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돈을 쓰는 상업공간도 진화했다. 그 중 '몰링Malling'이라는 단어는 쇼핑센터Shopping Center에 영화관, 식음시설, 테마파크, 공연장 등이 섞이면서 등장했다. 시기적으로는 2005년에 시작해 2007년에 빈번해졌다. '몰링Malling', '몰고어Mall-goer'라는 단어와 함께 언론에 첫 번째로 등장한 시설이 용산 '아이파크몰'이었다. 몰링의 등장에 맞춰 백화점들이 복합쇼핑몰 사업에 뛰어들었고 2009년 부산 신세계센텀시티(신세계), 평택역사몰(AK플라자), 영등포 타임스퀘어(경방, 신세계, 아래사진)가 개장하면서 본격화됐다.
몰고어들의 몰링을 위해 복합쇼핑몰을 설계해야 하는 설계자들 그리고 개발사들이 가장 먼저 필요했던 건 선례였다. 국내에 선례가 없으니 해외로 눈을 돌려야 했고 자연스럽게 '저드 파트너쉽The Jerde Partnership'이라는 설계회사가 이목을 받았다. 저드 파트너쉽은 1977년 존 아담스 저드Jon Adams Jerde(이하 저디, JER-dee)가 설립한 설계회사다. 저디는 1940년 1월 22일 일리노이Illinois주 알톤Alton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정유회사 기술자였는데, 거처를 자주 옮겼다고 한다. 그의 가족이 최종적으로 정착한 곳은 캘리포니아 롱비치Long Beach였다.
저디가 처음 진학한 대학은 UCLA 공대였다. 하지만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저디는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의 학과장과 면담을 한 뒤 USC 건축대학으로 편입했다. 1965년 졸업 후 저디가 경력을 시작한 곳은 찰스 코버 어소이에이츠Charles Kober Associates였다. 이 회사는 쇼핑몰에 특화된 설계사무소 였다. 1977년 저디는 디벨로퍼Developer 어니 한Ernie Hahn이 의뢰한 샌디에이고San Diego의 호튼 플라자Horton Plaza 설계를 계기로 사무소를 차렸다. 그런데 호튼 플라자는 단순한 쇼핑몰을 설계하는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호튼 플라자 대상지는 쇠퇴한 샌디에이고 다운타운Downtown의 한가운데 였는데, 구도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지 못하면 프로젝트도 성공할 수 없었다. 그래서 호튼 플라자는 프로젝트 시작에서 개장(1985년 8월)까지 8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호튼 플라자는 개장 첫 해 25,000,000명이 방문하며 대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2004년까지 샌디에이고에서 면적당 판매액이 가장 높은 쇼핑몰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일시적인 성공이 아니라 꾸준히 사람들이 찾아왔다는 얘기다. 저드 파트너쉽 홈페이지에 따르면 개장 이후 샌디에이고 도심 지역의 재생을 위해 24억불 정도가 유치됐다고 한다. 2005년 개장 20주년을 맞았을 때 샌디에이고 유니언 트리뷴The San Diego Union-Tribune은 "A destination for urban shoppers, diners and moviegoers, the outdoor mall is teeming with distinctive architectural personality, a playful pastiche of faux architectural elements, tiled walls and fountains, and quirky connections via bridges, stairs and ramps."라고 썼다. 저자가 샌디에이고에 머무는 동안에도 호튼 플라자는 응접실과 식당 그리고 서재가 돼 주었다.
화려한 색으로 칠해진 호튼 플라자는 고대 건축 형태로 넘쳐난다. 아치형 창도 모자라 만화 같은 그림이 그려진 오벨리스크Obelisk, 큐폴라Cupola, 그리고 거대한 계단 까지 부정적으로 보면 키치Kitsch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는 저디가 1960년대 초 다녀온 유럽여행에서 받은 영향 때문이었다. 이 여행에서 저디는 유럽 도시의 공공광장과 그곳에서의 활력에 깊은 감동을 받았고 이런 장소를 자신의 조국에도 만들어야 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다만 원본이 지닌 역사라는 무거움을 활기찬 상업시설로 대체하기 위해 고대 건축물의 형태에 포스트 모더니즘Post modernism적이고 팝아트Pop art적인 외관이 가미됐다.
