과천관의 입지는 외지다. 《미술관 옆 동물원, 1998》이라는 영화가 있기는 하지만 서울대공원과 서울랜드를 찾은 차량들 때문에 정체를 겪어야 하는 상황도 달갑지 않다. 이 상황만 피할 수 있다면 과천관으로 들어오는 3km 길이의 산길은 미술관으로의 전이과정으로 보기에는 적당한다. 물론 미술관이 전이과정이 필요한 시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1983년 1월 정부는 1986년까지 문화시설 대폭 확충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핵심 사업은 예술의 전당, 국악당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 신축이었다. 사업의 기한을 1986년으로 못 박은 것도 특이한데, 참고로 전두환의 임기가 1987년 까지였다. 국립현대미술관 신축 사업의 성격을 단번에 보여주는 기사가 있다. 1983년 4월 9일 경향신문에 실린 기사에는 "10월에 착공한다"는 내용과 함께 "이진희 문공부장관은 제5공화국의 새문화정책일환으로 추진해온 국립현대미술관의 최종안을 확정"과 "이같은 문화예술공간의 확대는 제5공화국의 강력한 문화창달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역설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자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짓지만 치적은 자신에게 돌아오는 대형건축 건립에 열중해 왔다. 더군다나 정권의 정당성이 약한 정부일수록 문화시설 건립은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좋은 당근이었다. 국민 모두가 누릴 수 있는 대형문화시설을 건립하는 정부 만큼 권력자를 세련되게 만드는 행위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5.16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부는 지방 곳곳에 국립박물관을 만들었고 광주의 학살을 바탕으로 수립된 제5공화국은 박물관 보다 더 세분된 시설들을 지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설계는 지명현상으로 이루어졌다. 김수근과 윤승중 등과의 경쟁에서 선정된 설계자는 김태수. 김태수는 1936년생이다. 한국 근대건축의 양대산맥인 김중업(1922)과 김수근(1931)과는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럼에도 김태수는 두 건축가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서울대에서 석사까지 마친 김태수는 1961년 도미하여 예일대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그에게 건축을 사사한 사람은 Paul Rudolph였다. 1968년까지 6년 간은 Philip Johnson 사무실에 있었다. 워낙 카멜레온 처럼 건축언어를 바꿔 온 필립존슨이어서 시기가 중요한데, 당시 필립존슨은 국제주의 양식International Style에 한창 빠져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영주 부석사와 수원 화성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전통건축이다. 이런 내용은 몇몇 신문기사에도 실렸다(과천현대미술관 설계美는 자연과의 어울림, 서울신문, 2016.2.21). 영주 부석사는 과천관 외부공간 기본계획과 관련있다. 《월간 건축문화 1983년 7월》호에 실린 계획안 내용에서 김태수는 "공간구성 방식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전통적 공간구성 방법을 고려하여 외부공간은 단段에 의한 공간의 분절로 점진적인 진입이 이루어지게 하고, 건물 전면의 마당은 건물 높이에 맞춘 마당깊이로 개방의 방향성을 추구하도록 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전통 건축에서 단에 의한 공간 분절의 대표적인 예가 영주 부석사다. 그런데 김태수는 부석사에서 단에 의한 공간의 분절 뿐만 아니라 단이 높아질 때마나 새로운 풍광과 건물이 나타나는 장면의 변화도 설계 모티브로 사용했다. 이에 관련하여 김태수는 배치계획 중 두 번째 내용으로 "미술관을 두 고지高地에 걸쳐 배치하고, 미술관에 직교하는 진입축을 고지사이의 골짜기에 형성하여 진입공간에 고전적 성격을 도입하고, 조망효과를 극대화시킨다"고 썼다.
그런데 김태수의 위 배치계획의 의도를 느끼기 위해서는 방문객의 행동에 중요한 가정이 성립되어야 한다. 과천로를 통하든 스카이리프트Skylift를 이용하든 방문객은 건물 남서쪽에 있는 정문을 통과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미술관에 직교하는 진입축'을 통해 들어오려면 방문객은 인지성이 확연하고 무엇보다 더 짧은 1시 방향의 접근로가 아닌 3시 방향의 우회로를 따라 걸어야 한다. 당연히 현재 대부분의 방문객들은 설계자가 의도한 3시 방향의 접근로가 아닌 1시 방향의 접근로를 이용한다. 더군다나 정문 옆에 제1주차장이 아닌 미술관 남동쪽에 있는 제2주차장을 이용한 방문객은 건물 앞으로 난 접근로를 이용하기 때문에 배치 의도를 느낄 수 없다.
그럼에도 건축가의 의도를 따라가 보면, 정문에서는 미술관의 남서쪽 모서리가 살짝 보인다. 그 다음 미술관 남쪽 길을 따라 들어오면 연못가에 심어진 나무로 미술관은 가려진다(위 사진). 그러다 호수 가운데, 설계자가 의도한 지점에 도착하면 미술관으로 곧게 뻗은 다리와 그 배경으로 낮게 앉혀진 미술관의 정면이 한눈에 들어온다(아래사진). 설계자는 아마도 이 순간에서 부석사 범종각 1층 어둠을 뚫고 나와 펼쳐지는 안양루와 무량수전을 접했을 때 느껴지는 극적임을 의도한 듯 하다. 서상우와 이성훈은 "산 중턱의 장소성을 고려하여 작은 스케일로 제어된 전통적 조형 이미지를 의도하고 있으며, 크고 당당하면서 주변경관에 순응하는 건축이 시도되고 있다"고 썼다《한국 뮤지엄건축100년, 기문당》.
