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직장인들 사이에서 회자됐던 황금연휴의 끝은 한글날이다. 한글날의 유래는 1446년(세종28년) 9월 “훈민정음이 이루어지다是月訓民正音成”라는 『세종실록』이다. 이를 기념하는 날인 한글날이 처음 만들어진 시기는 1926년으로 조선어연구회가 주체였다. 그러니까 2020년은 제91번째 한글날 이다. (글작성 2017년)
한글날의 최초 명칭은 ‘가갸날’이었는데, '한글'이라는 말이 보편화되지 않았을때 ‘가갸거겨...’에서 따왔다. 가갸날이 한글날로 바뀐 해는 1928년이고 1931년에는 음력 9월 29일을 양력 10월 29일로 정했다. 그러다 1945년 광복 후 여러 가지 날짜 환산을 통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10월 9일로 정했다.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는 1446년 ‘훈민정음’ 자체가 아니라 훈민정음을 설명한 한문해설서인 『훈민정음 해례본』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하였다. 이 책은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70호로 지정됐다.
한글을 콘텐츠로 하는 박물관을 국가 상징물로 짓겠다는 대통령 업무보고는 2009년 12월에 있었다. 당시 건립 부지는 용산 국립중앙박물관과 서빙고로 사이로 정해져 있었다. 이듬해 3월 <국립한글박물관 건립 기본계획> 수립, 4월 건축설계 용역 현상공모 시행, 6월 설계안 선정, 2011년 1월 건축설계 및 전시설계 완료됐다. 그리고 7월에 착공된 한글박물관은 2013년 8월 준공됐고 2014년 2월에 전시 공사를 끝낸 뒤 그해 제88번째 한글날(10월 9일)에 개관했다.
△ 원도시의 안. 자음 ‘ㅇ’ (좌측) / 우수작으로 선정된 한기엔지니어링과 주우건축의 안. 자음 ‘ㅅ’ (우측)
한글박물관 현상설계에서 가장 염려됐던 부분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글의 생김새가 기하학적 이라는데 있었다. 응모작들이 모두 한글의 기하학을 매스의 형태로 발전(?)시킬 것 같다는 걱정이었다. 현상설계 결과 이런 염려와 걱정은 현실이 됐다. 응모작들 대부분은 한글 자음의 형태를 건축의 형태로 연결시켰다.
△ 당선작
당선작은 자음 ‘ㅁ’을 떠오르게 하지만 그보다 세라믹 패널로 마감한 3층 입면에 자음과 모음, 한글 완성형 2,350자 그리고 전통 조각보의 이미지를 패턴화하여 음각했다. 더불어 박물관 서쪽에 유사한 패턴을 LED와 한글 조형물로 활용한 한글 박석 마당도 제안했다. 설계자는 이런 요소를 통해 ‘한글’과 ‘전통’을 풀어내려 했다. 하지만 이 모두 실현되지는 않았다.
한글이라는 정말 괜찮은 콘텐츠, 국립중앙박물관 전면이라는 상징적인 입지를 고려했을 때 현재 한글박물관의 모습은 안타깝다. 솔직히 표현하자면 '한글'과 상관없이 잘 지어놓은 공공건축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극단적으로 박물관 안에 전시물을 모두 치우고 주민센터로 사용한다 해서 안 될 것도 없는 건물이다.
우선 땅이 너무 아깝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경우 입지 선정 당시 왈가왈부가 있었다. 하지만 한글박물관의 비중은 국립중앙박물관과 비교할 수 없고 무엇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한차례 논란을 거쳤기 때문에 그 전면에 지정된 한글박물관의 입지에 대해서는 찬반논란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국립중앙박물관이 주도하는 '용산 뮤지엄 컴플렉스' 사업과 맞지 않다는 의견은 있었다.
현상설계 안이 됐든 완공된 지금의 모습이 됐든 한글박물관을 보며 드는 아쉬움은 어설픈 조형성으로 오브제Objet이고자 했다는 점이다. 더 쉽게 얘기하면 한글박물관은 땅으로 보다 더 닿았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 입지가 도시공원의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문화 및 전시시설이기 때문이다.