이런 저디의 생각은 미국을 넘어 심지어 일본에 있는 복합쇼핑몰 설계에도 적용됐다. 도쿄 인근의 가와사키Kawasaki에 설계한 '라 시타델라La Cittadella(2003)'는 이름 그대로 이탈리아의 '성城', '요새'를 디자인 모티브Motive로 활용했다(위&아래사진). 고대 건축 언어를 차용한 저디의 설계를 보고 윈 리조트Wynn Resort의 CEO이자 부동산 개발업자 스티브 윈Steve Wynn은 "우리 시대의 베르니니The Bernini of our time"라고 불렀다.
개인적으로 호튼 플라자에서 눈여겨 본 부분은 패턴Pattern이었다. 샌디에이고 다운타운은 65m X 90m 크기의 그리드 블록Grid Block으로 이루어져 있다. 호튼 플라자는 이러한 크기의 블록 6개(동서 3개, 남북 2개)를 합친 영역에 지어졌다. 이럴 경우 자칫하면 기존 블록 보다 큰 매스가 인접한 블록의 활력을 빼앗을 수도 있다. 이를 고려해 저디는 주변 블록 크기에 맞춰 호튼 플라자를 6개의 영역으로 나눴다. 무엇보다 호튼 플라자를 대각선으로 가르는 내부동선을 설계했는데 이 동선은 호튼 플라자 영역과 주변 다운타운 영역을 넘어 남서쪽으로 600m 가량 떨어진 샌디에이고 컨벤션센터Convention Center와 워터프론트Waterfront로 향한다. 물론 호튼 플라자와 워터프론트 사이에는 두 블록이 더 있어서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저디는 샌디에고 다운타운의 재생을 위해서는 호튼 플라자와 워터프론트 간의 시너지Synergy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호튼 플라자와 그리고 같은 시기에 동시에 진행했던 '84 올림픽Olympic'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저디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혼합된 새로운 복합쇼핑공간을 선도했다. 그리고 그의 명성은 미국을 넘어 새로운 소비 중심지로 떠오른 아시아까지 영향을 미쳤다. 1995년 저디는 홍콩에 첫 번째 해외사무소를 설립했다. 현재는 서울과 상하이에도 사무소가 있다. 아시아 지역의 성공을 이끈 프로젝트는 단연 일본 후쿠오카Fukuoka에 설계한 커낼 시티Canal City(1996)다.
커낼 시티 개발은 저디가 미국에서 수행했던 프로젝트와는 성격이 조금 달랐다. 호튼 플라자 처럼 저디의 미국 내 프로젝트들은 쇠퇴한 구도심의 재생 차원에서 진행됐다. 반면 커낼 시티는 1980년대 후반 도심에 대규모로 유입된 사람들을 타겟Target으로 과거 쇠퇴한 쇼핑가를 재생시키는 차원이었다. 즉, 호튼 플라자는 도시 재생을 이끌어야 했지만 커낼 시티는 도시 재생의 주도권을 다퉈야 했다. 커낼 시티에서 저디는 후쿠오카 도심을 흐르는 수로를 쇼핑몰 내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수로를 중심으로 방문객들이 체험할 수 있는 시설과 장소를 배치했다.