하지만 부석사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던 '일부러 그랬다'라는 작위성이 과천관에서는 너무 다분히 읽힌다. 특히, 정문에서 미술관으로 접근하는 짧고 확연한 동선이 건축가가 의도한 접근로 보다 더 많이 이용하고 있다는 지금의 상황은 건축가의 의도가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 비록 산자락에 엄청난 크기의 시설(연면적 34,006㎡)을 자연스럽게 앉히기 위해 전통건축(부석사)에 적용된 수법을 사용했고 어느 정도는 성공했지만 과천관의 땅에 맞지 않은 수법들은 결국 심한 '동선 몰이' 밖에 안됐다.
수원 화성은 "자연지형에 조화 되는 전통적 산성 또는 봉축대를 연상시키는 형태와 재료를 취하여 고전적 조형성을 부여한다"라는 입면계획과 연관돼 있다. 그는 건물 외장재 선택 때 "수입 대리석이라니요? 관악산을 좀 보세요. 저 산처럼 우리 땅에 지천인 화강암이 얼마나 좋은가요. 이 미술관 외관을 다 저 돌로 쓸 겁니다"라고 했단다. 당시 "화강암은 너무 흔한 돌이라 많이 써봐야 돌담에나 쓴다며 공무원들이 말렸다"고 한다. 그가 화강암을 외장재로 사용한 이유는 "건축물은 그게 놓인 땅과 장소의 일부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천관에서 반드시 수원 화성은 아니더라도 산성의 이미지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은 앞서 언급한 건축가가 의도한 접근로에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집으면 저수지 가운데 올려진 다리를 건너 바라본 미술관의 정면에서다. 이 장면에서 미술관은 원뿔지붕이 얹혀진 원통형 매스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곡선의 벽이 층층이 있다. 평면에서 보면 과천관은 비대칭이지만 정면에서 보이는 장면은 완벽한 대칭에 가깝다(위 사진).
성벽 이미지에 좌우로 긴 매스. 이는 다분히 과천관 완공 몇 달 전에 개관된, 전세계인들의 관심을 모았던 슈투트가르트 갤러리Stuttgart Gallery를 떠오르게 한다. James Stirling은 '주변환경과의 조화'라는 설계지침을 따르기 위해 건축물이 들어선 부지에 있었던 성곽을 떠올릴 수 있도록 슈투트가르트 갤러리를 설계했다. 그런데 슈투트가르트 갤러리는 이전에 성곽이 있던 자리이니 이러한 이미지를 가지고 오는 것이 좀 직설적이긴 해도 과거를 떠올리게 하려는 의도와 맞다. 하지만 과천관이 지어진 땅과 산성과의 관계는 없다. 오히려 미술관 건물에서 외부를 바라보는 창이 그렇게 필요한 요소는 아니고 그래서 개구부가 없는 벽으로 지어지는 건물을 전통건축 중 하나인 성벽으로 설명하려는 의도가 더 강하다. 오히려 육중한 돌로 이쪽 공간과 저쪽 공간을 나누는 성벽과 목구조 건물들이 단을 이루며 공간을 이루는 부석사의 열린 전개가 너무 상반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천관 내부를 돌아다니다 보면 외국의 여러 뮤지엄들의 공간들이 겹쳐진다. 우선 과천관 가운데 있는 램프코어Ramp Core는 다분히 Frank Lloyd Wright가 설계한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을 떠오르게 한다. 그런데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에 램프는 관람동선이자 전시공간이다. 물론 그래서 생기는 불합리한 점도 있지만 이 둘을 하나로 합치면서 물 흐르는 듯한 자연스러운 전시동선을 시도했다. 물론 과천관의 램프코어도 가운데에 있는 백남준의 '다다익선'을 감상하는 관람동선이자 전시공간이지만 전체 관람동선에서 수직이동을 하는 역할에만 머문다는 한계가 있다.
또한, 건물 동쪽에 3개층을 관통하는 중앙홀에서는 파리Paris의 오르세이 미술관O'rsay Museum이 떠오른다(위 사진). 제1~6전시실은 중앙홀을 통해 연결된다. 임석재는 과천관이 "한 나라를 대표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양식상의 저작권 내지는 독창성 문제는 건물의 생명과도 같은 것"이라며, "구겐하임 미술관과의 직접적 유사성이나 슈투트가르트 갤러리와의 유사성 등은 심각하게 논의되어야 할 사항이다"고 지적했다《한국 현대건축 비평; 후기산업사회와 현대건축이야기, 예경》.
2016년 과천관 개관30주년에 맞춰 <김태수: 워킹 인 투 월드Working in Two Worlds〉展이 열렸다. 과천관을 포함해 김태수 작품세계를 조명하기 위한 전시였다. 개막식 참석 차 전시장을 찾은 김태수는 "초가마을이 설계 뿌리"이고 "화강암 외관을 끝까지 고집했다"고 말하며,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에게 "특별한 건축 철학은 없다"며, 건물이 두드러져 보이는 게 아니라 "그 장소와 땅의 일부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관 31주년이 된 과천관은 김태수가 이끌고 있는 TSKP Studio의 홈페이지 첫 페이지 'Featured Work'을 여전히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