한글박물관은 서빙고로에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진입하는 광장 동쪽에 배치돼 있지만 좌우대칭을 이룰 필요도, 국립중앙박물관 부속 전시시설처럼 느껴질 필요도 없었다. 스토리라인Storyline의 연결도 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글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 보다 그 주변 오픈스페이스와의 관계를 더 고려했어야 했다. 무엇보다 한글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 주출입구 앞에 만들어진 열린마당과 같이 남산과 보이지 않는 관악산을 포함한 한강 -실제 보이는 건 이촌코오롱아파트 106동 뒷통수- 을 차경하기 위한 단段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조금 더 직접적으로 얘기하면 박물관의 주 출입구를 2층에 둘 필요가 없었다는 얘기다.
물론 설계자가 이렇게 매스를 설계한 이유도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기본계획상 정해진 스페이스 프로그램Space Program을 담아내기에는 건물이 앉혀질 수 있는 대지 규모가 작았기 때문이었을 듯 하다. 실제 설계자는 '제안된 프로그램의 면적범위 안에서 설정된 매스에서 하늘과 소통하며 외부접지면적을 확장시키기 위해 중정을 삽입'했다고 한다(위 사진).
다음으로 한글박물관 입지에서 생각해야할 점은 건물의 크기나 영역보다 박물관과 맞닿는 도시조직인 서빙고로와 건물간의 관계에서 생기는 단절이었다. 서빙고로는 남쪽으로 경의중앙선이 지상으로 지나고 동부이촌동으로는 연결되지 않으며, 가로를 따라 활력을 줄만한 요소가 없어 횡하다. 더군다나 국립중앙박물관은 서빙고로에서 300m 가량 물러나 있기 때문에 가로경관과는 상관이 없다. 그렇다면 국립중앙박물관을 대신해(?) 서빙고로에 전진 배치돼 있는 한글박물관은 남쪽 입면과 같이 가로와 만나는 부분의 처리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현재 서빙고로에서 한글박물관으로 진입하는 동선이 있기는 하지만 그 사이에 심어진 나무로 인해 잘 인식되지 않는다. 동선의 경로도 직접적이지 않고 ┘자로 꺾여 있다. 서빙고로에서 건물로 바로 진입하는 동선은 지하주차장으로 연결되는 경사로다. 더군다나 건물의 주출입구가 북서쪽,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나있다 보니 서빙고로와 만나는 남쪽 입면은 후면이다.
건물의 후면이라 해도 한글박물관의 평면이 ㅁ자이고 기능적으로 전기실, 수장고, 사무실 등은 서빙고로 반대편, 북동쪽 구석에 배치돼 있기 때문에 입면은 가로경관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런데 서빙고로에 면한 남쪽 입면은 참으로 밋밋하다(위 다음로드뷰 참고). 기본적으로 다른 재료 –석재, 알루미늄 펀칭 메탈, THK24 로이유리 등- 로 마감된 입면이 수평으로 적층되어 있지만 마감재의 컬러톤Color tone이 회색으로 모두 비슷해서 빈 벽 처럼 느껴진다. 가로에 면한 1층, 2층부 어디에서도 가로경관을 고려한 관계는 없다. 그래서 3층 구석에 '국립한글박물관'이라는 간판만 떼어내면 데이터 센터나 공장건물 같다.
그런데 현상설계 때 제안됐던 안은 지금과 달랐다(위 이미지). 설계자는 서빙고로에 면한 남측 입면을 '소통의 창'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1층에는 전통문양을 패턴화한 유리입면을 계획하여 주변 컨텍스트와 소통하는 이미지'를 만들었고 '2층 펀칭 메탈 입면에는 한글박물관을 인지할 수 있는 로고Logo를 삽입'했다. '3층 입면은 세라믹 패널 입면을 조각보와 함께 사선으로 절개'해서 다양한 변화를 주었다. 적어도 지금처럼 밋밋한 회색의 높은 빈 벽과 그 끝에 걸린 간판으로 보여지는 모습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