저디 홈페이지에 따르면 커낼 시티 개장 첫해 16,000,000명이 방문했고 매출은 5억불이 넘었으며, 캐널 시티 내 극장은 후쿠오카 도시 전체의 영화티켓 판매액의 55%를 점유했다고 한다. 심지어 커낼 시티가 있는 후쿠오카는 1997년 《아시아 위크Asia Week》가 선정한 '아시아 최고의 도시'에 선정되기도 했다. 커낼 시티에서도 내가 눈여겨 본 부분은 패턴이었다. 커낼 시티는 1990년대 접어들어 저디가 자주 사용했던 곡선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저디는 고대 건축 형태 만큼이나 자연의 이미지를 자주 차용했는데, "모래언덕에서 볼 수 있는 바람무늬, 계곡에서 볼 수 있는 지층모양으로 된 겹쳐진 곡선, 인체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복잡한 곡면"에 대해 오랜 세월에 걸쳐 연구했다고 한다. 저디는 직석과 격자 등으로 이루어진 건축의 세계에서 곡선은 무시되어 왔지만 "나에게 있어서 곡선이야말로 중요한 디자인 요소"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곡선은 도시의 직선 가로와 블록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곡선으로 설계된 저디의 건축물들은 주변 블록과 함께 봤을 때 이질적이다. 더군다나 곡선은 구심력이 강한 기하학이어서 주변 도시조직과는 절연된, 몰을 이루는 시설 안쪽으로만 열려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커낼 시티에서도 주변 가로는 각 시설로 접근하는 서비스 도로의 역할만 할 뿐이다. 심지어 서쪽을 지나는 수로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 흘러간다. 하지만 저디는 커낼 시티 때문에 보행자가 늘어나서 그 주변도 함께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저디는 2015년 2월 9일 브렌트우드Brentwood 자택에서 세상을 떴다.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는 그의 부고를 알리는 기사 첫머리에 "Jon Jerde, an architect whose designs seized on the human yen to shop, merging the mall and downtown, commercial and public space, and faux environments and real experiences, died on Feb. 9 at his home in Los Angeles."라고 썼다. 저디는 우리나라의 여러 프로젝트에도 관여했는데, 공식적으로 세운상가 4구역 재개발현상(2004), 전남 J-프로젝트 계획(2004), 천안 온천 리조트계획(2005), 건대 스타시티(2006), 시티7몰(2008), 신도림 디큐브시티(2011, 위 사진), 대구 컬러스퀘어 스타디움 몰(2011), 메세나폴리스(2012)가 있다. 비공식적으로는 S-project가 있었는데, 대상지가 현재 삼성서초타운이었다.
저디의 복합쇼핑몰 개념과 설계를 우리 도시에 적용시키기에 무리한 부분도 있다. 대표적으로 야외활동 가능여부다. 그가 자신의 사무소를 차린, 그리고 주로 활동했던 캘리포니아는 일년 내내 야외활동이 가능한 지역이다. 이를 반영한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뉴 산타모니카 플레이스New Santa Monica Place다. 1981년 프랭크 게리Frank Gehry의 설계로 지어진 산타모니카 플레이스는 2010년 저디의 설계로 리모델링됐다(위 두 사진). 이 프로젝트에서 저디는 쇼핑몰 기존 실내복도에서 지붕을 걷어내 외부공간으로 바꿨다. 두 블록을 차지하고 있던 기존 쇼핑몰 건물은 다시 주변 도시조직과 연결된 블록 두 개가 됐다(위 두 위성사진 참고).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일년 중 야외활동이 가능한 기간은 40%가 안된다. 한여름과 한겨울은 너무 덥거나 춥고 여기에 황사나 미세먼지 심한 날을 제외하면 야외쇼핑몰 활용은 상당히 제약적이다. 뉴 산타모니카 플레이스에 처럼 실내공간을 야외공간으로 바꾸기 보다는 오히려 야외공간으로 만들어진 쇼핑몰을 어떻게든 실내공간으로 바꿔야 할 판이다.
그럼에도 우리 도시에 하나둘 늘어나는 복합쇼핑몰을 볼 때마다 쇼핑센터가 쇼핑몰로 진화한 진짜 이유는 사라지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저디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그곳에 만들어질 건물에서 일어나길 바라는 행위를 마음속에 그리고 마치 영화감독 처럼 스토리보드Storyboard에 스케치를 했다고 한다. 그의 아내는 그가 사람들이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일종의 대본을 썼다고 회고했다. 저디가 키치적이라는 비판에도 고대 건축물의 형태를 적용한 이유는 유럽 도시 중심에 활력있는 광장과 같은 장소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장소를 중심으로 사람이 중심이 되는 도시를 만들고 싶어했다. 나아가 저디는 도심 복합쇼핑몰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서 잊혀졌던 풍요로운 지역 공동체 생활의 재편성을 꿈꿨다. 저디는 자신이 건물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장소를 만드는 사람, 경험을 창조하는 사람으로 불리기를 원했다.